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자 BBC 기사에 따르면 바티칸 아카이브에서는 14세기에 이단으로 몰려 해산되었던 신전기사단(혹은 성당기사단, Knights Templar)의 재판 관련 기록들을 모아 그 복사본을 책으로 출판했다고 합니다.(국내 기사 참조)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2세기에 창설된 이 신전기사단과 관련된 이야기는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나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등 여러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막강한 재력과 교황청의 후원으로 마치 국가 내의 국가처럼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이 기사단은 14세기 초반에 이단으로 몰려 그 지도부가 화형당하고 남은 구성원들은 뿔뿔히 흩어지면서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몰락을 두고 무수한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이 카톨릭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혹은 "이들이 남긴 막대한 보물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면 "이들이 성배를 비밀리에 수호하는 사람들이었다" 등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지요. 심지어 신전기사단들이 콜럼버스 이전에 이미 신대륙을 발견했고 자신들의 막대한 재산을 캐나다의 노바 스코시아 지방에 있는 오크 섬의 비밀 장소에 묻어두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번에 바티칸 비밀 아카이브에서 공개한 이 문서들은 바로 신전기사단들이 이단으로 몰려서 재판을 받던 그 시기의 기록들이라고 하는데요. 그 중에는 14세기 이래 몇 백년 동안 바티칸의 비밀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었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못 하여 미처 발견되지 않았던 이른바 '쉬농 문서(Parchment of Chinon)' 가 포함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전기사단의 재판이 있었던 14세기 초반 카톨릭 교회는 세속 권력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던 시기이지요. 교황청이 프랑스와 로마 두 곳에 존재하던 아비뇽 유수가 바로 이 시기에 있었던 일인데 이 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문서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잘 못 분류된 문서들은 몇 백년을 계속 그 상태로 내려왔고 그러다보니 20세기 초반에 몇 몇 연구자들이 바티칸 비밀 아카이브에서 이 재판 관련 기록들을 조사할 때에도 이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4세기에 만들어진 다른 문서들에서 최근 발견된 '쉬농 문서'가 존재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세기 초반 몇 몇 역사학자들의 연구에서는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쉬농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문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는데 바로 그 문서가 지난 2001년, 바티칸 고문서학교를 졸업한 바바라 프라레(Barbara Frale)라는 연구자에 의해서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2004년 Journal of Medieval History 에 발표된 프라레 박사의 논문 'The Chinon chart -Papal absolution to the last Templar, Master Jacques de Molay' 에 따르면 일반 연구자들과 달리 고문서 학교의 구성원들은 바티칸 비밀 아카이브의 원본 사료들을 다룰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가 있었고 그과정에서 프라레 박사는 14, 5세기 프랑스에서 생산된 문서들을 나열하고 그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한 문서 대장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것들을 훑어가던 중 1308년 6월에 교황 클레멘스 5세가 가장 신임하는 추기경 세 사람이 프랑스의 시골로 파견된 기록을 봅니다. 특히 그들 중 한 사람은 당시 교회법의 최고 권위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한 프라레 박사는 그토록 영향력 있는 추기경들이 동시에 파견되었을 때는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문서 대장에 기록된 문서의 원본을 찾아 보았는데 마침내 이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쉬농의 문서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 쉬농에 억류되었던 자크 드 몰레이를 비롯한 신전기사단원들을 심문한 교황청의 특사는 이들 성당 기사단원들이 비록 몇 가지 작은 고발 사항에 대해서는 교회법을 어긴 죄가 인정되지만 근본적으로 이단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클레멘스 5세는 이들을 단순한 '배교자'정도로 규정하고 이들의 죄를 사면하려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의 생각과는 달리 종국에는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화형에 처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학자들은 이러한 최종 판결이 프랑스 왕 필립 4세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필립 4세는 연이은 전쟁 수행으로 인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신전기사단으로부터도 많은 돈을 빌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오히려 채권자를 이단으로 몰고 그 재산을 몰수하는 방식으로 빚을 처리하려 했다는 것이지요.
이 문서에 따르면 이들 성당 기사단원들은 입회식에서 십자가에 침을 뱉고 선임자의 엉덩이에 키스를 하는 매우 '불경'스러운 의식을 행했다고 고발되었는데 이러한 고발에 대해 신전기사단원들은 십자가에 침을 뱉는 것은 혹시라도 이슬람 교도들에게 포로가 되었을 때 받을 수 있는 각 종의 모욕과 학대를 대비하는 의미가 있고 선임자의 엉덩이에 키스를 하는 것은 기사단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상징하는 의식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의식은 기사단의 창설과 함께 벌써 오래전 부터 행해져왔던것이라고도 했지요. 아마 교황청에서는 이 말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단은 아니라고 판단을 했겠지요.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신전 기사단에 대한 많은 의문들이 풀리겠지만 그만큼 더 많은 질문들이 또 생길겁니다. 몇 백년 전의 사건에 대해 지난 몇 백년간 수 백명의 역사가들이 연구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고 또 의문이 풀리는 만큼 또다른 의문이 생기는 것 , 그것이 바로 역사 연구의재미이지요.^^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 Frances D'Emilio, Vatican Publishes Knights Templar Papers,Associated Press, 10/12/2007
- David Willey, Vatican archive yields Templar secrets, BBC NEWS, 10/05/2007
- Frale, Barbara (2004). "The Chinonchart - Papal absolution to the last Templar, Master Jacques de Molay".'Journal of Medieval History' 30 (2): 109–134.
- Jacques de Molay, & Knights Templar from Wikipedia - Image source




덧글
아우라ny 2007/10/18 09:48 # 답글
^^..안그래도 글의 제목을 보고 에코나 댄브라운의 소설들을 생각했는데...그나저나 책값이 엄청나군요...
marlowe 2007/10/18 13:57 # 답글
결국 돈은 함부로 빌려주는 게 아니군요.
CosmosRain 2007/10/18 17:44 # 답글
요즘 댄브라운 소설을 읽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는글 잘봤습니다~^-^
츠첸 2007/10/18 22:42 # 답글
와- 바티칸 비밀 아카이브라니 두근두근 합니다. 소설같은 이야기에요. 신전 기사단같은 베일에 쌓인 이야기 굉장히 좋아하는데 더 많은 멋진 책들을 볼 수 있겠네요!^^
Clio 2007/10/19 06:37 # 답글
아우라ny 님 / 예 엄청나지요. 아마 나중에 다른 경로로 소개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일단은 연구자들을 위한 원사료로서 사용되는 책이다 보니 비싼가 봅니다. 아마 개인보다는 도서관에서 구입을 하겠지요.marlowe 님 / 흥미로운 해석이십니다.^^ 돈 빌려줄때도 조심해야 될 것 같지요.
CosmosRain 님 / 그러시군요. 댄 브라운 외에도 최근에 레이몬드 커리의 소설이 '최후의 템플 기사단'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더군요.
츠첸 님 / 위에서 말씀드린 댄브라운이나 레이몬드 커리의 책외에도 스페인 작가 훌리아 나바로의 "성수의 결사단' 이라는 책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hkmade 2007/10/19 11:08 # 답글
아아. 지식의 향연에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그와 더불에 차곡차곡쌓이는 온라인서점의 카트.. (벌써부터 결제의 압박이..T.T)
케야르캐쳐 2007/10/19 11:55 # 답글
푸코의 추 가 이런 내용이었군요.. !장미의 이름을 빌려두긴 했는데 시험기간이라 쉬이 못 읽고 있습니다.
빨리 읽고 푸코의 추도 봐야겠습니다.
clio님의 블로그를 올 때마다 봐야할 책이 늘어나기만 하니. 허허 ^^
Clio 2007/10/20 04:24 # 답글
hkmade 님 / '결제의 압박'은 늘 고민이지요. 도서관도 이용하시구요... 한 가지 좋은 점은 그렇게 해서 머리 속에 쌓아 놓은 것은 아무도 훔쳐가지 못 한다는 장점이 있지요.케야르캐쳐 님 /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직업 의식이 저도 모르게 나타나는 군요. '책 권하는 블로그'라고 이름을 바꾸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2007/10/22 12:0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Clio 2007/10/23 12:56 # 답글
비공개 ㅈ 님 / 반갑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계시는군요. 가끔 Berkshire County 쪽으로도 다니는데 참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ㅈ님이 계시는 곳에도 지금 단풍이 한창이겠습니다. ... 자주 놀러오십시오.^^
jjsmom 2008/09/04 02:51 # 삭제 답글
어제 읽은 책에 이 성전 기사단의 이야기가 나와 보고 갑니다.꼼꼼하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해놓으셔서 보기도 좋았구요.
"고맙습니다."
Clio 2008/09/05 05:10 #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변찮은 글을 좋게 보아주시니 ... 부끄럽습니다.^^
jjsmom 2008/10/09 12:39 # 삭제 답글
얼마 전에 제 블로그에 올린 책에 이 기사단의 이야기가 나와 클리오 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물론 블로그 주소도 적어 놓았구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럼 건강하시구요, 다음에 또 뵐게요~~
Clio 2008/10/10 11:25 #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십시오. 저도 놀러가겠습니다.^^
malta 2009/03/01 10:43 # 삭제 답글
이 사람들이 유럽 금융 시스템의 창시자라고 들었습니다. 이제라도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어서 다행이군요. 유익한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Clio 2009/03/03 11:58 #
천만에요.^^ 이 글에서 언급한 바바라 프라레 박사의 책이 지난 해 말에 출판되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교수가 서문을 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