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다짐 세상이야기

최근 1987년 6월에 있었던 6월 항쟁에 대해 최근 많은 기사들이 나오고 그것에 대해 포스팅하시는 블로거들의 글도 자주 봅니다.  '20' 이라는 숫자에서 모두들 한 번 정도는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봅니다. 일부에서는 20년 전 불의에 대항해 일어섰던 젊은이들의 열정을 이야기하면서 현재 젊은이들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졌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20년 전과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달라졌을 뿐이지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블로그를 통해서 올라오는 글들을 보아도 여전히 우리의 젊은이들은 순수하고 정의롭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20년 전에도 젊은이들의 100%가 운동에 나섰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에는 '투사'도 있었고 공부에만 열중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투사'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겠지요.

저는 20년전 4월의 어느 날 밤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날 저는 최류탄 냄새가 가득 찬 교정에서 밤늦게 잔디밭에 앉아 친구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낮에 있었던 시위를 이야기하고 암담하게만 보이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요. 막걸리 잔이 돌아가고 취기가 오르면서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점점 우울해져 갔습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의 힘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보잘것 없게 생각되었고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다가 같이 앉아 있던 친구들 중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했고 그것은 곧 합창이 되었습니다. 가슴 속에 쌓인 울분을 노래로 풀어버리려는 듯 우리 모두 악을 써댔지요.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에선가 '시끄럽다. 공부 좀 하자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침 저희들이 앉아 있던 잔디밭이 도서관 근처였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몇 몇 학우들에게는 우리의 노래 소리가 방해가 되었나 봅니다. 어두운 밤이라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이 도서관에서 한가하게 공부나 할때냐?" "너 학생 맞냐? 짭새 아니냐" 등등 친구들도 지지않고 고함을질렀습니다.  

깜깜한 교정에서 십여 분 서로 고함만 쳐대다가 결국 끝이 났지만 그 와중에 도서관에 있던 그 사람이 던진 한 마디 말이 제게 큰 충격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 XX들, 20년 후에 어떻게 되나 보자."  "뭐?  20년후... 그래. 20년 후에는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런데, 만일 20년 후에 내가 힘이 있어서  이 더러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 아마 이런 식으로 제 생각이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제 마음 속에 자리 잡은 한 가지생각은 "지금의 이 마음을 결코 버리지 말고 20년 후 아니 40년 후까지 가지고 가자. 그래서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 하지만 만일 그 때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면 지금 내가 원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보자." 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비겁한 패배주의라고 비난할까봐 입 밖에 내지는 못했지요.

87년을 정신 없이 보내고 그 다음 해에 남들처럼 군대에 갔지요 그리고 제대 후 이리 저리 떠돌다가  학교로 다시 돌아간 것이 94년 이었습니다.  많이 변했더군요. 제 마음은 87년 4월 그 날 밤에 했던 결심을 잊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러다 보니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교 2학년의 마음이었지만, 저를 보는 주위의 눈들은 달랐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때까지 학교에 남아 있던 87년의 '투사'들이 이제는 도서관 밖 잔디밭이 아니라 도서관 안에 앉아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공무원 시험이나 취직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또 10 여년이 흐른 지금 저는 여전히 87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나이값을 못한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제가 느끼는 제 자신은 여전히 대학교 2학년입니다. 물론 그 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고 또 그 경험만큼 배둘레에 '인격'도 늘었지만^^ 여전히 그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때의 꿈과 소망을 현실에 옮길 힘은 아직 얻지 못 했지만요.

어쩌면 지난 20년간 대학교의 근처를 떠난 적이 없었다는 점이 20대 때 가졌던 마음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게 해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렇겠지요. 그렇게 본다면 저는 행운아입니다. 적어도 술자리에서 제대한 군인들이 군대 생활을 이야기하듯  80년대의 학생 운동을 술안주로 삼지는 않으니까요.


그 때의 그 '투사'들이 궁금합니다. 그들도 모두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여전히 '투쟁'하고 있겠지요. 종종 20년 전의 '투사'들 중에서 마침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이들을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진 만큼 그들의 마음과 꿈도 달라져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20년 전 그 때와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어쩌면 그 때 보다 더 나빠진 많은 문제들이 있고 이제 정말 20년 전 그 투사들이 가졌던 순수한 열정이 필요할 때인데  "아니 저 사람이 왜 저러나." "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나?"하는 의문을 생기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는지 안타까웠습니다.

자주 이 블로그에서 기록을 보존하자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존해야 할 것은 기록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가졌던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도 분명 마음 속에서 보존하고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어야 할 것들입니다.  80년대의 '가열찬 투쟁'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그 때 자신이 가졌던 마음도 함께 기억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기억나시거든 떠나가기 전에 붙들어 매두십시오.  그리고  80년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마음 속에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을 가지신 분들은 그것들을 평생 놓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장 우리가 가진 힘은 약하고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결국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어 질 것이라 믿습니다. 혁명의 방아쇠는 투사들이 당길지 몰라도 진정한 혁명의 시작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힘은 변화에 대한 열망과 정의감에 불타는 우리 젊은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습니다.
***
1991년 무렵 이탈리아에서 들었던 깐소네 한곡을 올려봅니다. 지노 파올리(Gino Paoli)라는 이탈리아의 싱어송 라이터가 부른 "네 명의 친구(꽈뜨로아미치, Quattro Amici)"란 노래인데요.  60년대 유럽의 강력한 학생 운동을 경험한 청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변해가고 90년대에 들어서 새로이 만난 젊은이들은 그 때와는 사뭇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사(특히 굵은 글씨로 표시된부분)를 살펴 보시면 여러 가지 생각되시는 것이 있을 겁니다. 저는 90년대 초반 이 노래를 들으며 아름다운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에 섬찟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링크한 음악은 7월이 오면 지우겠습니다. -- 음악을 지웠습니다. 혹시 필요하신 분은 제가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6월 29일, -- Youtube 에서 음악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올립니다.-2007/12/28)
Quattro Amici (네 명의 친구)


Eravamo quattro amici al bar che volevano cambiare il mondo
destinati a qualche cosa in più che a una donna ed un impiego in banca

si parlava con profondità di anarchia e di libertà
tra un bicchier di coca ed un caffè  tiravi fuori i tuoi perché e proponevi i tuoi farò.


우리들은 바에 모여서 세상을 바꾸려 하던 네 명의 친구들이었지.

여자나 은행의 취직 자리보다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추구했었어.

(그 때 우리는)무정부 주의와 자유에 대해 깊이 이야기 했었지.

한 잔의 콜라와 커피를 나누며 너는 너의 '왜' 와 '반드시 그렇게 할거야' 를 자신있게 이야기했지.


Eravamo tre amici al bar. uno si è impiegato in una banca
si può fare molto pure in tre mentre gli altri se ne stanno a casa

si parlava in tutta onestà di individui e solidarietà
tra un bicchier di vino ed un caffè tiravi fuori i tuoi perché e proponevi i tuoi però.

세 명의 친구들이 바에 모였지. 한 친구는 은행에 취직을 했다는군.

뭐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다 집에 있는 동안 우리 세 사람 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

정말 순수하게 개인과 단결에 대해 이야기 했어.

한 잔의 포도주와 커피를 나누며 너는 너의 '왜' 와 '그런데 말이야'를 이야기했지.


Eravamo due amici al bar. uno è andato con la donna al mare
i più forti però siamo noi. qui non serve mica essere in tanti

si parlava con tenacità di speranze e possibilità
tra un bicchier di whisky ed un caffè tiravi fuori i tuoi perché e proponevi i tuoi sara'.


두 명의 친구들이 바에 모였지. 한 친구는 여자 친구와 바다에 갔다는군.

뭐 그래도 우리가 더 세잖아. 숫자가 많다고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야.

우리는 끈질기게 희망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지.

한 잔의 위스키와 커피를 나누며 너의 '왜' 와 '아마 그렇게 될거야."를 이야기했지.


Son rimasto io da solo al bar. gli altri sono tutti quanti a casa
e quest'oggi verso le tre son venuti quattro ragazzini

son seduti lì vicino a me con davanti due coche e due caffè
li sentivo chiacchierare han deciso di cambiare tutto questo mondo che non va.

혼자 바에 남아 있었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에서 가 있었지.

그런데 오늘 3시 쯤되니 4명의 청년들이 들어오더군.

두 잔의 콜라와 두 잔의 커피를 두고 내 근처에 앉아 있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거라고 하더군.


Sono qui con quattro amici al bar che hanno voglia di cambiare il mondo.

이제 나는 여기 세상을 바꾸려하는 네 명의 친구들과 바에 앉아 있다네.


" E poi ci troveremo come le star a bere del whisky al Roxy Bar
o forse non c'incontreremo mai. ognuno a rincorrere i suoi guai."


"그리고 나서 우리는 스타들처럼 만나 록시 바에서 위스키를 한 잔 할 거야.

어쩌면 아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 그리고는 저마다 자신의 문제에 정신없이 매달리겠지."


마지막에 이어지는 다른 분위기의 노래는 이탈리아의 록커인 바스코 로시(Vasco Rossi)가 80년대에 발표한 "무모한(대담한, 위험한) 삶-비타스페리콜라타, Vita Spericolata)"의 일부입니다. 이 노래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무모하게 질주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노래로서 80년대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사랑한 노래입니다. 자신의 과거와 친구들을 노래하던 주인공이 친구들이 다 떠난 자리에 새로이 등장한 젊은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엉망진창인 세상을 바꾸려하는 것을 보고 그들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하는 것만같을 뿐 그들의 생각과 이상, 그리고 삶의 방식은  과거의 젊은이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문제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 질주해 나가는 것이 이 새로운 네 명의 청년들이 나누는 이야기 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마지막 이 노래가 삽입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60년대의 젊은이들이 추구하던 이상과 그것을 위해 돌진하던 그들의 삶 역시 '무모한(대담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이 쓸데 없이 길어 졌군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커피'를  참 좋아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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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uattro Amici (네 명의 친구) 2007/09/07 14:24 #

    Eravamo quattro amici al bar che volevao cambiare il mondo destinati a qualche cosa in piu che a una donna ed un impiego in banca si parlava con profondita di anarchia e di liberta tra un bicchier di coca ed un caffe tiravi fuori i tuoi perche e prop......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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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iomedia : 방 안의 하늘(Il Cielo in una Stanza)-미나 그리고 지노 파올리 2008-11-14 06:55:31 #

    ... , 작곡한 지노 파올리(Gino Paoli)는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 도시인 제노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가수입니다. 언젠가 제가 20년 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노 파올리의 "네 명의 친구(Quattro Amici)" 라는 노래를 올려드린 적이 있었지요. 1934년 생인 그는 1950년대 말 제노아에서 같이 활동하던 몇 명의 음악인들과 함께 밀라노로 가서 오디션 ... more

덧글

  • isabloom 2007/06/10 17:04 # 삭제 답글

    clio님, 마음을 울리는 글입니다..
  • laystall 2007/06/10 17:12 # 답글

    소중한 말씀 잘 읽었습니다. 부딪히고 넘어지는 매일이지만, 제 20년 후의 입맛도 스스로 후회되지 않기를 다짐해봅니다.
  • 김민섭 2007/06/10 17:56 # 삭제 답글

    제가 대학2년생입니다만, 복잡한 사회에서 도대체 내가 뭘 해야하는 지를 모르겠다고 진저리가 날 때가 많습니다. 차라리 대학생의 '순수함의 유지'라는 측면을 위해선 80년대가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 goose 2007/06/10 18:15 # 답글

    추억으로 마음이 울렁거리는 글 + 노래 감사합니다. 커피를 좋아하시는군요. 다방커피? 원두커피?
  • 초록불 2007/06/10 19:47 # 답글

    잘 보았습니다. 대학생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달라졌지요. 저는 그 달라진 세상이 좋습니다.
  • 보노보노T 2007/06/10 19:58 # 답글

    이제 보니 clio님이 저와 비슷한 연배인가 봅니다. 87년에 전 대학 신입생이었지요. 새내기요..제가 두세 해 아래일 확률이 높군요~^^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교정 구석구석에 설치된 TV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도저히 우리나라의 모습이라고 여길 수 없는 내용이었고, 매캐한 최루탄 냄새는 고통 그 자체였지요. 20년 전 그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만, 저는 어떻게 변했는지.. 거울을 봐야 하겠네요~ ^^
  • Cynic 2007/06/10 20:28 # 답글

    전 올해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입니다. 그런데 여자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벌써부터 먹고 살 문제를 걱정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이건 뭔가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결심한게 있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내 젊음을 지키겠다구요 :)
  • 이방인 2007/06/10 21:20 # 답글

    4.19는 아니지만 이런 시도 생각나네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 광 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 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susanna 2007/06/10 22:46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종일 광화문에서 들려오던 옛시절 노래에 가슴이 울렁였는데, 끝내 이런 글을 만나고야 마는군요.^^
  • 아우라ny 2007/06/10 23:25 # 답글

    글 잘 읽었어요..전 그때 3학년이었는데... 티비에서 6월항쟁 20주년 기념하는 다큐를 보면서 생각이 많더라구요..
    그때 목이 쉬도록 구호외치던 친구들은 지금 어찌 사나 싶고요...
  • aoisunny 2007/06/11 01:54 # 답글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최루탄 냄새가 싫었었던 기억이 날 뿐입니다... clio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때의 젊은이들이나 지금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이 달라졌을 뿐 순수한 열정과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clio 님의 글은 언제 읽어 보아도 참 좋으네요... 2시가 가까워 오는 이시각 커피 생각이 간절해져요~ ^^
  • 2007/06/11 06:4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Clio 2007/06/11 09:49 # 답글

    isabloom님 / 속마음을 드러내 보인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공감을 해 주시니 기쁘군요. 감사합니다.

    laystall 님 /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것이 진정한 '투사'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민섭 님 /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세상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80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70년대와 60년대가 그렇게 보였을 수 있지요. 중요한 것은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찾느냐 하는 것인데 별 방법 없습니다. 그저 깨어지고 부서지고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또 고민하면서 찾아 가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것 자체가 우리의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산이 나타나면 그 산을 넘고 강이 나타나면 그 강을 건너고, 또 산이 나타나면 그것을 넘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인생이 힘들게도 느껴지겠지만 돌아보면 자신이 넘어온 산과 건너온 강들이 저만치 뒤에 보이겠지요.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절대 마음을 닫아 놓지 않는 일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넓게 보는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goose 님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커피라면 다 좋아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다방 커피를 즐겼고 지금은 원두 커피를 즐깁니다. 다방 커피 말씀을 하시니 갑자기 예전에 마셨던 '다방 모닝 커피' 가 생각이 나는군요. 저희 동네에서만 팔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른들이 자주 가시는 동네 다방에 가면 오전에 모닝 커피라는 것을 따로 팔았습니다. 일반 다방 커피에 달걀 노른자위를 넣어서 휘휘 저어 마시는 커피였는데 뜨거운 커피 속에 달걀이 들어가 섞이면서 살짝 익는 아주 묘한 맛이 나는 커피였습니다.

    초록불 님 / 오히려 초록불님 께서 올리신 글을 제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의 사회를 좋아 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제가 글을 올리고 있는 이 블로그만 해도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여러가지 부정적인 말들도 있지만 지금만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남들과 나눌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나 싶습니다. 만일 80년대에 오늘 날과 같은 다양한 정보 통신 도구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집니다. ^^

    보노보노T 님 / 그 때 저는 글에서처럼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제때에 들어갔구요. 대충 나이가 짐작이 되시지요? ^^ 불과 20년 전이지만 참 다른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등교를 하면 학생들 보다 먼저 학교 앞에 와 있는 전경차를 보며 오늘도 '싸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지요. 정문 수위실에서는 거의 매일 소방 호스를 이용해서 길에 남은 최루탄 가루를 씻어 내리던 기억이 납니다. 최루탄 때문에 눈물을 흘렸고 또 우리의 암담한 상황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Cynic 님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꼭 지켜나가세요. 그래서 나중에 40이 되고 50이 되었을 때 그 젊은 마음과 연륜이 합쳐져서 정말 큰 일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방인 님 / 좋은 시 감사합니다.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란 대목이 와 닿는군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susanna 님 /반갑습니다. susanna 님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조르바' 에 대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방문해 보고 아 . 그 분이구나 했습니다. 저도 조르바에 대한 글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해 주셨더군요. ... 아마 저도 광화문의 그 음악을 들었더라면 가슴이 설레이고 또 눈물까지 흘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최루탄 속에서 기침을 하며 쉰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들이 그렇게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울어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지요.

    아우라ny 님 / 그 때 3학년이셨으면 대학생 병영 훈련에 대한 기억도 있으시겠군요. 신문에 나온 기사들을 보면서 정말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역시 그 때의 친구들이 정말 그립습니다.

    aoisunny 님 / 순수한 열정과 희망을 가지는 것은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을 가슴에 꼭 붙들고 살아가려는 저는 어쩌면 젊어지려고 발악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 2시에 마시는 커피는 어떨까요? 가끔 저는 마시는데요. 커피 중독이라고 해야 할 지.. 오히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하고 나니 잠이 더 잘 오더군요. ^^

    비공개 k 님 / 궁금한 것도 많으셔라.^^ 86 아시안 게임 학번입니다.(쿨럭)
  • 사은 2007/06/11 16:47 # 답글

    무어라 덧글을 달아야 하나, 하고 처음 읽고 고민을 하다가 그저 새겨듣고,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는 말과 고맙단 말 밖에는 드릴 수 없구나 싶었습니다. 바뀌어야 할 것들에 바뀌어야 해, 라는 마음을 잃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그 마음이 강해지며 실천도 더욱 할 수 있는, 그렇게 보내는 앞으로의 20년이 되면 좋을텐데요.
  • 이녁 2007/06/12 00:04 # 답글

    트랙백 걸어 주신 거 감사합니다.^^ 방문이 좀 늦었네요, 덕분에 좋은 글들 많이 읽고 마음대로 링크 하고 갑니다.

    소개해 주신 이탈리아 노래는 참 좋네요. 가사도 그렇고 가락도 그렇고. 물론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지는 못하지만요. 앞으로 20년 후에는 제가 오늘을 떠올리며 '내가 젊을때는 저런 고민을 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겠지요.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 pink 2007/06/12 01:07 # 답글

    20년 후에 많은 것이 달라졌을테지만 아직도 변함없이 커피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왠지 와닿는걸요?
  • Clio 2007/06/12 05:37 # 답글

    사은 님 / 사은 님 께서도 그런 마음 잃지 말고 꼭 간직하십시오. 그렇다고 그런 마음으로 반드시 거창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주위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해나가다 보면 그것이 모여서 우리 사회 전체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녁 님 / 오히려 제가 좋은 글 올려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링크도 감사드리구요. 저도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20년 후가 먼 것 같아도 금방입니다. 열심히 좋은 일만 하고 살기에도 짧은 시간이지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저 역시 죽는 날까지 지금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pink 님 / 커피를 꾸준히 좋아하는 것처럼 제가 가진 마음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데요. 종종 나이값 못한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만 언제나 20대 초반의 그 마음을 간직하고 살고 싶습니다.
  • 봄바람 2007/06/12 09:27 # 삭제 답글

    허 참... 좋은 글과 좋은 노래를 또 만나게 되네요. 훗.
    이전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조금 더 진전된) 현명함을 그 마음과 어떻게 다시 만나게 할 것인가,의 고민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식단말기 옆에 높고 체 게바라를 읽으면서 위로받는 위선들을 가끔 보거든요.
  • maybe 2007/06/12 11:13 # 답글

    이오공감 추천하려고 하니, 가입한지 6개월 안되었다고, 안되네요, 많은 분들이 읽으면 좋을 텐데...
    전 89와 90학번이고, 앞으로 20년 후는 어떨지, 한편으로는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 Clio 2007/06/12 14:33 # 답글

    봄바람 님 / 소중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요. 청년의 순수한 열정과 중년의 사려깊은 현명함이 한 사람 안에서 합쳐진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 그와 비슷한 이유 때문에 저는 체를 마음 속에만 담아 두고 있습니다.

    maybe 님 /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사람이 10대일 때는 시간이 걸어가고 20대에는 뛰어가고 30대에는 날아간다는 말을 하셨는데 요즘들어 그 말이 정말 맞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20년 후를 생각하고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좀 더 오늘의 삶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gabriels 2007/08/22 17:32 # 삭제 답글

    글의 노래 가사,
    제 블로그에 올려도 될런지요..
  • Clio 2007/08/24 06:03 # 답글

    gabriels 님 / 당연히 올리셔도 됩니다. 음악은 제가 지웠는데 혹시 필요하시면 알려주십시오.^^
  • julia 2008/04/04 10:40 # 삭제 답글

    아..전 지금까지 왜 clio님을 여자분으로 생각했을까요...아주 자상하신 아이 엄마라고 생각했습니다ㅠ_ㅠ 근데 오늘 이 포스트를 보면서 진실을 깨달았네요. 하핫;;;;;
  • Clio 2008/04/05 01:07 # 답글

    julia 님 / 아마 개인적인 신상이 드러나는 포스팅을 하지 않아서 그런 오해를 일으킨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서관 사서 중에 여자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구요. "자상하신 아이 엄마" 가 아니더라도 계속 찾아 주실꺼죠?^^
  • julia 2008/04/05 09:51 # 삭제 답글

    물론이죠~ 여기 가끔 놀러 오는게 요새 제 취미생활입니다 ㅎㅎㅎ '자상하신 아이 아빠'로 기억해놔야겠네요 ㅎ
  • Clio 2008/04/07 10:25 # 답글

    julia 님 / 휴... 안심입니다. julia 님의 생각 깊은 덧글을 못 읽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 Signifie 2008/05/31 01:07 # 삭제 답글

    한참 하고도 더 오래 전 얘깁니다.
    제 생일을 앞두고 친구들이 어떤 선물을 해줄까 하길래 친한 친구들이 여섯 명이었고 마침 읽고 싶었던 '고요한 돈강' -미하일 숄로호프- (문예출판사)도 여섯 권이길래 한 친구에게 한 권씩 사달라고 했지요. 제 6권을 선물해주기로 했던 친구는 당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선물을 미루었고 저는 한동안 얄밉도록 (실은 장난 삼아) 끈질지게 빚 독촉을 했더랬지요. 너때문에 감동 정리를 못하고 있잖아~~ 이러면서. 그러다 시간이 한참하고도 오래 흘렀습니다.

    몇 주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갑자기 돈강이 생각나 문제의 그 친구에게 빚 독촉을 심하게 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 뻔뻔스럽게(ㅎㅎ) 저더러 '못난 것, 빌려서라도 읽어야지.'이러더군요.


    安樂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고
    성실히 일하는 노동의 기쁨을 알게 하고
    우리가 공부했던 소외된 이웃들을 잊지 않으며
    언제나 맑은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는 친구이고 싶다.

    **의 생일을 마음으로 축하하며


    Clio님의 글을 읽으며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고요한 돈강'을 다시 들쳐 보았습니다. 그 중 제 1권의 내지에 1권 담당 친구가 남긴 글을 옮겨 보았습니다. 이 콜렉션에서 제 6권은 여전히 빠져 있습니다. 다음 모임에서 다시 한 번 확실히 빚 독촉을 해야겠습니다.
  • Clio 2008/05/31 09:50 # 답글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자락을 엿 본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선물을 하면 선물의 의미가 더 커질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친구분의 글에서 말한 것 처럼 그런 친구 사이를 평생 이어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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