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내놓은 정부 조직 개편안은 여러 곳에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과연 제대로 된 정책 수행을 위한 개편인지 의심이 갈 만큼 우리 사회에 중요한 기관들을 가차없이 철폐하거나 타기관에 흡수시키는 강력한 밀어붙이기식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인수위원회에 계시는 많이 배우신 분들이 깊이 생각하여 결정한 일들이라고 보고 그러한 정책의 이유를 찾아보려 했습니다만 이해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몰입식 영어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나마 한 발 물러서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까지도 그들이 물러서야할 부분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다른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제가 특히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기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난 해 6월에 만들어진 대통령 산하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입니다. 그리고 이 기관은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실효성 부재"를 이유로 폐지하려고 하는 기관 중의 하나이기도합니다. 사실 도서관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의미가 남다른 기관입니다. 정부 수립 이 후 몇 십 년간 계속해서 도서관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하던 도서관 활성화 대책이 마침내 개정된 도서관및독서진흥법으로 구체화되고 그 법에 따라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대통령 산하에 설치된 것이 지난 해 입니다.

이 기관에서는 국민들에게 더욱 다가가는 도서관 그리고 더욱 도서관답게 운영되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립된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이 기관은 폐지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안상수의원등의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된 도서관법개정안을 보면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에 설치하도록 규정되어 있던 도서관연구소와 국립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 등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러한 사항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계시는 문동섭 님께서 오마이 뉴스에 올린 기사를 참고해 보십시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과연 새 정부에서는 도서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새 정부 뿐만 아니라 각 지방 단체에서 생각하는 도서관은 어떤 기관인지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최근 여러 민간 단체들의 활동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많은 도서관들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방 자치 단체들에서도 도서관을 건립하는 곳이 많더군요. 그런데 그러한 도서관 건립 소식을 들으며 저는 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신문기사만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지방 자치 단체들도 그렇고 그것을 보도하는 신문기사들도 그렇고 "도서관이라는 건물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안에 책이 몇 권 소장되어 있고 열람석이 몇 석 있다"는 외형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과연 그 도서관이 어떻게운영이 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도서관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눈에 잘 보이는 업적을 남기려는 지방 자치 단체의 의도는 짐작이 됩니다. 도서관을 건립했다고 하면 듣기에 좋지요. 그 지방 자치 단체장이 교육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의 복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생색을 내기 위해 건설된 도서관이 얼마나 제구실을 할까요? 더구나 도서관의 운영을 민간에 맡기거나 각 종 지방 공사에 맡겨서 하나의 영리 기관처럼 운영하는 곳도 많습니다. 그 경우 도서관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는 눈에 보지 않아도 뻔한 일입니다.
결코 도서관을 운영해서 돈을 벌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영리 기관이 아니라 공익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투자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투자의 결실은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대신 한 번 나타나기 시작한 이러한 투자의 결실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납니다. 투자액의 수 천배를 얻을 수있는 것이 바로 도서관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일들은 결국 한 가지를 말해줍니다. 인수위원회의위원들이나 각 지방에서 행정을 맡으신 분들께서 도서관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서관이 어떤 기관이고, 도서관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채 그저 건물 짓고 열람실 만들고 또 책 좀 사주면 도서관은 저절로 굴러갈 거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어찌 보면 그 분들을 탓할 이유도 없는 것이 그것이 바로 그 분들이 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에 보던 우리 도서관이었고 또 그 분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취직하거나 고시에 합격한 이 후에는 도서관에 갈 일이 없어졌겠지요. 하지만 그 분들이 도서관을 이용한 방식이 그랬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까지 그 모습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요.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인수위원회에는 외국에서 유학하신 분들도 많으실 텐데 왜 도서관의 중요성을 모르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인수위원회의 여러 위원들께서 학위를 받으신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 밴더빌트 대학, 그리고 하버드, MIT, UCLA등의 도서관은 미국에서도 최고 수준의 도서관들입니다. 유학하시면서 그 도서관들을 이용해 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그리고 많은 유학생들이 느끼는 것처럼 "역시 대학 도서관은 이래야 해. 이게 바로 대학 도서관이지." 하고 느끼신 적도 있을 겁니다. 또한 가족들과 같이 유학 생활을 하셨다면 그 동네의 공공 도서관이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도 경험을 통해 잘 아실텐데요. 아마 너무 옛날 일이라 잊어 버리셨나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시 일깨워드리겠습니다.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에 유익한 각 종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들이 제대로 된 문화의 혜택을 입기 바라신다면 도서관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십시오.
저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왜 그렇게 못하느냐는 식으로 상황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우리의 실정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싫어하는 말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 (IMLS)란 기관이 단지 대통령 영부인이 사서이기 때문에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서관이 가진 힘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의 성장과 민주적인 사회의 성공이 언제나 배우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국민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그러한 국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도서관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관에 2008년 한 해 예산으로 배정된 것이 2억 7천만 달러가 넘습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이 돈은 도서관 운영 예산이 아니라 도서관과 박물관의 활동을 지원하고 더욱 활성화 시키기 위한 돈일 뿐입니다. 각 지방 자치 단체나 학교 별로 도서관 운영을 위한 예산은 따로 편성합니다.
각 종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새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것은 경제에 대한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경제를 제대로 살리는 정책을 펴주시기 바랍니다. 도서관을 활성화하여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결코 예산을 쓰기만 하고 실효성이 없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투자를 통해 우리 나라가 장차 얻을 수 있는 결실은 무한합니다. ... 혹시 제대로 운영되는 도서관 때문에 '실용'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 우리 국민들이 정부가 잘 못하는 일에 대해 따끔한 비판을 할 까 두려우신가요?
* 참고 기사
문동섭,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시작도 못하고 폐지될 판 -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24일
오미정, 민간이 하면 도서관이 바뀐다? -미디어 다음 2005년 11월 28일
임영주, 서울 공공도서관 ‘공공성’이 없다…수익성만 추구 -경향신문, 2007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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