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사-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1)-시작하며 역사이야기

앞의 글에서 사라져가는 보통 사람들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러한 사라져가는 20세기의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할 방법과 수단이 있다고도 말씀드렸지요. 문서로 남아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기억들을 보존하는 방법 중의 한 가지는 흔히 '구술사(Oral History)'라고 하는 역사 연구법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과거의 사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역사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책들은 과거로부터 전해 지는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씌여집니다. 그러한 자료들 중에는 행정 문서도 있고 개인의 일기나 편지 그리고 비석의 비문 등도 있습니다. 아울러 역사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허락하는 한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모든 것들이 역사 연구를 위한 자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술 작품도 보기에 따라서는 그 속에서 과거의 모습을 찾아내는 중요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눈에 보이는 기록 자료와 함께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와 유럽의 역사가들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자료는 바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이 경우 역사 연구의 대상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가 되겠지만 과거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 역시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언을 이용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을 흔히 '구술사(OralHistory)' 연구법이라고 하는데 사료로서의 가치에 대해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필수적인 연구법이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요코의 기억'이라는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람들의 기억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합니다. 실제 한 사건을 목격하는 당시에 가졌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건에 대한 배경 상황을 알게 되고 또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서서히 한 개인의 머리 속에서 변해가지요.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경우 자신이 최초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억을 머리 속에 심어 줍니다. 물론 서서히 이루어진 이런 기억의 변형을 본인은 인지하기는 힘듭니다. 이것 때문에 문서 자료를 강조하는 역사가들은 개인의 구술 증언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을 토대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너무 많은 오류를 생산해 낼 위험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구술사는 바로 역사 서술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들이 역사의 아버지라 말하는 헤로도투스는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역사(Historia)' 를 저술 했습니다. 그리고 문자가 등장하기 전에는 물론이고 문자가 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글을 읽지 못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던 역사는 바로 마을의 노인들이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였습니다. 마을의 젊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동네의 전설과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구수하게 전해주던 노인들은 바로 마을의 역사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다시 대를 이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마을의 역사가 되었던 것이지요.

일부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개인의 증언이라는 것이 너무 주관적이고 전체 사건 중 한 개인이 경험한 작은 일부분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역사 서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서 자료가 증언보다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일입니다. 개인의 일기나 편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공식 문서의 기록조차도 한 사건에 대해 일어난 모든 일들을 전해 주지는 않고 있으며 기록을 남긴 사람의 생각과 상황에 따라 왜곡된 기록이 나올 수도 있으므로 이것들 역시 매우 조심해서 읽고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100% 그 내용을 그대로 믿기에는 문서 자료 역시 많은 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개인이 말로 하는 증언이나 문서나 결국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기는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구술사 연구 방법을 이용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한 개인을 인터뷰할 때 매우 오랫 동안 준비합니다. 인터뷰 대상과 그 사람이 경험한 사건들 그리고 인터뷰 중에 할 질문들에 대해 미리 많은 준비를 하고 인터뷰 대상을 만납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한 후 최종적으로 그것을 연구 논문이나 책에 실을 때에는 증언 내용을 문서 자료나 또 다른 증언 자료에 비추어 다시 몇 번이나 검증합니다. 개인의 증언이 가진 주관성을 배제하고 그 증언 속의 사실들을 전체적인 맥락 안에 삽입하기 위한 노력들이지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구술사가 상당히 엄격하고 어려운 것처럼 생각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구술사 인터뷰'라고 하면 뭔가 거창할 것 같기도 하지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사람들이 제대로 하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고 있는 기억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가족 내에서라도 이런 식으로 옛어른들의 기억을 정리하고 보관해 놓다보면 그것들이 모여서 나중에는 중요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몇 편에 걸쳐서 역사를 가족 내에서 할 수 있는 구술사 인터뷰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 볼까 합니다. 인터뷰와 관련된기술적인 사항, 인터뷰의 과정, 인터뷰에서 할 수 있는 질문의 예,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녹음된 인터뷰 자료의 보존과 활용 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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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iomedia : 구술사-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2) 2007-10-09 05:57:53 #

    ... 이제 본격적인 구술사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전 포스팅을 읽으시고 혹시 "구술사는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들이 신중하게접근해야 하는 것" 이지 아무나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 more

덧글

  • 빛의제일 2007/10/06 13:58 # 답글

    오래 전에 '뿌리 깊은 나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민중자서전이 생각나는 포스트입니다.
    글자 그대로 민중이라는 말에 딱 맞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구술하고 편집자 또는 기자가 글로 쓴 책입니다.
    검색해 보니 90, 91년에 나온 책입니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하면서 구독자선물로 받았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 때 모두 사둘 것 그랬습니다.
    앞으로 관련 포스팅 기대됩니다.
  • Clio 2007/10/07 15:03 # 답글

    빛의제일 님 / 제가 기억하는 것은 '뿌리 깊은 나무' 사에서 70년대 말에 출판한 "숨어사는 외톨박이" 라는 책입니다. 당시로는 사라져가는 직업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 사람들이 하는 말 그대로 옮긴 책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초등학생 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뿌리 깊은 나무'라는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계셨고 역시 그 출판사에서 펴내는 책들도 집에 있었지요. 기억나는 이야기들은 당시까지 생존하고 계셨던 '내시' 할아버지와 뱀 잡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던 '땅꾼'의 이야기 입니다. 말씀해 주신 '민중자서전'도 한국에 있을 때 읽어 본 것 같습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이 시리즈 포스팅의 말미에 그런 책들과 기타 자료들을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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