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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부는 1953년부터 1999년까지 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USIA)라는 기관을 운영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미국 공보처라고나 할까요. 이 기관의 설립 목적은 미국의 모습을 제대로 전세계에 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기관에서는 전세계의 큰 도시에 도서관을 만들어 미국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한국에는 흔히 미국 문화원으로 알려진 기관이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곳이죠. 많을 때는 전세계 200여곳에 이러한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했다고 합니다.
USIA가 한창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이곳에서는 세계 각국에 흩어진 도서관과 문화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매 달 내부 소식지를 통해 전세계의 직원들에게 알렸는데 제가 지난 번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복사해온 자료 중에는 50년대에 만들어진 이런 소식지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지들을 읽다가 한국와 관련하여 아주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기에 소개해 봅니다. ![]() 1950년대 말 한국의 한 도시에서 운영중이던 미국문화원 부설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도서관 관련자가 보고하기를 자기들의 시설에서는 더 이상 이용자들이 가방을 들고 도서관에 입장할 수 없도록 방침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책 분실과 관련된 내용인가 싶었는데 그 아래를 읽어보고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도서관 관리자의 보고에 따르면 도서관은 매우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고 언제나 이용자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대부분이 학생들인데 이들은 도서관에 와서 도서관의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책을 들고 와서 자기 공부만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미국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서관으로서는 자신들이 준비한 책과 자료는 이용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인 공부만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못 마땅했겠지요. 그래서 결국 도서관에 들어올 때에는 사전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고 들어올 수 없도록 도서관 운영 방침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운영 방침이 제대로 실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내용을 읽으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50년대 말과 지금의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지만 도서관을 이용하는 우리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이 여전히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기에 바빠던 당시의 한국 상황에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공부할 곳을 찾아 도서관에 오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접어든 아직까지도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을 공부방으로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직도 학생들이 공부할 곳을 찾아 헤매야 할 만큼 우리의 상황이 어려운가요? 물론 여전히 공부할 곳을 찾아 다녀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국가 전체를 두고 볼 때 적어도 1950년대 말과 같은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도서관을 공부방으로 이용하는데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마이 뉴스의 문동섭 기자께서는 과거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습관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셨습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더하여 저는 우리의 유별난 단체 의식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남들이 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니 나 역시 그곳에 가야만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뒤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도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남들과 같이 공부하는 도서관이라는 환경 속에서 적당한 경쟁의식이 생기고 그래서 공부가 더 잘 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무조건 새벽밥 먹고 도서관에 와서 일단 열람석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도 있지요. 심지어 나는 도서관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내 가방이 혹은 내 책이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더군요. 도서관이건 어디서건 공부를 하는 것은좋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시간과 노력을 갖추어 준비한 각 종 책과 자료들은 전혀 이용되지 않고 도서관이 공부방으로만 이용되는 것은 분명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만일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유지된다면 굳이 도서관을 건설하여 책을 구입하고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들을 준비해 줄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그저 책상과 의자만 비치해 두면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다행스럽게도 많은 분들이 공부방으로 변한 도서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도서관을 공부방으로 간주하는 우리 잘못된 생각에 대해 걱정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더많은 이들이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론이나 교육계 인사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심지어 한국 대학 도서관의 장서 부족을 지적한 기사에서도 도서관 좌석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함께 한탄하고 있고 학교 자랑을 하시는 한 대학 총장님과의 인터뷰에서도 도서관에 좌석수가 많다는 것이 자랑거리이지 책이 많다는 자랑은 없습니다. 물론 대학 도서관에 대한 평가를 할 때에도 여전히 도서관 좌석수가 중요한 평가 지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부에서 정한 대학 설립 요건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문제는 공부방으로 변한 도서관에서 이러한 공부방 관리 때문에 사용되는 인력과 시간입니다. 왜 도서관의 고유한 업무 영역도 아닌 부분에 도서관의 자원을 낭비하여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그곳에 투자되는 만큼 다른 곳에 투자한다면 훨씬 도서관다운 도서관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차제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 시설이 필요하다면 공부방을 건설하되 도서관이 아니라 독립된 기관을 만들어 이에 대한 운영 전반을 맡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기존 대학에 존재하는 수업과나 학생과 아니면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 이 공부방 시설을 관리하는 것이지요. 실제 많은 대학에서 고시 준비생들을 위한 고시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그 고시원들 중에는 도서관과 관련이 없는 운영되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그런 식으로 학교 본부에서 전체 학생들의 공부방을 운영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그래서 도서관은 좀더 도서관의 고유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어떨까요? (그렇다고 가뜩이나 부족한 도서관 예산은 깍지마시구요.) 그리고 공공도서관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방 자치 단체에서 (필요하다면)공부방 시설을 만들어 관리하고 도서관은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어떨까요? 많은 대학생들이 4년간 대학을 다니면서 도서관을 열심히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종 뉴스에서는 방학 중에도 향학열에 불타는 대학교 도서관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도서관을 도서관으로 이용하는지 아니면 공부방으로 이용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나라의 도서관 시설이 비슷한 규모의 경제력을 가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너무 적다는 기사들도 심심찮게 지면을 장식합니다. 그런데도 도서관 열람실은 이용자들로 넘쳐 납니다. 그리고 일부 지방 자치단체에서는 주민들의 요구 때문에 도서관에 책이 아니라 열람실만을 늘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도서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좀 바뀌어야 하지않을까요? 저는 이런 날이 오기를 꿈꾸어 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젊은 부부가 편한 복장으로 유모차를 끌고 집 근처의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도서관 강당에서 저녁에 있을 연주회를 보기 위해서이지요. 식구처럼 가까운 친절한 사서의 얼굴이 보이고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도 보이고 DVD 코너에서 무엇을 빌려갈 것인지 열심히 토론 중인 가족의 모습도 보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코너에서는 이리저리 편하게 도서관 바닥에 앉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는 모습도 보이는군요. 연주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부부는 최근에 출간된 몇 권의 책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자기 전에 읽어 줄 동화책도 같이 빌려오지요. 내일은 도서관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독서 토론회 사람들과 만날거라고 아내가 남편에게 이야기 합니다. ![]() 영화 속에서나 보일 것 같은 참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도서관의 모습이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작은 동네 공공 도서관에서는 매일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대학 도서관에서 일을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퇴근 길에 공공도서관에 들립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구입하지 않는 일반 서적들을 빌리기도 하고 또 DVD 와 CD도 빌립니다. 한 달에 두 세번 열리는 도서관 헌 책 시장에도 가구요. 이러한 도서관을 가지는 것이 결코 큰 돈이 드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도서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고 또 제대로 된 문화 시설을 국민에게 제공해 주려는 정부의 의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생활 속의 도서관, 도서관답게 이용되는 도서관의 모습을 곧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과연 도서관이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보는 관점에 따라 많은 대답이 있을 수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부만을 위한 공부방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 * 이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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