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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뉴욕 항구
뉴욕 항구의 앞 바다에는 몇 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섬이 바로 엘리스 아일랜드(Ellis Island)인데요. 이 섬은 1892년 부터 1954년까지 뉴욕 항구를 통해 미국에 이민을 오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하던 곳이었습니다. 미국 땅에 발을 들여 놓기에 앞서 이곳에서 일단 이민 서류 검사와 건강 검진 그리고 한 동안은 아이큐 테스트까지 실시하여 문제가 있는 경우는 미국 본토에 발을 디디는 일 없이 다시 원래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던 일종의 이민 심사 시설이 이 섬에 있었던 것이지요.

이 섬이 이민을 심사하는 시설로 이용되던 60여 년의 기간 동안 약 천 이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이 섬을 거쳐서 미국에 입국했고 그 이민들의 땀과 눈물이 섞여 있는 것이 오늘 날 미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에서는 현재 이 섬을 역사적인 유적지로 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입국했던 이민들에 관한 기록들을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기도 합니다.

당시 이민자들이 입국하면서 기록에 남긴 그들의 이름과 국적 그리고 신체 상태, 최종 목적지 등을 기록한 대장은 이제 데이터 베이스로 옮겨져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터넷을 통해  그 이민들의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지요. 많은 미국인들이 그곳을 통해 자신들의 선조가 처음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때의 기록을 찾아 봅니다. 그리고 웹싸이트에서는 이민자들이 타고 왔던 배의 사진과 이민 기록 원부의 복사판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록들은 이민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가정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간직할 수도 있겠지요.

가끔 농담으로 하는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부터 (미국으로)한국 사람을 빼내오는 일은 쉬울지 몰라도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부터(한국사람의 정신으로부터) 한국을 빼내는 일은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종종 미국인들끼리도 이런 말을 하는데 한국 대신에 이탈리아, 중국, 아르메니아 등 어떤 나라를 집어 넣어도 통하는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저 역시 이런 역사 자료들을 보면 늘 한국과 관련된 자료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제 전공과는 무관하게 한국에 관한 자료들부터 검색해 봅니다.

대부분의 아시아계 이민들이 미국에 도착한 서해안이 아니라 동해안에 있는 뉴욕 항구을 통해 20세기 초반에 입국한 한국인이 있을까요? 그리고 있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검색 대상을 한국인으로 제한하고 'Kim'이라는 가장 흔한 한국 성을 쳐 보았습니다.
3명이 검색되더군요. 물론 김씨 성을 가진 한국 사람으로서 뉴욕 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사람은 더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검색 대상을 한국인으로 하지 않고 검색을 해 보면 더 많은 "김씨" 들이 있고 그 중에는 중국인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름은 분명히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이름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 한국이 처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김씨 성을 가진 중국인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한국(조선)이라는 나라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렇다고 일본인이 되기는 싫고 아시아인이라면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일 것이라 생각하는 미국 관리들에게 아무렇게나 중국인이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그들 중국인 김씨들 중에는 자마이카나 쿠바 등지에서 뉴욕으로 입항한 사람들도 있어 한국인의 초기 미국 이민사에 부합하는 사례들도 보이더군요.

그런데 김씨 성을 가진 한국인으로 검색되는 3명 중 가장 먼저 입국한 것으로 나오는 김동성(Dong Sung Kim)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이길래, 그리고 어떤 경로로  1909년에 뉴욕 항구를 통해 미국에 입국했을까요?(당연히 쇼트 트랙 선수 김동성은 아니겠지요.^^)

엘리스 섬에 남은 기록을 통해 보면  김 동성이라는 이 사람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 롱도(Longdo) " 란 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19세의 총각으로 필라델피아호를 타고 영국의 사우스햄턴(Southampton)을 출발하여 1909년 11월 20일 뉴욕 항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뉴욕 타임즈에 매일 실리던 선박 입출항 기록을 보면 필라델피아호는 11월 13일에 영국의 사우스햄튼을 출발하여 일주일 만인 11월 20일 토요일에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뉴욕에 도착한 김 동성의 이민 기록 원본에는 직업란에 '학생'이라고 적혀 있고 영어를 읽고 쓸 줄 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학생이라는 점이 더욱더 흥미를 주더군요. 1909년에 미국에 유학을 온 사람이라면 과연 누구일까? 만일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롱도'라는 지명이 한국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이로 보아 이 사람은 1890년 경에 출생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1890년에 출생한 김동성이라는 이름을 한국 웹싸이트들을 통해 찾아 보았습니다. 의외로 쉽게 찾아지더군요. 그리고 그 분의 약력에 미국에서 유학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다음을 통해 제공되는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에 검색된 김동성(金東成)이라는 분은 '천리구(千里駒)'라는 호를 가진 유명한 언론인으로서 1890년 개성에서 태어나서 1969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나신 분이었습니다. 백과사전의 기록에 따르면 1915년에 미국에 유학해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신문학과를 졸업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귀국하여 1920년 동아일보가 창간될 때 기자로 입사했고 1922년에는 초대 미국 특파원을 지내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국 만화계의 탄생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신 이 분은 나중에 해방이 되고 생긴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공보처장을 역임하셨고 합동통신사를 설립하기도 하셨더군요.

엘리스 섬의 이민 기록에서 발견한 김동성이라는 사람과 이 분이 거의 동일인인것 같기도 합니다만 1915년에 유학했다는 기록과 엘리스 섬에 남은 1909년의 기록이 차이가 있고 또 개성 출신이라는 것과 'Longdo' 라는 지명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생지에 대한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리더군요. 이민 기록 원부를 다시 자세하게 살펴본 결과 Longdo 라는 지명은 Songdo 라고 쓰인 필기체 단어를 데이터 베이스에 옮길 때 실수한 것 같았습니다. 대문자 S가  L 처럼 보였나 봅니다.(아래의 기록을 자세히 보면  Mrs. Lee Kim (mother) 라고 쓴 부분의  L 과 그 아래 Songdo 라고 쓴 부분의 S와 L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요?)
그래서 '송도'가 거주지(출생지)라고 한다면 개성 출신의 천리구 김동성일 확률이 더 높아졌습니다. 물론 개성의 옛 지명인 송도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언제까지 사용했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봐야겠지만 이 기록의 송도는 개성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문제로 남는 것은 유학 시기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쉽게 검색되는 대부분의 약력에서는 1915년에 미국에 유학했다고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이 분이 유명한 언론인이셨으니 혹시 자료가 없을까 하여 한국언론재단의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

언론재단의 자체 검색엔진을 통해 문서를 검색한 결과 천리구 김동성 선생에 관한 두 가지 기록이 있었습니다. 1975년 "신문 평론"  60호에 실린 인물론에서는 매우 자세하게 천리구 김동성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이 글에서는 국무총리까지 역임하셨던 창랑 장택상(張澤相)의 말을 인용하면서 김동성 선생은 "이미 1910년대에  미국말을 미국말답게 하는사람으로 유명"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자료인 언론 기네스 북에는 김동성 선생이 우리 나라 최초의 해외 특파원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언론 기네스북에 실린 천리구 김동성 선생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1908년 중국의 소주에서 기독교 계통의 동오 대학에서 공부했고 그 다음 해에 미국으로 건너간 것로 나옵니다. 결국 언론 기네스북의 기록이 맞다고 한다면 1909년에 뉴욕 항에 입항한 롱도 출신의 김동성으로 기록된 사람은 바로 천리구 김동성 선생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같이 검색된 신문 평론에 실린 인물론에서는 선생의 약력을 소개하며 1908년에 도미하여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유학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어느 기록이 더 정확한것 일까요? 그리고 선생은 왜 미국의 서해안에 있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동해안의 뉴욕 항구를 통해 미국에 입국하게 되었을까요?그 분이 1909년에 미국에 입국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다른 기록은 없을까요? ... 호기심은 병입니다. ^^

혹시 다른 기록이 없을까하여 찾아 보다가 독립기념관을 떠올렸습니다. 일제 시대 언론인으로서 활약한 그 분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독립기념관에 약간의 기록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그래서 독립기념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을 이용하여 김동성 선생을 검색해 보았습니다.(국가지식포털을 통해 검색이 가능합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가능합니다.)

놀랍게도 가장 먼저 검색되어 나오는 것이 바로 천리구 김동성 선생이 1911년에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국가지식포털의 초록에는 미국에 온지 두 달이 되는 김동성이 도산에게 보낸 편지라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 편지에는 미국에 온 지 두 해가 지났다고 적혀있습니다. 결국 1909년에 미국에 입국한 것을 본인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이 편지에서 천리구 김동성은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先生의 미주 오신 소식은 신한민보로 말미암아 듣사왔사오나 공과에 추신치를 못하여 이때껏 두어줄 글월도 올리오지 못하였소이다.
소생은, 송도 한영서원 생도로 이년간을 윤치호 씨 아래 있다가, 청국(중국) 소주로 가서 京旲大 學堂에서 일년을 공부하고 하기방학에 귀국하였다가, 어떤 선교사와 작반하여 다시 상해로 건너가 인도양으로 돌아 뉴욕에 상륙하였사오니, 이미 두 해가 가까옵니다.
先生을 마지막 뵈옵기는 송도 운계 李健爀(이건혁) 氏의 집에서 뵈었사오니 先生이 능히 기억하시올른지는, 소생의 성명은 金東成(김동성)이요, 나이는 스물 한 살이외다. 九月 十五日
국가와 민족이 이와 같이 흡업한 때를 당하야 어떻게 사람 노릇을 좀 할까 하고, 몸이 독자요 또 늙은 과거하시는 어머니를 집에 놓고 온 것을 생각지 말고 급급히 하는 공부나 하는 중이오이다.
대한 떠나실 때 평양 대성학교는 어떠한 형지 있는 것을 보시고 오셨소이까? 先生이 俄京(모스크바)에서 그 三年간 체류하시는 줄로 알았더니 어찌 그리 속히 오셨소이까?
이곳에 소생 외에 본국 학생 하나 있사오니 그는 클레몬드(California ) 小學校를 昨夏에 卒業하였소이다.
여가가 계시거든 한 장 권면의 글을 받잡기 엎드려 바라고 이에 행은 중 항상 강건하시기 기도하옵니다.
小生 金東成(김동성) 二拜

그리고 편지 봉투를 보면 이 편지는 알칸소 주의 콘웨이에서 보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엘리스 섬의 이민 기록에는 김동성의 최종 목적지가 알칸소의 콘웨이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동일한 인물이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렇다면 선생의 최초 정착지는 알칸소였던 것이 분명한데 어떤 연유에서 오하이오 주립대학으로 옮기게 되었을까요? 이에 관해서는  작고하신 원로 언론인인 김을한(金乙漢)선생지난 1981년에 쓰신 "천리구 김동성" 이라는 책을 참조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책을 보면  미국 유학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겠지요. 이 정도에서 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로 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작은 기록을 가지고 혼자서 이리 저리 찾아 보면서 몇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 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인터넷의 시대는 이용하기에 따라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도구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김동성 선생의 전기를 쓰는 작가가 있어서 제가 확인한 것과 같은 기록을 인터넷 없이 확인 한다고 가정한다면 무척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불과 한 시간 이내에 가능하게 만드는 인터넷과 컴퓨터의 힘은 마치 마술과 같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더 많은 기록과 자료들이 인터넷을 통해 입수 가능하겠지요. 물론 우리가 그것들을 잘 보존했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바로 19세의 어린 나이로 뉴욕 항에 입항한 청년 김동성이 과연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미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사실상 잃어 버린 조선을 떠난 소년이 중국과 유럽을 거쳐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뉴욕 항구에서 맨하튼의 빌딩들을 보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 소년의 마음 속에서 두고 온 고국과 가족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까요? 과연 그 소년의 꿈은 무엇이었으며 또 그 소년을 맞이한 미국은 어떠했을까요? 너무나 많은 생각과 질문들이 머리 속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 마음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이제 21살의 청년 김동성이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편지 속의 한 대목이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이 이와 같이 흡업한 때를 당하야 어떻게 사람 노릇을 좀 할까 하고, 몸이 독자요 또 늙은 과거하시는 어머니를 집에 놓고 온 것을 생각지 말고 급급히 하는 공부나 하는 중이오이다." 

그 편지를 읽고 난 지금 과연 "나는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습니다.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들의 출처입니다.
by Clio | 2008/04/16 11:31 | 역사이야기 | 트랙백(3) | 핑백(2) | 덧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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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포스팅에서 이야기해 드린 김동성 선생이 뉴욕 항에 도착하던 날 즉, 1909년 11월 20일에 발행된 뉴욕 타임즈에는 한국과 관련된 두 건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런데 두 건 ... more

Linked at Cliomedia : "도서.. at 2009/08/12 06:54

... 실까요? 도서관이 원래 만들어졌던 목적처럼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곳 그리고 누구나 손쉽게 그 정보를 이용하는 곳으로서 도서관을 생각하고 계실까요? 작년에 제가 소개해 드렸던 천리구 김동성 선생은 191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를 하신 분입니다. 그 분께서는 1916년에 오하이오 주 신씨내티에서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 라는 약 ... more

Commented by zizi at 2008/04/16 11:40
유길준이 생각나는군요..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여우비 at 2008/04/16 12:00
와...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자료와 정보라는 건 또 저렇게 찾는 거군요. 역시 사서본능이랄까..^^ 전 궁금한 점이 있어도, 그 사람의 단서를 이리저리 추리해서, 어느 홈페이지를 가볼까, 어디가서 찾아볼까, 그런 아이디어 자체를 클리오님처럼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결국 제 손에 주어진 인터넷이라는 도구도 클리오님과 똑같지만, 활용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애기로군요...ㅠㅠ 역시 도구는, 결국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지 결정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이래서 정보를 찾고 조직하는, 그리고 사람들이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서라는 직업이 더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서 사서분의 도움을 제대로 받기 전까지는 정말 그 필요성조차 하나도 몰랐는데 말이죠^^; 제가 무지해서 그랬지만, 예전에는 정말 사서분들은 그냥 책정리 하시고 대출 반납 도와주시는 분들인 줄로만 알았;;;

100년도 전에 당시 뉴욕에 뚝 떨어진 젊은 김동성군이 한 '어떻게 사람 노릇 좀 해볼까' 하는 고민은 현재도 (당연한 일이지만) 계속 유용하군요. 역사가 흐르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계속해서 우리는 상상도 못할 탁월한 도구가 등장하겠지만, 그 목적만큼은 또 '사람'을 위해야 하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을 계속해서 머리 속에 의식적으로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정말 당연한 사실이지만, 항상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았을 때 자칫하면 주객전도가 되기 너무 쉬운지라... 100년 전의 인물의 행적마저 마음 먹으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개인적인 편지까지 열람할 수 있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인터넷에 끊임없이 남기는 그 기록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안 좋은 쪽으로 이용된다면 개인정보 유출로 끔찍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니까요. 참으로 모든 도구들은 양날의 검이며, 도구가 탁월하면 탁월할 수록, 그리고 그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이 출중하면 출중할수록, 도구를 사용하기 이전에 철학과 마음가짐을 먼저 잘 가다듬어야 겠다는 당연한 반성을 또 이 글을 보고 하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케야르캐쳐 at 2008/04/16 12:17
멋집니다. 저도 인터넷을 열심히 활용한다고 했지만 이 포스팅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지네요. :) 정말 여우비님 말씀대로 '사서본능'인가요? 하하. 미국에 입국하는 사람들의 모든 기록이 남아있다니 부럽네요. 그런 기록들이 clio님의 호기심과 맞물려 '김동성'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의 시초가 되는게 말입니다.

그리고 저도 한번 '사람 노릇' 잘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老姜君 at 2008/04/16 12:21
이야... 이런 것도 찾아볼 수가 있군요. 정말 재밌는 글입니다.
Commented by 리느시아 at 2008/04/16 12:48
글 너무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분이 지나간 100년후, 지금 같은 자리에서서 공부할수 있다는 사실에 참 기쁜 밤입니다. 저도 어서 '사람노릇' 하려 더욱더 노력해야겠습니다.
Commented by 逍遙 at 2008/04/16 13:00
김동성님 멋지신 분이시네요. 사람 노릇 참 하기 힘든데 말이죠.
Commented by 꼬마니체 at 2008/04/16 14:06
좋은 글이군요!!다음카페한류열풍사랑에 퍼가겠습니다!!^^*
Commented by yy at 2008/04/16 14:26
와우!
Commented by NK at 2008/04/16 15:41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군요..역사란. 허허-
Commented by deutsch at 2008/04/16 16:02
멋지십니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한 번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사료 분석과 추적 역량이 점점 절정으로 치달으시는군요 ;;;; 끝은 어디시옵니까 -_-;;;;;
Commented by Timothy at 2008/04/16 17:52
"국가와 민족이 이와 같이 흡업한 때를 당하야 어떻게 사람 노릇을 좀 할까 하고, 몸이 독자요 또 늙은 과거하시는 어머니를 집에 놓고 온 것을 생각지 말고 급급히 하는 공부나 하는 중이오이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그런 큰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역량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8/04/16 23:12
중간에, 제 영어 이름이 Harry인데다 성이 김이어서 '헉' 했습니다 ㅎ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나그네 at 2008/04/16 23:55
와 정말 대박 포스팅이네요 시시껄렁한 정치포스팅들보단 이런포스팅을 더 많이봤으면 하네요
Commented by MoGo at 2008/04/17 00:10
굉장합니다. 인터넷은 진정 이렇게 이용하는 것이군요! 매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太虛 at 2008/04/17 00:51
멋지십니다! 두근두근하며 죽 읽었어요^^ Clio님의 갑자에 달하는 내공이 언뜻 엿보이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8/04/17 08:52
zizi 님 /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외국에 나와 공부하려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은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싶은 책입니다.

여우비 님 / "사서본능"이랄 수도 있고 '호기심'의 발로라 볼 수도 있겠지요.^^ 미국에 계시는 동안 사서의 필요성에 대해 아셨으니 그것만으로도 한 가지는 배운 셈이네요. 여우비님의 말씀처럼 인터넷이나 컴퓨터라는 도구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언제나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제도를 만들 때에도 인간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여우비님의 덧글이 원글보다 낫습니다. ... 건강 조심하세요.

케야르캐쳐 님 / 기록을 제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이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저 같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과거를 잘 알고 또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워 현재에 이용하고 또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기록은 제대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老姜君 님 /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인터넷이지요.

리느시아 님 / 절대적으로 동감입니다. 제대로 사람 노릇할 때가 와야 할 텐데 말입니다.

逍遙 님 / 그렇기 때문에 가족 걱정을 잊고 공부하려 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그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글쎄요...

꼬마니체 님 /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yy 님 / 재미있었다는 말씀이시지요? ^^

NK 님 / 이런 걸 자료로 해서 역사 수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훨씬 재미있겠지요.

deutsch 님 / 이거 정말 얼굴을 "화끈"하게 만드시는군요. 부끄럽습니다.

Timothy 님 / 아마 지금의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받은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금의 일반적인 21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숙함이지요.

耿君 님 / 그러시군요. 궁금해지는데요. 왜 저 사람은 해리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요? 1918년에 20세였으니 어쩌면 교포 2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다면 국적은 미국이 되어야 하지 않나?, 아니 멕시코나 쿠바 쪽으로도 이민을 갔으니 그 쪽에서 뉴욕으로 들어올 수도 있지... 그런데 왜 이름이' 해리'지? " .... 이래저래 또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

나그네 님 / 이런 포스팅도 있고 저런 포스팅도 있고 블로그 세계도 사람 사는 동네와 다를 것이 뭐 있겠습니까?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MoGo 님 /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太虛 님 / 아직 갑자가 될려면 멀었습니다. 어디서 기연을 만나 영약이라도 복용하지 않고서는... ^^
Commented by signifie at 2008/04/17 09:02
Clio님 생각의 흐름을 같이 쫓다 보니 제가 어느새 사서가 된듯... 요즈음에는 누구에게나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이용 가능해졌지만 이용자의 mind에 따라 정보의 성질이 판이해지는군요. 100년 전의 신세계를 탐험하며 고민하던 전시대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어서 정말 의미있는 글이었습니다.
Commented by enki at 2008/04/17 10:02
나이를 서른씩이나 먹고도 아직 '사람노릇'을 잘 못하고 있는데 스물한살이라...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네요..퍼갑니다...^^
Commented by clair at 2008/04/17 12:53
멋지네요. 이런 글이야 말로 진정한 이오공감!
Commented by 上杉謙信 at 2008/04/17 14:06
미국의 이런 시스템덕분에 알렉스 헤일리가 뿌리라는 걸작을 남겼을수도 있네요...

아무튼 정부문서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서 자유롭게 열람할수있게 하는 미국이 부럽긴합니다
Commented by 고마워요 at 2008/04/17 16:54
와..정말 잼있네요... 제가 대학다닐때는 도서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아 책 맨 뒷장에 도서 열람 기록표가 있었는데...

어느날... 열람 기록표를 작성하다 맨윗칸에 낯익은 이름이 있어... 보았더니... 1973년 김 OO 저희 아버지 이름이 써있었다는...

아버지가 우리학교 출신이란건 알았지만.. 지금의 글씨체와 같은 이름을 보니.. 정말 소름이 끼치고 감동적이더군요...

열람 기록도 1973년부터 1996년까지 대여횟수가 6번정도밖에 되지 않은 인기 없는 철학관련 책이었는데...

이포스팅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나는군요...

정말 좋은 포스팅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04/17 20:03
제 증조부님과 같은 연배신 듯 하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불량먹보 at 2008/04/18 19:22
언제나처럼 놀랍고 즐거운 포스팅입니다. :D
Commented by Clio at 2008/04/19 06:17
signifie 님 / 사서가 반드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경로로 정보를 찾고 그것을 확인하여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역사가의 작업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요. 의미있는 글이라 해 주시니 얼굴이 뜨거워 집니다.

enki 님 / 서른이 지난지도 한참이 된 저 역시 '사람 노릇'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답니다. 과연 그런 날이 오려는지...

clair 님 / 그런 말씀이야 말로 진정으로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말씀!

上杉謙信 님 / 기록을 제대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그 기록들을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지요. 우리 나라도 이제 점점 기록 및 기록 보존과 관련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님 / 참 좋은 경험을 하셨군요. 그 열람 기록표를 복사라도 해 두시지요.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고마워요 님 댁에는 가족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구들장군 님 / 그렇군요. 구들장군 님의 증조부 님께서는 당시에 무엇을 하셨는지 한 번 찾아보고 지금이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의미 있을 겁니다.

불량먹보 님 / 늘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크로느 at 2008/04/21 19:33
어떤분의 추천으로 들르게 되었습니다만, 참 대단하군요 이런 정보들이 상세하게 보존되고 있다는게..

마침 저분의 대한 숙제를 하게 되어서 상당히 기쁨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4/21 23:49
크로느 님 / 반갑습니다. 기록을 제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이래서 중요한 일이겠지요. 그나저나 천리구 김동성 선생에 대한 숙제를 하신다니 그게 뭔지 참 궁금하군요.^^
Commented at 2008/05/24 03:4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5/24 09:48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이용하십시오. ^^
Commented by 멀리보기 at 2009/02/24 13:49
정말 재미있군요.. 엘리스 섬은 나랑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해서 매번 그냥 지나쳐버렸는데.. 기회 닿으면 꼭 가봐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26 12:21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장소이지요.
Commented by 은파 at 2009/05/20 21:53
인터넷의 효력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힘든 작업을 하시느라 수고 하셨고요,
덕분에 편안히 앉아 귀한 자료를 읽을수 있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도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신 분은 정말 대단한분이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5/20 22:52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쩌면 그 당시 스무살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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