*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비록 폴저 부부의 노력으로 도서관이 만들어졌고 폴저 씨의 유산 중 천 만 달러가 도서관 운영을 위해 쓰이게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그 도서관이 그 명성을 유지하며 활발하게 운영되는 데에는 그 이 후 도서관을 맡은 이들과 여러 후원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특히 역대로 이 도서관의 관장은 미국에서 내로라 하는 셰익스피어 연구자 중에서 뽑혔는데 코넬 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던 조셉 퀸시 아담스(Joseph Quincy Adams, 1880-1946) 교수를 필두로 역대 관장들은 폴저 씨가 모은 자료들에 만족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자료들을 모았고 또 도서관을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했습니다.
먼저 초대 관장이었던 아담스 박사는 폴저 씨가 모았던 자료들 즉,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 하여 영국에서 16-17세기에 출판된 자료들도 대단한 자료들도 대단한 자료들이지만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으로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16-17 세기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책들을 수집 대상으로 삼아 장서를 늘려갔습니다. 폴저 씨가 그랬던 것처럼 고서 경매에 참가하기도 하고 책수집가의 서재를 통째로 구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장서를 모았지요.
그리고 두 번째 관장이 된 루이스 라이트(Louis B. Wright, 1899-1984) 씨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헌팅턴 도서관(Huntington Library)의 관장을 역임했던 사람이었는데 폴저 도서관의 관장으로 부임한 후 이 도서관이 명실상부한 연구 도서관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여러가지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 이 도서관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연구자들에게는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한 가지는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6,17세기 자료들은 엄청났지만 그것들을 이용하는데 필요한 각 종 참고 자료들(사전, 문헌 목록, 등)은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자료를 보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길 건너에 있는 의회도서관까지 가서 참고 자료를 이용했어야 했다는 군요.
라이트 관장은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참고 자료들을 늘려나갔고 책을 소장하고 있는 수장고에만 설치 되어있던 에어컨을 열람실에도 설치를 했다는군요. 사실 워싱턴의 여름은 상당히 덥지요. 그런데 처음 도서관을 지을 때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책을 위한 시설만 고려하다 보니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서관 입구에서 도서관을 지키던 경비원의 허리에서 권총을 치우게 한 것도 그 때의 일이었다고 하는군요.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워낙 고가의 책들이다 보니 경비원들을 무장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도서관 입구에서 누군가가 권총을 차고 서 있는 모습은 좀 부담스럽지요. 라이트 관장의 조치를 통해 도서관은 훨씬 더 친근하고 연구에 편리한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도서관의 자체 출판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여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Music in Elizabethan England, The Art of War and Renaissance England, 그리고 English Dress in the Age of Shakespeare 등이 그 때 출판되었던 책들이지요. 그 책들을 통해 폴저 도서관의 이름을 더욱더 많이 사람들에게 알려나가소 연구자들을 위해 충분한 자료와 시설을 준비한 결과 지금 폴저 도서관은 단지 셰익스피어 뿐만 아니라 16-17 세기 영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넓게는 르네상스 시기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반드시 방문해야 할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한 가지 고민이 나타났습니다. 70년대 초반의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가 그 촉발이었기는 합니다만 폴저 도서관을 비롯한 연구 전문 도서관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즉, 시민들이 이용하고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일반적인 공공도서관과 달리 폴저 도서관과 같은 전문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도서관을 유지하고 발전시킬만큼의 경제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지원할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도서관을 이용할 필요성을 가진 사람들이 드뭅니다. 그러니 도서관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더욱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비록 도서관을 이용하지는 않지만 도서관에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맡았던 관장들은 그렇게 손 벌리는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요.
아울러 그와 같은 기금 모금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도서관을 일반인들과 독지가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전문 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도서관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는 각 종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는 일반 대중들을 위한 활발한 홍보 활동과 각 종 문화 활동을 동시에 시작했는데요, 그런 활동을 통해 도서관을 알리고 도서관에 대한 사회의 각계의 지원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그 중 한 가지 활동은 도서관 전속 극단을 조직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도서관 건물을 지을 때 부터 같이 만들었던 고풍스러운 극장이 있었으므로 그 극장에서 전속 극단이 다양한 공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극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물론이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의 극장을 재현하여 나무로 장식된 이 극장의 무대에 섰던 배우들은 다른 어떤 무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할 때면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가서 런던의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하고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래에는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의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맥베드에 관한 짧은 동영상입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의 영국의 문화 전반에 대한 이 도서관의 관심은 극단에 이어 그 시기의 음악을 연주하는 실내악단까지 조직하기에 이릅니다. 폴저 콘소트(Forger Consort) 라는 이름의 이 악단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음악을 발굴하고 또 그런 음악들을 전문적으로 연주합니다. 활발한 연주 활동과 함께 많은 음반도 발표했지요. 고풍스러운 극장에서 듣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음악은 더욱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활동과 함께 폴저 도서관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알리고 그의 작품들을 홍보하기 위해 각계 각층의 일반인들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을 초청해서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직접 공연해 보게 하여 어린이들의 눈과 머리로 셰익스피어를 경험해 보게 하지요. 또 그리고 매 년 4월 23일 셰익스피어의 생일이 되면 도서관과 도서관 정원에서 셰익스피어의 생일 파티를 엽니다. 그 때는 각 종 학술 발표는 물론 셰익스피어 시기의 광대 복장을 한 이들이 나타나서 분위기를 북돋우고 도서관 모양을 한 대형 생일 케익을 자르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시기를 테마로 한 검술 시범에서부터 패션쇼까지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지요. 그 무렵에 워싱턴을 방문하실 기회가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찾아가 보십시오.(아래에는 몇 해전 있었던 셰익스피어 생일 축하 행사의 모습입니다.)
이런 활동 덕분인지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에 대한 사회의 지원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지원 덕분에 이 도서관은 워싱턴 중심에서 문화의 향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와 같은 도서관의 위치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도서관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폴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퍼스트 폴리오를 비롯한 고서들을 바탕으로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서 펴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폴저 도서관의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DVD 로 소개하고 있기도 하지요. 동시에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이용한 이동전시회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른 도서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폴저 도서관은 폐쇄적인 도서관입니다. 이 도서관에서는 개관 이래 도서관의 이용자들에 대해서 상당히 엄격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구경하거나 도서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책과 그림들을 관람하는 것은 모든 방문객들에게 허용되었지만 고풍스러운 열람실에서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들을 읽으며 연구할 수 있는 이용자는 박사 과정 수료자 이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몇 백년 된 고서가 그저 서고에 보관하다가 때로 전시만 하는 그런 고서가 아니라 실제 연구를 위해 이용되는 상황이다 보니 그것들의 가치를 알고 제대로 이용해 줄 수 있는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만 개방을 하는 것이지요. 대신 몇 가지 예외는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폴저 도서관과 조지 워싱턴 대학 사이에서 맺어진 협약에 따라 폴저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강의를 듣는 학부생들입니다.
이 학생들은 폴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원사료들을 이용하여 한 학기 동안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는데 몇 백년 된 고서들 속에서 그것들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지면서 자신이 선택한 주제의 연구를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아래에는 그 프로그램에 대한 간단한 소개 비디오입니다.
학생들의 눈동자와 표정에서 잘 드러납니다만 몇 백년 된 책을 앞에 두고 보면서 그 위에 남은 과거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만져보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 학생들은 역사와 문화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가질 겁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인문학 연구를 통해 쌓인 사고력과 판단력은 다른 어떤 분야에 가서도 중요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구요.
사실 폴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자료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도서관으로서는 꿈도 꿀수 없는 자료들입니다. 한 권에 몇 십만 혹은 몇 백만 달러가 되는 고서들을 구입할 공공 도서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금액이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더 많은 책을 살 수 있으니까요? 결국 이와 같은 도서관은 폴저 부부와 같이 문화와 전통에 헌신적으로 투자할 만한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는 만들어지기 힘든 도서관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별장을 사고 좋은 차를 사고 또 보트를 사는 사람들은 폴저 시대에도 있었고 지금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지만 과연 이와 같은 문화적인 활동에 자신이 부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는지요. 그리고 그런 문화를 자신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해 기꺼이 내놓고 같이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우리 주위에도 분명 그런 분들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나타나도록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고 또 제도적으로도 지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폴저 도서관의 다양한 활동들을 보면 문화와 전통이라는 것이 단지 서고나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한 번씩 소개하기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만 동시에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그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전통과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정말 진한 문화의 향기가 나겠지요.
우리 나라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못지 않은 문화 유산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제대로 보존하고 동시에 적극적으로 우리 생활에서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도서관 뿐만 아니라 사회의 각 계 각층에서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 천년의 역사를 남들에게 자랑하면서 감히 그 역사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실제 그 역사를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오 천년의 역사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역시 포함된다는 생각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현재이지만 몇 십년 혹은 몇 백후의 후손들에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그들의 역사가 된다는 생각은 자칫하면 잊기 쉬운 일입니다.
* 아래에는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그리고 유튜브의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 채널에 있는 동영상 중 일반인들을 위한 도서관의 활동을 소개한 클립을 올려 봅니다.

먼저 초대 관장이었던 아담스 박사는 폴저 씨가 모았던 자료들 즉,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 하여 영국에서 16-17세기에 출판된 자료들도 대단한 자료들도 대단한 자료들이지만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으로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16-17 세기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책들을 수집 대상으로 삼아 장서를 늘려갔습니다. 폴저 씨가 그랬던 것처럼 고서 경매에 참가하기도 하고 책수집가의 서재를 통째로 구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장서를 모았지요.
그리고 두 번째 관장이 된 루이스 라이트(Louis B. Wright, 1899-1984) 씨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헌팅턴 도서관(Huntington Library)의 관장을 역임했던 사람이었는데 폴저 도서관의 관장으로 부임한 후 이 도서관이 명실상부한 연구 도서관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여러가지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 이 도서관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연구자들에게는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한 가지는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6,17세기 자료들은 엄청났지만 그것들을 이용하는데 필요한 각 종 참고 자료들(사전, 문헌 목록, 등)은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자료를 보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길 건너에 있는 의회도서관까지 가서 참고 자료를 이용했어야 했다는 군요.
라이트 관장은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참고 자료들을 늘려나갔고 책을 소장하고 있는 수장고에만 설치 되어있던 에어컨을 열람실에도 설치를 했다는군요. 사실 워싱턴의 여름은 상당히 덥지요. 그런데 처음 도서관을 지을 때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책을 위한 시설만 고려하다 보니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서관 입구에서 도서관을 지키던 경비원의 허리에서 권총을 치우게 한 것도 그 때의 일이었다고 하는군요.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워낙 고가의 책들이다 보니 경비원들을 무장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도서관 입구에서 누군가가 권총을 차고 서 있는 모습은 좀 부담스럽지요. 라이트 관장의 조치를 통해 도서관은 훨씬 더 친근하고 연구에 편리한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한 가지 고민이 나타났습니다. 70년대 초반의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가 그 촉발이었기는 합니다만 폴저 도서관을 비롯한 연구 전문 도서관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즉, 시민들이 이용하고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일반적인 공공도서관과 달리 폴저 도서관과 같은 전문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도서관을 유지하고 발전시킬만큼의 경제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지원할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도서관을 이용할 필요성을 가진 사람들이 드뭅니다. 그러니 도서관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더욱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비록 도서관을 이용하지는 않지만 도서관에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맡았던 관장들은 그렇게 손 벌리는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요.
아울러 그와 같은 기금 모금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도서관을 일반인들과 독지가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전문 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도서관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는 각 종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는 일반 대중들을 위한 활발한 홍보 활동과 각 종 문화 활동을 동시에 시작했는데요, 그런 활동을 통해 도서관을 알리고 도서관에 대한 사회의 각계의 지원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그 중 한 가지 활동은 도서관 전속 극단을 조직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도서관 건물을 지을 때 부터 같이 만들었던 고풍스러운 극장이 있었으므로 그 극장에서 전속 극단이 다양한 공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극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물론이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의 극장을 재현하여 나무로 장식된 이 극장의 무대에 섰던 배우들은 다른 어떤 무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할 때면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가서 런던의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하고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래에는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의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맥베드에 관한 짧은 동영상입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의 영국의 문화 전반에 대한 이 도서관의 관심은 극단에 이어 그 시기의 음악을 연주하는 실내악단까지 조직하기에 이릅니다. 폴저 콘소트(Forger Consort) 라는 이름의 이 악단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음악을 발굴하고 또 그런 음악들을 전문적으로 연주합니다. 활발한 연주 활동과 함께 많은 음반도 발표했지요. 고풍스러운 극장에서 듣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음악은 더욱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활동과 함께 폴저 도서관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알리고 그의 작품들을 홍보하기 위해 각계 각층의 일반인들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을 초청해서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직접 공연해 보게 하여 어린이들의 눈과 머리로 셰익스피어를 경험해 보게 하지요. 또 그리고 매 년 4월 23일 셰익스피어의 생일이 되면 도서관과 도서관 정원에서 셰익스피어의 생일 파티를 엽니다. 그 때는 각 종 학술 발표는 물론 셰익스피어 시기의 광대 복장을 한 이들이 나타나서 분위기를 북돋우고 도서관 모양을 한 대형 생일 케익을 자르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시기를 테마로 한 검술 시범에서부터 패션쇼까지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지요. 그 무렵에 워싱턴을 방문하실 기회가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찾아가 보십시오.(아래에는 몇 해전 있었던 셰익스피어 생일 축하 행사의 모습입니다.)
이런 활동 덕분인지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에 대한 사회의 지원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지원 덕분에 이 도서관은 워싱턴 중심에서 문화의 향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와 같은 도서관의 위치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도서관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폴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퍼스트 폴리오를 비롯한 고서들을 바탕으로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서 펴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폴저 도서관의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DVD 로 소개하고 있기도 하지요. 동시에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이용한 이동전시회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른 도서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폴저 도서관은 폐쇄적인 도서관입니다. 이 도서관에서는 개관 이래 도서관의 이용자들에 대해서 상당히 엄격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구경하거나 도서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책과 그림들을 관람하는 것은 모든 방문객들에게 허용되었지만 고풍스러운 열람실에서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들을 읽으며 연구할 수 있는 이용자는 박사 과정 수료자 이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몇 백년 된 고서가 그저 서고에 보관하다가 때로 전시만 하는 그런 고서가 아니라 실제 연구를 위해 이용되는 상황이다 보니 그것들의 가치를 알고 제대로 이용해 줄 수 있는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만 개방을 하는 것이지요. 대신 몇 가지 예외는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폴저 도서관과 조지 워싱턴 대학 사이에서 맺어진 협약에 따라 폴저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강의를 듣는 학부생들입니다.
이 학생들은 폴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원사료들을 이용하여 한 학기 동안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는데 몇 백년 된 고서들 속에서 그것들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지면서 자신이 선택한 주제의 연구를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아래에는 그 프로그램에 대한 간단한 소개 비디오입니다.
학생들의 눈동자와 표정에서 잘 드러납니다만 몇 백년 된 책을 앞에 두고 보면서 그 위에 남은 과거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만져보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 학생들은 역사와 문화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가질 겁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인문학 연구를 통해 쌓인 사고력과 판단력은 다른 어떤 분야에 가서도 중요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구요.
사실 폴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자료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도서관으로서는 꿈도 꿀수 없는 자료들입니다. 한 권에 몇 십만 혹은 몇 백만 달러가 되는 고서들을 구입할 공공 도서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금액이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더 많은 책을 살 수 있으니까요? 결국 이와 같은 도서관은 폴저 부부와 같이 문화와 전통에 헌신적으로 투자할 만한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는 만들어지기 힘든 도서관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별장을 사고 좋은 차를 사고 또 보트를 사는 사람들은 폴저 시대에도 있었고 지금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지만 과연 이와 같은 문화적인 활동에 자신이 부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는지요. 그리고 그런 문화를 자신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해 기꺼이 내놓고 같이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우리 주위에도 분명 그런 분들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나타나도록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고 또 제도적으로도 지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못지 않은 문화 유산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제대로 보존하고 동시에 적극적으로 우리 생활에서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도서관 뿐만 아니라 사회의 각 계 각층에서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 천년의 역사를 남들에게 자랑하면서 감히 그 역사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실제 그 역사를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오 천년의 역사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역시 포함된다는 생각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현재이지만 몇 십년 혹은 몇 백후의 후손들에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그들의 역사가 된다는 생각은 자칫하면 잊기 쉬운 일입니다.
* 아래에는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그리고 유튜브의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 채널에 있는 동영상 중 일반인들을 위한 도서관의 활동을 소개한 클립을 올려 봅니다.
-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 웹페이지
- 위키피디어의 First Folio 페이지
- Ferington, Esther, and Folger Shakespeare Library. Infinite Variety: Exploring the Folger Shakespeare Library. Washington, DC : Folger Shakespeare Library ; Seattle : Distributed by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02.
- Goodrum, Charles, and Helen Dalrymple. “This astonishing distillation: the Folger Shakespeare Library.” Wilson Library Bulletin (1983): 15-22
- Hyde, Mary C. “The Shakespeare Association of America to the Folger Shakespeare Library on Its 40th Anniversary 23 April 1972.” Shakespeare Quarterly 23, no. 2 (Spring 1972): 219-225.
- Shakespeare, William. Orgel. Comedies, Histories & Tragedies: First Folio, London, 1623 / Freeman, Arthur,; 1938-. Octavo digital editions; Folger Shakespeare library;. Oakland, Calif.: Octavo, 2001.
- Special to THE NEW YORK TIMES. “FOLGER LIBRARY OPENS SATURDAY.” New York Times April 17, 1932.
- SARGENT. GEORGE H. “GREAT FOLGER LIBRARY TO HAVE ITS OWN HOME.” New York Times, April 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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