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와 데미스 루소스 그리고 바람
* 이웃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고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늘 제 곁에 두고 읽던 책 중의 하나가 떠올라 몇 자 적어봅니다.

미국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고 또 전공 공부 때문에 늘 영어로 된 책을 보지만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싶을 때는여전히 우리 말로 된 책을 읽습니다. 한국을 떠나며 가져온 몇 안되는 한국 책 중에서 지금도 제 사무실 책상에 놓여 있는 것은 노자의 도덕경입니다. 그런데 도덕경과 함께 한국에서 꼭 가져오고 싶었지만 바빠서 잊어버린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이 바로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조르바" 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읽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네. 뭐. 이런 책이있어." 하며 던져두었다가 나중에 20대 중반에 다시 읽는 순간 빠져버린 책입니다. 어쩌면 이미 고등학교 시절에 그 책 속에있는 말들이 제 머리 속에 들어와있다가 20대 후반에 다시 떠오르면서 더 큰 감동을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도 하는데요. 이 책에는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조르바와 그렇게 되어 보려고 노력하는 그의 보스가 나옵니다. 어린 시절 정말 모범생으로 살아온 저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에 비교하자면 보스에 가까운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조르바처럼 되려고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역시 '출신 성분'(?)의 벽을 뛰어 넘지는 못 했었지요. 그래서 늘 그 책 속에 나오는 조르바의 말과 행동들을 읽으며 대리 만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 책 속에서 표현되는 조르바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안소니 퀸이 조르바의 역을 맡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 유명한 '조르바의 춤' 장면을 보고 특히 그 음악에 매료되었었지요. 느리게 시작해서 점점 빨라는 부주키 음악에 온 몸을 맡기고 리듬을 타는 그 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다리가 들썩들썩 거렸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춤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이 음악은 그리스의 순수한 전통 음악이 아니라 그리스의 국민 음악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영화를 위해 작곡한 음악이라고 하더군요. (아래에 그 유명한 장면을 옮겨봅니다.)

그런데 시르타키(Syrtaki) 라는 이 춤 곡은 그리스가 낳은 또 다른 세계적인 음악가의 노래 속에서 쓰이면서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합니다. 80년대에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었던 그리스 출신의 가수 데미스 루소스의 노래 My Friend Wind 에서 시르타키가 간주곡으로 쓰입니다. 노래 가사와는 그렇게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음악을 들으며 바람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그리고 영화를 보며 생각했던 거칠것 없는 조르바의 삶이 묘하게 연결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냥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음악보다는 라이브 공연에서 이 간주곡의 진가는 발휘되지요.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청중들을 휘어잡는 이 음악을 들으며 저는 우리의 농악 장단이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발견한 실황 공연 속에서 보이는 나이 든 데미스 루소스의 모습에는 젊은 시절 보이지 않던 여유와 현명함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20 여년 전 큰 덩치에 수염을 기르고 다듬지 않은 머리에 망토를 두르고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서 있던 젊은 데미스 루소스의 모습, 그 모습에서 내뿜는 포스는 무시무시했었답니다. 어쨌든 시르타키의 리듬에 온 몸을 맡기고 한 번 즐겨보시지요.

살다보면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주위의 이목 때문에 혹은 사회 속에서 튀지 않고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되는 일들이 있지요. 그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정말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한 가지 목소리를 내고 똑같이 행동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을까요?

남들이 모두 한 쪽으로 가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반대편으로 갈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세상 떠나는 날 후회하지 않겠지요. 어쩌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약간의 광기일지도 모르겠군요. 조르바의 입을 통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A person needs a little madness, or else they never dare cut the rope and be free."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크레타 역사 박물관 웹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 박물관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관련된 전시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The Nikos Kazantzakis Rooms at the Historical Museum of 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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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o | 2007/08/15 07:33 | 음악 이야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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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envy 하다님의 이글루 at 2008/07/27 18:15

제목 : 그리스인 조르바와 데미스 루소스 그리고 바람
그리스인 조르바와 데미스 루소스 그리고 바람teach me the dance, will you? / dance? did you say dance? come on boy, together! 따란~ 따란~따라라란~ 따란~따란~따라라란~let's go! 디오니소스의 후예들...more

Linked at 잡기장 : 희랍인 조르바 at 2008/03/21 09:07

... r.com/gemkky/100033936887 중간에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사라져 버렸다. 서버에서 지운 모양이다. 내가 그것 다운받아 뒀던가. http://cliomedia.egloos.com/1407752 이건 얼음집의 Clio 님 포스트. 동영상이 있다. ... more

Commented by 아우라ny at 2007/08/15 10:41
조르바를 읽을 때 마다 매번 새로운 멋진 장면을 발견하곤 하지요..
그리고 안소니퀸 나오는 동영상 잘봤습니다. 아버님 생전에 좋아하시던 배우라서 감회가 더 깊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7/08/16 00:14
아우라ny 님 / 그러셨군요. 저도 안소니퀸을 좋아하는데.. 조르바 역을 그 사람 이상 더 잘 연기할 사람이 과연 있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빛의제일 at 2007/08/16 01:06
조르바 소설을 읽으면서 안소니퀸 말고 다른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데미스 루소스 공연은 조금 무섭습니다. ^^ 춤 안추면 가수한테 한 대 맞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몰래 몰래 봤는데, 더불어 링크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7/08/16 05:55
빛의제일 님 / 흰머리와 흰 수염 때문에 인자해 보이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의 포스는 사라지지 않았죠. 춤 안추다가는 정말 큰일 날것 같지요?^^ 링크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7/08/19 16: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7/08/19 17:28
비공개 ㄱ 님 / 이거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정했구요. 혹시 다른 실수가 발견되면 또 알려주실거죠? ^^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ignifie at 2008/05/11 13:47
이 글을 읽고 전에 읽었던 'Zorba the Greek'를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읽으면서 밑줄을 많이 그어놓은 걸 보니 저 스스로 공감가는 바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Zorba의 여성관이 너무 banal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있습니다만. (최근 '열린책들'이라는 출판사에서 Kazantzakis의 전집을 완간했더군요.) 멋진 가수, 멋진 음악, 잘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5/12 10:10
signifie 님 / banal 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요즘의 기준에서 볼 때 그 부분에 문제가 있을 여지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카잔차키스의 세계관이고 또 뜨거운 그리이스의 태양이 만들어 낸 것 일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복잡한 세상사를 가볍게 뚫어버리는 그의 단순함과 자유 이런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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