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6)-오래된 책 속에서 나온 것들
여름 방학이 시작된지도 몇 주 지났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은 도서관이 조용할 것이라 생각하시겠지요? 물론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의 숫자는 줄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학기 준비를 위해서 도서관은 더 바빠지는 것이 여름입니다. 제가 올 여름 동안 해야 할 일들은 일상적인 업무 이외에도 다음 학기 강좌에 필요한 책들을 미리 파악하고 준비해 두는 것, 도서관에서 준비 중인 도서관 안내 포드캐스팅의 한국어 버전을 만드는 것, 그리고 8월 달에 있을 외국인 신입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준비, 도서관 오픈 하우스 행사 준비 등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창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은 지난 한 해 동안 도서관에 기증된 책들을 검토하여 도서관에서 소장할 책을 고르는 일입니다.

매 년 많은 분들이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십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그런데 기증자들이 도서관에 보내주시는 책들의 6-70%는 역사와 문학 분야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아마 역사와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책을 많이 모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덕분에 문학을 담당하는 사서와 역사를 담당하는 저는 이 기증 도서를 검토하는 것이 큰 일입니다. 일단 기증 도서만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직원이 있어서 그 친구가 우리 도서관에서 소장하고있는 책들은 미리 골라 놓습니다만 소장 하고 있는 도서 중에서도 복본으로 소장할 필요가 있는 책들이 있으니 일단은 모두 검토해야합니다.

창고에 쌓여 있는
천 여권의 책들을 검토하는 도중에 한 이용자가 저를 찾아 왔습니다. 자기 어머니께서 몇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분이 우리 학교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하신 분이고 역사책이 유품으로 많이 남아 있다. 가족들이 도서관에 그책들을 기증하려 하는데 받아 줄수 있겠냐고 물어 왔습니다. 마침 그런 책들을 살펴보고 있던 중이라 당연히 가능하다고 하고 언제든지 책을 가져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며칠 후 무거운 책 상자를 든 남자 친구를 앞세우고 제 사무실로 다시 와서 한 무더기의 책을 내려놓고 갔습니다. 공식적으로 기증 절차를 밟기 전에 살펴보니 역사를 전공한 분이 모은 책이라 썩 괜찮은 책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오래되어 먼지가 쌓인 책도 있었고 표지가 찢어진 책도 있더군요. 하지만 그 책들 속에서 원래 주인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헌 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헌 책방을 들러 보는 것도 즐기지요. 잉크 냄새가 나는 새 책과 달리 헌 책들에서는 사람 냄새가 납니다. 때로 책 속에 남긴 전주인들의 메모를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고, 그 사람들이 책갈피 대신에 사용했던 이런 저런 소품들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입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과연 이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실제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왔던 19세기 책 속에서 저자가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자의 편지가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경우에 따라 이런 편지는 수집가들에게 매우 비싸게 팔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서가에서 발견했던  철학책 속에서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한 말에 대해 단락단락마다 비판하는 메모를 적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말입니다. 이런 책은 발견 즉시 치워버리고 깨끗한 책을 새로 구해 놓습니다. 자칫 다른 이용자들에게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돌아가신 그 할머니가 기증하신 책들을 살펴보다가 발견한 몇 가지 재미있는 것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왕 이 글을 올리는 김에 사진 공유 싸이트인 Flick의 The Things Found in Books 그룹에 올라온 사진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표지 그림 때문에 좀 비위가 상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군요. 역사상의 흑사병에 관한 책인데 쥐가 그려진 표지를 보고 나서 책의 배부분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쥐가 갉은 듯한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끼치면서  책을 떨어뜨릴뻔 했습니다. 하도 신기해서 주위의 동료들에게 책을 보여주었더니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었고 불태우는 것이 나을 거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오래 된 책 속에 어떤 분(?)들이 살고 계시는지 알기란 힘든 일이지요.

그런데 고양이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50대의 동료 사서가 그러더군요. 그건 고양이 발톱 흔적이라고요. 그리고 책의 뒷 표지에 젖었다가 마른 흔적이 있었는데 그 부분의 냄새를 맡아 보더니 오래되긴 했지만 고양이 오줌 냄새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우연히 고양이가 다니는 길에
책이 놓여있었는데 책에 그려진 생생한 쥐 그림을 보고 고양이가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추리인것 같은데 고양이 오줌은 잘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일전에도 책을 '육체적으로 사랑해 달라' 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그 반대되는 예가 위에 있습니다. 책 사이에서 파란 색의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뭔가 하고 뽑아 보니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클립 형식의 책갈피 였습니다. 아마 상당히 오래동안 그 속에 있었나 봅니다 오른쪽 사진에서 보시듯 페이지가 이미 변형되었습니다. 책갈피를 뽑아낸 자리가 선명하게 남아 있지요.
위의 사진은 동네 공공 도서관의 무료책 코너에 있는 것을 집어왔다가 그 안에서 발견한 메모입니다. H.G. Wells가 쓴 The Outline of History의 1971년 판을 가져왔는데 표지를 넘기니 그 안에 위와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모를 보는 순간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역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셨던 만화로 보는 한국 역사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중학교에 가서까지 읽다가 결국은 역사 공부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웰스의 역사책을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톰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에는 Flick의 The Things Found in Books 그룹에 올라온 사진 중에서 몇 가지입니다. 아마 주위에서 흔히 보실 수 있는 물건들일 겁니다. 혹시 도서관에서 반납된 책 속에 들어 있는 특이한 책갈피가 궁금하신 분은 이전의 포스팅 을 참고 하십시오. ^^
사진은 흔히 볼 수 있는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1955년 6월에 찍은 사진 속의 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말린 꽃 역시 많이 보이는 물건입니다. 말린 낙엽을 넣어두시는 분들도 있지요. 다른 종이 속에 넣은 후에 책에 넣어두면 책에 꽃잎 색깔이 배여 들지는 않을 것 같군요.
1926년에서 1927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책 갈피 입니다. 뒷면에 쓰인 메모에 1927년 1월 1일 이라는 날짜가 선명하군요.
편지도 자주 발견되는  물건입니다. 오른 쪽 위에 1916년 2월 3일 이라는 날짜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3년 전입니다.
뉴스 기사를 잘라서 넣어 두었군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얼굴에 흔적이 나타나듯 종이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 이미지 출처
Flick의 The Things Found in Books 그룹
: 여기에 가시면 더 많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Clio | 2007/06/18 10:58 | 도서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0)
트랙백 주소 : http://cliomedia.egloos.com/tb/127401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TITANESS at 2007/06/18 12:01
음.. 나름 숨겨놓은 돈이 발견되면 어떻게 되나요? ^^;;;; (책속에 비상금 숨겨놨다가 무슨 책인지 잊어버리시는 분들 종종 있을듯 :)
Commented by kristine at 2007/06/18 12:37
저 black death 책... 저자정보좀 알려주시어요..
Commented by Clio at 2007/06/18 14:27
TITANESS 님 / 그런 분들 종종 계시지요. 실제로 얼마 전에는 남편이 제법 큰 돈을 책에 넣어두었는데 아내가 그것을 모르고 도서관에 기증한 일이 있었지요. 액수가 제법 컸었나 봅니다. 그래서 도서관 직원은 책을 기증한 사람을 찾아서 돈을 돌려주었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전체 액수의 일부를 돈을 발견한 도서관 직원에서 사례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도서관 직원은 그 사례금을 도서관에 기증했구요.

kristine 님 / Gottfried, Robert S. The Black Death. Free Press, 1985 입니다. 그리고 아마존에 가 보시면 책 내용을 미리 보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Black-Death-Robert-S-Gottfried/dp/0029123704
Commented by 시엔 at 2007/06/18 17:10
이런, 돈은 돌고 도는 거라는 말이 이럴때 적용되는 건가요 ㅎㅎ
기증이라... 저도 한국 떠나올때 한 200권 정도 아름다운 가게쪽에 기증했었는데
그 책들은 좋은 주인을 만났는지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initosee at 2007/06/18 20:52
벨리로 왔다가 재밌게 읽고 갑니다. 오래된 책 향이 나는 것 같네요 ^)^
Commented by VIERE at 2007/06/18 20:57
책꽂이에 끼워져 있는 오래된 책들 뒤졌습니다. ㅎㅎ 왜인줄 아시죠!! 대학다닐때 fiber paper(조금 고가의 섬유질 인화지)를 건조 시켜야 하는데 고가의 건조장비를 구입하지 못해서 커다란 잡지와 책 사이사이에 말렸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몇장은 어디책에 끼어 있을거예요. 책이란 물건은 참 여러 용도로 쓰입니다. 제대로 써야하는데 저같은 경우 조금 어뚱하게 많이 사용했더랍니다.
Commented by 단미 at 2007/06/19 00:22
늘상 잭 냄새를 맡으며 흰 장갑을 끼고 책 정리 하시는 님의 직업이 부럽기 까지 합니다. 저도 잠시라도 책 정리 하는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가 없는데요..
Commented by 사은 at 2007/06/19 01:04
헌 책을 사는 것의 즐거움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책 속의 것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에 어떤 책은 어느 분이 열심히 읽으시고는 밑줄과 더불어 감탄과 동의와 반대를 주석처럼 달아놓으셨는데 읽을 때 책 두 권을 읽는 것 같아 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헌책방에서 아버지께서 종종 박스채로 싸게 나온 책을 그냥 사오시는데 그중에는 동문들의 문집같은 것도 나오고, 개인이 돈을 들여 인쇄한 양장본들이 나오기도 해서 참 신기합니다. 그렇게 해서 집에 들어오게 된 책을 한 번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클리오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어 주소 남겨봅니다. :)
http://saeun.egloos.com/2624480
Commented at 2007/06/19 01: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7/06/19 06:30
시엔 님 / 책도 돌고 도나 봅니다. ^^ 아마 시엔님이 기증하신 책들은 지금쯤 다른 주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겁니다. 나중에 그 책을 가지신 분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initosee 님 / 어서 오십시오. 그런 좋은 향기를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을까요?

VIERE 님 / 같은 사진이라도 인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던 기억이 나는군요. 말씀을 듣고 나니 젖은 책을 말리는 방법이 떠오릅니다. 젖은 책을 말리는 방법 중의 한 가지가 책의 페이지 사이에 티슈와 같은 종이를 끼워넣어서 습기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책의 용도가 다양하지요. 종종 전쟁터에서 총알 막는데도 쓰이고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들 깨울 때도 쓰이고 잘 때 베게 대용으로도 사용되고^^.... 그걸 한 번 포스팅 해봐야 겠군요.

단미 님 / 단미님 댁의 가지런한 서가가 참 좋더군요. 잘 정돈된 책장을 보면 마음도 착 가라앉는것 같습니다. 집에서 책을 정리하는 것은 재미있는데 도서관에서 몇 만권 되는 책들을 새로 배치하느라 학생들과 함께 며칠씩 씨름하고 나면 나중에 책 청구기호가 꿈에 나옵니다.

사은 님 / 예전에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영국은 더 하겠지요. 백년 정도 된 책은 헌책방에 가면 널려있으니 자꾸 보다보면 그리 신기할 것도 없어집니다. 제가 자주 가는 헌책방이 한 곳 있는데요. 그곳에서는 오래된 잡지를 팔고 있습니다. 종종 보면 생일 선물로 그 사람이 태어난 달에 나온 라이프지나 타임지 같은 것들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헌 잡지가 참 의미있게 쓰이는 것 같았습니다. 관계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저는 제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카메라를 아직 잘 쓰고 있습니다. 15년 전 쯤 전에 중고로 이태리에서 구입했었는데 수동 카메라라 큰 고장 없이 아직 잘 작동된답니다.
Commented by 키키 at 2007/06/19 07:17
저도 도서관에서 오래된 신문을 정리하는 작업을 할때 누렇게 된 신문 기사들을 조심스럽게 나누고 찢어진 귀퉁이를 깔끔하게 자르고 하다보니 나중에 손을 씻을때 검은 물이(...) 나오더라구요.

오래된 책과 신문을 다루고는 손을 꼭꼭 씻어야 겠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나저나 클리오님, 저 이제야 알았네요~클리오님 블로그글들이 기사화 됬었다는걸요! 그동안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남겼던 덧글들을 떠올리며 얼굴이 빨개졌답니다. 하하~
Commented by kristine at 2007/06/19 09:25
아참 이 참에 저도 20세기 초와 19세기 말기에 만들어진 책 몇개 블로그에 올려놔야겠네요...
Commented at 2007/06/19 13: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guss at 2007/06/19 21:09
저것이 다 역사죠.
Commented by 단미 at 2007/06/19 21:44
그렇기도 하겠군요..
Commented by goose at 2007/06/19 22:12
아름답고 소중한 흔적들이네요. 좋은 글귀와 사진들 감사합니다. 여기 오면 마음이 풍요로워져서 갑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7/06/20 04:44
키키 님 / 제가 하는 한 분은 영국에서 16세기 필사본을 만지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의사의 말이 그 바이러스는 현대 의학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는 군요. 아마 16세기에 존재했던 것이 책 속에 남아 있다가 감염된게 아닌가 싶다는데 다행이 큰 탈 없이 지나갔다고 합니다. 무슨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더군요. ... 기사화 된 걸 이야기 하시니 오히려 제가 부끄럽네요.

kristine 님 /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혹시 중세사 책?

guss 님 / 동감입니다. 거창한 것만이 역사는 아니지요.

단미 님 / 언제나 적당한 게 제일 좋은것 같습니다. ^^

goose 님 /감사합니다. 남겨 주신 말씀 덕분에 제 마음도 풍요로워집니다.
Commented by kristine at 2007/06/20 15:52
키키... 네에 중세사책... 합스부르크 왕가, 신성로마제국이요..
Commented by Clio at 2007/06/25 13:04
kristine 님 / 그러리라 짐작했지요. ^^
Commented by Clio at 2007/06/26 06:31
비공개 ㅅㅈㅇ 님 /지난 주에 이메일을 보냈었는데 오늘 보니 돌아와 있군요. 혹시 다른 주소가 있으시면 제게 이메일 한 번 보내주시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다시 이메일을 보내겠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