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따분해...
최근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독지가의 노력으로 몇 년에 걸쳐 9백만 파운드의 돈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돈으로 영국의 중,고등학교에 셰익스피어와 샬롯 브론테 그리고 챨스 디킨스 등의 작품을 비롯한 영문학의 고전들을 학교마다 300권씩 보냈습니다. 책을 받은 4,000여개의 학교들 대부분은 이러한 기부에 감사하고 좋은 책들을 학교에 비치하게 되어서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1%가 조금 넘는 50여개의 학교에서는 이러한 기부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거절한 이유인즉슨 그런 책들은 학교에 두어봤자 학생들이 따분하게 여기고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책 표지도 보기 싫게 만들어져 있고 책의 제본 역시 답답하고 따분한 것이 전혀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흥미로운 (그림이 있는) 표지로 장식된 축약, 문고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도서 기증을 거부한 학교들의 반응 중에서 영국인들에게 또다른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그러한 고전 속의 영어가 학생들이 읽기에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를 외국어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니라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의 학생들에게조차 이 책들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기사에서는 영국 공교육의 문제점까지도 지적을 하고 있더군요.


책을 기증하려했던 이에게는 이러한 학교들의 반응과 거절 이유가 충격이었습니다. 그 역시 학생들 모두가 그 고전을 읽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학생들에게 책을 읽혀야 할 학교에서조차 그런 노력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전들은 인류 문명의 DNA 와 같은 존재로서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책들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저는 기사에서 인용된 한 학교 사서의 말을 읽고 여러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링컨셔에 있는 한 학교의 사서인 헬레나 리드(Helena Read-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서로 일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할까요? ^^) 씨는

"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신문이든 소설이든 잡지든 무엇이든 읽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것은 학생들이 도서관에 와서 그러한 고전들을 읽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오늘 날의 학생들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오늘 날의 학생들은 위대한 고전보다는 일본 만화를 더 좋아 한다. 아이들은 액션과 모험을 좋아하고 에라곤 시리즈와 같은 판타지 소설들 즉, 자신들에게 흥미있는(흥분시키는) 신간들을 원한다 .. 오늘 날의 책은 뒤에서부터 앞으로 읽는 일본 만화인 "망가(Manga)"이다 ."
학생들에게 무엇이든지 읽히려는 사서들의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물론 일본 만화를 읽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문제는 한 방향에 치우친 독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일본 만화도 읽고 고전도 읽고 여러 가지 종류의 읽을 거리를 두루두루 읽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우리 청소년들이 이처럼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할 여유와 시간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대입에서 논술이 강조되면서 책읽기도 아울러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진정한 독서가 될지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책읽기가 책읽기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입을 위한 책읽기가 되어 버리는 현실에서 과연 책의 의미를 새기고 그 속에서 앞으로 삶을 살아갈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 하다 못해 책읽기의 재미라도 느낄 수 있을까요?

현실이 이렇다고 하더라고  청소년 시기는 책 읽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고 또 반드시 다방면의 책을 두루 읽어야 하는 시기라고 믿습니다. (물론 책 읽기가 이 시기에 국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기에 들은 음악이 평생 아련한 추억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것처럼 이 시기에 읽은 책 역시 그 사람의 평생을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가장 많은 독서를 아니, 가장 열심히 책을 읽은 시기는 고 3 시절이었습니다. 80년대 중반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지금에 비하면 많이 느슨한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 3이 되어서야 야간 자습 시간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물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던 모범 학생(?) 이었던 저는 땡땡이 치지 않고 열심히 야간 자습 시간에 책상에 책을 펴고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 씩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가?" 하는 의문도 던져 보면서 야간 자습이라는 말도 안되는 제도로 학생들을 잡아 놓고 있는 학교에 대해 불만을 품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그러다가  시작된 습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 몇 친구들처럼 반항적으로라도 땡땡이 칠 용기는 없고 그 대신 나는 나만의 공부를 하기로 작정하고 야간 자습 시간에 세계의 고전 문학을 섭렵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이 제게는 가장 큰 반항(?)이었겠지요.

당시에는  운좋게도 값싼 문고판 책들이 출판되고 있었습니다. '마당 문고' 시리즈를 들어보신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고 3 시절 일 년간, 이 마당 문고 시리즈의 책들은 저에게 친구였고 교과서 였습니다.
가격도 아주 쌌습니다. 한 권에 98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저녁 시간이면 학교 앞 서점으로 달려가 1000원짜리 한 장을 주인 아저씨에게 주고 20원을 거스름 돈으로 받아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문이니 정석이니 하는 참고서에 코를 박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이 마당 문고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물론 야간 자습 감독 선생님 때문에 제 책상 위에도 참고서가 펼쳐져 있었지만 그 참고서 아래에는 또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상과 논쟁하던 김 동인의 사반이 있었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듣고 미쳐가던 박종화의 연산이 있었습니다. 데미안을 보며 알에서 깨어나 성장해 가던 에밀 싱클레어가 있던 책상에 그 다음 날이면 쌍도끼를 든 흑선풍 이규와 호랑이를 때려 잡은 무송이 관군에 대항해서 싸우는 양산박이 펼져지기도 했었습니다. 

몹시 추웠던 어느 날 읽었던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는 2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추울 때면 생각나는 책입니다. 교실은 참 추웠었는데 그 책 속에서 묘사된 수용소 노동자들의 추위를 읽으며 교실의 추위를 덜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인 책이 나중에 학력고사를 칠 때 즈음에는 상당히 많아져서 부모님 눈에 띄지 않게 이리저리 감추고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이러한 저의 반항 아닌 반항이 제 학력고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구요. 중요한 것은 그 때 읽었던 그 많은 책들이 지금도 마음 속에 남아있고 오늘의 나를 만드는데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그 때의 책 읽기가 무엇보다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그 책들이 제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그 책들을 다시 읽을 때면 그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 했던 책의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따분해 보이는 고전 역시 조금만 참고 읽어 나가다 보면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일 아무리 읽었는데도 재미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면 그 책은 아마 아직 그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책일 겁입니다. 그리고 나증에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때가 분명 올겁니다. 무리할 필요 없이 우선은 이해되고 재미있는 책들부터 읽으면 되겠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무엇이든 읽는 사람들이 고맙고 반갑지요. 다만 바램이 있다면 절대 닫힌 마음으로 한 가지 종류의 읽을 거리에만 매달리지 말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 편식하지 않고 여러가지 반찬을 골고루 먹는 것 처럼 책도 마찬가지로 편독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전을 읽다가 한 번씩 최신 판타지 소설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구요. 무협지를 읽다가 한 동안 유행하던 테크노 스릴러를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그리고 픽션을 주로 읽으시더라도 한 번 씩 논픽션도 읽어보십시오.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것도 아시게 될 겁니다. 부디 열린 마음과 열린 눈으로 주위의 책을 보아주시길 부탁 드려봅니다.

이 글의 시작에서 소개해드린 영국의  그 독지가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만일 앞으로 50년 동안 매 년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이 책들을 통해 교과서 밖의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그 학생의 인생이 바뀌게 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
그렇지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옛 말은 그저 옛 말만이 아닙니다.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by Clio | 2007/03/26 16:02 | 도서관 이야기 | 트랙백(3)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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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라피에사쥬의 회색빛 세상 at 2007/03/2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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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o님의 고전은 따분해... 에서 트랙백. 한국은 OECD국가중 가장 독서량이 적은 나라이고 그에 대해선 이제 막 사회인으로 넘어가려하는 제 또래 세대에게 있어 큰 문제점으로 보이기에 간단히 생각해본 바를 적어보겠습니다. 제 경우에 있어 가장 독서량이 많았던 때는 고2, 2004년 무렵입니다. 제 출신 고등학교도 상당히 'SKY 가는 애들 뽑아내기 힘든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직 야간자습도 없었을 때였고 1학년때 친했던 친구들과......more

Tracked from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at 2007/03/26 20:19

제목 : 고전 읽기..
고전은 따분해... 얼마전에 말했듯이..어린시절 다녀온 역사 유적지를 또 가보고 싶어지는것과 같은것이 아닌가 싶다. 어릴때 읽혔던..(난 내가 읽었다기보다는 주로 읽히는 쪽이었다 ㅎㅎ) 책들에 다시 손이 가는것 말이다. 지금도 간간히 책을 읽기는 하지만 지금 읽어서 얻어지는 지식과 서정은 어릴때 만들어진 지식과 서정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임을 진하게 느낀다. 왠지 학구적일꺼라 짐작되는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며 편협한 관점......more

Tracked from piccola soff.. at 2007/03/27 06:08

제목 : 고전을 왜 읽는가?
고전은 따분해... 언젠가 쓴 글인데 사람의 집을 놀러갔을때 제가 으례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서가입니다. 서가에는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저야 역사책, 자서전, 사회과학관련 책으로 꽉 차 있지만 사람의 직업, 관심사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서가에 비치해 놓곤 합니다. 저는 고전은 생각보다 많이 읽어오지는 않았어요. 주로 한국문학을 수능시험 때문에 몇개 읽었던 것이 주로 염상섭의 삼대, 동백꽃이 기억......more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3/26 16:31
지금의 고전도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였던 경우가 많았겠죠.
요즘은 셰익스피어도 일본 만화로 개작된 게 인기라더군요.
문제는 뭐를 읽든 문자 자체를 점점 부담스러워한다는 겁니다.
뛰어 놀거나 악기를 연주할 여유도 없어요.
요즘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으면 지식인, 잡지를 읽으면 석학이라는 농담도 있지요.

고전, 또는 필독서의 범위를 어떻게 잡아야할까, 그것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존재일까라는 궁금증도 듭니다.
예를 들어, 반 유태주의가 담긴 [베니스의 상인]이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템페스트], [로빈슨 크루소 표류기] 등은 어떻게 읽혀야 할까요?
Commented by 이방인 at 2007/03/26 16:46
아아 무엇이든 열심히 읽을래요-
Commented by Miren at 2007/03/26 16:55
책을 읽는다함은 그 책의 배경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면 그 당시의 시대를 반영한 것인 경우도 많죠. 베니스의 상인이 반 유태주의를 담았다면 그 시대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세익스피어만의 생각이라면 그런것은 말을 해줘야겠지요. 누구에게나 노출되어있다고 하지만 책을 읽어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위의 내용은 학교에 기증하려고 했는데 거부했다는 점이었겠죠. 책을 가장 많이 봐야할(아니 꼭 학생이 가장 많이 볼 필요는 없지만 그 시절에 본 책은 좀 다른 느낌이니까요)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서 거부했다는 것이...
저도 초등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 봤기에 학교에 책이 많으면 확실히 좋긴 하더군요.
Commented by kristine at 2007/03/26 17:13
여러가지로 놀랍습니다. 저는 일종의 streotype이 있었어요. 영국학생들은 뭐랄까 상당히 학구적이다.... 라는 또는 그들은 고전과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을 것이다라는.. 그것이 아니어서 놀랍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망가가 그 동네에서도 인기이군요. 그건 그렇고 트랙백을 할게요..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ALBINO at 2007/03/26 17:42
셰익스피어는 소설처럼 쭉쭉 읽혀가며 가르치기 보다는 공연되는 것을 한 번 보여주고, 문구 하나하나를 시 처럼 가르치는게 더 흥미로울 거에요. 여기 무식하기로 소문났고, 희곡 읽기를 약먹는 것보다 싫어하던 한 녀석이 그렇게 배우고 셰익스피어를 읽기 시작했거든요.
Commented by 안불렀슈 at 2007/03/26 18:15
저도 고등학교 이후로 놓았던 책을 10여년만에 다시 잡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철에서 틈틈히 읽는 것이라, 진도는 잘 안나가지만 책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아련한 느낌이 좋더군요~
근데, 지하철에서 읽을 수 있는 조그마한 문고판 책이 제가 읽고 싶은 책들 중에는 많지 않아서 조금 아쉽네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7/03/26 18:26
한때는 독서가 교육의 수단일뿐만 아니라 여가수단[..]이기도 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듯 싶은데.. 비교적 최근에 수험생을 벗어난 제 입장에선 말그대로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일로 들리더군요. 물론 수능환경에만 전적으로 책임을 돌려선 안될 것이나 사회적으로 독서증진에 대한 바람직한 여론이나 교육환경이 조성된건 분명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이 입학한 88년생들과 책읽기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본적이 있었는데, '그럴 시간 있으면 수리 영역 하나 더 풀지'식이었습니다 -_-;; 그게 현실이기에 딱히 반박할 건덕지도 생각나지 않더군요..)
Commented by pacifica at 2007/03/26 20:17
감수성이 풍부하던 시절인 고등학교때 읽었던 고전문학들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저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편독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거 같습니다. 물론 독서에만 해당되는게 아닌, 삶에 있어서도 중용의 태도는 언제나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7/03/26 23:23
흠.... 고등학교 올라가는 방학에... 한국 단편 문학들 무~~지 많이 읽었던 기억이....

그 두꺼운 3대.....ㅠㅠ;;;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꺼삐딴 리~~!!!

제일 안 읽히던 책은 실험실의 청개구리.....

감자, 봄봄은 재미있었다구요~~~!!
Commented by Clio at 2007/03/27 05:10
marlowe 님 /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으면 지식인, 잡지를 읽으면 석학" 라는 말이 섬뜩하게 와 닿습니다. 우리사회가 사람들을 점점 더 활자로부터 멀어지게 하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네요. 과연 무엇이 필독서가 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자의 시각이나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등을 고려해서 문제점을 찾으려면 걸리지 않을 책이 과연 몇 권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책을 접하는 일이고 그것을 좀더 체계적으로 지도해 줄 수 있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교사들을 양성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방인 님 / 무엇이든 열심히 읽으시겠다는 말씀이 참 듣기 좋습니다. 읽는다는 것 역시 생각하는 능력처럼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고 인간의 발전이 바로 그것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저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Miren 님 / 책을 쓴 저자는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을 통해 전달하려 하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의 해석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저자의 뜻과 다르게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독자의 자유이고 어쩌면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저자의 잘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물론 저자가 대상으로 하는 독자의 층과 이해 수준 등등 기타 요소들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겠지요. ... 저 역시 학교가 자신들의 업무를 방기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 같은면 어떨까요? 거절을 하면서 "우리 학생들은 입시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러지 않을까요? ^^

kristine 님 / 제가 인용한 기사를 따라가 보시면 독자들의 의견이 몇 개 실려있습니다. 그 중 미국의 한 사서가 남긴 글이 kristine님의 생각과 유사합니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구적일 것 같은 영국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 놀랍다는 내용이었지요. 망가의 인기는 전세계적인 것 같습니다. 특히 거꾸로 읽는다는 것이 청소년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의 '일탈'로 받아들여지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ALBINO 님 / 그것 괜찮은 방법인것 같습니다. 원래 저자가 의도했던 것을 그대로 재현해서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아마 바로 그것 때문에 제게는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희곡 읽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희곡을 차근차근 제대로 읽다보면 연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에 대해 머리 속에서 상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더군요.

안불렀슈 님 / 위에 글을 달아주신 marlowe 님의 표현을 빌자면 안불렀슈 님은 석학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난시가 심해 흔들리는 곳에서 글을 읽으면 눈이 아프고 두통이 생겨 채 5분 이상을 읽을 수가 없답니다. 석학이 될 가망이 없는 셈이지요. "책 속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느낌" .. 참 좋지요. 저는 대학 시절 제가 살던 대구의 한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 앉아 작은 독서등 아래에서 책을 읽을 때의 그 느낌을 잊지 못 합니다.

라피에사쥬 님 / 예전에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그럴 시간 있으면 연습문제 하나 더 풀지." 하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물론 여전히 책읽기를 즐기고 또 남들에게 권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 안심은 됩니다만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점점더 책과는 거리가 멀게 나아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pacifica 님 / '중용'이란 말은 제가 늘 생각하고 살아가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드는 군요. 중용을 고집하는 내 태도 역시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즉, '중용을 지키자"는 생각에 너무 치우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마치 마음을 비우기 위해 참선하는 스님들이 마음을 비우려고 몰두하다보면 마음을 비우려는 그 마음으로 마음을 가득채우게 되고 결국 마음을 비울 수 없게 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이거 말이 되나요 지금..) 그래서 최대한 마음을 열어 놓고 모든 것을 보려합니다. 들어올게 있으면 들어오고 나갈 것은 나가고 최대한 많은 것들을 편견없이 접해 보려합니다.

닥슈나이더 님 / 맞습니다. 재미있지요. 시험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의무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읽고 싶은 것을 찾아서 읽을 때 그것만큼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리고 이것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그것들을 못 읽게 감시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서 그 사람 눈을 피해 몰래몰래 읽는 것입니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더 재미있잖아요? ^^

Commented by ferma at 2007/03/27 05:35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저에게 참 의미있는 책이예요. 대입에 실패하고 낙심해 있던 어느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누군가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지금도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 책을 사와서 하룻밤 새 읽었죠. 아주 작고 가벼웠던 그 책...하지만 절망뿐이었던 어린 저의 마음을 아주 뿌듯하게 채워주었던 그 책. 지금까지도 '이반'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모르게 뻐근해집니다. 명작이 주는 감동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p.s. 덤으로, '이반'을 떠올리며, 이반의 그 시베리아를 떠올리며, 이반의 '그'하루를 떠올리며 하루하루 버텨서 결국 다음 해에 대학에 입학했다...라고 하면, 이건 너무 신파가 되어버리나요...^^
Commented by Charlie at 2007/03/27 11:09
Cliffnote가 아이들을 망친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점점 더 긴 문장과 두꺼운 책에서 멀어지게 되는것이 아이들뿐만이 아니란 사실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고등학생 at 2007/03/27 12:29
저는 책읽기를 여전히 좋아합니다만...

책읽기의 "수준"이 낮습니다.

글을 읽는게 아니라 "글씨"를 읽는 인상이 강해서... 독서 교육 같은 걸 체계적으로 받아봤으면 좋겠지만 그럴 기회가 없으니까요
Commented at 2007/03/27 12: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7/03/27 15:03
ferma 님 / 전혀 신파로 들리지 않습니다. 솔제니친이 책을 쓰며 설마 한국의 입시생을 생각했겠습니까만 그 책이 한국에 까지 와서 한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책 읽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Charlie 님 / 아닌게 아니라 한국에도 Cliffnotes 와 유사한 책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학생들이 고전으로부터 시험에 필요한 정보들을 쉽게 뽑아 낸답니다. 고전 속에서 감동을 받고 삶의 방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고등학생 님 / 책읽기를 좋아하신다니 그것만이라도 충분하지 않을가요? 수준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삶의 지혜를 얻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사실 수준 높고 어려워 보이는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실제 그 속에 있는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Commented by dcafe at 2007/04/02 09:54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뜨끔합니다(매우..심각하게 -_-;;;;)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Commented by hailey at 2007/04/02 23:03
전 고전을 좋아합니다. 셰익스피어요? 반절 이상 이해하지 못해도 읽으려고 하지요. 도전 의식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현대작품도 읽습니다. 하지만 고전을 통해서 옛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시도하자...라고나... 사실 문학과 사회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보는데, 전 고전을 읽히는 것은 하나의 똘레랑스를 키워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전과 현대문학 교육-어디에 치우치지 않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Commented by Clio at 2007/04/03 04:52
dcafe 님 / 사실 세상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소설 같을 때가 많지요. 그래서 어르신들 중에 살아온 일을 적으라면 장편 소설을 몇 권이라도 쓸 수있다고 한탄조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신가 봅니다. 그리고 아마 그런 것들 때문에 제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hailey 님 / 도전의식이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책에 도전하고 이해가 안되면 암기라도 할려고 하던 때가 있었지요.... 중요한 것은 말씀하신대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독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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