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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는 처세술 강의처럼 보이는 이 책에서 저자는 책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와 문화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연 중에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마치 지적인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의무처럼 받아들이고 있는게 아닌지 저자는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았을 때 그리고 특히 남들이 그 책을 읽었고 그 책에 대해이야기 할 때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은 나는 일종의 '죄의식' 이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거지요. 과연 그렇게 수치와 죄의식을 느낄 만큼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심각한 죄악일까요? 그리고 과연 "책을 읽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 번 우리 일상에서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읽은 책 속에 있는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계십니까? 두꺼운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분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책에 실려 있던 세세한 하나 하나의 정보를 다 기억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머리 속에 남은 것은 책 속에 실린 이야기의 전체적인 줄거리나 저자가 주장하는 이론이나 학설의 요지입니까? 만일 제가 며칠에 걸려 한 권의 책을 읽고 머리 속에 남은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나 핵심 요지 밖에 없다면 단 10 분 동안 그 책의 서평이나 요약만 읽은 사람과 저, 과연 우리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만일 두 사람의 머리 속에 남은 것은 똑같다면 서평만 읽은 사람도 책을 읽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학위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논문 제출 자격 시험을 치릅니다. 학교와 학과마다 자격 시험의 방식은 다르지만 제가 다니고 있는 이 곳 대학의 사학과에서는 전공과 부전공을 합쳐 네 과목에 대한 시험을 치르는데요. 각 과목마다 한 사람의 시험관이 있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그 시험관이 지정하는 40-50권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 책들을 읽은 후 그 내용을 가지고 이틀 동안 필기 시험을 치고 난 다음 네 명의 시험관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구술 고사를 칩니다. 한 과목에 40-50권이니 네 과목을 합하면 160권에서 200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고 시험을 쳐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오픈 북 형식의 시험이 아니라 일반 시험처럼 읽은 내용을 기억해서 적어야 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엄청난 부담을 느낍니다. 말이 160권이지 최소한 200-300 페이지 짜리의 책 160권을 한 자리에 모아보면 참 많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로 하면 '압도'됩니다. 물론 그 책 들 중에는 이전에 읽은 책들도 끼어 있지만 제목만 들어본 책도 있고 전혀 처음 보는 책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시험을 준비하는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간을투자합니다. 그리고 이 책들을 다 구해 읽으려고 합니다만 어느 선에 가면 난관에 봉착합니다. 가볍게 흥미거리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책도아니고 신경써서 내용을 하나하나 이해해 가면서 읽어야 하는 연구서들을 몇 십권 읽다보면 처음 읽었던 책의 세부적인 내용이 잘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6 개월 혹은 1년의 기간 동안 그 정도 숫자의 책을 읽다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물론 그 중에 정말 내가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책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책은 내용이 헷갈립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시험을 쳐야 한다니... 엄청난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 160권을 전부 다시 읽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이럴 때 학생들이 이용하는 것이 책을 읽으며 만들었던 메모와 각 종의 서평 등입니다. 그것들을 통해 책의 내용을 다시 되살리고 요점을 정리해두지요. 그렇다면 결국 시험에 임하는 학생의 머리 속에 남은 것은 그 책의 요지 뿐입니다. 그것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시험을 치는 것이지요. 다행히 질문 역시 종합적인 내용을 묻기 때문에 요지들을 활용하고 그 책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책들의 내용을 인용하여 시험을 치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160권의 책을 읽은 나의 머리 속에 남은 것과 지난 몇 일간 그 책들의 요지만을 서평을 통해 암기한 학생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분명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시험에서는 요지만 읽은 학생도 어느 정도 답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요지만 읽고 위장을 한 경우 구술 고사에 가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다보면 드러납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구술고사를 치르는 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종종 시험에서 떨어지는 학생들도 생깁니다.
이 책의 저자인 피에르 바야르는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 책과 다른 책들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우리 문화의 "총체적인 도서관(Collective Library)"에서 그 책이 가지는 위치를 안다면 큰 무리 없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렇게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책 자체를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할 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정하섭과 소화가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어린 정하섭이 소화에게 처음 한 말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조정래와 태백산맥이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고 있고 그것이 또 조정래의 다른 작품들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알고 있다면 "태백산맥" 이라는 작품에 대해 남들과 무리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저자가 책을 읽을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총체적인 도서관(Collective Library)"에서 그 책이 차지하는 위치만 알고 제대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우리 머리 속에서 그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책의 내용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음 속에서는 나만의 새로운 책을 만들어 냅니다. 저자는 바로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창조적인 활동(creation)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것입니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읽고 저 책은 저런 식으로 읽어야 하며 그 중에서 중요한 내용은 무엇무엇이므로 그것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식으로 우리 사고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를 공부하면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는 대목을 읽으며 이 대목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시험에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나오는지, 그러므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선생님으로부터 듣습니다. 그 시가 시를 읽고 있는 나에게 주는 감동을 느끼고 저자가 승무를 보며 느꼈던 감동을 우리 머리 속에서 상상해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식으로 강제적으로 주입되는 독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권의 책에 대해 남들이 이야기 하는 말만 들어 두어도 그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특히 책 읽기 조차도 대학 입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논술 시험을 잘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책을 읽으라고 하면서 논술 대비 세계 고전 명작 요약과 같은 책을 만들어내는 우리 상황에서 책 읽기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명작 100선 요약 같은 책을 읽었다면 그 사람은 그 100편의 세계 명작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은 그 100편의 세계 명작에 대해 남들과 이야기 할 때 큰 무리 없이 대화를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까요? 과연 저는 피에르 바야르의 이 책을 다 읽고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지금 제가 포스팅한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은 이 책을 읽지 않고도 남들과 이 책에 대해 읽은 것 처럼 자신있게 이야기 하실 수 있으십니까? ^^ * 한국의 책 읽기 문화와 서구의 책 읽기 문화가 서로 다르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방법(^^)들을 과연 얼마나 우리가 일상에서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한국어로도 번역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소개한 것은 극히 일부이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아울러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이 포스팅과 관련하여 얼마 전 사은님께서 올리신 책에 관한 포스팅을 추천합니다. 한 번 가셔서 읽어 보십시오. *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 의 웹페이지에 가시면 저자와의 인터뷰를 들어 보실 수있고 책의 서문도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해 11월에 뉴욕 공공 도서관에서 후원하는 한 행사에 피레르 바야르와 바야르의 이 책에서 길게 인용된 움베르토 에코가 참석해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행사 전체를 인터넷으로 보실 수 있는데요.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Amazon 과 Flickr Creative Common 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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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카드...
한국에서 카드..
by 큰별아씨 at 10/15 노트북이나 책을 올려놓을 수.. by 희야 at 10/15 저도 종종 하는데요, 도서관.. by 현재진행형 at 10/15 '바벨의 도서관'이 떠오르.. by 에바 at 10/15 Not yet. 에서 절로 웃음이.. by 극악 at 10/15 학교를 떠난지 몇년 되었는데.. by 썬데이뉴욕 at 10/15 Not yet. 아하하 ^_^; .. by 풀잎열매 at 10/15 도서관에서 일하심에도 여전.. by polarnara at 10/15 Not yet 이기는 하지만 som.. by 댓글동냥 at 10/15 참 좋은 곳에서 일하시는군요.. by 구들장군 at 10/15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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