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노숙인들 때문에 곤욕역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노숙인들이 공공 도서관에 들어와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도서관에서는 마땅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어 고민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 분들이 갈 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지요.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이들의 출입을 막는 곳들과는 달리 도서관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이 분들이 더 쉽게 출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따뜻한 난방과 함께 신문이나 잡지를 비롯한 읽을 거리도 있고 또 칸막이가 쳐진 열람석은 추운 겨울 바깥에서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이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겠지요. 하지만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오시는 일반 이용자들에게는 이들의 존재가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도서관들, 특히 대도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공공 도서관들은 벌써 몇 십년째 이들 노숙인(Homeless)들과 관련된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라 이들 노숙인들도 분명 도서관을 이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노숙인들의 출입이 가져오는 고민도 분명히 있지요. 이들 노숙인들이 도서관 안으로 가져오는 냄새로 인해 다른 이용자들이 느끼는불쾌감이 있을 거구요. 또 술이나 마약에 취한 상태로 혹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도서관에 들어와서 다른 이용자들을 방해하거나 심한 경우 다른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경우 등도 있겠지요.
그래서 미국의 일부 도서관들은 자체적으로 도서관 이용 규정을 정하고 이에 따라 이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불쾌한 체취(Offensive Body Odor)'를 가진 사람의 출입을 금하거나 도서관 내에서 잠을 자거나 음식물을 먹는 것을 막고 또 도서관의 화장실에서 몸을 씻는 것을 금하는 조치 등을 취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다른 이용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신체 위생' 상태를 가진 사람이 도서관을 출입하는 것을 막거나 도서관에 출입할 때 필요 이상의 많은 소지품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게 하기도 합니다. 소지품 모두를 큰 쇼핑 카트 같은 것에 담아 도시를 떠도는 이들 노숙인들을 막으려는 조치이겠지요.
그런데 이들이 도서관에 들어와서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도서관 이용을 방해하는 명백한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들을 도서관 밖으로 내보내면 됩니다. 물론 이 경우 그런 강제력을 행사할 인력이 도서관에 있어야 하겠지만 그들의 행동은 충분히 도서관 당국에서 출입을 금지시킬만한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조용히 도서관에서 들어와서 가만히 앉아 있을 경우 이들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도서관 출입을 금지 시킬 수 있을까요?
사실 냄새는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 기준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이들의 냄새를 참을만 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일반 이용자들 중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몸에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남들은 좋아서 뿌린 향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냄새를 이유로 이들의 출입을 막는다는 것은 자칫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도서관에 들어와 잠을 자기 때문에 내쫒는다고 하면 역설적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지쳐 잠시 잠을 자는 사람들은 모두 내쫓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것도 썩 타당한 이유는 아닌 것같습니다.
실제 십 여년 전 뉴저지 주의 한 도시에서는 명백한 이유 없이 겉모습과 냄새만으로 도서관 출입을 금지 당한 노숙인 한 사람이 도서관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이긴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매사추세츠 주의 한 도시에서 노숙인들을 차별하는 도서관 대출 정책 때문에 재판이 벌어진 일도 있었지요. 일반인들은 한 번에 40권까지 대출이 가능한 반면 노숙인들에게는 2 권까지만 대출해 주는 정책이 이 재판의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재판에서 도서관 측은 그러한 차별 정책이 책의 분실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였다고 주장했지만 그정책을 알게 된 여러 일반 이용자들 중에는 그것이 도서관의 기본 설립 정신에 위배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즉, '누구나 차별없이 자유롭게 그리고 무료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이라는 도서관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일 때문이 아니라도 많은 미국의 도서관들은 노숙인 문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이라는기관이 가지는 기본 설립 이념에 따른다면 노숙인들도 도서관을 이용할 권리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노숙인이 아닌 일반 이용자들도 편안한 상태에서 자유로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어야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노숙인들과 일반 이용자들 사이에서 도서관이 고민을 할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지요. 도서관들이 많이 취하는 방법 중의 한 가지는 도서관 이용 규칙을 수정하여 노숙인들이 최소한의 청결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거나 도서관 내에서의 음주 혹은 취중에 도서관에 출입하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도서관에서 이 사람들을 내보낼 때에도 최대한 이들이 인권을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 사서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이용자들은 노숙인들이 아니라 일반 이용자들 중에 있다고 하는군요.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도서관에서 와서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다 가거나 기껏해야 잠을 자는 정도이고 실제 사서들에게 여러 가지 난처한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은 전혀 노숙인처럼 보이지 않는 이용자들 중에 더 많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한 번도 공공 도서관에서 일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 곳에서 인턴쉽을 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냄새만 제외하면 참을 만 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노숙인들의 행동 역시 대부분의 경우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것이지 그 이상의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드물다고 하더군요. 물론 도서관에 따라서 상황이 다르겠지요. 한 친구의 말을 빌자면 일반 이용자들 중에서 이들의 냄새 때문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이들을 도서관 내의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하는 정도의 조치를 취할 뿐이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 도서관에는 경비원이 상주하면서 늘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도서관들에서는 이러한 수동적인 조치에서 더 나아가 노숙인 이용자들을 위한 매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워싱턴 디씨에 있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 도서관에서는 노숙인들을 위한 도서관 자료 이용법 강의 및 건강 검진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고 노숙인 이용자들을 위한 음악 감상 및 예술 강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플로리다 주의 잭슨빌 도서관에서는 노숙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한 인터넷 강좌를 한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 자유 도서관에서는 노숙인들을 고용하여 화장실 관리를 맡기고 있구요. 샌프란시스코 공공 도서관에서는 직원을 고용하여 이들 노숙인들과 각 종 지원센터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로스엔젤스 공공 도서관에서는 노숙인의 자녀들을 위한 섬머 캠프를 운영하고 있고 뉴욕 공공도서관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진다고 하는군요.
사실 노숙인들이야말로 도서관이 더욱 필요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단지 추위와 더위를 피할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또 그것을 위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노숙인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거처할 집이 없다고 해서 책을 읽고 문화를 즐길 능력 조차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기회를 통해 이들은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에서 재활을 위한 공부를 하는 노숙인들에 관한 기사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리고 무료로 정보를 제공하는 도서관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민주적인 기관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노숙인과 일반 이용자를 구분하여 보는 시각조차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요. 그리고 노숙인들 역시 그런 이유가 있어 도서관을 찾을 뿐입니다. 물론 저의 이런 말이 불쾌하게 들리실 분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도서관이라는 장소, 특히 공공 도서관이라는 장소는 다른 곳과 달리 노숙인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개방되어야 하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반 이용자들은 물론이고 노숙인 이용자들까지 모든 이용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일부 도서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노숙인들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도서관은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까요? 어느 곳에서나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는 힘이 듭니다. 그리고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미국의 일부 도서관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그것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도서관에 관해서는 가히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부유한 미국 도서관들이 노숙인들을 위해 하는 일들을 근근히 꾸려나가기도 바쁜 한국의 도서관들이 따라 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무리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숙인들이 도서관에 들어와서 분위기를 흐린다고 단순히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도 한 번 보자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올려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제적인 변화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솔트레이크 시티 공공 도서관에서 은퇴한 사서인 칩워드(Chip Ward) 씨는 지난 해에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지에 "Shelters for Dickens, Shakespeare and the homeless"란 글을 기고하면서 공공 도서관과 이들 노숙인들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 글의 원문은 TomDispatch.com 을 통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고문을 읽은 영화 감독 에밀리오 에스테베즈(마틴 쉰의 아들)가 그것을 토대로 "the Public" 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든다고 합니다. 3월부터 촬영이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는 도서관을 찾는 노숙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한 사서와 그가 겪는 이야기들이 그려진다고 하는데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줄 것 같습니다.
칩 워드 씨는 위에서 언급한 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섬에 있는 사라왁주에 사는 페난 이라는 부족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과 비교할만한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언어에는 '그(he)' '그녀(she)', 그리고'그것(it)'을 의미하는 단어가 하나 밖에 없지만 '우리'를 의미하는 단어는 여섯 개나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나눔(sharing)'은 의무이고 마땅히 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감사하다(Thank You)' 라는 문장이 없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린이들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으므로 노숙하는 사람들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배우는 동안 페난 부족의 아이들은 가난한 이들은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라고 배웁니다."

도서관에 들어온 노숙인들의 문제는 도서관 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지요. 도서관에서 추운 몸을 녹이는 그들의 존재가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통해 가난과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페난 부족과 마찬가지로 우리 전통에도 나눔의 미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방 십 리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남긴 부자도 있었구요. 그런 우리의 아름다운 옛 전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속담은 이제 잊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아래에는 이 글을 준비하면서 참고한 자료들과 이 글과 관련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실 수 있는 싸이트들을 연결합니다.
- 김 아진, "잠자고 샤워까지… 일부 공공도서관, 노숙자 몰려 골치," 쿠키뉴스 2008년 2월 14일
- 정 경희, "도서관서 재기 준비 '공부하는 노숙자들' 눈길," 스포츠 노선, 2004년 1월 15일
-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오름, "[삶-세상]거리에 계신 분들을 가장 잘 아는 우리", 인권오름 제 88호, 2008년 1월 23일 -노숙인들의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그들이 실제 삶에 대해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 와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이 두 곳의 웹싸이트에서는 노숙인들의 실상과 그들을 위한 우리 사회의 지원 정책 등에 관한 자료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발간하는 소식지인 '다시서기' 도 인터넷으로 보실 수 있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아울러 자원봉사나 후원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정보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 ALA | Services to Poor and Homeless People :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인들을 위한 도서관 서비스와 관련된 각 종 정보를 담고 있는 미국 도서관 협회의 웹페이지입니다. 협회 산하의 Hunger, Homelessness & Poverty Task Force 가 연결되어 있고 1990년에 제정한 ALA’s Library Services to Poor and Homeless Policy #61 도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노숙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려는 도서관이 있다면 참고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Chip Ward, "How the Public Library Became Heartbreak Hotel" from tomdispatch.com 2007 년 4월 1일 :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칩 워드 시의 기고문 전문을 보실 수 있는 곳입니다.
- Sanford Berman, "Classism in the Stacks: Libraries and Poverty", ALA | 2005 Jean E. Coleman Library Outreach Lecture : 위에서 언급한 노숙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도서관 정책을 제안한 샌포드 버만 씨가 지난 2005년 미국 도서관 협회에서 행한 연설문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 심장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 Joshua Jackson, Finding a Home in the Library: Services for the Homeless
- Carol Motsinger, "Libraries offer more services to homeless" - USATODAY, 2007 년 6월 13일
- NPR: Libraries Become Temporary Refuge for Homeless: 노숙인들과 관련된 칩 워드 씨의 인터뷰를 들어보실 수 있는 미국공영라디오(NPR, National Public Radio)의 웹페이지입니다.
- Julie Murphy, "When the rights of the many outweigh the rights of the few:the “legitimate” versus the homeless patron in the public library."
- Vanessa Ho, "New Library a Haven for Homeless" , Seattle Post-Intelligencer 2006년 11월 29일
- Flickr Creative Common - 이 글에 쓰인 일부 이미지들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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