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밀로 타로치와 주셉뻬 보따지를 아십니까?
까밀로 타로치(Camillo Tarocci)와 주셉뻬 보따찌(Giuseppe Bottazzi)란 이름을 들어 보셨습니까? 혹시 처음 들어 보셨다면 돈까밀로(Don Camillo)와 빼뽀네(Peppone)는 어떻습니까? 아마 이 이름들이 기억에 남아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요.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조반니노 과레스키(Giovannino Guareschi, 1908-1968)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의 본명이 까밀로 타로치와 주셉뻬 따지입니다. 처음 우리 나라에 이 소설이 소개된 것이 70년대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근에 이탈리아어를 전공한 분들이 원본을 번역해서 다시 출판하였다고 하던데요. 궁금합니다. 얼마나 새롭게 번역이 되었는지요. 오늘은 이 책과 이 책의 저자 조반니노과레스키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과레스키는 1908년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 파르마(Parma) 인근의 폰타넬레 디 록카비앙카(Fontanelledi Roccabianca)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인근의 파르마는 "파름(혹은 파르므)의 승원"이라는 스탕달의 소설로 우리에게 알려진 도시입니다. 아마 이탈리아 인들이 들으면 뭐라 하겠지만 파르마란 지명의 영어 혹은 불어식 발음이 파름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번역이 되었으니 .... 그리고 최근에 많은 분들이 파스타나 피자와 함께 즐겨 드시는 파르메잔(Parmigiano-Reggiano)  치즈의  본 고장이기도 합니다. 그 도시에서 치즈의 이름을 따 왔지요.  어..이야기가 딴 데로 새는군요.

유복한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난 과레스키는 그 탄생에서부터 정치와는 매우 가까웠습니다. 과레스키의 부모가 살던 집의 아랫 층에는 그 지역 사회당 사무실이 있었고 마침 과레스키가 태어난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로서 아랫 층과 건물 밖에서는 한참 축하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윗 층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지역 사회당의 책임자는 윗 층으로 올라와 갓 태어난 과레스키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 건물 밖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던 다른 노동자들에게 과레스키를 내보이며 "노동자들의 투사' 가 탄생했다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돈까밀로로 대변되는 과레스키의 작품들에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인 성향과는 일견 동떨어진 예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만 그의 전 생애를 걸쳐 나타나는 불의와 부패한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조롱을 보면 그리 틀린 예언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과레스키가 태어난 날 있었던 이 일은 돈 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가 영화화 되면서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학교 교사였기 때문에 어린 과레스키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어린과레스키에게 포 강 유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고 하는 군요. 이야기꾼으로서의 과레스키는 이렇게 어린시절부터 만들어지고 있었지요.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기술계 학교에 진학했지만 적응하지 못 했고 다시 인문 계통의 학교로 진학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1920년대에 집안이 경제적 기울자 일을 하며 집안을 돕던 과레스키는 파르마 대학에 진학하지만 결국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합니다. (옆에 있는 사진은 1914년, 6살의 과레스키입니다.)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재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초반 밀라노에서 발행되던 잡지 '베르톨도(Bertoldo)'를 통해서 였습니다. 파시스트 말기의 이탈리아에서 과레스키는 자신의 특기힌 신랄한 정치 풍자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없었지만 몇편의 소설과 만화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립니다. 그러면서 결혼을 통해 안정을 찾아 가던 그에게 어려움이 찾아 온 것은 2차대전과 이탈리아의 참전이었습니다. 이미 의무 복무를 마쳤지만 전시 상황의 시작과 함께 과레스키는 다시 징집되어 일선에 나가게됩니다. 그의 아내는 이미 두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1943년 이탈리아의 국왕 비또리오 엠마누엘레 3세는 무솔리니를 전격적으로 실각시키고 새로이 정부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연합국들과 휴전 협정을 맺습니다. 1943년 9월 8일에 있었던 이 일은 전선에 있던 이탈리아 군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일전에 소개해 드렸던 영화 지중해를 보신 분은 영화 말미에 이 부분이 언급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하루 아침에 어제까지 적국이었던 영국과 미국이 아군이 되고 같은 편에서 싸우던 독일이 적군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동 유럽과 발칸 반도 등지에서 독일군과 함께 전투를 벌이던 이탈리아 군들은 졸지에 적군들에게 둘러싸이게 되고 많은 경우는 독일군들에게 학살당하거나 독일 포로 수용소로 끌려 가게 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주연한 '캡틴 코렐리의 만돌린' 이라 영화가 바로 이 9월 8일의 사건으로 인해 독일군들에게 잔인하게 학살당한 이탈리아 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과레스키는 다행스럽게도(?) 살아남아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갇힙니다.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이곳에 갇혀 있었던 과레스키는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의 혹독한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동료들을 위로 했다고 합니다.전쟁 후 그 당시 그가 쓴 글들을 보아 '나의 비밀 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었지요. 전쟁 후 밀라노로 돌아온 과레스키는 그 사이 폐간된 베르톨도에 이어서 발행된 '칸디도(Candido)'라는 잡지에서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칸디도에서 연재한 이야기들이 바로 돈까밀로 신부님과 빼뽀네의 이야기이지요.(아래의 사진은 1948년 무렵의 과레스키입니다.)

그런데  돈까밀로 신부님과 빼뽀네의 이야기들은 유머러스한 과레스키의 묘사와 달리 치열한 정치적인 투쟁과 테러가 난무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43년 정부의 갑작스런 휴전 선언과 함께 대부분의 이탈리아 반도는 하루 아침에 독일의 점령지가 되어버립니다. 휴전 협정이 맺어지던 당시까지도 연합군은 이탈리아 남쪽의 섬 시실리만을 점령하고 있었고 휴전 협정 이후에야 본격적인 이탈리아 반도로의 진격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당시까지 이탈리아 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들은 이제 점령군이 되어 일부 남은 파시스트들과 함께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합니다.

과레스키의 책에서도 묘사되지만 이 때 북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반파시스트 운동가들은 레지스탕스 부대를 조직하여 독일군 및 파시스트들과 후방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이 게릴라 부대에는 왕당파, 공화파, 공산주의자 등이 정파를 막론하고 참가하였는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종전과 함께 이제 각 자의 목소리를 높이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활발한 활동을 한 공산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곡창 지대라 할 수 있는 포강 유역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지주와 소작인 간의 문제를 배경으로 여전히 무기를 가지고 있던 공산당 계열의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에 의해서 공산 혁명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고 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을이 바로 포 강유역의 마을입니다.

사실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1946년에 이탈리아는 나라의 모습을 종전의 국왕제에서 공화국으로 바꾸는 국민투표를 합니다. 그리고 그 국민 투표가 통과 됨에 따라 1948년에  최초의 총선거가 이루어집니다. 어찌 보면 해방 후 우리 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고도 할 수 있지요. 다른 점이라면 1948년의 총선거가 있던 시점에 이탈리아에는 공산당이 하나의 정당으로서 선거에 참여했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민주당과 사회당, 그리고 공산당이 그 후에도 오랫동안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게 되는데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는 바로 이 총선거가 있던 상황에서 등장하여 '기독교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합니다.
책을 읽으신 분들은 그 속에 담겨 있는 과레스키의 정치적인 지향을 쉽게 간파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냉전이 한창이던 70년대 말 한국에서도 번역이 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흑백일변도의 반공주의와는 달리 과레스키의 소설에 등장하는공산주의자들은 인간적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에 가서는 결국 돈까밀로와 협조하고 자신들의 마을을 위해 일합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과레스키는 사상이나 주의를 떠나서 이탈리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탈리아 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일조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랬기 때문에 1948년의 선거가 기독교 민주당의 승리로 끝난 후 과레스키는 과녁을 기독교 민주당으로 돌려 그들의 무능과 부패를 통렬하게 풍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통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칸디도에 연재했던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이 되자 마자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몇 편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었지요. 제가 기억하기로 국내에서도 80년대 언젠가 MBC 에서 이 이야기의 배경을 제주도로 옮겨 각색한 미니시리즈를 방영했던 것도 같습니다. 70년대 말에 처음 한국어로 이 책을 번역하셨던 분은 문화부 장관이신 김명곤씨였던 것으로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 책을 접한 것이 8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면에서 제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에 관한 포스팅을 해보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 이제야 성사되는군요.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제 인생이 이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까요?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다음 글에 마저 올리겠습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웹싸이트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돈까밀로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씩 방문해 보십시오. 외국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과레스키가 남긴 삽화와 기타 그림들도 보실 수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는 분들께서는 이 싸이트들을 한 번 살펴보시고 돈까밀로와 빼뽀네, 그리고 과레스키가 살았던 지역을 여행 일정에 포함시켜 보면 어떨까요? 로마와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평범한 이탈리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울러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The Don Camillo Galleries : 과레스키의 사진과 그가 남긴 그림들 그리고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삽화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 The Little World Wide Web Homepage of Don Camillo :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에 관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면 과레스키가 말년을 보낸 지역에 대한 안내와 과레스키 박물관에 관한 자료도 있습니다.
  • Giovanni Guareschi's "non-Camillo" books " 돈까밀로 시리즈 이외에 과레스키가 남긴 작품들에 대해 보실 수 있습니다.
  • Tutto il mondo di Guareschi : 조반니노 과레스키에 대한 공식 웹싸이트입니다. 과레스키의 가족들이 운영에 관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어 싸이트이지만 일부 영어 자료도 있습니다.
  • 서교출판사 : 최근 이탈리아어 완역본을 출판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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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o | 2007/04/30 11:41 | 도서관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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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Cliomedia : 돈까밀.. at 2008/05/12 10:12

...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제가 처음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1980년 경에 아버지로부터였습니다.당시 저의 아버지는, 물론 지금도 그러시지만, 약국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많은 ... more

Commented by Charlie at 2007/04/30 11:56
인기를 타고 가짜 소설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돈 까밀로와 뻬뽀네.. 오랜만이네요 정말. (...아.. 아니 그러니까 제가 어릴때 부모님께서 이야기해 주셨........)
Commented by Clio at 2007/04/30 12:01
Charlie 님 / 다음 글에 올릴 이야기 입니다만 저도 아버지께서 이야기 해 주신 것을 듣고 읽기 시작했었지요.....
Commented by 이카루스 at 2007/04/30 12:36
80년대 초반이면 저랑 거의 비슷한 시기에...(쿨럭).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죠. 지금도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이탈리아인이 죽인 독일인 병사의 아내와 결혼하던 거....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4/30 13:28
저도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소설과는 달리, 영화 [우편 배달부 (Il Postino)]에서는 이탈리아의 좌우대립이 격렬해서 좀 놀랐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무기를 내려놓고,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하는 게 쉽지않나봐요.
불신과 증오의 덩굴을 어떻게 베어내느냐가 문제이겠지요.
Commented by 사은 at 2007/04/30 16:08
아이쿠아이쿠 체크포스트, 체크포스트!
저는 어릴때 서점에서 '기냥'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이 사뭇 자랑입니다. (웃음)
Commented by Clio at 2007/05/01 05:01
이카루스 님 / 반갑습니다. 저와 같은 번역판을 보신 것 같군요. 그 에피소드는 저도 기억이 납니다, 매년 죽은 남편을 기념하러 마을에 오던 독일 미망인의 이야기 였었지요.

marlowe 님 / 그 영화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답답합니다. 아마 주연을 했던 마씨모 트로이시가 그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겁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본 영화라 영화 속에서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죽음의그림자를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 나라에서처럼 전쟁으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물론 서로 다른 역사적인 조건이 있지만요.)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좌우의 대립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정치와 사상 그리고 종교가 개입이 되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간에 대화를 하기가 참 힘들어지나 봅니다. 더구나 무기를 들고 있는 두 집단 간에 불신을 없애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사은 님 / '기냥' 집어들었던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랑할 만한 일이지요. ^^
Commented by ferma at 2007/05/01 05:34
저희 온 식구가 광 팬이었죠... 번역본도 가지가지였는데...카톨릭신자로서 돈까밀로신부님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빼뽀네을 살짝 더 좋아하긴 했지만요^^
댓글들을 보면 대략 연세(?!!@) 를 짐작할 수 있다...는... 쿨럭.
Commented by 짜로씨 at 2007/05/01 12:16
아주 예전에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렇게 써진 제목을 보고서는 옆에서 뭐라해도 흥미가 뚝 떨어져서는......ㅎㅎ..이제서야 제목이 바뀌고 그렇게 작년 연말이었나요..읽게 되더군요...그리고는 다시 "까칠한 가족"이라 붙여진 책을 읽게 되었구요..역시나 재밌군요.(항상 고집스러운 성격이 문젭니다..문제..ㅎㅎ)
Commented by maybe at 2007/05/01 23:53
아니, 어찌,
이런, 이런.
이런 유익한 포스팅을 살아 생전에 보게 될 줄이야, 다만 감사할 따름.
Commented by Clio at 2007/05/02 07:25
ferma 님 / 저도 빼뽀네의 순박한과 우직함이 더 좋았습니다. 이거 저의 개인사가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

짜로씨 님 / 저는 처음에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란 제목을 보고 종교서적인가 했었습니다. 그나저나 "까칠한 가족"이라고 번역하신 분의 센스가 놀랍군요. 아직 저는 까칠하다는 말의 최근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

maybe 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그저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짜로씨 at 2007/05/02 21:15
제가 그래서(종교서적으로 착각함) 안읽었던 거거든요....(웃음)..까칠하다는 모나고 뾰족하다..뭐 그런 뜻이라는데요...(책을 보면 가족끼리 서로 너무 진실해서?? 탈이라고 할까요??암튼 좋은 말도 있는데 좀 직설적인 것이...ㅎㅎ)
Commented by Clio at 2007/05/03 13:59
짜로씨 님 / 이제 그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재미있네요. 아마 과레스키의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가 유전이 된다면 가족 모두 조금은 '까칠'한 가족이 될 것 같네요. ^^
Commented by 얼음칼 at 2008/08/13 09:21
까밀로 따로치가 돈 까밀로의 본명이 맞나요? 제가 이번에 본 완역본 10권에 보면, 까밀로 따로치는 돈 까밀로가 뻬뽀네를 협박해서 러시아로 가기 위해 빌린 다른 공산당원의 가명이라고 나오던데요.
Commented by Clio at 2008/08/13 10:37
흥미롭습니다. 올려주신 글을 읽고 급하게 영어 번역을 찾아 보니 뻬보네가 "false name" 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가명인 것 같습니다만 돈 까밀로의 본명이 책에서 언급된 적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마 러시아에 가기 위해 사용한 타로치란 이름이 유일한 경우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로치를 본명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잠시 찾아 보니 대부분의 인터넷 소스들에서도 까밀로 타로치가 본명이지만 거의 사용된 적은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군요. 이탈리아어 판을 한 번 찾아 봐야겠습니다. 혹시 러시아에 가기전의 에피소드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는지 다시 한 번 봐야겠습니다. ... 저는 그 이름에 대해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나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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