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트랜스포머스(2)
*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로마 신화에서 꽃과 봄의 여신으로 알려진 플로라(Flora)를 그린 위의 그림은 그 이전에 그린 '봄'과도 비슷한 방식으로 꽃만으로 이루어진 한 여인의 초상화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을 비교해 보시면 원숙한 노화가의 작품을 쉽게 구분해 내실 수 있습니다. 얼굴의 옆 면만을 보여주는 '봄' 과 달리 45도 각도에서 얼굴의 전면과 옆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꽃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귀밑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과 얼굴의 입체감이 기가 막히게 잘 드러납니다. 분홍 색 뺨과 장미및 입술, 그리고 검은 눈동자와 눈썹이 표현된 것을 보시면 아마 감탄하실 겁니다.
플로라와 함께 남은 이 시기의 또 하나 걸작은 베르툼누스(Vertumnus)라는 작품입니다. 로마 신화에서 계절을 관장하고 식물을 자라게 만드는 신인 베르툼누스를 그린 아래의 그림에서 아르침볼도는 황제 루돌프 2세를 베르툼누스에 비유합니다.
사계절을 상징하는 꽃과 채소와 열매 등 이전 그림에서 사용되었던 모든 재료들을 모아서 그린 이 초상화에서 느껴지는 첫번째 느낌은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가슴 부분에 떡하니 자리잡은 호박 때문인지 아니면 큼직한 서양배로 그려진 코와 두 개의 탐스러운 복숭아가 자리잡고 있는 뺨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당하고 위엄이 있는 초상화라는 느낌이 듭니다. 결국 사계결을 관장하는베르툼누스처럼 루돌프 2세 역시 전유럽에 힘을 떨치고 있는 강력한 황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겠지요. 그런 의미 때문인지 황제는 이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비록 그런 의미가 속에 있지만 여전히 아르침볼도의 기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는 사실적인 묘사 수법은 여전히 이 그림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바탕 위에서 이처럼 당당한 분위기의 초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역시 아르침볼도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 위의 그림은 '법률가(Jurist, Lawyer)' 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실제 왕실에서 일하던 법률가의 모습을 토대로 그린 것인데 털이 벗겨진 닭으로 얼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을 길게 늘인 닭의 눈이 교묘하게 법률가의 눈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의 실제 모델이었던 법룔가는 매독으로 얼굴이 많이 상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르침볼도가 이 그림을 그렸을때 사람들은 누구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그림의 주인공을 알아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그가 살아있을 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작품들을 재발견한 이들이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이었습니다. 16세기 아르침볼도의 그림 속에서 20세기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왜 한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을까요?
* 아르침볼도의 재능과 위트는 여러 작품에서 보이는데요. '요리사'라는 위의 그림을 보시면 오른 쪽 그림은 쟁반위에 담긴 고기 요리 그림이지만 그 그림을 거꾸로 돌려놓고 보면 요리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래에 소개해 드리는 '정원사'라는 그림 역시 같은 방식으로 그려져서 보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줍니다.

아르침볼도가 살았던 시기는 르네상스의 천재들이 남긴 흔적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또한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운동의 영향으로 전 유럽이 큰 몸살을 앓고 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이전 르네상스시기에 이루어진 예술의 발전과 대가들이 도달한 경지는 후대의 예술가들로서는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활동해야 할 화가들은 그 거인들의 그림자가 큰 부담이었겠지요. 자신들의 그림을 찾는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이전 시기 거인들을 뛰어넘고자 했던 당시의 화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이탈리아어로는 Maniera)을 찾고 그것에 극단적으로 몰입함으로써 고전을 부활시킨 르네상스 시기의 거인들을 넘어선 자신들의 모습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20세기의 미술사가들을 '매너리즘'이라도 부르지요.
종종 매너리즘을 일종의 퇴보로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기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거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화가들의 인간적인 고뇌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한 과도한 몰입은 종종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좋은 예술 작품이 가지는 인생과 자연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통찰 대신에 화려한 기교만을 과도하게 자랑하는 작품들이 나타나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아르침볼도의 경우가 그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그의 그림이 가지는 의미가 재해석되고 있습니다만 16세기의 관객들은 그의 특이한 그림을 하나의 재미거리 혹은 신기한 구경거리로만 보지 않았을까요? 그랬기 때문에 화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재빨리 잊어버리게 된 것이구요.
* 1578년에 그려진 아담과 이브라는 그림입니다. 성서상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를 상징하여 그림 속 인물의 얼굴은 어린이들(자손)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브의 귀고리를 잡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16세기의 상상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현대적입니다. 20세기 화가 중에 멕시코 출신의 옥타비오 오캄포(Octavio Ocampo)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이와 유사한 그림이 보입니다.

아르침볼도가 말년에 남긴 작품의 주제인 계절의 신 베르툼누스는
로마 신화에 따르면 '변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시인 오비드가 남긴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서도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의 사랑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에서도 베르툼누스는 포모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변신'하지요. 제가 트랜스포머스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서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떠올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동차가 변해 로보트가 되는 모습을 보며 베르툼누스의 초상화를 이루고 있는 과일과 채소들이 하나씩 모여 베르툼누스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죠? ^^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니 좋아해야 할 아르침볼도의 '사서(Librarian)'라는 작품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이 그림은 위의'법률가'와 마찬가지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인데요. 힙스부르그 왕가의 도서관에서 문서 관리와 역사를 서술하는 임무를 맡았던 볼프강 라지우스를 모델로 한 그림이라고 하는군요. 책과 문서를 관리하는 사람이 역사를 담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실제 중세와 근대 유럽의 많은 역사학자들은 사서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입니다.
  • Craig, Diana, and Bridgeman Art Library. The Life and Works of Arcimboldo. New York: Smithmark, 1996.
  • Hulten, Pontus. The Arcimboldo Effect: Transformations of the Face fromthe 16th to the 20th Century. New York: Abbeville Press, 1987.
  • Kaufmann, Thomas DaCosta. “Arcimboldo's Imperial Allegories.” Zeitschrift fur Kunstgeschichte. 39.4 (1976): 275-296.
  • Kaufmann, Thomas DaCosta. “Arcimboldo and Propertius. A ClassicalSource for Rudolf II as Vertumnus.” Zeitschrift fur Kunstgeschichte.48.1 (1985): 117-123.
  • Kriegeskorte, and Werner. Giuseppe Arcimboldo. Taschen, 2000.
  • Macmillan Publishers, Grove's Dictionaries, Inc, and Bridgeman ArtLibrary. Grove Dictionary of Art Online. Basingstoke, U.K.: MacmillanPublishers Ltd, 1999.
  • Maiorino, Giancarlo. The Portrait of Eccentricity: Arcimboldo and theMannerist Grotesque. University Park: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Press, 1991.
  • Pieyre de Mandiargues, Andr�. Arcimboldo the Marvelous. New York: Abrams, 1978.
  • Strand, Claudia. Hello, Fruit Face!: The Paintings of Giuseppe Arcimboldo. Prestel Publishing, 1999. -- 아이들과 같이 보시면 참 재미있을 겁니다.
by Clio | 2007/07/09 11:24 | 그림이야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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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ynic at 2007/07/09 15:41
아 '요리사'가 이 작가의 작품이었군요! 굉장히 유명한 그림인데... 그나저나 16세기 사람이면서도 이 정도의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는게 신기합니다.
Commented by yu_k at 2007/07/09 16:07
그냥 매너리즘 시기의 화가 중 하나라고만 대충 배워서,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들을 많이 남겼을 줄은 미처 몰랐네요. 초현실주의 화가들에 의해 재발견 되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요 - 정말, 그러고보니 딱 그런 느낌이네요!
트랜스포머랑 연결시킨 Clio님의 재치도 대단합니다. 재밌게 잘 읽고 가요^^
Commented by JRider at 2007/07/09 16:22
모 잡지 표지에 나오는걸 보고 누가 그린걸까 했는데 아예 이런식으로 작품활동했던 사람이 있는거군요.
Commented by 사은 at 2007/07/09 16:41
이런 트랜스포머는 얀 스방크마이어의 단편 'Dimensions of Dialogue'에도 나온답니다. ^^
http://en.wikipedia.org/wiki/Image:Dimensionsofadialogue.jpg
이 작품에서는 제가 해석하기로는 농경사회, 공업사회, 지적사회, 이렇게 세 가지의 엮이고 섥힌 면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트랜스포머'들을 사용한 것 같지만요.

정말 대단한 상상력, 재치입니다. '사서'등은 처음 보는데, 저도 사서가 가장 마음에 드는걸요? ^^
Commented by kristine at 2007/07/09 16:56
이 무서워요...
Commented by 보리 at 2007/07/09 23:56
정말 멋지네요. 저도 '사서'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나 수염으로 표현된 먼지털이와 손가락인 간지는 정말... =)
Commented by Clio at 2007/07/10 08:21
Cynic 님 / 16세기의 상상력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물질문명의 세례를 덜 받은 그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이 우리 보다 더 뛰어났는지도 모르겠군요.

yu_k 님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즐겁습니다. "원조 트랜스포머스"라는 제목보다는 "원조 초현실주의자" 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지요? ^^

JRider 님 / 호오..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표지로 사용한 잡지가 있었군요. 어떤 잡지였는지 궁금해 집니다.

사은 님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찾아 보니 얀 스방크마이어가 프라하에서 태어났더군요. 그리고 합스부르그 왕가의 궁정 화가로서 아르침볼도가 주로 활동한 곳이 비엔나와 프라하였는데 프라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렇게 두 사람이 또 연결되나 봅니다.

kristine 님 /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한 작품, '물'이라는 작품은 보고 있자면 좀 찝찝합니다.

보리 님 / 대단한 재치이지요. 아울러 열린 책으로 표현된 사서의 머리도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Commented by 츠첸 at 2007/07/10 23:38
참 재밌는 그림이네요. 미술의 이해라는 교양시간에 잠깐 봤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우리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그 상상력에 감탄하는 것처럼 트랜스포머라는 영화를 보며 깜짝 놀랄지도. 창의력이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감각인 것 같아요.^^ 마지막 그림 저도 굉장히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7/07/11 03:57
츠첸 님 / 창의력에 대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발전시키고 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있는 그림도 좋아해 주시고 그 사람들이 일하는 곳도 사랑해 주십시오.^^
Commented by 명랑이 at 2007/07/17 18:58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데비 존스"의 표현도 여기서 착안한 것 같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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