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책읽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가진 고민 중의 하나는 책을 제대로 정리하는 일입니다. 한 권, 두 권 사 모으다 보면 어느 새 방안이 책으로 가득하게 되고 나중에는 예전에 읽었던 책 혹은 사 놓기만 하고 나중에 읽으려고 둔 책들을 찾기 힘들어지는 사태까지 발생하지요. 최근 블로그 이웃 한 분이 며칠에 걸친 중노동을 마치셨습니다. 방에 쌓여 있던 책 정리를 깔끔하게 끝내신거지요. 사실은 이 글을 준비한 지가 좀 되었는데 그 분이 책 정리를 마치실 동안 기다렸습니다. 고민 거리를 던져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책을 제대로 정리한다는 것은 큰 고민 거리입니다. 무거운 책을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일이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책을 의미있게 분류하는 일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더 피곤한 일입니다. 물론 책을 그냥 있는대로 책 장에 넣어두신다면 크게 고민할 것도 없겠지요. 하지만 책의 권수가 몇 백권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점점 기억하기 힘들어 집니다.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어떤 규칙을 만들어 책을 배열하게 되지요. 크기 별로, 색깔 별로, 저자 이름에 따라 가나다 순으로 혹은 도서관과 같이 주제 별로 책을 분류하여 책장에 꽂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 역시 한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여러번에 걸쳐 분류 방식을 바꾸어 보기도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시절에는 크기 별로 책을 배열했었습니다. 큰 책은 아래에 작은 책은 위에 하는 식이었지요. 어린 생각에 같은 크기의 책들이 나란히 꽂힌 것이 더 좋게 보였나 봅니다. 초등학생이 읽는 책들이라 주제가 크게 복잡할 것도 없었고 책의 권수도 많지 않았기에 '총기' 있던 어린 시절에는 책의 위치까지도 기억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주제의 책들을 모으게 되었는데 특히 값 싼 문고판들을 구입하면서 시리즈별로 한동안 분류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80년대에 많이 읽히던 '마당 문고' 나 '을유 문고' 같은 책들은 모두 같은 크기로 만들어져 있다보니 같이 모아 놓으면 훨씬 보기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니 은근히 책 표지의 색깔에 따라 책이 분류가 되더군요.
그렇게 한 동안 지내다가 책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주제 별로 분류해 볼 시도를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이용하는 십진 분류법에 따라 책을 나름대로 분류하고 비록 레이블은 못 붙였지만 대충 십진 분류법에 따라 책을 배열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더군요. 왜냐하면 제가 가진 책 들 중에는 십진 분류법에 따라서 분류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분류되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책들이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분류도 있었고 십진 분류법보다 더 세분하여 분류하고 싶은 주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생각이 책에 담기다 보니 어떤 한 가지 주제로는 분류하기 힘든 책들도 생기더군요. 더구나 제가 그 책들을 읽고 얻은 개인적으로 느낌과 생각들 때문에 단순히 '문학', '예술' 혹은 '역사' 등으로 분류하기 싫은 책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십진 분류법이 아니라 저 만의 주제 분류법을 만들어서 그것에 맞게 분류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기더군요. 처음 읽었을 때는 이러이러한 주제라고 생각한 책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자주 위치 이동을 해야했습니다. 변덕스러운 주인 탓이지만 전기에서 소설로 이동한 책도 있었고 소설에서 철학 분야로 이동한 책도 있었습니다. 어떤 주제가 더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제 생각이 그렇게 달라졌다는 것이지요.
사실 책을 분류해 놓은 것을 보면 그 책의 주인에 대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지식과 정보에 대한 책 주인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지요. 아울러 책을 배열해 두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의 추리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선생님 한 분은 연구실에 자신이 앉을 자리를 제외하고는 책과 종이가 연구실을 뒤덮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속에서 어떻게 자료를 찾을 수 있나 싶지만 용케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내십니다. 그리고 누가 자신의 책상을 치운답시고 건드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시지요. 보기에는 어수선해도 나름대로의 규칙에 따라 배열이 되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렇다고 그것이 한 사람의 모든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좀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최근에 제가 집에서 책을놓아 두는 모습을 보신다면 과연 저 사람이 도서관 사서가 맞나 싶으실 겁니다. 유명 식당의 주방장이 집에 가서는 요리하기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그런데 우리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새 책을 접할 때에도 그 책이 어떤 주제에 분류되어 있는가에 따라 책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고 그 책을 읽는 우리들의 생각도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서점에서 추리 소설 분야에 있는 책을 읽으며 우리는 다른 추리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기대를 하면서 책을 읽고 또 그 범주에서 책을 평가하게 되겠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이나 서점과 같이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분류된 책들은 종종 생각지 못한 반응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책의 저자나 그 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책은 그곳에 분류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시는 거지요. 그 분들의 말씀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분류법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저는 한동안 역사학과의 도서관을 담당하는 조교로서 일을 했었습니다. 역사학과의 도서관이다 보니 십진분류법과 학과 고유의 분류법을 섞어서 책을 분류했었습니다. 책을 구입할 때 도서관에서 십진 분류법에 따라 청구 기호가 부여되지만 막상 학과 도서관에서 책을 배열 할 때에는 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던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분야를 구분하고 각 각 그 분야 안에서 다시 십진 분류법에 따라 책을 배열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한국과 미국의 외교 관계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든가 중국과 유럽의 교류에 관한 역사는 어디에 분류되어야 할 까요? 십진 분류법만을 사용한다면 불만족스럽기는 해도 분류법에 따라 배열을 하면 되지만 다시 내부적으로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나누다 보니 이런 고민이 생기는 거지요. 제가 선택한 방법은 학과 도서관 이용자들 중에 그 책을 누가 더 많이 이용할 것인가에 따라 지역사 분류를 나누었습니다.
책의 분류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했습니다만 원래 이 포스팅을 준비한 이유는 최근에 접한 알레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 신작 "밤의 도서관(Library at Night)" 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였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우리에게 "독서의 역사'라던가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등의 책으로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이자 편집인입니다. 망구엘은 어린 시절 한 서점에서 일을 하다가 우연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라는 전설적인 남미의 작가를 만나서 그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보르헤스는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아르헨티나의 국립 도서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사람이지요. 그런데 도서관장을 역임하던 말년에 이르러 보르헤스는 유전적인 병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그 때 시력을 잃은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망구엘이었지요. 16세라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보르헤스라는 거장과 같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망구엘에게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망구엘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책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게 된 것이겠지요.
오늘 소개해 드리는 '밤의 도서관'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시골에 있는 오래된 집을 구입하여 그 곳에 있는 헛간을 서재로 꾸미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하여 망구엘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인류의 역사에서 차지한 의미들을 매우 친근하게 그러면서도 폭 넓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신화로서의 도서관', '질서로서의 도서관',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권력으로서의 도서관' 등등의 장으로 나누어 도서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책의 시작에서부터 읽어도 좋고 각 장별로 읽고 싶은 곳을 골라 읽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특히 "질서로서의 도서관(Library asOrder)" 장에서 바로 위에서 제가 이야기한 고민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책과 책읽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두고 두고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에도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댁에서 책을 어떻게 분류하십니까? 아래에 망구엘의 책에서 언급된 몇 가지 방법인데요 개인이 집에서도 사용해 볼 수 있는 분류 방법 같습니다. 그러나 각 각의 방법마다 또 다른 고민거리들이 있지요. 혹시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계시는 다른 좋은 방법이있다면 이 자리를 통해 공유해 보면 어떨까요?
- 가나다순 : 가장 무난한 방법일 수 있지만 여러가지 사항을 미리 결정해 두어야 합니다. 일단 저자별 가나다 순인지 제목별 가나다순인지 결정을 해야 되겠지요. 저자 별로 분류한다고 할 경우 만일 복수의 저자가 있을 때는 누구의 이름에 따라 정리할 것인지, 외국인 저자일 경우 성과 이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예를 들면 움베르토 에코의 경우 에코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움베르토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등을 미리 생각해야 하겠지요. 아울러 외국어 이름의 표기법도 문제입니다. 알베르토 망구엘, 망겔, 맹그웰, 무엇을 따라야 할까요? 그리고 제목에 따라 정리할 경우에도 시리즈로 출판되는 XX 문학 총서와 같은 책들은 시리즈 제목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각 권의 제목을 따라갈 것인지 생각을 해 보셔야겠지요.
- 지역 혹은 국가: 책에서 주제로 언급되고 있는 지역이나 국가를 기준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한비야님의 여행기 같은 책들은 어떤 지역에 넣어야 할까요?
- 표지의 색깔: 보기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색깔에 감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방의 분위기에 맞게 배색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 일부도서관에서 정기 간행물들을 제본할 때 표지의 색깔을 주제 별로 달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정리가 훨씬 쉬워 지지요.
- 구입 일자 나 출판 일자: 이 경우는 책의 한 구석에 반드시 구입 일자를 기록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 새 책을 구입하면 큰 고민하지 않고 책 장의 제일 마지막에 꽂아두면 되겠군요.
- 책의 제본 형태나 크기: 페이퍼 백은 페이퍼 백끼리 양장본은 양장본 끼리 이렇게 분류를 할 수도 있겠지요. 깔끔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장르: 도서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제별 분류와도 유사하겠지요. 이 경우에는 책을 정리하는 개인의 생각이 상당히 많이 작용할 것 같습니다.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소설로 구분이 되겠지만 역사 소설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추리소설? 아니면 지역별로 해서 이탈리아 문학? ...고민 거리는 늘 있습니다.^^
- 개인적인 중요도 : 책 주인이 좋아하는 책들 그리고 자주 보는 책들과 자주 보지 않는 책들을 따로 나누어 분류하는 방법인데 자칫 한 분류의 책만 읽게 되는 단점도 있지만 손이 자주 가지 않는 책 장을 뒤지다가 의외의 수확을 올릴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 경우에는 책의 위치가 자주 바뀔 확률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독자별 분류: 서재나 책이 놓여진 공간을 가족들이 모두 사용할 경우 아이들을 위한 책, 어른들을 위한 책 이런 식으로 읽는사람에 따라 분류하는 거지요. 어린 시절 저희 집에는 2층에는 아버지께서 보시던 책이 있었고 아랫 층에 제가 읽는 책들이 놓여진 책장이 따로 있었지요. 나이가 들면서 자주 아버지의 책장을 기웃거리다가 의외의 수확(?^^)을 올리기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책을 제대로 분류한다는 것, 특히 모든 이용자가 만족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도서관의 입장에서도 완벽한 분류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더욱이 요즘 처럼 새로운 학문 분야가 빠르게 등장하고 있고 또 학문들 간의 공동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에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대신 그렇기 때문에 책을 분류하는 일이 더욱 재미있어지는 거지요. 단순히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 주고 또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정보와 지식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살펴 볼 기회를 주니까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저는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다른 분들처럼 몇 개의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가 그 중 하나이고 책 소개도 또 하나의 카테고리입니다. 이 포스팅에서 저는 도서 분류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책 소개를 했습니다. 과연 이 포스팅은 어디에 분류를 해야 할까요? 고민입니다. 일단 분류법에 관한 이야기이니 도서관 이야기 아래에 분류합니다만 원래 책 소개가 목적이었으니 "책 소개"를 태그로 달까 합니다. 태그를 사용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것이겠지요. 그런데 '태그' 혹은 '주제어', '주제 분류' 이것들은 제가 이 다음에 올릴 포스팅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궁금하신가요?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Flickr: Creative Commons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