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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제가 처음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1980년 경에 아버지로부터였습니다.당시 저의 아버지는, 물론 지금도 그러시지만, 약국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많은 약사 분들이 그러하시듯 손님이 뜸한 시간 아버지는 약국에서 많은 책을 읽으셨습니다. 문학 소년에서 문학 청년으로 이어지며 소설 습작을 남기기도 했던 분이라서인지 여러종류의 다양한 책을 늘 곁에 두고 계셨지요. 그 때 우리 가족은 성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성당의 신부님이 이 책을 아버지께 권해주었던 모양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랬으니 책을 읽으면서 저에게 책속에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 주셨겠지요. 늘 우리가 생각하는 근엄한 신부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돈 까밀로 신부님의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공산당이지만 인간적인 빼뽀네의 모습이 정감있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그 책을 다 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몇 권의 시리즈로 출판이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첫 번째 권을 마치고 다음 권으로 옮겨 가자 마자 그 책은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중학교에 갓 들어간 저의 어린 마음과 머리로는 책 속의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왜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생겼지요. 어떻게 공산당이 빼뽀네처럼 그렇게 순진할 수 있을까? 70년대에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저로서는 (예.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386 입니다.) 공산당에 대해서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등교하면 학교 건물에 가장 먼저 보이는 구호는 "무찌르자, 공산당!" 이었고 학교에서는 수시로 반공 웅변 대회와 글짓기 대회가 열렸었습니다. 반공 포스터 그리기 숙제가 있으면 언제나 공산당은 크고 날카로운 이빨에 피를 묻히며 아이들을 잡아 먹는괴물로 그리던 저에게 빼뽀네와 같은 공산주의자는 의외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이런 의문이 들었지만 공산당에 대해서 어른들에게 물어보기가 겁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이 책을 통해 평생을 간직하게 되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른들에게 물어볼 수 없었으니 제 스스로 대답을 찾으려 했고 그 대답을 찾을 수 없자, 결국 책에 쓰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죠.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식으로요. 나중에는이러한 생각이 저를 단순한 흑백 논리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 사람이 가진 생각과 그 사람이 하는 현재의 행동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지요. 좋은 행동이든, 나쁜 행동이든 간에 말입니다. 80년대에 처음 접한 이 책을 한 10 여 년간 대학에 들어와서까지도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나중에는 친구들에게 책 속에 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주기까지 했었지요. 물론 이야기가 웃기는 것이 아니라 제가 웃기는 놈이 되었지만요. 저는 책 속의 등장 인물들과 이야기 하나 하나가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웃어가며 이야기했는데 책을 읽어 보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다는듯이 말하고 있는 제가 웃기는 놈이었지요. ![]() 이 책을 10여년 동안 읽으며 이탈리아라는 나라, 특히 포 강 유역의 작은 마을은 제게 마치 고향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그리고 대학에 진학해서 역사를 전공하면서 이탈리아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복무를 마치고이탈리아에서 몇 년간 공부하면서 그곳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전 처음 이탈리아에서 외국 생활을 시작하는 저에게 돈 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는 여러 모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탈리아어를 배우면서 제가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채 실력이 되지않으면서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지요. 내용이야 이미 외울 정도로 알고 있으니 대충 짧은 이탈리아어 실력으로 끼워맞춰가며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부터 가졌던 많은 의문들을 해결하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김 명곤씨의 번역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훌륭한 번역이었지요. 예를 들어, 읍장인 빼뽀네가 맞춤법이 엉망인 벽보를 붙이면 돈까밀로가 밤에 몰래 나와 빨간 색연필로 하나하나 고쳐가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줍니다. 이 부분에서 맞춤법이 틀린 그 벽보를 김 명곤씨는 정말 재미있게 번역했습니다. 나중에 이탈리아어 원본을 읽어 본 후에도 역시 그 번역이 훌륭했다는 것을 느꼈지요. 하지만 문화적인 차이와 정보의 부족으로 이해가 안되던 부분들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돈까밀로와 빼뽀네가 벌이던 포커 시합입니다. 김 명곤씨의 번역에서는 돈까밀로와 빼뽀네가 포커 게임을 했는데 그리이스 신화와 호머의 서사시에 나오는 영웅들이 포커를 하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처럼 두 사람이 치열하게 오랫 동안 싸웠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포커 게임에 대해 모를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에 포커 게임을 해 보고 나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포커 게임을 하면 그리이스의 영웅들처럼 치열하게 오랫동안 싸울 수 있을까 궁금하더군요. 제가 아는 포커는 간단히 승부가 나는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어 원본을 읽어 보고'아하' 했습니다. 원본에서 과레스키가 말한 카드 게임은 스코파(Scopa)라고 하는 이탈리아식 카드 게임이었는데 이 카드게임의 여러 방식들 중에서는 몇 시간 동안 머리를 써가며 해야 하는 것도 있더군요. ![]()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를 통해 이탈리아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낯선 곳에서의 적응이 의외로 쉬웠습니다. 낙천적이고 개방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온 한 학생이 돈까밀로와 빼뽀네에 대해 알고 있고 그 이야기를 하자 훨씬 더 관심을 가져주었지요.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기가 훨씬 쉬웠습니다. 이미 전체 내용을 외울 정도로 알고 있던 저는 책 속에 있는 작은 내용 한 가지를 주제로 이탈리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해서 점점 더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지요. 이것을 통해 한 가지 더 제가 느끼게 된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단지 그 사람들의 글자와 문법 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한 언어 속에는 결국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제대로 모르고는 언어를 배우기가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러한 배경 지식 없이도 어느 정도까지는 언어를 배울 수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깊은 면을 알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이 있으면 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도 쉽지요. 인삿말 이 외에도 말 할 주제가 많아지니까요. 아마 한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춘향전에 대해서 잘 알고 그것에 가지고 한국말로 떠듬떠듬 이야기를 걸어오면 우리도신기해하면서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더 보지 않을까요? 어쨌던 제게는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가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비록 제가 살았던 곳은 포 강 유역이 아니었지만 그 인근 지역을 여행하며 아침에 강 가에 자욱하게 끼는 안개를 경험하기도 했었지요. 그리고 책에서 나오던 람브루스꼬(Lambrusco) 포도주를 마실 기회도 있었구요. 이탈리아 시골의 순박한 사람들은 한국의 대도시에서 살던 제가 보기에도 너무나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세하게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한국적인 분위기를 느꼈었지요. 그 시절의 그런 경험들이 결국 지금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 시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제가 공부하고 있는 시기가 바로 돈까밀로와 빼뽀네가 서로 어르렁 거리며 싸우던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 이전까지의기간이니까요.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저는 주체할 수가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만 강제로라도 글을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어 보시지 않은 분들은 꼭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강력히 추천합니다. 첫째 재미있습니다. 둘째, 책 속에 나오는 훈훈한 이야기들에 감동하실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은 참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실겁니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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