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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나라의 엘리스: 미국 공주 한국에 오다.(2)
** 1 편의 마지막에서 제가 감히 저지른 절단 만행에 분노하여 직접 뉴욕 타임즈를 찾아 보신 분들의 덧글을 보고 자칫 스포일러가 올라오겠다 싶어 부랴부랴 글을 마저 올립니다.^^

엘리스 루즈벨트가 한국을 방문하여 황실 만찬에 참석하던 그 때 황실에서 의전을 담당하던 사람이 바로 엠마 크뢰벨이었습니다. 나중에 독일로 돌아간 그녀는 책을 펴내면서 당시의 기억들을 적고 있는데 그 중에는 엘리스 루즈벨트의 한국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크뢰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엘리스는 철없고 무례한  방문객이었습니다.

크뢰벨의 기록에 따르면 고종 황제께서는 미국 대통령의 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영을 표하기 위해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황제비의 무덤(홍릉) 근처에서 야외 리셉션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크뢰벨은 관리들 및 궁녀들과 함께 리셉션 준비를 위해 홍릉으로 갔습니다. 이제 책에서 묘사된 엘리스의 모습을 옮겨봅니다. 아래의 내용은 1909년 11월 16일자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에 영어로 번역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우리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먼지의 폭풍이 우리에게 몰아닥쳤고 그 먼지속으로부터 한 무리의 말 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무리의 선두에는 위세당당하게 말을 타고 나타나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색의 긴 승마복을 입었고 그 아래에는 몸에 꼭 맞는 승마용 바지를 반짝거리는 승마용 장화 속에 접어 넣은 것이 얼핏얼핏 보였으며 승마용 채찍을 한 손에 들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그 여인이 바로 미스 엘리스 루즈벨트였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그 모습을 본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리에 있던 우리 일행이 한국 왕실의 격식에 따라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으니 이 "의용 기병대의 딸(Rough Rider's daughter)"은 이 모든 것을 장난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환영의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몇 마디의 고맙다는 말, 그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무덤가에서 무덤을 수호하고 있는 동물들의 조각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했다.
특히 그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큰 코끼리 석상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곁눈으로 흘낏 보더니 재빨리 말에서 내려서 순식간에 그 코끼리 석상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곁에 있던 롱워스 씨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쳤다. 이것을 본 우리 일행은 그녀의 그런 망나니 같은 짓에 경악했고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토록 신성한 곳에서 저지른 그와 같은 무례한 짓은 한국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그런 짓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방식(American Style)' 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정말 중차대한 순간이었는데 차와 다른 음식이 나오면서 위기의 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엘리스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듯 했다. 그 이 후로는 어떠한 감사의 인사도 없었고 그녀는 모건 공사 부인과 잡담을 나누면서 씩씩하게 샴페인을 마시고 또 다른 음식들을 즐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엘리스는 모두에게 말에 오르라고 명령하고는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과 함께 버팔로 빌처럼 말을 타고 떠나갔다."

이 기사에 인용된 책에서 보이는 엘리스는 한국의 전통과 한국 황실의 역사와 존재를 전혀 개의치않는 오만 무도한 '미국의공주'였습니다. 이 기사가 뉴욕 타임즈에 실리자 그 다음 날인 1909년 11월 17일 당시 엘리스의 남편이던 롱워스씨는 뉴욕 타임즈를 통해 그 기사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발표를 합니다.
 
11월 17일 기사에서 롱워스씨는 엠마 크뢰벨의 책에 기록된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쓴 여자는 정신이상자이거나 술 취한 사람이던지 아니면 그 두 가지 다 일 것"이라고 크뢰벨을 비난합니다.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신성한 코끼리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일종의 숭배물(idol) 이었을 것이고 모든 방문객들이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분명 그것을 그런 방식으로 대했습니다.

엘리스나 저 둘 중  누구도 그 숭배물을 기억하지 못 합니다.  그러나 엘리스가 서울의 거리를 "자주색의 긴 승마복을 입고 그 아래에는 몸에 꼭 맞는 승마용 바지를 반짝거리는 장화 속에 접어 넣은 것이 얼핏얼핏 보이는" 그런 모습으로 말을 타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채찍을 휘두르며 다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코끼리의 등에 올라타고 저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외쳤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도대체 이런 쓰레기같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그리고는 계속해서 자신은 엠마 크뢰벨이라는 여성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당시 방문단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아마 크뢰벨이 다른 사람을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엘리스를 직접 인터뷰하려 했지만 롱워스씨는 앨리스가 어떤 경우에도 인터뷰를 하지 않는 룰을 지킨다고 하면서 대신에 엘리스는 그 책에 실린 내용을 전해 듣고는 크게 웃었다는 사실을 기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런 반응에 대해  독일에 있던 엠마 크뢰벨이 "나는 정신이상자도 아니고 거짓말장이도 아니다." 그리고 책에 실린 내용은 사실 그대로를 전했을 뿐이라고 한 기사가 실린 것이 11월 20일 이었지요. 그리고 이 기사에서 크뢰벨은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미국 외교관 부인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들도 다 알고 있는 일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아울러 자기가 만난 많은 미국 사람들이 "엘리스 공주는 선머슴애(Tomboy)" 라고 하더라는 말까지 합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요? 한 쪽은 했다하고 다른쪽은 그러지 않았다 하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요? '엘리스 공주'의 평소 행동들을 볼 때 이 일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말 뿐이지요. 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과연 엠마 크뢰벨이 언급한 그런 일이 실제 있었을까요?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자료를 더 찾아 보다가 한 가지를 기억해냈습니다.  1905년 경에 한국 주재 미국 공사관에서 공사 서기로 근무하던 윌러드 스트레이트(Willard Dickerman Straight) 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남긴 편지와 특히 수 백장의 사진과 그림 등이 코넬 대학교 도서관의 귀중본 컬렉션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자료들이 디지털화 되어 온라인으로 소개되면서 저도 알게 되었는데 혹시 그 사람이 남긴 기록 중에 엘리스의 행적을 알려주는 자료가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코넬 대학교의 Willard Dickerman Straight 디지털 컬렉션을 찾다가 참으로 어이없는 발견을 하고 말았습니다.
왕릉의 석물에 승마용 장화를 신고 걸터 앉아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코넬 대학 도서관의 자료에 따르면 이 사진의 뒷면에는 "Alice Roosevelt at Seoul" 이라고 '친절하게' 적혀있다고 합니다. 사진 속의 이 여인이 바로 엘리스 루즈벨트인 것이지요. 결국  크뢰벨의 증언은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그녀의 말처럼 코끼리는 아니지만  석마(石馬) 위에 걸터 앉아 사진을  찍은 것은 분명 엘리스이고 장갑을 낀 그녀의 손에는 크뢰벨이 말한 것 처럼 말채찍이 들려 있습니다.

물론 사진이 조작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1905년에 과연 정밀한 사진 조작 기술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고 이 사진을 가지고 있던 윌러드 스트레이트 씨가 굳이 사진을 조작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런데 윌러드 스트레이트씨가 남긴 사진들을 둘러보다가 더욱더 놀란 것은 무덤의 석마 위에 걸터 앉은 것이 엘리스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위의 사진들을보면 엘리스 이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는데 특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왼쪽의 인물은 코넬 대학의 자료에는 이름을 알 수 없다고 되어 있지만 이름이 밝혀진 다른 사진 속의 얼굴과 비교했을 때 미국 공사관 소속의 고든 패덕(Gordon Paddock) 씨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래의 사진을 보시면 가운데가 앨리스이고 오른 쪽에 나비 넥타이를 맨 사람이 롱워스 의원이며 반대쪽이 고든 패덕 씨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사진을 보고 나니 허탈하더군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사람들에게 1905년의 한국, 아니 대한 제국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1934년에 출판된 엘리스 루즈벨트의 자서전 Crowded Hours 에서 엘리스는 한국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한국은 원하지 않았으나 속수 무책으로 일본의 손아귀 아래 미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퍼보였고 낙담한 것 같았다.그 들의 몸에서 힘이라는 힘은 모두 빠져 나가버린것 같았다. 거의 모든 장소에 일본 장교들과 병사들, 그리고 일꾼처럼 보이는사람들이 있었고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  
그리고 1960년대에 남긴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본 일본 장교들이 이례적으로 똑똑해 보였고 또 유능해 보였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에서는 계속해서 우리 고종 황제 폐하에 대한 인상도 이어집니다.
"황제와 곧 이어 마지막 황제가 될 그의 아들(his son)은 우리 공사관 곁에 있던 궁전에서 내밀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 그 궁전의 유럽식 건물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먼저 이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고 땅딸막한(squat)황제는 나에게 자신의 팔을 내밀지 않은 대신(손을 내밀어 엘리스가 잡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서 좁은 계단을 내려가 특히 주목할 것 없고 조그마한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한국식이었는데 황실 문장으로 장식된 그릇에 담겨져 있었다. 내가 사용한 그릇들은 식사 후 나에게 선물로 증정되었다. 궁전을 떠날 때 황제와 그의 아들은 각자 나에게 자신들의 사진을 주었다. 그 두 사람은 애처럽고 (세상사에)둔감한(pathetic,stolid) 인물들이었으며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역시 1960 년대에 남긴 인터뷰에서도 고종 황제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팔을 잡고 인사를 했다고 하고 자서전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종 황제가 슬픈 인상이었으며 자신이 받은 선물은 식사때 사용한 그릇 뿐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신 한국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말을 타고서울 인근을 저녁이 될 때까지 돌아다녔다고 하면서 자신에 타고 다닌 조랑말이 외국인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는 기억은 고스란히가지고 있더군요.

1934년에 그녀가 남긴 자서전에서 말한 고종 황제에 대한 기억이 과연 그녀가 한국을 방문하던 1905년에 자신이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 약 30년간의 역사를  보고 나서 자신이 느낀 것을 이야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대한 제국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에 1905년 서울에서 자신이 보았던 고종 황제의 모습을 그렇게 슬프고 무기력한 황제로 기록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녀의 아시아 순방단에 끼어 있었던 한 사람의 유력한 미국 관리의 이름을 보면서 저는 이런 판단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당시까지로는 가장 큰 규모의 이 아시아 순방단에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한 관리가 끼어 있었습니다. 훗 날 루즈벨트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1857-1930)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1904년에서 1908년까지 미국의 육군성(Department of War) 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테프트는 한국 역사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지요.

엘리스와 함께 온 이 순방단의 첫번째 기착지였던 일본에서 테프트는 일본의 수상 가쓰라 타로를 만나 비밀 협약을 맺습니다. 훗 날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알려지는 이 협약에서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사실상 인정하는 대신 필리핀의 미국 지배를 일본으로부터 인정받았지요. 그리고 이 밀약을 바탕으로 엘리스가 한국을 떠난 두 달 뒤 11월에 일본은 고종 황제를 압박하여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런 국제 정세를 감지하셨기 때문일까요? 엠마 크뢰벨의 기록과 엘리스의 자서전에 나타나는 고종 황제께서는 적극적으로 엘리스의 일행을 환대하셨습니다. 그 때까지 한국을 방문한 다른 어떤 나라의 사절보다도 더 성대하게 이들을 접대하셨다는군요. 이것은 미국 공사의 비서로 근무하던 윌러드 스트레이트 씨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고종 황제께서는 엘리스의 일행을 통해 기울어져 가던 대한 제국을 위한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찾으려 하셨는지도 모르지요. 두 달전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맺어진 협약은 알지도 못 하신 채 말입니다. 이러한 엘리스의 방문에 대해 당시 서울에 있던 일본 공사관에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고 윌러드 스트레이트의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미 7월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렸으니까요.

밀약이라고는 하지만 엘리스를 포함한 순방단의 일부는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엘리스는 한국의 미래를 확실하고 알고 있으면서 고종 황제 폐하를 만났고 '애처럽고 (세상사에)둔감한 황제" 라는 생각을 실제 하지 않았을까요? 그랬기에 서울 거리를 말을 타고 망나니처럼 헤매고 다녔고 황실의 능에까지 와서 석물에 올라타는 만행을 저질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찾아온 엘리스는 결코 조용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를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 붙입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다 들통이 납니다."

* 이 글을 위해 사용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 Brough, J. (1975). Princess Alice: A Biography of Alice Roosevelt Longworth. (1st ed), Boston: Little, Brown.
  • Longworth, A. R. (1981). Mrs. L.: Conversations with Alice Roosevelt Longworth.  London: Duckworth.
  • Teichmann, H. (1979). Alice, the Life and Times of Alice Roosevelt Longworth.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 The Korea Review. (1905년 9월 호).
  • Proquest Historical Newspapers - The New York Times
  • Early U.S.- Korea Diplomatic Relations Willard Dickerman Straight from the Cornell University Division of Rare and Manuscript  collection -- 이 곳에는 윌러드 스트레이트 씨가 남긴 170여 장의 사진과 엘리스의 한국 방문 행사 일정을 비롯한 각 종 문서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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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o | 2008/04/18 00:43 | 역사이야기 | 트랙백(2) | 핑백(3) | 덧글(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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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likejazz의 생각
대한제국을 유린한 미국 공주 (1) (2)...more

Tracked from Rockn'cloud at 2009/02/28 02:37

제목 : 한장의 사진에 얽힌 이야기..
이 사진 한장에 얽힌 이야기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시지요.... 조용한 나라의 엘리스: 미국 공주 한국에 오다.(2)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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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대했던 조선의 성향이 녹아있는 배치랍니다. 석마입니다. 역시 무덤을 지키고 있는 존재입니다. 8마리가 릉을 둘러 위치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이 석마가 눈에 띄었는데, 예전에 이 포스팅을 본 기억때문입니다. 좀 슬픈 역사랄까요...? 원래 영릉은 지금의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원칙상 이장 전의 릉에 있던 석물은 그 자리에 뭍게 되기 때문에 지금의 ... more

Linked at 불평불만 : 1905년 - 러.. at 2008/11/19 13:21

... p;.수정 : <나아가는 자>님이 알려주셔서 링크를 걸었습니다. 사진을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와 상당히 처연하네요.아래 클릭하시면 http://cliomedia.egloos.com/1848935- 음.이글루스 대단하군요.그런 '천진난만'한 아가씨를 외교 상대로 하여 조선의 독립을 보장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급하긴 급했던 것 같습니다.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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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h_Kāśyapa at 2008/04/18 01:03
OTL.....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ㅠ.ㅠ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8/04/18 01:11
후우~
프랑스에 간 리진보다 서울에 온 앨리스 양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Commented by Lucida at 2008/04/18 01:28
와~ 사진인데도 저 얼굴에 주먹 한 대 날려주고 싶네요. 나도 그런 적 없는 데...하면서 말이지요.
Commented by 곰부릭 at 2008/04/18 02:41
두근두근했던 2편이..씁쓸하네요~
역시 사람은 차케게-_-살아야 하는군요-_-
Commented at 2008/04/18 02: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roydon at 2008/04/18 07:49
'1909년 뉴욕 항구' 부터 시작해서 연속 3편 다 읽었습니다. 헉헉..
아주 흥미롭고 또 안타까운 생각도 드네요.
참말로 세상에 비밀은 (별로) 없는가봐요.
그때의 논쟁에서도 저런 사진 증거나 다른 사람들의 증언으로
앨리스의 거짓말이 폭로되었는지 아니면 그냥 넘어갔는지도 궁금하네요.
앞으로 사서 겸 역사가 Clio님으로 불러드리겠어요. ^^
Commented by 풀잎열매 at 2008/04/18 08:21
잘 보고 갑니다. 고종 황제에 대한 부분이 인상깊군요... 애처롭다....라....
Commented by Timothy at 2008/04/18 08:34
저는 '분노' 라기 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puella at 2008/04/18 09:41
그녀가 환생해서 패리스 힐튼이 된건가요?
농담입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은현 at 2008/04/18 09:49
옷 빨리 올라왔구나 해서 내용을 봤는데.

뭐라고 할까요... 씁쓸하군요.
Commented by dARTH jADE at 2008/04/18 09:50
어쩐지 전편에서 개를 안고 있던 사진이 오버랩되면서, puella 님의 말씀이 사실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액션가면 at 2008/04/18 11:36
잘 보았습니다. 언제나 재미있고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수오 at 2008/04/18 12:29
허어어어어...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무민 at 2008/04/18 12:54
재밌게 봤습니다....좀 씁쓸하기도 하네요
역시 인터넷은 못 할 게 없군요
Commented by killroo at 2008/04/18 13:42
저걸 자료로 다 남겨놓다니, 무서운 사람들...
Commented at 2008/04/18 16: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유월향 at 2008/04/18 17:04
저도 안타깝고 씁쓸하네요... ㅠ_ㅠ
그리고 저는 뉴욕 타임즈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여기엔 뉴욕 타임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반전이!!!
멋지네요...
확실히 저런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선진국들이 무섭습니다... [덜덜덜]
Commented by 시퍼렁어 at 2008/04/18 17:31
사실을 지우고 은폐하는 어느 나라 인간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그래도 안심이 되네요.. 그 진실이 억울하던 슬프던 잔인하던 숨겨선 안됩니다. 진실은 진실로서 후에 모든 인류에게 깨달음과 현명함을 남겨야 하기에.
Commented by 루크 at 2008/04/18 20:35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거군요.
하지만 너무 늦게 밝혀지는 건 슬픈 일인 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04/18 20:38
글 잘 읽고 갑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8/04/19 05:56
Mh_Kāśyapa 님 / 저 역시 늘 정직하게 그리고 매사 조심하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暗雲姬 님 / 그게 바로 기록의 힘이겠지요. 프랑스 어디엔가를 찾아 보면 리진에 관한 기록도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Lucida 님 / 역사도 짧은 미국의 공주가 우리의 전통과 죽은 이들에 대한 의례를 몰랐겠지만 설명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었을까(이해하려 했을까) 싶습니다.

곰부릭 님 / 씁슬하다는 느낌이 바로 제가 받은 느낌입니다.

비공개 k 님 / 198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엘리스는 워싱턴 사교계의 안주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날카로운 말솜씨 앞에 진땀을 흘린 정치인들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여러 가지로 오랫 동안 화제를 몰고 다닌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croydon 님 / 저도 그 점이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논쟁 중에는 이 사진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었나 봅니다. 그 무렵 스트레이트 씨는 중국에 있었던 것 같은데요. 한국을 방문한 앨리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스트레이트씨는 그녀 덕에 승진을 하고 윗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설사 이 논쟁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진을 선듯 내 보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풀잎열매 님 / "pathetic" 이라는 단어를 저는 그렇게 번역을 했는데요. 그녀가 사용한 'pathetic' 은 다른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한국 사람들이 슬퍼보였다는 것은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더군요.

Timothy 님 / 안타깝고 또 씁쓸하지요. 10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puella 님 / 대단한 센스이십니다. ^^ 아무렴 파리스 힐튼과는 비교가 되겠습니까?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현 님 / 우리의 슬픈 역사 중의 한 장면이겠지요. 이제는 어림없는 일이지만요.

dARTH jADE 님 / 그러고 보니 파리스 힐튼이 한국에서 가져간 강아지 이름이 '김치' 던가요? 엘리스는 서태후가 선물로 준 강아지에게 '만추(만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더군요.

액션가면 님 /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오 님 /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민 님 / 인터넷의 힘이 대단하지요. 그래도 아직 많은 자료들이 오프라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엘리스의 방문을 이야기하는 한국 측의 기록도 분명 어디에선가 잠자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killroo 님 / 위에 링크한 그곳에 가 보시면 1905년을 전후한 서울의 모습과 우리 조상들의 얼굴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얼굴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비공개 k 님 / 제가 따로 찾아 뵙고(블로그 상에서^^) 글을 올리지요.

유월향 님 / 기록 보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고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덕에 이렇게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도 알 수 있지요.

시퍼렁어 님 / 동감입니다. 보기에 불편하고 화가 나더라도 진실은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제대로 된 과거를 알지 못하게 되니까요.

루크 님 / 늦게 밝혀지는 것은 물론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그래도 진실이 알려진다면 그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겠지요.

구들장군 님 /씁쓸하고 또 못 볼 것을 본 기분입니다.
Commented at 2008/04/19 15:3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4/21 11:17
비공개 k 님 /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 보다는 어렵다고 보아야 겠지요. 그리고 정확한 답이 나올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대신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 과연 대한 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당시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참 일어나기 힘든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1930년대에 들어가서 일본이 만주에 까지 진출하는 것을 본다면 언젠가는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일본의 만주 진출도 힘이 들었을 것이고 그것은 그 이후 태평양 전쟁의 상황까지도 달라지게 할 요건이 되지 않을까요? 확실한 것은 한국을 식민지화 시킴으로써 일본이 누렸던 경제적인 이익 그리고 그로 인한 추가적인 침략이 어느 정도 억제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만약' 입니다.^^
Commented by signifie at 2008/04/21 15:12
1편을 읽으며 천방지축 공주님의 무례한 언행을 어렴풋하게나마 예상은 했지만 씁쓸해요. 우리가 문화후진국(저는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에 가서 어떻게 처신하는가를 생각하게 하시네요.

흐름을 끊는 몇 개의 맞춤법 지적질...ㅎㅎ
무뢰한 방문객 --> 무례한 방문객 / 건냈지만 --> 건넸지만 / 헤메고 --> 헤매고
Commented by Clio at 2008/04/21 15:30
signifie 님 / 맞습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 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 저는 참 행복합니다. 이렇게 틀린 것을 지적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말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계속해 주실거죠^^
Commented at 2008/04/21 22: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4/21 23:52
비공개 k 님 / 저 역시 좋지 않은 역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지요. I hope so as well !
Commented at 2008/04/23 11: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deutsch at 2008/04/23 11:48
씁쓸한 글 잘 보았습니다. 천방지축 엘리스는 그렇다 쳐도 외교관으로 대한제국에 파견되어 있던 사람까지 저 모양이었다는 것은 당시 서구인들이 갖고 있던 생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로 나갔을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무지와 자유가 아닌 방종이 가져온 결과... 사실 지금도 몽골이나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는 한국인 이미지가 안좋다는 얘기도 있지요.. 연변에서도 그러고...
Commented by Clio at 2008/04/23 12:07
비공개 k 님 / 결혼 생활이 그리 순탄했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죽을 때까지 워싱턴 사교계의 안주인으로서 화려하게 살았던 것은 맞습니다. 여러명의 대통령들을 비롯해서 유력한 정치인들과의 관계도 돈독했다고 하더군요.

deutsch 님 / 맞습니다. 씁쓸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발견에 대해 주위의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먼저 재미있어 합니다. 거짓말을 깨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그렇겠지요. 그러다가 한국인으로서 제가 느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그래 맞아" 합니다. 분명 제가 느끼는 것과 같은 씁슬함을 느끼지는 못 하겠지요. 그저 이성적으로 저의 의견에 동의하고 당시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판을 가하는 것에라도 저는 만족해야겠지만 그것도 그나마 역사학과 학생들이기에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Commented at 2008/04/23 12: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4/23 12:14
비공개 k 님 / 그러길래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나 봅니다. 이거 동시 접속이군요.^^
Commented by 김태 at 2008/11/19 13:31
아아 감사합니다. 1905년 을사조약에 관한 내용을 포스팅하던 중, 앨리스 루스벨트의 행적에 대해 '석물에 올라탔다고 하는데 확실한 출처를 찾지 못해 체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적어두었습니다. 그러자 블로거 분께서 이 글을 추천해주셔서 들어와 봤는데, 정말 대단한 내용이 있군요. 훌륭하십니다. (사진을 보니 여러가지로 씁쓸하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1/19 14:01
예.씁쓸하지요. 그리고 고종황제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고심하셨다고 하니 당시의 처지가 더욱 안타깝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8/12/20 17:22
전쟁성(Department of War)→'육군성' 으로 의역해야 합니다. 이 부서는 명칭과는 달리 육군만 관장했거든요. 해군성은 따로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2/23 06:37
정확한 표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쳤습니다. ^^
Commented by joogunking at 2008/12/22 19:20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듯 숨가쁘게 읽은 글이었습니다.
정말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2/23 06:37
재미있게 보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8/12/23 11:04
모르간 공사→모건 공사?

idol은 우상보다는 숭배물이라 지칭함이 이 경우에는 적절한가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2/23 12:06
우상이라고 할 경우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우상 숭배'가 연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숭배물 정도로 번역을 했지요. 그러면서도 스스로 미심쩍어 원문의 단어를 옮겨 놓기는 했습니다만... ^^
Commented by JinAqua at 2009/01/25 11:13
방금 전에 한국 TV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 나온거 봤어요!
우와 >ㅁ< 무지무지무지 기뻐요

뭐라고 해야하는지 표현이 잘 안 되서 끙끙 ;;ㅇ<-<
Commented by Clio at 2009/01/25 16:36
그랬군요. 실은 프로그램 작가 분들과 몇 번 이메일을 주고 받았었지요. 어떻게 방송이 되었는지 한 번 찾아 봐야겠습니다. 기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와우 at 2009/01/25 12:01
저 예쁘장한 얼굴에 펀치한방날려주고 싶을 정도로 화나게 하는군요-_-b 약하게 보이는게 원펀치쓰리강냉이가 될거 같습니다
저 사진이 좀만 더 일찍 발견되 살아생전에 개털리지 않은게 아쉽기만 합니다
서프라이즈 보면서 왠지 되게 안좋은 가정에 자랐을거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렇군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1/25 16:37
앞으로는 저런 일이 없도록 우리가 정신을 차리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Commented by 산신령 at 2009/01/25 22:10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그 태프트 父子에 대해서도 알고 싶네요.

아버지 태프트는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유명하지만, '무능한 대통령'으로도 유명하다죠.
그런데 아들 태프트는 후일 미국 노동사에서는 유명한 노동악법 Taft-Hartley Act 입법을 주도했죠.

제가 아는 이야기는 여기까진데, 혹시 더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1/27 07:53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태프트 부자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군요. 한 번 저도 더 찾아 봐야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virustotal at 2009/01/27 03:36
엠비씨 뭐 안주었나요 날로 주워먹은건데 뭐 검색한건지 뭔지 모르나
선생님이 고생해 발견한건데 뭐
그놈들이 꽁꽁숨기지 않을정도면 별것도 아니다 그런건데

혹 궁금한데 미정부측에서도 이 사실 재발견된거 아나요?
아니면 뭔가 공식으로 뭔가 말을 한적이 있나요?
아마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을것 같지만
그래서 항상 힘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 떠오르네요

힘 없는 정의는 무능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27 07:53
방송 작가분들과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았지요. 선물권을 보내 주시겠다는데 미국에서는 쓸일도 없고 해서 거절했습니다. ... 미 정부에서 이런 일에 공식적으로 말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한 때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딸이었을 뿐 그녀의 행동과 국가의 입장은 별개로 볼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공식적인 지위를 가지고 순방단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저 철없는 어린 아가씨의 장난이었거니 했겠지요. 더구나 당시의 대한 제국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으니 더욱 그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힘과 정의가 균형을 이루는 경우를 찾기가 참 힘이 들지요.
Commented by 오토싱 at 2009/02/01 02:56
서프라이즈에서 보고 Clio 님의 포스트가 떠올라서 다시 와봤어요. 포스트 거의 그대로 영상화된 듯 한데 이름 한자 안나와서 조금 심통이 났다지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2/01 05:46
그러셨군요. 아직 기회가 되지 않아 그 편을 못 봤습니다만 사실은 그 프로그램의 작가 분들께서 제 이름을 방송 중에 언급하겠다는 것을 제가 막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또 개인적인 이유로 실명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 했었지요. ... 좀 기분이 풀어지셨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멀리보기 at 2009/02/24 14:08
씁쓸하네요..역시...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26 12:22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Commented by mtblanc at 2009/02/24 18:16
아주 귀중한 사료를 발견해 내신 것 같네요.
읽으면서 정말 여러가지 감정이 물결치더군요.
이상한 나라의 더 이상항 앨리스,
그런 앨리스를 어찌 못하고 환대해야하는 고종황제,
그런 환대조차 이해못하는 어쩔 수 없는 방종한 이, 그리고 그 문화 차이.

너무나 중요한 일을 명확하게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려요.
꾸벅
Commented by Clio at 2009/02/26 12:23
과분한 말씀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과거야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김영은 at 2009/04/14 22:38
몰랐던사실을많이 알고가서 기쁘네요 ^ ^
하지만 지나간 역사라고 .. 시간이라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화가나네요 ..
지금은 미국과 별탈없이 지내지만 이 역사가 세상에 크게 다시 공개된다면 미국에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되버린 우리 대한민국 .. 장난처럼 우리를 가지고논 미국과 일본 ..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나요 ..... 우리에게 바라는게무엇이나요 . 우리는 일본과 관련된 역사만으로도 가슴이 아프고 화도 나는데
프랑스가 가져가 우리의 역사만 생각해도 억울하고 화나는데 미국까지 우리와 이렇게 된거라면 우리의 편은 도대체 있을까요 .
Commented by Clio at 2009/04/15 10:02
나라 간의 관계에서 우리 편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고 또 현실적으로도 안전한 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과 실력을 가지는 일이겠지요.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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