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를 많이 보신 분들은 무협지 속에서 묘사되는 무공 비급을 둘러싼 다툼들을 자주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이야기들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유형은 천하무적의 무공이 실린 귀중한 책이 심산 유곡의 폭포 뒤에 가려진 동굴에 감추어져 있거나, 악당에게 쫓기던 주인공이 깊은 벼랑 아래로 추락하다가 나무에 걸려 간신히 살아 남았는데 그 나무 뒤에 동굴이 있었고 그 안에 비급이 있었다, 등등 귀중한 책은 보통 사람이 찾기 힘든 곳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나타나는 다른 유형은 '황궁 서고" 니 "만권 서림" 이니 하는 책이 아주 많은 곳에 귀중한 무공 비급이 다른 책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다가 주인공에게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 입니다. 찢어지고 아무도 관심을 가진 흔적이 없는 책이 알고 보니 귀중한 무공 비급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가장 책을 감추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제가 생각하기에 책을 가장 확실하게 감출 수 있는 곳은 도서관입니다. 대신 꼭꼭 감추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책을 도서관에 두는 대신 목록을 아예 만들지 않거나 제대로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즉,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는 '형편 없는 도서관의 조건" 의 첫번째에 해당되는데요.(도슬방에 올려져 있는 글을 링크해둡니다.) 결국 200만권의 장서가 있는 도서관에 책을 한 권 넣어두고 제대로 목록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그 책은 우연히 마음 착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발견하기 전에는 아무도 발견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도서관이 가장 안전하게 책을 감추어 둘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이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도서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도서 목록 (Catalog)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사서 선생님들 중에서 목록을 담당하고 계시는 분들은 보통 외부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도서관 깊숙한 곳에서 일하시지만 그 분들이 하시는 일은 도서관 운영에 꼭 필요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일반인들이 잘 느끼지는 못하시겠지만 그 분들은 책을 도서관에서 사라지게 만들거나 꼭꼭 감출 수도 있고 그 책들을 필요한 이용자들 앞에 제대로 드러낼 수도 있게 만드시는 분들이지요.도서 목록을 정리하는일은 참 끈기가 필요한 일이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일입니다. 이 분들의 일을 보면 정말 타고 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온라인 검색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목록 내에 기입하는 작은 점 하나 여백 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입력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보통 정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지요. 우리가 온라인으로 검색하는 도서 목록에는 일반적으로 책의 제목과 지은이, 출판사, 출판 연도, 책의 형태, 크기, 페이지수 등의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그 도서관만의 고유한 청구 번호 같은 것들이 적혀 있지요. 이용자의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도서 목록은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을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찾아 줄 수 있는 그런 목록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도서관에 가서 목록을 검색할 때에는 제목이나 저자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도서 목록 검색은 매우 쉽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 내가 원하는 자료를 모두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목이나 저자를 모르고 그저 어떤 특정한 주제에 관한 책을 찾을 경우 목록이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참고 봉사대에 일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한 가지가 이런 종류의 질문들입니다. "이탈리아의 이단(異端, heresy)에 관한 책이 필요한데 찾을 수가 없네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 만일 제가 잘 모르는 주제일 경우 일단 제가 사용하는 방법은 이용자의 질문에서 적당한 키워드를 뽑는 일입니다. 위의 경우, Italy, Heresy 혹은 heretic 등이 키워드로 뽑아지겠지요. 물론 이용자에게 다시 질문을 해서 찾고자 시대(period)를 제한한다던가 혹은 특별히 관심이 가는 이단 종파가 있는냐 아니면 찾고 있는 역사상의 이단자가 있느냐 등등... 이용자가 찾고자 하는 정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시도도 하지요. 일단 그런 식으로 해서 몇 개의 키워드가 나오면 그것을 이용해 목록을 검색합니다. 사람마다 접근 방법이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가장 먼저 책 제목 키워드 서치를 합니다. 많은 경우 제목에서 그 책의 주제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 방법을 쓰는데 우선 책 제목에 '이탈이리아' 라는 단어와 '이단'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을 무작위로 찾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검색 결과를 가지고 제목을 훑어 보다가 적당한 책이 보이면 그 책의 자세한 서지 정보를 봅니다. 많은 경우 상세 정보 안에는 그 책의 주제(Subject) 키워드가 들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이 주제 키워드는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만든 주제명 표목표(Library of Congress Subject Heading)에 따라 부여되기 때문에 기술 방식이나 단어의 선택이 균일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주제어를 발견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 발견한 주제어로 다시 목록을 검색합니다. 그러면 그 주제어를 포함하고 있는 다른 책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이탈리아' 란 단어와 '이단' 이란 단어가 전혀 제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책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제목을 모르고도 해당 주제의 책을 '어느 정도'는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위에서 '어느 정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방법 역시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서 목록을 만들 때, 그리고 많은 경우 책을 출판하는 시점에 이미 의회 도서관의 주제명 표목표에 따라 그 책에 주제어를 부여하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그 책의 주제를 다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대충은 맞지만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모두 커버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시도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 일단 주제에 가장 근접한 책을 목록에서 발견했으면 서가에 가서 그 책을 찾고 아울러 그 책 주위의 다른 책들을 훒어 보라고 이용자에게 권합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의 책 배열은 주제별로 이루어지므로, 대부분의 경우 비슷한 주제의 책들은 같은 공간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직접 서가에 들어가서 책을 찾다보면 온라인 목록으로는 검색할 수 없었던 책들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이와 함께 목록에서 발견한 그 책을 찾아서 그 책에 기록된 참고 문헌 이나 각주 등도 살펴보라고도 권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한 특정한 주제의 책을 저술하기 위해서는 같은 주제로 출판된 다른 책이나 논문들을 참고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학술 서적이라면 그 참고한 내용을 반드시 기록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이용자는 그 책으로부터 추가적인 관련 문헌 정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방식을 달리 ' citation pearl growing'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온라인 도서 목록이라면 이러한 검색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확한 제목이나 저자를 모르고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책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책이 도서관에 있는데도 도서 목록을 통해 그 책을 검색할 수 없다면 그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 목록을 만드시는 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기회를 빌어 그 분들의 노고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 번 자주 이용하시는 도서관에 가셔서 제목이나 저자가 아닌 다른 검색 조건으로 목록을 검색해보십시오. 특히 자신이 내용을 알고 있는 책을 가지고 그 책과 관련된 주제어로 검색을 해 보시면 과연 내가 사용하는 도서관 목록이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는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제대로 된 목록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책이 제 자리에 꽂혀 있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실제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시험 준비서 같은 책들을 자신만이 보기 위해 전혀 엉뚱한 장소에 꽂아두거나 서가 사이에 감추어 두는 분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러면 안된다는 것 아시죠? ^^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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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삼 씨의 글은 제 어머니..
by 파란딸기 at 14:16 꿈에 대한 코멘트에 전적으로.. by 동감 at 09/07 꿈은 일찍 꾸는 것이 좋은 것.. by 컴속의 나 at 09/06 정말 멋진 글입니다. 저도 .. by 구버달 at 09/06 지구본은 지금도 로망입니다.. by 키르난 at 09/06 저는 책에게 위로를 받는 타.. by 은혈의륜 at 09/06 저도 어린이 브리태니커 백.. by 썬데이뉴욕 at 09/06 연세많으신 분들을 만날 일이.. by liesu at 09/06 저도 커서 본 책들보다 어릴 .. by liesu at 09/06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by Clio at 09/0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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