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은 칠십부터-모세 할머니의 이야기(1)
1860년 뉴욕 주의 북부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안나 마리아 로버트슨(Anna Maria Robertson) 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태어났습니다. 예전에 한 번 소개한 적인 있는 '초원의 집'의 저자 로라 잉걸스 와일더가 태어난 것이 1867년이니 안나 마리아 역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셈이지요.  안나 마리아는 넉넉하지 못한 농가에서 장녀로 태어났고 그녀의 부모는 안나 이 외에도 열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비록 여자였지만 안나 마리아는 남동생들과 어울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노는 것을 더 좋아했고 무엇을 하던 남자아이들에 지지않고 잘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그녀 스스로도 말하기를 그 때는 선머슴애(Tomboy)처럼 천방지축 뛰어 놀았다고 합니다.

안나 마리아의 어머니는  잠시도 쉬지 않고 뭔가 일을 만들어 하는 매우 부지런한, 전형적인 농촌의 아낙네였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안나 마리아는 늘 걱정스런 딸이었지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안나 마리아를 앉혀 놓고 여자 아이들이 해야할 일들을 가르치곤 했지만 안나 마리아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 비해 안나 마리아의 아버지는 비록 농부였지만 늘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발명가였고 아름다움과 세련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이자 선생님이었고 아내에게는 성실한 남편이었습니다. 안나 마리아는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딸이었는데 안나 마리아의 아버지는 당시 시골의 아버지로는 드물게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집의 벽에 벽화를 그리기도 했던 아버지였기에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서부터 그림을 그려보고 또 아름다운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길러주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나 마리아의 아버지는 어느 날 종이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보게 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오면 그림 한 장에 1 페니씩을 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그런 피를 이어 받아서인지 안나 마리아 역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물감이 귀했기 때문에 포도 쥬스나 버찌 등 무엇이든지 이쁜 색깔이 나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지요. 아버지도 안나 마리아의 그림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나 마리아의 어머니는 그림 그리는 일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장차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야 할 안나 마리아에게는  여성으로  익혀야 할 요리나 바느질과 같은 기술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힘든 농촌 생활이었고 또 여성의 교육에 대해 그리 관심을 두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나 마리아는 그리 오랫동안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12살이 되던 해에 안나 마리아는 인근의 농가에 하녀(Hired Girl)로 고용되어 남의 집살이를 시작합니다.  비록 안나 마리아의 아버지는 딸이 더 많은 교육을 받기를 바랬지만 현실적이던 어머니는 하녀 생활을 통해 장차 농부의 아내로 살아갈 기술을 배우고 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돈을 벌 수도 있다고 믿었던 것같습니다.

그리하여 12살 이후 15년 동안 안나 마리아는 집에서 가까운 인근의 한 농가에서 하녀로 생활을 합니다. 본인 스스로 힘든 시절(Hard Years)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 기간 종안 안나 마리아는 그녀의 어머니가 바라던 농부의 아내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지식을 익히게 됩니다.  27살이 되던 해에 안나는 인근의 다른 농가에서 비슷한 처지로 생활을 하고 있던  토마스 살몬 모제스(Thomas Salmon Moses)라는 총각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신혼 여행으로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를 여행하고 돌아오던 이 부부는 버지니아 주의 쉐난도 계곡을 지나다가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고는 자신들이 그 동안 모아 두었던 돈으로 농지를 사고 그곳에 정착을 합니다. 존 덴버의 노래에도 나오는 블루릿지 마운틴이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하는군요.

그곳에서 20년을 살면서 안나 마리아는 10명의 아이를 낳고 그 중 5명이 죽는 슬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농부의 아내로서 남편과 함께 농장일을 하면서 소를 키워 우유를 짜고 그것으로 버터를 만들어 팔거나 감자칩을 만들어 인근의 상점에 팔기도 하는 등 친정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한 농부의 아내로 살아갑니다. 그녀가 그렇게 부지런하게 살아온 이유 중에는 그녀의 독립 정신도 한 몫을 합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토마스가 가져다 주는 돈을 기다리는 그런 생활은 상상도하기 싫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렇게 버지니아의 시골에서 생활하던 안나 마리아와 토마스는 1905년에 다시 자신들의 고향인 뉴욕 주 북부의 농촌으로 돌아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고 하는데 이들 가족은 뉴욕 주와 버몬트주의 경계에 있는 이글 브릿지(Eagle Bridge) 란 곳에 정착을 합니다. 이곳은 안나 마리아의 남편 토마스가 태어난 곳에 가까웠고 구약 성서에 나오는 모세(Moses)가 죽은 네보(Nebo)산의 이름을 딴 네보 산이 근처에 있는 전형적인 뉴잉글랜드의 농촌 지역이었습니다.

1927년 남편 토마스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이 농장 일을 맡게 되자 이제 예순 일곱이 된 안나 마리아는 마침내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여유를 얻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나 마리아는 그동안 농부의 아내로서 힘들게 살아오면서도 틈틈히 이쁜 장식물들을 만들어 집안을 장식하거나 남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었지요. 가끔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남편 토마스는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쨌던 이제 장성한 자식들에게 농장을 맡기고 은퇴한 농부의 아내로서 안나 마리아는 남는 시간에 자신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합니다. 그 중 한 가지, 그녀가 집중했던 것이 자수였습니다.

평생을 부지런하게 살아왔던 그녀였기에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 멍하게 보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그림들을 모델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수를 놓아 집을 장식하기도 하고 주위에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며 70대에 접어들자 평생 고생스럽게 일을 하며 살아온 결과인지는 몰라도 관절염이 찾아 옵니다. 그래서 더이상 바늘을 들고 수를 놓는 일이 힘들어 졌지요. 그 때 주위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에 힘이 많이 드는 자수 대신에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합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도 그림을 그리기도 했기에 어렵지 않게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수로 이쁜 풍경을 묘사하던 것을 이제는 그림을 통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니 그녀에게 자수나 그림이 그리 다른 매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그리는 그림 역시 처음에는 잡지나 신문에 실린 그림들을 본떠서 그리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거의 추억과 인근의 풍경을 화폭에 올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기에 안나 마리아의 그림은 기본적인 원근이나 그림 속의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전문 화가들에 비해 서툴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 속에서 나타나는 밝고 아름다운 색깔들과 그림에서 전해지는 따스하고 정감있는 이미지는  주위 사람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안나 마리아에게는 주위의 평가 따위는 의미없는 것이었지요.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이 지역의 각 군에서는 박람회(Fair)를 엽니다.마을에서 한 해 동안 재배한 농산물의 품평회를 겸해서 각 종 축제가 벌어지지요. 이 때가 되면 농촌의 아낙네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음식이나 수공예품을 자랑합니다. 안나 마리아가 살았던 지역에서도 매 년 그런 행사가 열렸었고 그 때마다 안나 마리아도 자신이 만든 과일 잼과 함께 자신이 그린 그림도 박람회장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만든 잼은 품평회 장에서 상을 받고 사람들에게 팔려 나갔지만 아무도 그녀의 그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안나 마리아에게 신경이 쓰이는 일은 아니었지요. 남들이 알아주던 말던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938년 안나 마리아가 78세가 되던 해에 놀라운일이 벌어집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이미지들의 출처입니다.
  • Galerie St. Etienne
  • Humez, Jean McMahon. “The Life and Art of Anna Mary Robertson Moses.” Woman's Art Journal. 1.2 (1980): 7-12. .
  • Johnson, Mark M. “GRANDMA MOSES: Grandmother to the Nation.” Arts & Activities. 140.5 (2007): 20-22.
  • Kallir, Jane. Grandma Moses: 25 Masterworks. New York: Abrams, 1997.
  • Kallir, Jane, and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U.S.). Grandma Moses in the 21st Century. Alexandria, VA: Art Services International, 2001.
  • Kallir, Otto. Grandma Moses. New York: Abrams, 1973.
  • May, Stephen. “Grandma Moses Country.” Smithsonian. 32.1 (2001): 68.
  • Moses. Grandma Moses, American Primitive; 40 Paintings with Comments by Grandma Moses, Together with Her Life's History. Garden City, N.Y: Doubleday,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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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o | 2007/09/22 03:20 | 그림이야기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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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1938년 무렵 안나 마리아는 자신이 만든 과일 잼과 함께 자신이 그린 그림을 인근의 후식 폴즈(Hoosic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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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과 2편에서 이어집니다. 모세 할머니의 그림과 같은 형식의그림을 Folk Paint(art)혹은 Naive paint(Art), 혹은 Primitive Art 등으로 부 ... more

Commented by KBins at 2008/09/10 06:12
그랜드마 모제스에 대한 이야기 참 잘 읽었습니다. 그분에 대한 사례를 찾고 있었거든요^^
미처 다 읽지는 못했지만 다른 글들도 참 좋아보여 북마크에 추가하고 갑니다. 메일도 신청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9/10 12:47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자료가 필요하시면 알려주십시오. 이 글을 준비하며 찾았던 자료들이 아직 어디엔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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