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대시인이며 문장가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서사시 '신곡(La Divina Commedia)'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뭅니다. 혹시 지금은 기억 못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학창 시절 세계사나 서양사를 배우면서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단테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단테의 신곡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그것을 다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고 하는군요. 아마 수업이나 시험 준비를 하며 신곡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읽기도 전에 다 읽은 것처럼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단테의 신곡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신곡의 내용이나 단테의 일생에 대해서는 이미 백과 사전이나 인터넷 여러 곳에서 잘 정리되어 있으니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구요. 이 신곡이 역사 속에서 미친 영향에 대해 잠깐 살펴 보려합니다. 13세기 후반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있는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는 중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글 중에는 라틴어로 씌여진 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신곡은 라틴어가 아니라 당시 피렌체의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세속어로 씌여졌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세속어로도 철학과 사상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단테의 이러한 작업을 르네상스의 시초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은 단테가 죽은 이 후에도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혀졌는데 그것 때문에 신곡은 19세기에 와서 현대 이탈리아의 탄생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이탈리아라는 나라와 로마 제국을 연관시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로마 제국은 로마라는 도시 국가가 성장을해서 전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지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그 일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탈리아라는 나라는1860년대 이 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이탈리아는 하나의 지리적인 표현(Geographical Expression)"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5세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치한 단일 정치 세력은 없었습니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중, 북부는 작은 도시들이 저마다 힘을 겨루었고 중부에는 교황령이,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번갈아 가며 통치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있던 이탈리아 반도에서 나폴레옹 이 후 19세기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에 고취된 엘리트들이 북부의 사르데니아 왕국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것이 1860년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리발디, 마찌니, 카부르 이런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시기이지요.
그런데 이 무렵 민족주의에 고취된 이들은 정치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문인들도 있었고 예술가들도 있었지요. 그 중 한 사람인 알레싼드로 만조니(Alessandro Manzoni)는 문학가로서 이탈리아 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천 년 이상을 정치적인 구심점 없이 존재한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많은 방언이 존재했습니다. 실제 지금도 사르데냐나 시칠리아, 혹은 나폴리의 방언은 표준 이탈리아어와 많이 다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탄생한 그 시기에는 북부의 사람과 남부의 사람이 서로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통역이 필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국가를 통합시킬 수 있는 요소로서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한 만조니는 자신의 대표작인 소설 '약혼자들(I PromessiSposi)'을 자신의 고향인 밀라노 지방의 언어로 발표하고 난 후 이 작품을 전 이탈리아 반도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언어로 고쳐서 다시 발표합니다. 이 때 만조니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읽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언어가 바로 피렌체 지방의 방언이었습니다. 그러한 판단의 근원에는 바로 14세기에 씌여진 단테의 신곡이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만조니는 몇 년에 걸쳐 피렌체 지방의 이탈리아어를 다시 공부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결과 만조니의 소설 '약혼자들'은 전 이탈리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탈리아 학교에서 신곡 다음으로 중요하게 가르치는 작품이 이 '약혼자들' 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도 소설의 구조는 이 '약혼자들'에서 빌려왔다고 저자 자신이 밝히고 있지요. 어쨌든 14세기 이래 전 이탈리아반도에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은 '신곡'에서 사용된 언어가 오늘날 현대 이탈리아어의 근본이 된 것입니다.
장황하게 이런 역사 이야기를 늘어 놓는 이유는 우연한 기회에 구 동독에서 온 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공산 정권 시절에도 독일의 문호,괴테나 쉴러의 작품들은 동,서독이 공히 학교에서 교육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이 통일되고 난 이후에도 언어적인 차이나 문화적인 차이를 덜 느꼈고 쉽게 통합될 수 있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만큼 언어가 한 국가를 통합하는데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지요.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요? 원치않은 분단 이 후 5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서울의 '표준말'과 평양의 '문화어'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직까지는 서로 의사 소통이 되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도 많이 있더군요. 언어라는 것이 결코 입에서 나오는 말과 글자 그리고 문법만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때 남,북한의 사이에는 단순한 언어 차이 그 이상의 차이가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읽고 교육하는 문학 작품은 없을까요? 실은 오늘의단 테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남한과 북한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읽고 생각하는 문학 작품이 있다면 통일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생각하고 있을 때 블로그 이웃 한 분이 단테의 신곡에 대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질문에 답하며 '신곡'의 원문을 볼 수 있는 싸이트를 몇 곳 소개합니다.
- La Divina Commedia by MediaSoft: 이탈리아어 신곡을 매우 자세한 각주와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아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 장(Canto) 마다 관련 이미지도 실려있습니다.
- Digital Dante: 콜럼비아 대학에서 운영하는 Digital Dante 웹싸이트에서는 이탈리아어와 영어 번역을 동시에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번역에 포함되었던 각 주들을 같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 Google Book Search: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신곡'의 저작권은 소멸되었습니다. 그래서 Google Book Search를 검색해 보시면 20세기 초반에 출판되었던 '신곡'의 원문을 PDF 로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책 만을 검색하여 그 결과 페이지를 링크해봅니다.
- La Divina Commedia Parlata: 신곡은 운율을 갖춘 서사시입니다. 그래서 원어로 직접 들어보시면 비록 이해는 할 수 없더라도 시의 느낌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인 RAI 에서는 이탈리아의 명배우 빗또리오 가스만(Vittorio Gassman) 이 낭독하는신곡 중 지옥 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좀 경망스럼게 들릴 수도 있는 이탈리아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듣기 좋은 언어인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Realaudio 필요)
**이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들은 Wikipedia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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