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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당시까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동쪽 변방이던 르뵈프(Lvov, 발음에 대해 지적해 주신 deutsch님께 감사드립니다.)에서 유복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비록 1차 세계대전 동안 아버지를 여의고 그 후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양부 밑에서 자랐지만 남부러울것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상급학교 진학에 지장을 받기도 했지만 1930년대 말에는 성공한 건축가로서 부유한 유태인들의 저택을 설계하며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비젠탈의 행복한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이 맺어지면서부터입니다. 그 조약에 따라 비젠탈이 살던 지역은 소련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부르주아지로 취급된 비젠탈은 건축가로서의 직업을 잃고 인근의 스프링 공장에서 강제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양아버지와 이복 형제들이 소련군에 의해 체포되고 또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그에게 닥칠 다른 비극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역의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던 비젠탈은 여러 차례 기적적으로 죽음을 피합니다. 비젠탈의 회고록에는 자신을 도와주었던 독일군들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살아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련군들이 그 지역으로 진격해오자 수용소에 있던 유태인들을 빨리 처형하고 후퇴하려던 독일군들의 손에서도 살아남아 오스트리아로 이동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젠탈이 수용되어 있던 수용소에 근무하던 독일군들은 수용소에 있는 유태인들을 모두 다 처형할 경우 더 이상 감시해야 할 사람이 없어지고 그러면 자신들은 소련과 대치하고 있는 동부 최일선에 배치될 것이라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유태인들을 살려두고 그들을내륙으로 이동시킨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은 동부 전선으로 전출되지 않도록 머리를 썼다는군요. 그 결과 오스트리아 쪽으로 이동하면서 줄어든 유태인 숫자를 채우기 위해 폴란드의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끌어내어 유태인과 같이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몇 개의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비젠탈이 최후로 도착한 곳이 오스트리아 북부의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군들을 맞이 한 것이지요. ![]() 미군들에 의해서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겨우 몸을 추스린 비젠탈은 미군들과 함께 나찌 전범들을 체포하는 일에 나섭니다. 그렇다고 분노에 찬 총구를 독일군들에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그리고 매우 체계적으로 이 작업을 해나갑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풀려난 다른 유태인 생존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수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독일군들의 잔혹 행위와 그에 가담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증인들은 서로 연결하는 교차 색인 카드를만들기도 했습니다. 비젠탈이 만든 이 색인 카드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매우 유용하게 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원 봉사자들의 힘만으로 그 일을 꾸려나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말이 되면서 비젠탈의 자료 센터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비젠탈은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을 모두 이스라엘 정부에 넘긴 후 센터의 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넘기지 않고 자신이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던 문서도 있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유태인 말살 계획의 입안자이기도 했던 아돌프 아이히만과 관련된 자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자료들로 인해 비젠탈의 이름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2차 대전 후 아르헨티나로 피신해 있던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첩보 기관에 의해서 체포되고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은 후 1961년에 사형을 당합니다. 이 체포 과정에서 비젠탈이 수집한 정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이 사건과 함께 비젠탈의 이름도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비젠탈이 처음 자료 센터를 열었던 오스트리아의 린쯔(Linz) 라는 도시는 바로 아이히만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비극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난 고향 역시 이곳이었지요. 비젠탈이 살던 집 근처에 히틀러 부모의 무덤이 있었고 또 매일 출근 길에 아이히만이 살았던 집을 지나쳤다고 하는데 그 집을 볼 때마다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이히만의 체포와 함께 세계적으로유태인들에게 저질렀던 독일의 만행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비젠탈은 자료 센터를 다시 엽니다. 이번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사무실을 열고 훨씬 더 정열적으로 나찌들의 전쟁 범죄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들의 행방을 찾는데 힘을 쏟습니다. ![]() 이러한 비젠탈의 활동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은 것은 안네의 일기로 잘 알려진 안네 프랑크의 가족들을 연행한 독일 게쉬타포 장교인 실버바부어를 추적하여 체포하게 한 일이었습니다. 안네의 일기가 전세계에 알려지자 여전히 남아 있던 나찌 추종자들은 그 일기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들은 비젠탈은 결국 안네 프랑크의 가족을 연행했던 실버바우어를 체포하도록 하여 그가 안네 프랑크 가족을 연행했음을 실토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찌 추종자들의 망언을 잠재웁니다. 이 외에도 그는 평생 동안 1000명 이상나찌 전범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범죄 행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여 법에 따라 이들이 심판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전쟁중에 수많은 어린이들과 여성을 학살한 후 종전과 함께 사라졌다가 미군과 결혼하여 뉴욕 시티에서 거주하고 있던 전직 수용소 여성간수도 있었습니다.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던 그녀에게는 충격이었겠지만 결국 그녀도 독일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미국에는 나찌들이 없다고 주장하던 미국 정부는 나찌들을 처벌하는 특별법까지 만들게 됩니다. 그렇다고 비젠탈이 경찰처럼 수사를 하고 현장에 나가서 나찌들을 직접 추적하는 일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하는 일은 나찌 전범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세심하게 수집하고 그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추리하여 지하에 숨어든 나찌들의 현재 위치를 사법당국에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젠탈이 단순한 '나찌 사냥꾼'만이 아니었다는 것은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이 유태인 피해자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있습니다. 그는 나찌 독일이 학살한 사람들 중에는 유태인 뿐만 아니라 집시와 장애인, 동성연애자들도 있었고 그 외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사람들과 러시아인들 가운데에서도 무수한 사람들이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활동은 나중에 유엔에서 반인류적인 전쟁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법정을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 동안 폴란드인 행세를 하며 살아남았던 아내와 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비젠탈은 전쟁 직후 서로가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90명에 가까운 주위의 친척들 모두가 수용소에서 죽은 가운데에도 이 두 사람은 기적처럼 살아 남았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다시 만나서 낳은 아이는 얼마나 소중한 아이였을까요? 그런데 비젠탈의 활동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이 아이를 두고 협박을 합니다. 그 때 비젠탈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그만 하면 되지 않았느냐" 며 설득하는 사람들고 많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딸이 위험한 상황에서 아버지로서 힘든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비젠탈을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해나갑니다. 비젠탈은 만일 이런 작업을 중단하면 사람들은 과거의 비극을 잊게 되고 또 다시 그런 일을 저지를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런 비극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유태인들만이 피해자가 되리라는 법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사람들 사이의 증오와 기술의 발달(특히 사람을 살상하는 기술)이 같이 만나면 정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우여 곡절을 겪으며 비젠탈은 '나찌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나찌 전범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이 전세계로부터 찾아왔습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국의 추리 소설 작가 프레데릭 포사이드가 전 나찌 장교를 모델로 한 작품을 준비하며 비젠탈을 찾아간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포사이드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나찌 장교로서 전쟁 후 지하에 숨어들어 제3국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한 가공의 인물을 설정하고 그와 관련된 자료가 있는지 비젠탈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비젠탈은 자신의 사무실에 가득 찬 서류 상자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뭐 새로운 인물을 창조할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그저 이 상자들 속에서 한 사람 고르세요."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오데사 파일'이라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그 소설은 1974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 속에는 실제 비젠탈이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에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1986년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에 당선된 발트하임은 당선과 함께 과거의 전력과 관련된 시비가 일어납니다. 발트하임은 2차 대전 중 독일군에 복무했는데, 복무 당시 발칸 반도에서 유태인 학살에 참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본인은 그 사실을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단체에서는 발트하임이 나찌 전범이기 때문에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급기에 미국 정부에서는 그를 '기피 인물'로 지정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비젠탈은 발트하임이 전범이라는 주장에 반대하고 나섭니다. 비젠탈이 보기에 발트하임은 최악으로 보아도 '기회주의자' 정도이지 전범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전범활동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계유태인총회(World JewishCongress)의 대표는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 나가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발트하임이 전범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워싱턴에 있는 문서 보관소를 찾아 보면 많이 있을 겁니다." 이에 대해 비젠탈은 강하게 반대합니다. 한 사람을 전범으로재판하는 것은 그렇게 먼저 고발하고 나서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증거를 철저하게 수집한 후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지요. 이일로 인해 많은 후원자들을 잃기도 했지만 철저한 증거와 증인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 비젠탈은 자신이 수용소에 있을 때 만났던 한 독일군 장교의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날 의무실에 불려간 비젠탈은 부상을 당해 죽어가는 독일군 장교를 만납니다. 죽음을 앞둔 이 독일군 장교는 비젠탈에게 자신이 저지른 유태인 학살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죄없는 유태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죄를 저질렀으니 죽기 전에 유태인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과연 이 상황에서 비젠탈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 독일군 장교를 용서해 주었을까요? 이 책에서 비젠탈은 독자들에게 만일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책의 2 부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한국어 판을 찾아 보니 홍세화씨를 비롯한 몇 몇 한국 인사들의 글도 실려있더군요. 여러 사람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독자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만드는 책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혹시 읽어 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 보십시오. 비젠탈의 일생을 보면서 저는 우리의 과거를 생각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우리에게도 비젠탈이 했던 것처럼 과거의 비극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그 비극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기회가 있지 않았던가요? 역사를 이야기하며 '만약 그랬덨더라면...'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후회가 생기는 일들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여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비젠탈이 생전에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또다른 비극들을 막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당장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저지른 나쁜 행동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하고 부끄러운 일일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이야기하고 또 기억하지 않으면 그러한 일은 언제라도 또 일어날 수 있고 그 때에는 가해자의 후손인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 내가 죽으면, 전쟁 중에 죽은 이들을 만나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비젠탈. 당신은 어떻게 살았소?' 하고 묻는다면 나는 '먼저 죽은 당신들을 절대 잊지 않고 살아왔다'고 얘기할 겁니다." 그런 비젠탈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비극들을 기억하고 그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최근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인간은 기억할 줄 아는 동물일 뿐만 아니라 그 기억을 잊어 버리기도 하는 동물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기억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현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젠탈이 말한 '기억'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제작된 비젠탈의 일생을 다룬 다큐먼타리 "I Have Never Forgotten You" 의 예고편을 소개해 봅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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