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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소개해 드린 "사라예보 하가다"는 몇 백년의 시간 동안 후대에 전해지면서 여러 차례 위험에 빠집니다. 특히 일반인들에게 이 책의 가치가 알려지고 난 이 후, 20세기에도 두 차례나 책이 사라질 위험에 빠졌는데요. 그러한 위기 때마다 기적적으로 책을 보호하는 수호 천사들이 등장합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난 1992년으로 돌아갑니다.
사라예보가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의해서 포위되고 매일 같이 사람들이 저격수들의 총에 맞아 쓰러져갈 때 케말 바카르식(Kemal Bakarsic)이라는 사서가 사라예보에 있었습니다. 그는 사라예보에 있던 보스니아 헤르제고비나 국립박물관 안에 있던 도서관의 주임 사서로서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도시가 포위되고 매일같이 포탄이 날아드는 것을 본 그는 당장 자신의 도서관과 박물관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도서관 직원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책과 박물관의 유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이러한 작업을 무사히 마친 이 후에 박물관은 세르비아 민병대의 박격포 공격을 받았고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케말을 비롯한 도서관 직원들의 목숨을 건 작업을 통해 도서관에서 보관 중이던 25만권 이상의 장서들은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전쟁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앞서 소개해 드린 소설의 소재가 된 '사라예보 하가다'도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사라예보 하가다'는 전쟁 기간 동안 중앙 은행의 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는군요. 다행히 국립 박물관에 있던 도서관은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사라예보 중심에 있던 국립 도서관은 비극적인 운명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1992년 8월의 어느 날 아침 사라예보를 둘러싼 언덕에서 25발의 박격포 포탄이 도서관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 날아온 박격포탄은 단순한 인명 살상용 포탄이 아니라 화재를 일으키기 위한 만들어진 포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50여발의 포탄이 도서관 근처 시가지에 날아와서 소방대원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합니다. 이미 도서관 인근의 소화전에 연결된 수도를 끊어 놓았기 때문에 소방관들이 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포탄이 날아온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았지만 도서관은 그 다음 날까지 불 타올랐다고 합니다. 불타는 도서관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케말의 이야기는 정말 눈물 겹습니다. 도서관에서 나온 검은 연기가 온 도시에 가득 찼고 종이를 태운 재가 눈처럼 거리에 내렸다고 합니다. 불에 타 까맣게 변해 날아다니다가 땅으로 떨어지는 종이를 받아 보면 흑백 필름처럼 검은 종이에 하얗게 변한 글씨를 읽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에 얹혀 있던 종이는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더랍니다. 자신의 손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는 책들을 본 케말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렇게 타 버린 120만 권 이상의 책들 중에는 몇 백 년동안 보관되어 오던 중세의 필사본들과 아랍어와 터키어로 씌여진 중세 이슬람교 신학 서적 등 발칸 반도에 진출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문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책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만행을 통해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이 노린 것은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와 기록을 없애버리려 한 것이지요. 실제 국립 도서관 뿐만 아니라 사라예보에 있던 다른 도서관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전쟁이 끝 난 후 이렇게 사라진 책들을 복원하는 작업이 유럽과 미국 전역에 걸쳐 벌어졌었습니다. 도서관을 다시 짓기 위한 성금이 전세계에서 모여들었고 책을 기증하는 기관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쟁 전에 이 국립 도서관에 와서 지금은 사라진 필사본들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혹시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을 복사본이나 필사본을 보면서 남긴 메모까지도 모았다고 합니다. 그 작업을 통해 사라진 필사본들을 최대한 복원하려 했고 결국 그 일은 보스니아계 이슬람의 전통을 이어가려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지난 200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케말이 이러한 작업의 선두에 서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런데 20세기 들어 '사라예보 하가다' 가 겪었던 고난은 이것 만이 아니었습니다. 1992년의 전쟁 이전에 사라에보가 겪었던 또 다른 전쟁은 제 2차 세계 대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도 '사라예보 하가다'는 위험에 빠졌었고 그 때 역시 1992년의 케말과 같은 역할을 한 또 다른 사서가 있었습니다. 당시 사라예보의 학계에 잘 알려진 학자이기도 했던 더비스 코르쿳(Dervis Korkut)은 1992년에 케말이 그랬던 것 처럼 1941년에 보스니아 국립 박물관의 주임 사서였습니다. 그 때 사라예보를 점령하고 있던 독일군들은 유태인들을 색출하는 일 뿐만 아니라 유태인들이 남긴 책들과 각 종 역사적인 유물들을 약탈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더비스는 '사라예보 하가다'가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어느 날 사라예보를 관장하고 있던 독일군의 총지휘관이 박물관을 방문한다는 연락이 오자 더비스와 박물관의 관장은 때가 왔음을 알아차리고 금고 속에 보관 중이던 책을 꺼내 우선 더비스의 옷 주머니에 숨깁니다. 그리 큰 책은 아니었기에 충분히 겉 옷에 감출 수가 있었지요.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관장을 위해 더비스는 통역으로 관장과 함께 독일군 장군을 만났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환담을 하다가 독일군 장군은 '사라예보 하가다'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때 더비스는 기지를 발휘했지요. "실은 며칠 전에 독일군 대령 한 분이 오셔서 그 책을 요구하길래 이미 드렸습니다.""그 자가 누구요. 이름을 대시오." "제가 감히 어떻게 그 분의 이름을 물어볼 수 있었겠습니까." 독일군 장군은 부하들을 시켜 박물관을 뒤져보았지만 물론 책을 찾을 수는 없었고 물론 그 이름 없는 대령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독일군이 떠난 후 더비스는 책을 가지고 자신의 집에 돌아가서 시골에 있는 지인을 통해 이슬람교 모스크에 이 책을 보관해 주도록 부탁합니다. 그래서 전쟁 기간 동안 유태인들의 종교 서적인 '사라예보 하가다'는 이슬람교 모스크에서 코란과 함께 나란히 보관되어 있었지요. 전쟁이 끝나고 다시 박물관으로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었구요. 그런데 그 당시 더비스가 구한 것은 유태인들의 책만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몰래 시골에 숨기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더비스는 젊은 여성을 한 사람 데리고 집에 돌아옵니다. 이제 결혼한 지 채 1년이 겨우 지난 더비스의 젊은 아내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책을 몰래 들고 오더니 이번에는 젊은 여자를 비밀스럽게 집에 데리고 오다니... 그 때 더비스가 데리고 온 여성은 미라 파포( Mira Papo) 라는 유태인 여성이었습니다. 전쟁 전 사라예보에 살던 미라는 티토가 이끄는 빨치산 부대에 참여했다가 전투에는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부대에서 벗어나 다시 사라예보로 숨어들어와 있던 상태였지요. 독일군들이 유태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는 더비스였기 때문에 그녀를 집에 숨겨주기로 합니다. 마침 더비스의 아내 서벳(Servet)과 미라는 동갑내기였고 서벳은 아이를 나은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여성은 급속하게 친해지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을 보낸 후 더비스의 주선으로 미라는 유고슬라비아의 다른 시골 지역에 숨을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날 때 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빨치산 부대에 몸을 담았던 공을 인정받아 미라는 전쟁이 끝난 후 군대에서 간호 장교로 근무할 수 있었고 같이 근무하던 장교 한 사람과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걸어가고 있던 미라 앞에 남루한 차림의 한 여인이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나타났습니다. 미라에게 자신을 모르겠냐며 스카프를 걷어 올리는 그 여성을 보고 미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라 앞에 나타난 사람은 전쟁 중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더비스의 아내 서벳과 그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벳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더욱더 미라를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유태인의 목숨을 구했고 귀중한 책을 안전하게 지킨 더비스에게 전쟁이 끝난 유고슬라비아는 그리 살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박물관에서 계속 일한 그를 두고 독일군에 협조했다는 의심을 하는가 하면 점차 강력해지고 있던 티토의 철권 통치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더비스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더비스는 독일군에 부역한 혐의로 감옥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전하면서 서벳은 더비스가 미라를 살려준 일을 법정에 나와 증언해 달라고 부탁합니다.(아래의 사진은 더비스의 아내 서벳입니다.) ![]() 이스라엘에서 평안한 생활을 하며 노년에 이른 미라는 1990년대 어느 날 사라예보 출신의 유태인들이 발행한 신문을 통해'사라예보 하가다'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내전 중에 책을 구한 케말의 이야기가 실린 그 기사에서 그녀는 평생 미안하게 생각하던 더비스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2차 대전 동안 하가다를 지킨 사람으로 더비스의 이름이 언급된 것이었지요. 그리고 기사를 읽으며 미라는 더비스가 1960 년대까지 유고슬라비아에서 살다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그녀는 더비스가 전쟁 후 유고슬라비아의 감옥에서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군요. 이 기사를 읽은 후 미라는 평생 동안 가슴에 한으로 남은 일을 자신이 죽기 전에 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자신이 전쟁 동안 겪은 일과 자신을 도와준 더비스에 관한 일을 편지로 적어서 2차 대전 중 유태인들을 도운 사람들을 찾아 보답하는 활동을 하고 있던 야드 바셈 박물관의 연구소로 보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야드 바셈 연구소에서는 더비스의 선행을 알게 되었고 늦었지만 그의 가족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비스의 이름은 오스카 쉰들러 등과 함께 야드 바셈 박물관의 정원에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파리에 거주하고 있던 더비스의 아내 서벳과 더비스의 아들은 이스라엘 정부에서 발행한 감사장과 또 미국의 한 유태인 단체에서 매 달 보내는 연금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접 만나지는 못 했지만 미라는 서벳에게 전화를 걸어 왜 자신이 재판정에 서지 못했는지 이야기 하고 용서를 구했다고 하는 군요. 그리고나서 미라는 199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미라와 더비스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글이 너무 길어지는 군요. 다음 편에서 계속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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