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의식인지는 몰라도 저는 서점에 가서 신간을 둘러볼 때면 책에 관한 책들을 먼저 찾아 봅니다. 책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나 유명한 책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책에 미친 수집가들에 관한 이야기 등 어떤 식으로든 책과 관련된 책이 있는지 먼저 살펴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동료들과 하면 놀립니다. 하루 종일 책에 둘러 쌓여 일을 하고 또 퇴근 후에는 하고 있는 공부 때문에 역시 책을 봐야 하고 그나마 주말이면 또 서점에 가서 그것도 책에 관한 책을 찾아 보냐고 놀리지요. 그럴때면 제가 하는 말은 늘 똑같습니다. "피차일반 아니겠소." 그리고는 서로 웃습니다.^^지난 주말에 서점에 가서 신간들을 둘러보다가 눈에 띠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제랄딘 브룩스(Geraldine Brooks) 라는 호주 출신의 작가가 쓴 '책의 사람들(People of the Book)"이라는 소설이었는데 나중에야 'People of the Book' 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알았습니다만 제목을 보는 순간은 "뭐지 이 책은?. 우리 같은 사서들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저자 역시 서문에서 이 책을 사서들에게 바친다고 했더군요. 그래서 책을 들고 몇 페이지를 읽어보았는데 쉽게 손을 떼지 못하겠더군요. 저자인 제랄딘 브룩스는 호주 출신의 작가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기자로 세계의 여러 분쟁 지역을 취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인 '3월(March)'은 2006년에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했었지요. 이번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자신이 기자로서 사라예보를 취재할 때 발견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오래 전 부터 써오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맞물려지면서 한 권의 책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1996년 사라예보에서 시작됩니다. 일전에 제가 포스팅 했던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쥴리엣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구 유고슬라비아의 내전 당시 사라예보는 세르비아계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도서관을 향해 발사한 박격포탄에 의해 사라예보에 있던 국립 도서관에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수많은 책과 문서 그리고 중세 이래 보관되어 온 귀중한 필사본들이 불에 탔습니다. 그 중에는 아랍어와 터키어로 씌여진 귀중한 문서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 권의 책이 살아 남습니다. ![]() 사라예보에 살던 한 유태인 가정에서는 유산으로 내려오던 이 책을 박물관에 팔았고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예술사가들이 이 책을 보게 되면서 그 때까지 알려지고 있던 역사가 수정되었다고 합니다. 종래까지의 주장은 우상 숭배를 금지한 구약의 십계명에 따라 중세 유태인들의 책에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금과 은으로 장식한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이 책이 나타나면서 그 주장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러면서 이 책은 "사라예보 하가다"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랄딘 브룩스의 소설은 이 '사라예보 하가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요. 소설의 주인공은 유엔의 의뢰를 받아 전쟁의 참화에서 살아남은 이 책의 상태를 조사하고 복원 및 보존 작업을 하는 호주 출신의 책 보존 전문가 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보존 작업을 하면서 주인공은 책 속에서 아주 흥미로운 흔적들을 발견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곤충의 날개, 포도주를 흘린 듯한 흔적 등 이러한 작은 단서들을 토대로 작가는 이 책이 만들어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5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전유럽에 걸쳐서 이 책과 관련되어 일어난 사건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 속에 있는 단서들을 토대로 과거의 역사를 추리해나가는 모습에서는 CSI 시리즈가 연상이 되기도 했는데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레드 바이올린'이라는 영화를 떠올렸습니다. 그 영화는 붉은 색의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몇 백년의 시간을 거치며 그 바이올린을 소유했던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지요. 이 소설도 그와 유사하게 한 권의 책을 중심으로 그 책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레드 바이올린에서 이야기하던 것이 정열적인 사랑이었다면 이 소설에서 작가가 사라예보 하가다를 통해 말하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중요한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한국에도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줄거리와는 별개로 이 책에는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관심을 가지고 읽으실 수 있는 여러 가지 작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책 보존 전문가인 주인공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인데요. 주인공은 오래 된 책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책 속에 씌여진 내용 보다는 책이라는 물건 그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책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마음과 손이 함께 만들어낸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특히 중세의 필사본들을 다루면서 그녀는 그 속에서 숨쉬고 있는 필경사, 제본사, 그리고 금속 공예사들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합니다. 책의 보존과 관련된 그녀의 철학도 흥미롭습니다. 그녀는 화학처리를 하여 책을 원래 만들어졌을 때과 같은 상태로 돌리는 복원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는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책이 더 상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 최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동안 책 주변에서 일어난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책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것들도 책과 함께 보존해야 할 대상이라는 겁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관한 다른 내용들을 찾아 보다가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최근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던 몇 가지 정보와 연결이 되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다음 편에 적어 보겠습니다.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저자의 홈페이지 와 Flickr:Creative Commons 그리고 BBC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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