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말이 다가오면서 도서관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기말 리포트와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지요. 특히 학기가 끝나기 직전 2 주간은 도서관을 24시간 개방하다 보니 아침에 출근을 해도 도서관이 좀 어수선한 분위기 입니다. 밤을 새운 후 도서관 구석에 있는 긴 의자에서 곱게 주무시는 학생들도 있고 아침부터(어쩌면 어제 밤부터) 컴퓨터 모니터에 코를 박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 대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룹으로 모여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을 도서관에서 제공하고 있지만 그 수가 모자라다 보니 도서관 곳곳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이 보입니다. 수업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종종 공부와는 관계 없는 수다를 떠는 친구들도 보입니다. 오후 3시 부터 근무해야 하는 참고 봉사대에 가기 위해 사무실 문을 나서니 제 사무실 바로 앞에서 그냥 바닥에 퍼질러 앉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카페트가 깔려있으니 집 안이라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거의 엎드린 자세로 책을 보고 있더군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또 자유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남에게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참고 봉사대에도 난리가 났습니다. 다음 주에 제출해야 할 기말 리포트 때문에 학생들의 질문이 줄을 잇습니다. 보통 2 시간 참고 봉사대에 근무하는 동안 10분 이상 시간을 투자해서 상담해야 할 질문은 두 서너개 정도 입니다만 오늘은 그런 질문들만 들고 오더군요. 사서들을 괴롭히려고 작정한 교수님이 계시는지 몰라도 "아프리카의 국가 하나를 선택하여 그 나라의 각 급 학교 숫자를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덕에 며칠 전부터 약 100 명 이상의 학생들이 같은 질문을 들고 참고 봉사대를 찾았지요. 결국 아프리카 지역학을 담당하는 사서가 부랴부랴 나서서 숙제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참고 봉사대 근처의 테이블에 모아두었습니다. 학생들이 오면 바로 그 곳으로 안내하면 되지요. 그리고 그 책들이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 1804년에 있었던 알렉산더 해밀튼과 아론 버의 결투 사건에 대한 당시인들의 반응에 대해 리포트를 써야하는데 자료를 찾고 싶다." " 이차 대전 이후 생긴 중동의 분쟁에서 오일과 종교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자료가 없느냐?" "13,4 세기 몽고의 확장이 이슬람 철학과 종교에 미친 영향에 대해 리포트를 쓰는데 교수님의 원사료를 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도서관에 있느냐?" " 대학생들의 비만과 관련해서 쿠키와 아이스크림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관련된 논문 3편과 책 3권을 구한다." 등등 오늘 받은 질문들 중 기억나는 몇 가지입니다.
몇 몇 질문들은 제 전공 분야이기 때문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만 질문을 하는 사람의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제가 제시해 주는 자료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학생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 자료가 무엇에 필요하고 또 언제까지 필요한가, 다시 말하자면 리포트를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가도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이슬람 지역에 대한 몽고의 침략과 관련된 자료들 중에는 유럽에서 출판된 불어나 독어 자료들도 있는데 학생이 그것들을 읽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리고 알렉산더 해밀튼에 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이 학생이 제출해야 될 리포트가 언제 마감인지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학생의 상황에 맞는 자료를 안내해 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식의 질문을 받을 때 제가 애용하는 것 중의 한 가지가 각 종 백과 사전류입니다. 흔히 백과 사전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온갖 주제에 걸친 정보가 다 실려있는 수십 권의 전질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백과 사전 혹은 사전 중에는 한 분야에만 집중해서 그 분야에 관련된 정보만을 싣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International conflict : a chronological encyclopedia of conflicts and their management, 1945-1995 나 Encyclopedia of modern ethnic conflicts, 혹은 Encyclopedia of conflicts since World War II 같은 책들은 국제 분쟁에 관한 정보들만을 모아 놓은 백과 사전들입니다.
이러한 백과 사전의 저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전문적인 연구자들이기 때문에 그 속에 실린 정보 역시 신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만들어진 백과 사전이라면 한 가지 항목을 설명한 후에는 말미에 반드시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다른 책이나 논문의 목록을 싣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백과 사전은 어떤 연구를 시작할 때 시작점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요. 종종 학부 학생들의 경우 이러한 백과 사전에 실린 내용만으로도 충분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도 학생들에게 백과 사전 속의 정보를 소개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처음 저와 이야기 할 때에는 상당히 깊은 분야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 같아 전문적인 책을 소개해 주었지만 별로 얼굴이 밝아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백과 사전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필요한 항목을 찾아 주니 " 그래 이거였어. 내가 찾던게..." 그러더군요.
사실 참고 봉사를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과연 이용자가 찾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입니다. 종종 자신이 찾는 정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럴 경우 사서는 여러 차례 질문을 하여 진짜 그 사람이 찾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단지 말로 표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표정과 몸짓, 말투, 이용하는 단어의 수준 등등을 바탕으로 계속 질문하여 그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찾아 가는 과정은 참 재미있습니다.
학기 말이 되면 학생들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학생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사서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어수선한 도서관 분위기에 사서들 역시 뭔가에 쫒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도 다들 한 가지 희망으로 버텨나가고(?) 있지요. 이제 2 주 후면 방학이 찾아 오니까요.^^
* 이 글에 쓰인 사진들은 Flickr Creative Common 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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