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간지럽던 날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귀가 간지럽다고 하지요. 아침 내내 귀가 간지러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니 더 간지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에 제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도서관에서 저의 고용 계약 연장과 관련된 직원 희의가 있었습니다.

학교마다 절차가 다르니 일률적으로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대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를 고용할 때 2년 내지 3년을 단위로 고용합니다. 그리고  고용 기간이 끝나기 최소한 6개월 전에는 계속해서 고용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서 당사자에게 통보를 해 줍니다. 만일 고용 계약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남은 기간 동안 다른 직장을 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고용 연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마 미국 내의 다른 직장에서도 저희 도서관과 같은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는데요. 사서들의 고용 연장과 승진은  전체 사서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즉, 저만 참석하지 않는 전체 직원 회의에서 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지요. 저 역시 다른 사서들의 고용 연장 및 승진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가할 의무가 있고 그 회의에서 발언할 자격이 있습니다. 보통 이러한 회의가 있기 몇 주전에 회의의 주인공이 될 사서의 직속 상사는  그 사서와 관련된 자료를 전체 직원들에게 돌립니다. 그 사람이 고용될 때 부여받은 업무에 대한 설명(Job Description) 과  그 사람이 직접 작성한 Curriculum Vitae(이력서 보다는 훨씬 더 자세하게 그 동안 해온 일들에 대해 조목조목  적습니다.) 를 전체 사서들에게 돌리면 사서들은 그것을 읽고 회의에 참석하지요.

회의에서는 먼저 직속 상사가 그 사람의 업무 능력과 태도에 대해 발표를 하고 참석자들이 그 동안 그 사람과 같이 일하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 그리고 느낀 것을 발표합니다. 그저 단지 느낌이나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근거를 제시한 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사람과 같이 이런 이런 일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일을 하더라. 그래서 그것을 보니 이 사람이 어떻더라. " 하는 식으로 발표를 합니다. 당연히 그러한 발표 내용은 모두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이 그 사람을 계속 고용할 것인지를 투표로 결정하고 회의 내용과 투표 결과를 관장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절차가 진행됩니다. 그러면 관장이 회의 결과를 참조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고 (대부분의 경우 회의 결과를 따릅니다.)  마지막으로 대학 본부에서 승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 같이 일을 하는 동료를 평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이러한 회의에서 나오는 의견들을 보면 '아니 저런 것까지 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 언급을 합니다. 때로는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하고 참석자끼리 격론을 벌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용 연장이 거절되는 경우도 나옵니다. 사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보니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고  그것이 최종 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 이 회의에서 논의되는 당사자는 귀만 간지럽겠습니까? 조마조마 하지요. 제가 일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고 동료들과의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니 걱정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저희 학교에서는 승진과 계약 연장을 위해서 크게 세 가지 면에서 심사를 합니다. 얼마나 업무를 잘 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 첫 번째이구요. 두 번째는 연구 활동입니다. 대학교 도서관이다 보니 사서들 역시 논문이나 책을 발표해야 하고 계약 연장 및 승진을 위해서는 그러한 연구 활동이 반드시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도서관과 학교 내에 조직된 각종 위원회와 전국적인 학회 등에서 활동하는 상황을 봅니다. 예를 들어 도서관 내의 인사 위원회에서 활동했다거나  전체 학교 교직원회에서 직함을 맡아 일하는 것, 그리고 미국도서관협회 산하의 각종 소위원회에 참여하여 총무나 간사, 혹은 이사나 회장 등 직함을 맡아 그 위원회의 운영에 참여하는 것등이 이 심사 항목에 포함됩니다.

이 세 가지가 고르게 갖추어져야 승진이나 계약 연장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모여 최초 고용일로부터 6년 후에 는 종신 임기(Tenure)심사를 받게 됩니다.  지난 6,7년간 해 온 활동상을 모두 꼼꼼하게 검토하여  그 사람의 능력이 인정되면 종신임기가 주어지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종신임기입니다.  60세나 65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은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을 때 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오정이나 오륙도니 하는 것에 비한다면 엄청난  일이지요. 실제 70이 넘어서까지 일하는 사서들도 있습니다.  물론 아직 제가 그것까지 생각할 때는 아니지만 주위에서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조언해 주기도 합니다.

어쨌든 오늘 아침에 있었던 회의는 한 시간 정도 만에 끝이 났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큰 문제 없이 통과한 것 같습니다. 2-3일 있으면 공식적인 회의록을 저에게도 한 부 보내주겠지요. 그것을 보면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싸움날 일이겠지요. ^^
by Clio | 2007/06/28 15:29 | 도서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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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aJune at 2007/06/28 16:58
아이고 조마조마한 통과의례군요. 하지만 그게 맞다는 생각은 드네요. @ㅅ@;
Commented by runaway at 2007/06/28 17:06
좋은 결과가 있을 거란 느낌이 오네요. ^^
Commented by 사은 at 2007/06/28 17:32
정말 세세하고 단계적이군요. 도서관인데? 하고 생각하기도 쉽지만, 사서들 한 명 한 명에도 정확하게 판단하고 고용하려 노력한다니 멋진 것 같습니다. 부디 좋은좋은좋은 결과 있으시길.
근데 회의록 읽으시는 것, 흥미로우시겠어요. ^.^
Commented by 아우라ny at 2007/06/28 21:06
사서를 교수와 같이 대접해 주는 거지요?^^
'당연히' 좋은 결과 있으시길 빌어요..
Commented by 단미 at 2007/06/28 23:45
아 대단하군요..대인관계도 좋아야 겠구요.. 그것 참 중요한 거라 생각 됩니다. 예의와 배려 같은것에 신경 써야죠..우리도 본받을 제도 인 것 같습니다.. 물론 편협한 사람의 평가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예요..우리는 그렇잖아요..공무원 철밥통,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연구 안해도 적당히 눈치만 잘 보면 오래갑니다..또 불평스런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잘 통과 되었다니 다행 이예요..물론 안되실 일이 없겠지만 말이예요..
Commented by 가하 at 2007/06/28 23:59
제가 덧글을 남기긴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전에부터 포스팅 잘 보고 있었어요. 이런 경우에 어떻게 말하는게 좋은건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결과 있길 바래요.^^ 고용 연장도 그렇지만 공식적인 회의록을 보는것도 꽤나 긴장된 일일 것 같아요.
Commented by Clio at 2007/06/29 04:56
LaJune 님 / 맞습니다. 설마 하면서도 조마조마하지요. 모든 통과 의례가 그렇지만 이 일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runaway 님 / 다행히 큰 문제없이 통과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 은 님 / 아마 대학 도서관이라는 점 때문에 더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회의록을 보고 있었는데 대충 누가 한 말인지 알 수 있더군요. 동료와 둘이서만 수행한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저를 칭찬하면 당연히 누가 한 말인지 알죠. 그나저나 그 친구도 7월 달에 심사가 있는데 이 번에는 제가 가서 몇 마디 해야겠습니다.^^

아우라ny 님/ 저희 학교에서는 사서와 교수가 같은 급의 교직원으로 대우를 받습니다. 그만큼 요구 사항도 많지요. 하지만 이번 심사는 '당연히'^^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단 미 님 / 감사합니다. 원칙적으로는 그 사람의 능력을 보는 것이지만 그 능력이 주위의 동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도 살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인관계도 중요합니다. 도서관이라는 직장의 분위기 자체가 경쟁적이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서로 도와주려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상의하며 일을 해나가지요. 물론 그래도 언제나 분위기 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심심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그러려니 합니다. 한 1-2년 두고 보고 있다가 이번 같은 심사에서 쓱 잘라버리면 되니까요. ^^

가하 님 / 감사합니다. 다행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장일치로 저의 고용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회의록을 읽어보니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저를 관찰한 이야기도 있구요. 또 이용자 중의 몇 사람과 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는 말도 하더군요. 다행히 칭찬하는 말이었기에 망정이지 혹시라도 아니었으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이다보니 모질게 하고 남의 미움을 사서 좋을 일은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언제 다시 볼거냐 싶어 막 대했다가 나중에 알고 보면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과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고 뜨끔할 때가 있지요. 저는 가능하면 모든 사람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합니다. 그게 이번에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Commented by TITANESS at 2007/06/30 09:19
잘 되셨다니 다행이에요~ ^^
Commented by MIMI at 2007/07/02 05:55
그러니, 사서를 최초 고용할때는 시간이 더 걸리는 건지도 모르겠네요.ㅠㅠ
이거, 일하게 된다고 해도 바짝 긴장해서 열심히 해야겠네요.
무사히 통과하신거 축하드려요.^^
Commented by Clio at 2007/07/02 10:15
TITANESS 님 / 감사합니다. 이제 다음 심사까지 한 동안은 잊어버렸습니다.^^

MIMI 님 / 그럴런지도 모르지요. 일을 시작하시게 되면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성실한 것으로 치면 한국사람 따라 올만한 나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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