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오의 선택(3)-옛 신문의 향기

예전에 도서관에 가면 신문실이 따로 있었습니다. 매일 발행되는 신문들을 철해두거나 그 날 발행된 신문들을 양면이 유리로된 전시용 액자 속에 넣어서 여러 사람들이 같이 서서 읽을 수 있도록 한 곳도 있었지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머리식히러 (주로)일 층에 있던 신문실에 와서 신문을 읽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실 신문 읽는 것도 일반 상식 시험을 준비하는 한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시는 분들이 많으니 도서관에서 신문실을 따로 마련하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이용해서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이 신문도 발행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종이 신문에서 나는 잉크 냄새로 하루를 시작하십니다. 종이에 인쇄된 것만이 기사답다고 여기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그런데 하루만 지나먼 구문이 되어버리는 이 종이 신문들을 보면서 예전 인터넷이 없던 시절 종이로만 발행되던 신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 싶은 웹싸이트가 바로 이 오래된 신문과 관계된 곳입니다.

미국 의회도서관 웹싸이트는 방대합니다. 그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도 물론 방대하지만 웹을 통해 이들이 제공하고 있는 정보는 정말 엄청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것이 그 중 한 가지인  Chronicling America: Historic American Newspapers 라는 웹싸이트입니다. 이 싸이트는 미국 의회 도서관과 미국 인문학 진흥 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의 후원 아래 국가 디지털 신문 프로그램(National Digital Newspaper Program)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싸이트입니다.

베타판으로 공개된 이 웹싸이트에서는 1690년 부터 현재까지 미국에서 발행된 모든 신문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고 1900년에서 1910년사이에 발행된 주요 신문들의 원문을 인터넷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사 제목 뿐만이 아니라 기사 내용까지도 원문 검색이 가능하니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New York Times 에서 제공하는 오래된 신문의 원문 검색 서비스가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것은 유료 서비스이고  의회 도서관에서 공개한 이것은 무료입니다.

남의 나라 신문 이야기를 뭐 그리 거창하게 하느냐 하실지 모르겠습니만 미국 의회 도서관의 신문 검색 싸이트를 제가 소개하는 이유는 그 속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발행된 신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면 1909년부터 1913년까지 하와이에서 발행되었던 "신한국보"도 있고 그보다 먼저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었던 "대동공보"에 관한 정보도 있습니다. 그리고  1900년대 최초의 10년간 신문들에서 Korea 혹은 Corea 를 검색해보면 수 많은 기사가 검색이 됩니다.

그 속에는 1908년 3월 샌프란시코에서 Durham W. Stevens를 저격한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의 이야기가 있고 죽은 스티븐스의 장례식 기사와 그에 관한 특집 기사가 있습니다. 또 장인환 의사가 말한 스티븐스를 저격한 이유도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10월에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한국은 아시아의 작은 이름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신문에 보도되는 한국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읽기에 그리 기분 좋은 것들이 아닙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 하는 논설을 보면 화가 치밀기도 하고 최근의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처럼 묘사된 우리 독립 투사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아픈 역사를 알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기사를 읽으면서 행간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미국 신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듣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국 신문에 비친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 당시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치 어떠했는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다른 나라에는 어떻게 비춰졌으며  또 그 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우리 모습은 어떠한지,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이런 자료가 없을까요? 먼저 조선일보에서 유료로 1920년 이후 기사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도서관 등을 통해 검색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언론재단에서는 90년대 이전 신문들의 원문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신문 내용은 검색할 수 없지만 날짜별로 찾아가며 신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찾아 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등 고신문도 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늘 그렇지만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셔야만 보실 수 있습니다. 불여우로는 안되는 군요.>
과거의 화려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상들의 유구한 전통에 대해 자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그것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역사를 왜곡하려는 주위 나라의 위협에 대응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올바른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우리 주위의 작은 역사 하나하나에도 신경쓰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사는 언제나 교과서 속의 공염불로 남고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남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신문은 우리가 살아온 일상을 그대로 담고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물론 신문을 발행하는 사람에 따라 신문의 내용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신문을 읽고 그것으로 과거를 판단할 때는 항상 주의 깊게 보아야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문이 가진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문이라는 존재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전해 주는 거의 유일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나서서 정보 기술에 투자하고 인문학 진흥을 위해 투자하고 기초 학문 육성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투자의 일부를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곧 사라져버릴  최근의  우리 기록들을 보존하는데 쓸 수는 없을지요. 그리고 그것을 보존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을까요.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by Clio | 2007/06/20 07:06 | 인터넷 이야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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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ristine at 2007/06/20 22:25
때때로 제 조국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20세기 초반에는 아주 작고, 어떤 의미에서는 볼품도 없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그래도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전쟁에서 그렇게 일어섰던 것 자체는 적어도 참 크게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요. 물론 과정상에 독재나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요...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 멀리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Commented by 풋내기 at 2007/06/21 12:21
지금도 신문의 편향된 논조가 문제가 되는데 과거에 이 작은나라를 보는 시각은 얼마나 더 그랬을까요. 신문 기사를 곱씹어서 판단하는 통찰력이 필요할 것같아요.
Commented by 단미 at 2007/06/24 23:15
가끔 도서관에서 오래된 신문을 보면 참 신기 하더라구요..우리는 위에서 아래서 너무 치어서 만신창이가 되었어요..
Commented at 2007/06/2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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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lio at 2007/06/25 13:01
kristine 님 / 20세기 초반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정말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라는 면에서 본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요. 과연 앞으로 100년이 지난 후에도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 우리가 하기에 달려있겠요.

풋내기 님 / 20세기 초반 미국의 신문에서 나타나는 한국은 지금 한국의 신문에서 언급되는 아프리카의 새로 생긴 작은 나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재 신문 기사에 나온 기사를 우리가 다 믿을 수 없듯이 과거의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이지요. 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신문 기사는 마치 손잡이 없는 면도칼 같습니다. 자칫 잘못 다루면 사용하는 사람도 다칩니다.

단미 님 / 앞으로는 나아지겠지요?
Commented at 2008/01/0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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