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누구에게나 바쁜 날이겠지만 저에게는 특히 더 그러합니다. 출근해서 주말 동안 쌓인 이메일에 답하고 몇 가지 매일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바로 참고 봉사대에서 근무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고 좀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에는 제가 가르치는 수업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월요일 하루가 어느 새 다 흘러가 버리지요.
지난 월요일도 그랬습니다. 바쁜 아침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누군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저는 사무실 문을 언제나 약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찾아 오는 사람들은 손기척을 내고 제가 대답을 하면 바로 사무실에 들어 오는데 그 날은 손기척에 대답을 했는데도 사무실에 들어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었더니 밖에는 A 여사가 머뭇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저를 보고는 혹시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냐고 하시더군요. 사무실로 들어오시게 해서 같이 자리에 앉으며 제가 그랬습니다. " 제 직업이 뭔지 아시잖습니까? 물어보세요." ^^
A 여사는 올해 초에 알게 된 50대의 늦깍이 학부생입니다. 아프리카의 서해안에 있는 가나와 베닝 사이의 작은 나라 토고에서 몇 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하시더군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도 있지만 본인 역시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그리고 컴퓨터 공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고 계십니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제가 참고 봉사대에 근무하던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조금은 수줍게 보이기도 했지만 환한 미소를 띠며 저에게 다가오신 그 분은 혹시 컴퓨터에 관해서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면 기꺼이 해 드리겠다고 하고 그 분의 질문을 들어보니 제가 대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말하자면 "할 수 없다"기 보다는 저 역시 대답에 시간이 걸리는 질문이었고 또 제가 대답을 해서도 안되는 성격의 질문이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와 관련된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이 내준 숙제를 해야하는데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숙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분의 말씀이었고 그 분이 해야할 숙제는 비주얼 베이직과 관련된 숙제였습니다. 숙제 그 자체는 그리 까다로운 것이 아닌 듯 했습니다. 비록 제가 비주얼 베이직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교재를 살펴보고 숙제 해결 요령을 살펴보면 충분히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참고 봉사대를 찾는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고 그 일만을 할 수도 없었고 또 무엇보다 숙제이니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혹시 그 수업에는 수업 조교들이 없느냐? 만일 있다면 그 친구들이 도와 줄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더니 그 분 말씀은 그런 조교들이 있지만 조교들이 하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강한 프랑스 억양으로 말씀하시는 그 분의 영어는 아직 수업을 듣기에는 좀 부족한 듯도 생각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걱정스러운 것은 컴퓨터를 만지는 그 분의 손놀림이었습니다. 마우스와 키보드가 마치 몸의 일부인 양 사용하는 젊은 학생들과 달리 그 분이 마우스를 잡은 손은 어색했습니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도 그랬고 버튼을 클릭 하는 것 역시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한 눈에 보기에도 컴퓨터를 많이 다루어 본 그런 분은 아니었습니다. A 여사에게는 컴퓨터 언어와 관련된 수업이 아니라 컴퓨터의 기초를 가르쳐 주는 수업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비주얼 베이직과 관련된 몇 가지 책과 웹싸이트를 소개해드리고 "숙제에 필요한 자료들을 안내해 드릴 수는 있지만 숙제 그 자체를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 귀찮으시더라도 수업 조교들을 좀 괴롭혀라. 그 친구들은 학생들의 수업을 도와 주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니 바로 이런 경우에 이용하면 된다." 고 말하고 수업 조교 한 사람과 연락할 방법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는데도 20-30 분 시간이 걸리더군요.
이런 저런 정보를 전해 드리면서 제가 알게 된 사실은 그 분이 이제 막 미국 대학에 편입을 하셨고 학과에서 지정해 주는 대로 필수 과목을 듣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인도 자신이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수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민하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학과의 지도 교수와 이야기하고 코스를 바꾸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필수 과목들은 졸업 전에 반드시 들어야 하는 과목이지만 반드시 이 번 학기에 들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우선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과목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수업을 받아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는 말도 했었지요.
몇 주 후 그 분은 결국 프로그래밍 언어 대신 좀 더 자신의 수준에 맞는 다른 과목으로 수업을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A 여사는 그 이 후에도 자주 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질문을 들고 참고 봉사대를 찾아 오기도 하셨고 근처를 지나가다 일부러 저에게 인사를 하러 오시기도 했었지요. 저 역시 외국인 학생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보니 A 여사의 모습이 남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두꺼운 돋보기를 쓴 채 깨질새라 조심스레 마우스를 움직이는 그 분의 모습이 늘 눈에 걸리더군요. 그래서 종종 참고 봉사대 근처 컴퓨터에 앉은 그 분을 제가 먼저 찾아가서 잘 지내시냐는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웃으면서 중학교에 다니는 10대 딸은 마치 장난감처럼 다루는 컴퓨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면 안타까워 하시더군요. 그래서 딸과 같이 컴퓨터 게임이라도 하다 보면 마우스와 키보드를 다루는 것이 더 쉬울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A 여사가 지난 월요일에 제 사무실을 찾은 것입니다. 그 분이 제 사무실을 찾은 이유는 역시 컴퓨터 문제였습니다. 프랑스어 관련 과목을 듣는데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드시 파워포인트를 사용해서 슬라이드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서 발표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도와주기로 약속한 학생이 연락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화요일 아침에 발표를 해야하기에 이미 슬라이드에 들어갈 내용은 전부 워드프로세스로 작업을 해 두었는데 정작 슬라이드 제작을 도와줄 동료가 연락이 없으니 지금 난감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혹시 파워포인트에 대해 당장 배울 만한 곳이 없냐고 물으시더군요. 물론 도서관에서 그것과 관련된 강좌를 정기적으로 합니다만 당장 내일 아침에 발표를 해야할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업에 조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까지 도와줄 것 같지도 않았고 월요일 오후에 갑자기 그것을 가르쳐 줄 사람을 찾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길래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하고는 컴퓨터 앞에 같이 앉았습니다. 이미 발표 내용은 워드 파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제가 도와드린 일은 슬라이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 그것의 기본적인 기능에 대해 설명하면서 같이 슬라이드를 하나하나 만들어갔습니다. A 여사는 늘 가지고 다니는 돋보기 안경을 끼고 노트에 제가 설명하는 것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며 열심히 제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낀 것은 그 분의 관찰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무심코 해 버리는 단축키를 이용한 복사와 붙이기까지도 하나하나 물으시고 그 단축키를 다시 노트에 적으셨습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동안 같이 슬라이드를 만들고 실제 발표를 할 때 어떻게 슬라이드를 앞 뒤로 넘기는가 하는 것까지 실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같이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 분이 고국인 토고에서 2년제 대학 도서관학 과정을 마쳤고 졸업 후에는 도서관에서 오랫 동안 일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도 계속해서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싶어 알아보니 미국에서는 석사 학위가 있어야 도서관 사서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지금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토고에서 마친 과정이 2년제 대학이었기 때문에 문헌정보학 석사 과정에 진학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4년제 학부 과정부터 마쳐야 했다는 것이 그 분의 말씀이었고 그래서 지난 학기 부터 이곳 대학에 편입을 하셨다고 합니다.
토고에서 사용한 언어가 프랑스어였으므로 프랑스를 전공하면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나중에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하면 도움이 될 만한 전공이라고 생각하여 컴퓨터 공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 덕에 아주 죽을 맛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지난 학기 보다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냐고 저에게 동의를 구하시더군요. 아닌게 아니라 마우스를 잡은 손이 훨씬 더 안정되었고 비록 젊은 학생들과 같이 재빨리 배우고 익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세가 있는 만큼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며 천천히 하나하나 공부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토고에서는 대학에나 가서야 겨우 컴퓨터를 만져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쉰이 넘어 미국에 와서야 처음 컴퓨터를 접했고 그러다보니 다른 젊은 학생들에 비해 많이 힘들다고 하면서 그래도 새로운 것을 하루하루 배워나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다른 나라에서는 그러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흔히 쉽게 이야기하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실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A 여사가 지금 흘리고 있는 땀은 아마 이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땀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와 같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다 만들고 제 사무실을 나서는 그 분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발표를 해야할 수업이 프랑스어 수업인 만큼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걱정할 게 없었지요. 다만 "그 놈의 파워포인트"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문제가 해결이 되었으니 편안할 수 밖에요. 사무실을 나서면서 순박하고 환한 미소와 함께 고맙다고 인사하시면서 아마 다음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농담 삼아 " 어, 그러면 제가 할 일이 없어지는데요." 했더니 웃으면서 자신처럼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을테니 걱정하지마라고 받아치시더군요. 느릿느릿하고 강한 프랑스어 억양으로 이야기하는 그 분의 말 속에서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그 분을 그렇게 보내드리고 과연 지난 한 시간 동안 누가 가르치는 사람이었고 누가 배우는 사람이었나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비록 파워포인트에 관한 내용을 가르쳐드린 것은 저였지만 A 여사 역시 저에게 많은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밀한 관찰력과 제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메모하는 꼼꼼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이에 상관 없이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길을 열어 가려하는 그 분의 모습이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힘이 든 일입니다. 특히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나이를 핑계삼아 현실에 안주하려 합니다. "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라고 흔히 말씀을 하시지요. 하지만 A 여사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 큰 용기와 도전 정신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 늘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특히 제가 시작하는 새로운 분야에서 이미 자신의 자리를 잡은 이른바 "전문가"들과 비교하여 나 자신이 초라해질 때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 일은 잘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전문가였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전문가처럼 보이는 저 사람들에게도 초보자였던 시절이 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그렇게 전문가가 되었다. 나 역시 참고 노력하면서 이 초보자 시절을 지내고 나면 지금의 "전문가"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라."
라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시작하는 일에 대해 노력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지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결국 나이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 시작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할 뿐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막는 이유가 되지는 못 한다는 사실입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못 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체면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도전이 겁이 나서 시작을 하기도 전에 포기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본 A 여사의 모습 역시 그런 제 생각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50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 어쩌면 그냥 편하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자식뻘이 되는 어린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하고 또 장차 도서관의 사서로서 일할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 그 분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운동화와 티셔츠 차림에 바퀴 달린 커다란 백 팩을 끌며 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 그리고 어린 학생들과 같이 교실에 앉아 자기 보다 젊은 교수가 가르치는 수업을 듣는 그 분은 더 이상 50 대 중반이 아니었습니다.
교실에 앉은 대부분의 20대 초반 학생들처럼 열정으로 공부하는 A 여사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살고 계셨습니다. 물론 그 분에게 20 대니 50 대니 하는 나이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적어도 학교에 있는 동안은 대학생으로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 즉 배우고 익히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지 자신의 나이는 생각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실제 저 보다 한단계 위에서 그렇게 살아가시는 분을 뵙고 나니 충격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오늘 오후에 A 여사가 다시 제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나서 제 대답을 채 듣지도 않고 씩씩하게 사무실로 들어서는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가 한 잔 들려 있었습니다. 어제 발표를 무사히 잘 마쳤고 다음 주에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하러 도서관에 왔다가 제 생각이 나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월요일 오후에 도와준 것이 고마워 커피 한 잔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아울러 이 커피에는 앞으로도 많이 괴롭힐거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하시더군요.
마침 커피 생각이 간절하던 참이라 정말 감사하게 받았지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 오시라고 말했습니다. 커피 들고 찾아 오는 사람은 언제나 환영이라고 농담도 했습니다. 그렇게 후다닥 찾아 와서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는 숙제를 해야 한다며 사무실을 나가시는 A 여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커피를 사들고 찾아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할 사람은 A 여사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라고 말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은 몸으로 저에게 가르쳐 주신 선생님에게 커피 한 잔은 너무 작은 보답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