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의 전설
'1900년의 전설(Legend of 1900)'은 우리에게 '시네마 천국'으로 잘 알려진 주셉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가 1998년에 만든 영화의 영어식 제목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대양 위의 피아니스트의 전설(Leggenda del pianitat sull'oceano)"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영화는 제목처럼 한 피아니스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1900년 어느 날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대서양 횡단 여객선에서 한 아이가 버려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선원들에 의해서 키워지던 이 아이는 발견된 해를 따서 "Nineteen Hundreds" 라고 불리게 됩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아이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여객선의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일하게 됩니다. 특이한  것은 이  피아니스트가 배에서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배에서 내려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배 위에서 살아온 셈이지요. 그러면서 배를 타는 승객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레코드를 들으며 음악을 배웁니다.

일견 황당한 이야기인 듯 한 이 영화를 보신 후 영화 속의  이야기들을 되새겨 보시면
영화 속에 배, 바다, 항구, 육지, 기착지, 동일한 여정을 반복하는 여행, 음악,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 등등 상징적인  코드와 대사들이  가득차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영화의 전체 스토리가 다른 의미로 생각되어 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이 영화 속에 산재한 상징적인 코드들 때문에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도 있지만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수 많은 음악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네마 천국'에서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었던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의 솜씨가 다시 한번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어찌 들으면 '시네마 천국'의 음악과 분위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의 감미로운 음악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귓가에 남아있을 겁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과 함께 영화의 배경이 된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재즈 음악도 단지 배경음악으로서만이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한 축을 이룹니다.

대서양 횡단 여객선의 클럽에서 일하는  피아니스트에 대한 소문이 육지에까지 퍼지자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재즈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제리 롤 모튼(Jerry Roll Morton)이  배에 올라 피아노 대결을 벌입니다. 물론 제리 롤 모튼은 실존 인물이지만 영화 속의 스토리는 가공의 이야기이지요. 어쨌던 배 위의 클럽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문자 그대로, 불꽃 튀기는 피아노  결투가 벌어집니다. YouTube를 찾아 보니 마침 그 결투 장면이 두 편으로 나누어져 올라 있기에 올려봅니다.

클럽에 제리 롤 모튼이 들어서고 일순 정적이 흐릅니다. 단숨에 위스키 한 잔을 들이킨 제리는 피아노로 다가가서 주인공에게 "자네, 내 자리에 앉아 있구만" 하면서 결투를 시작합니다.  3 회전에 걸쳐 이루어진 이 결투에서 2회 전에 연주된 "Crave" 란 곡은 재즈와 클래식 소나타의 느낌이 같이 나는 너무나 멋진 곡입니다.

피하기만 하던 주인공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 마지막 3회전입니다. 계속해서 보시지요.

피아노 결투도 흥미롭지만 개인으로 이 영화의 백미로 생각되는 장면은(물론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생각은 달라집니다만) 피아노 연주를 녹음하고 있을 때
주인공이 창 밖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그녀에 대한 마음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한 이 곡은 "Playing Love" 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요. 이런 음악으로 표현된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생각해 봅니다.

예전 처음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80년대 초 제가  즐겨 듣던 라디오 방송이 밤 10시 경에 하던 '김세원의 영화 음악실'  이었습니다. 엽서를 보내고 하는 극성파는 아니었지만 공테이프를 잔뜩 준비해두고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녹음을 해놓고 다시 듣곤 했었습니다. 그 때는 영화 음악과 같은 흔히 말하는 Easy Listening 계열의 음악을 좋아했었지요. 그러다가 점점 취향이 바뀌면서 록, 메탈, 클래식, 재즈, 블루스, 등등 음악에 관한한 잡식성이 되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처럼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처음 좋아하던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으로는 관심이 쉽게 돌아가지 않더군요. 그 따위 유치한 음악을 내가 들었었다니... 하면서 마치 지우고 싶은 과거처럼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가다보니 자연스럼게 귀가 예전 십대때 좋아하던 음악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들을때면 음악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때때로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과 연결이 되어 있고 마치 버튼을 눌러 재생시키는 것처럼 음악을 들으면 거의 동시에 떠오르는 추억들이 있지요. 저는 이런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을 들으면 라디오 앞에 엎드려 있던 십대의 제 모습이 떠오른답니다. 여러분도 그런 음악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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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o | 2007/03/11 15:55 | 음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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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harlie at 2007/03/11 16:44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GeminiLove at 2007/03/11 17:43
배에서 내려올 뻔했던 순간. 여자 때문에...평생의 굴레를 여자와 함께 이겨내려고 하였으나 좀 부족했던것이 인생일까요 ?
Commented by pacifica at 2007/03/11 18:41
음악을 좋아하고, 찾아서 듣기 시작하면서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음악과 영화 잘 보고 갑니다. :-)
Commented by 짜로씨 at 2007/03/11 19:20
아름다운것도 때론 슬픕니다.... :)
Commented by 여우비 at 2007/03/12 00:27
덕분에 좋은 영화 알게 되었네요. 정말 매력있는 줄거리에요. 꼭 찾아봐야겠어요. :)
Commented by Clio at 2007/03/12 10:24
Charlie 님/ 천만에요. 대만 잘 다녀오셨죠?

GeminiLove 님 / 사실 제게는 그 장면이 늘 고민거리입니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볼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pacifica 님 / 동감합니다. 마음으로 듣는 음악에 장르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음악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 대해 따지고 구분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려합니다.

짜로씨 님 / 그리고 슬픔도 승화되면 아름다움이 되겠지요.

여우비 님 / 아마 좋아 하실겁니다. 늘 여우비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서정과 잘 맞을것 같네요.
Commented by 부엉 at 2007/03/12 16:13
어헉; 바쁘게 일하는 도중에 트랙백님께서 날아오셨네요...
좋은 감상 읽고갑니다.
취향이 비슷한듯 해서 반가울 따름이에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3/12 17:18
제 경우는 유년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접한 음악, 영화, 책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가장 섬세한 시절이라 깊이 새겨진 게 아닐까 싶어요.
Commented by 기석 at 2007/03/12 23:31
이 영화 OST 까지 구해서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
피아노 족쇄를 풀고 연주하는 장명이 인상깊어요 :->
Commented at 2007/03/13 05: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7/03/13 07:28
부엉 님 / 부엉 님의 글을 발견하고 저도 참 반가웠습니다. 일하시는데 방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

marlowe 님 / 동의합니다. 저 역시 그 당시에 접한 것들이 가장 크게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정말 세월이 흐른 것 같지요.

기 석 님 / 그 장면 정말 좋지요. 배멀미를 심하게 경험한 저로서는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장면이었습니다만 음악과 파도의 오르내림이 같이 섞이면서 정말 감동의 물결이 밀려오더군요. 그 장면도 유튜브에 올라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xVFRkrei1lQ

비공개 ㅇ 님 / 답장 드렸습니다.
Commented by 꼬부기T at 2007/03/13 11:44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꼭 보고 싶어요.. 바쁜 일만 조금 정리되면 느긋한 마음으로 보아야죠~ '김세원의 영화음악실'은 저도 즐겨듣던 프로였습니다. "김세원의 영.화. 음악실"~ 이렇게 영. 화. 에 강세를 넣어 오프닝을 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도 당시에 10대였는데...^^ 더 과거로 올라가면, 어릴 때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옆집에서 들려오던 음악이 제 뇌리에 아주 깊이 뿌리를 내렸던 것 같습니다. <장난감 교향곡>이었는데, 이 예쁜 곡을 지금도 좋아하고 예전에는 핸드폰 벨소리로 사용했더랬지요. (영화 이야기의 포스트에 음악으로 덧글을 달고 있군요.. 지금!)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7/03/13 15:10
꼬부기T 님 / 아닌게 아니라 꼬부기T 님의 얼음집에 들렀더니 아주 바쁘신것 같더군요. 그래서 그냥 눈도장만 찍고 왔습니다. 부디 많은 성과 거두시는 3월이 되기를 빕니다. 김세원의 영화 음악실을 기억하시는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연세(^^) 가 짐작이 되는군요. 장난감 교향곡의 일부는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었던 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습니다. 참. 이 글은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에 들어있답니다.
Commented by 효겸 at 2007/03/13 16:54
이 영화 꼭 보고 싶네요... 마지막 곡을 듣고 있자니... 왠지 슬프네요... 그리고 첫줄에 '시네마 전국'은 오타인거죠? ^^;;
Commented by 꼬부기T at 2007/03/13 19:01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 이상은 얼음집에 들른답니다..^^ 집이란 사람이 살아야 집이라는 말을 따라서요~^^
Commented by Clio at 2007/03/14 13:52
효겸 님/ 오타를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살피는데도 이런 실수가 꼭 생깁니다. T.T "시네마 전국" 이라고 하니 무슨 전국 노래 자랑처럼 들리는 군요. 그나 저나 이 영화 한번 꼭 보십시오. 주인공의 사랑이 음악 만큼이나 슬프답니다.

꼬부기T 님 / 맞습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람이 살아야 집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 오프 라인의 집을 떠나 버지니아 주에 와 있으면서도 온라인 상의 제 집에 접속을 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독스 at 2007/09/10 18:59
정말 좋아하는 영화였는데 여기서도 보게돼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7/09/11 06:45
독스 님 / 그러시군요. 그저 음악을 즐기면서 가볍게 보아도 좋고 또 배 위에서만 살아온 피아니스트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을 비교하면서 보아도 또 흥미로운 영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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