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루즈벨트가 한국을 방문하여 황실 만찬에 참석하던 그 때 황실에서 의전을 담당하던 사람이 바로 엠마 크뢰벨이었습니다. 나중에 독일로 돌아간 그녀는 책을 펴내면서 당시의 기억들을 적고 있는데 그 중에는 엘리스 루즈벨트의 한국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크뢰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엘리스는 철없고 무례한 방문객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먼지의 폭풍이 우리에게 몰아닥쳤고 그 먼지속으로부터 한 무리의 말 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무리의 선두에는 위세당당하게 말을 타고 나타나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색의 긴 승마복을 입었고 그 아래에는 몸에 꼭 맞는 승마용 바지를 반짝거리는 승마용 장화 속에 접어 넣은 것이 얼핏얼핏 보였으며 승마용 채찍을 한 손에 들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그 여인이 바로 미스 엘리스 루즈벨트였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그 모습을 본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리에 있던 우리 일행이 한국 왕실의 격식에 따라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으니 이 "의용 기병대의 딸(Rough Rider's daughter)"은 이 모든 것을 장난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환영의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몇 마디의 고맙다는 말, 그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무덤가에서 무덤을 수호하고 있는 동물들의 조각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했다.특히 그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큰 코끼리 석상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곁눈으로 흘낏 보더니 재빨리 말에서 내려서 순식간에 그 코끼리 석상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곁에 있던 롱워스 씨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쳤다. 이것을 본 우리 일행은 그녀의 그런 망나니 같은 짓에 경악했고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토록 신성한 곳에서 저지른 그와 같은 무례한 짓은 한국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그런 짓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방식(American Style)' 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정말 중차대한 순간이었는데 차와 다른 음식이 나오면서 위기의 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엘리스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듯 했다. 그 이 후로는 어떠한 감사의 인사도 없었고 그녀는 모건 공사 부인과 잡담을 나누면서 씩씩하게 샴페인을 마시고 또 다른 음식들을 즐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엘리스는 모두에게 말에 오르라고 명령하고는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과 함께 버팔로 빌처럼 말을 타고 떠나갔다."
이 기사에 인용된 책에서 보이는 엘리스는 한국의 전통과 한국 황실의 역사와 존재를 전혀 개의치않는 오만 무도한 '미국의공주'였습니다. 이 기사가 뉴욕 타임즈에 실리자 그 다음 날인 1909년 11월 17일 당시 엘리스의 남편이던 롱워스씨는 뉴욕 타임즈를 통해 그 기사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발표를 합니다."무엇보다도 먼저 그 신성한 코끼리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일종의 숭배물(idol) 이었을 것이고 모든 방문객들이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분명 그것을 그런 방식으로 대했습니다.그리고는 계속해서 자신은 엠마 크뢰벨이라는 여성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당시 방문단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아마 크뢰벨이 다른 사람을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엘리스를 직접 인터뷰하려 했지만 롱워스씨는 앨리스가 어떤 경우에도 인터뷰를 하지 않는 룰을 지킨다고 하면서 대신에 엘리스는 그 책에 실린 내용을 전해 듣고는 크게 웃었다는 사실을 기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엘리스나 저 둘 중 누구도 그 숭배물을 기억하지 못 합니다. 그러나 엘리스가 서울의 거리를 "자주색의 긴 승마복을 입고 그 아래에는 몸에 꼭 맞는 승마용 바지를 반짝거리는 장화 속에 접어 넣은 것이 얼핏얼핏 보이는" 그런 모습으로 말을 타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채찍을 휘두르며 다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코끼리의 등에 올라타고 저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외쳤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도대체 이런 쓰레기같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한국은 원하지 않았으나 속수 무책으로 일본의 손아귀 아래 미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퍼보였고 낙담한 것 같았다.그 들의 몸에서 힘이라는 힘은 모두 빠져 나가버린것 같았다. 거의 모든 장소에 일본 장교들과 병사들, 그리고 일꾼처럼 보이는사람들이 있었고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남긴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본 일본 장교들이 이례적으로 똑똑해 보였고 또 유능해 보였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에서는 계속해서 우리 고종 황제 폐하에 대한 인상도 이어집니다.
"황제와 곧 이어 마지막 황제가 될 그의 아들(his son)은 우리 공사관 곁에 있던 궁전에서 내밀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 그 궁전의 유럽식 건물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먼저 이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고 땅딸막한(squat)황제는 나에게 자신의 팔을 내밀지 않은 대신(손을 내밀어 엘리스가 잡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서 좁은 계단을 내려가 특히 주목할 것 없고 조그마한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한국식이었는데 황실 문장으로 장식된 그릇에 담겨져 있었다. 내가 사용한 그릇들은 식사 후 나에게 선물로 증정되었다. 궁전을 떠날 때 황제와 그의 아들은 각자 나에게 자신들의 사진을 주었다. 그 두 사람은 애처럽고 (세상사에)둔감한(pathetic,stolid) 인물들이었으며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까지로는 가장 큰 규모의 이 아시아 순방단에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한 관리가 끼어 있었습니다. 훗 날 루즈벨트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1857-1930)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1904년에서 1908년까지 미국의 육군성(Department of War) 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테프트는 한국 역사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