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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의 마지막에서 제가 감히 저지른 절단 만행에 분노하여 직접 뉴욕 타임즈를 찾아 보신 분들의 덧글을 보고 자칫 스포일러가 올라오겠다 싶어 부랴부랴 글을 마저 올립니다.^^
엘리스 루즈벨트가 한국을 방문하여 황실 만찬에 참석하던 그 때 황실에서 의전을 담당하던 사람이 바로 엠마 크뢰벨이었습니다. 나중에 독일로 돌아간 그녀는 책을 펴내면서 당시의 기억들을 적고 있는데 그 중에는 엘리스 루즈벨트의 한국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크뢰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엘리스는 철없고 무례한 방문객이었습니다. 크뢰벨의 기록에 따르면 고종 황제께서는 미국 대통령의 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영을 표하기 위해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황제비의 무덤(홍릉) 근처에서 야외 리셉션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크뢰벨은 관리들 및 궁녀들과 함께 리셉션 준비를 위해 홍릉으로 갔습니다. 이제 책에서 묘사된 엘리스의 모습을 옮겨봅니다. 아래의 내용은 1909년 11월 16일자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에 영어로 번역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우리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먼지의 폭풍이 우리에게 몰아닥쳤고 그 먼지속으로부터 한 무리의 말 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무리의 선두에는 위세당당하게 말을 타고 나타나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색의 긴 승마복을 입었고 그 아래에는 몸에 꼭 맞는 승마용 바지를 반짝거리는 승마용 장화 속에 접어 넣은 것이 얼핏얼핏 보였으며 승마용 채찍을 한 손에 들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이 기사에 인용된 책에서 보이는 엘리스는 한국의 전통과 한국 황실의 역사와 존재를 전혀 개의치않는 오만 무도한 '미국의공주'였습니다. 이 기사가 뉴욕 타임즈에 실리자 그 다음 날인 1909년 11월 17일 당시 엘리스의 남편이던 롱워스씨는 뉴욕 타임즈를 통해 그 기사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발표를 합니다.11월 17일 기사에서 롱워스씨는 엠마 크뢰벨의 책에 기록된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쓴 여자는 정신이상자이거나 술 취한 사람이던지 아니면 그 두 가지 다 일 것"이라고 크뢰벨을 비난합니다.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신성한 코끼리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일종의 숭배물(idol) 이었을 것이고 모든 방문객들이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분명 그것을 그런 방식으로 대했습니다.그리고는 계속해서 자신은 엠마 크뢰벨이라는 여성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당시 방문단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아마 크뢰벨이 다른 사람을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엘리스를 직접 인터뷰하려 했지만 롱워스씨는 앨리스가 어떤 경우에도 인터뷰를 하지 않는 룰을 지킨다고 하면서 대신에 엘리스는 그 책에 실린 내용을 전해 듣고는 크게 웃었다는 사실을 기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런 반응에 대해 독일에 있던 엠마 크뢰벨이 "나는 정신이상자도 아니고 거짓말장이도 아니다." 그리고 책에 실린 내용은 사실 그대로를 전했을 뿐이라고 한 기사가 실린 것이 11월 20일 이었지요. 그리고 이 기사에서 크뢰벨은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미국 외교관 부인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들도 다 알고 있는 일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아울러 자기가 만난 많은 미국 사람들이 "엘리스 공주는 선머슴애(Tomboy)" 라고 하더라는 말까지 합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요? 한 쪽은 했다하고 다른쪽은 그러지 않았다 하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요? '엘리스 공주'의 평소 행동들을 볼 때 이 일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말 뿐이지요. 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과연 엠마 크뢰벨이 언급한 그런 일이 실제 있었을까요?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자료를 더 찾아 보다가 한 가지를 기억해냈습니다. 1905년 경에 한국 주재 미국 공사관에서 공사 서기로 근무하던 윌러드 스트레이트(Willard Dickerman Straight) 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남긴 편지와 특히 수 백장의 사진과 그림 등이 코넬 대학교 도서관의 귀중본 컬렉션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자료들이 디지털화 되어 온라인으로 소개되면서 저도 알게 되었는데 혹시 그 사람이 남긴 기록 중에 엘리스의 행적을 알려주는 자료가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코넬 대학교의 Willard Dickerman Straight 디지털 컬렉션을 찾다가 참으로 어이없는 발견을 하고 말았습니다. ![]() 물론 사진이 조작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1905년에 과연 정밀한 사진 조작 기술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고 이 사진을 가지고 있던 윌러드 스트레이트 씨가 굳이 사진을 조작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런데 윌러드 스트레이트씨가 남긴 사진들을 둘러보다가 더욱더 놀란 것은 무덤의 석마 위에 걸터 앉은 것이 엘리스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 ![]() "한국은 원하지 않았으나 속수 무책으로 일본의 손아귀 아래 미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퍼보였고 낙담한 것 같았다.그 들의 몸에서 힘이라는 힘은 모두 빠져 나가버린것 같았다. 거의 모든 장소에 일본 장교들과 병사들, 그리고 일꾼처럼 보이는사람들이 있었고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남긴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본 일본 장교들이 이례적으로 똑똑해 보였고 또 유능해 보였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에서는 계속해서 우리 고종 황제 폐하에 대한 인상도 이어집니다. "황제와 곧 이어 마지막 황제가 될 그의 아들(his son)은 우리 공사관 곁에 있던 궁전에서 내밀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 그 궁전의 유럽식 건물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먼저 이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고 땅딸막한(squat)황제는 나에게 자신의 팔을 내밀지 않은 대신(손을 내밀어 엘리스가 잡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서 좁은 계단을 내려가 특히 주목할 것 없고 조그마한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한국식이었는데 황실 문장으로 장식된 그릇에 담겨져 있었다. 내가 사용한 그릇들은 식사 후 나에게 선물로 증정되었다. 궁전을 떠날 때 황제와 그의 아들은 각자 나에게 자신들의 사진을 주었다. 그 두 사람은 애처럽고 (세상사에)둔감한(pathetic,stolid) 인물들이었으며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 1934년에 그녀가 남긴 자서전에서 말한 고종 황제에 대한 기억이 과연 그녀가 한국을 방문하던 1905년에 자신이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 약 30년간의 역사를 보고 나서 자신이 느낀 것을 이야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대한 제국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에 1905년 서울에서 자신이 보았던 고종 황제의 모습을 그렇게 슬프고 무기력한 황제로 기록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녀의 아시아 순방단에 끼어 있었던 한 사람의 유력한 미국 관리의 이름을 보면서 저는 이런 판단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당시까지로는 가장 큰 규모의 이 아시아 순방단에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한 관리가 끼어 있었습니다. 훗 날 루즈벨트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1857-1930)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1904년에서 1908년까지 미국의 전쟁성(Department of War) 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테프트는 한국 역사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지요. 엘리스와 함께 온 이 순방단의 첫번째 기착지였던 일본에서 테프트는 일본의 수상 가쓰라 타로를 만나 비밀 협약을 맺습니다. 훗 날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알려지는 이 협약에서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사실상 인정하는 대신 필리핀의 미국 지배를 일본으로부터 인정받았지요. 그리고 이 밀약을 바탕으로 엘리스가 한국을 떠난 두 달 뒤 11월에 일본은 고종 황제를 압박하여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런 국제 정세를 감지하셨기 때문일까요? 엠마 크뢰벨의 기록과 엘리스의 자서전에 나타나는 고종 황제께서는 적극적으로 엘리스의 일행을 환대하셨습니다. 그 때까지 한국을 방문한 다른 어떤 나라의 사절보다도 더 성대하게 이들을 접대하셨다는군요. 이것은 미국 공사의 비서로 근무하던 윌러드 스트레이트 씨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고종 황제께서는 엘리스의 일행을 통해 기울어져 가던 대한 제국을 위한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찾으려 하셨는지도 모르지요. 두 달전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맺어진 협약은 알지도 못 하신 채 말입니다. 이러한 엘리스의 방문에 대해 당시 서울에 있던 일본 공사관에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고 윌러드 스트레이트의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미 7월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렸으니까요. 밀약이라고는 하지만 엘리스를 포함한 순방단의 일부는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엘리스는 한국의 미래를 확실하고 알고 있으면서 고종 황제 폐하를 만났고 '애처럽고 (세상사에)둔감한 황제" 라는 생각을 실제 하지 않았을까요? 그랬기에 서울 거리를 말을 타고 망나니처럼 헤매고 다녔고 황실의 능에까지 와서 석물에 올라타는 만행을 저질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찾아온 엘리스는 결코 조용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를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 붙입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다 들통이 납니다." * 이 글을 위해 사용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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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고향에 가셨군요.^..
by Clio at 10:56 결국 앞으로 키키님께서 자신.. by Clio at 10:52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 by Clio at 10:46 저도 그랬기를 바랍니다 .... by Clio at 10:44 그 분의 10센트 덕분에 좋은 .. by zombie at 10:44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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