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 방문하는 S 님의 블로그에 '시네마 천국'에 관한 감상이 올라 온 것을 읽고는 예전에 잠시 준비하다가 접어 둔 포스팅을 떠올렸습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한 번은 보셨을 고전 영화 중의 하나가 주세뻬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감독의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일 것입니다. 엔니로 모리코네의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영화에 대한 꿈을 가진 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지지요.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 중에는 영화를 너무 열심히 보아서 그 속에 나오는 대사와 자막까지 다 외우는 한 중년의 아저씨가 있습니다. 콧수염이 다 젖도록 눈물을 흘리며 영화 속의 대사를 따라 하면서 영화를 보던데요. 제가 대사를 외울 정도로 열심히 본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지금도 이 영화의 주제 음악을 들으면 왜 그리 슬픈지요. 그리고 그럴 때면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마음 속에 차곡 차곡 쌓이는 느낌이 듭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여러 장면들을 기억하실텐데요.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죽은 알프레도가 이제 중년이 된 토토에게 준 선물을 기억하실 겁니다. 마을 신부님의 '검열'에 의해 삭제된 키스 장면만을 모아서 편집한 짧은 그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 화면을 보고 있는 주인공 토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수많은 잘려나간 키스 장면들 속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잊혀진 사랑이 하나 하나 지나갔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한 번 아래의 클립을 보십시오.
영화를 보고 싶지만 이미 만원이 되어 버린 극장에 들어갈 수 없어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을 위해 알프레도는 광장의 벽에 화면을 비춰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영화'라는 매체의 모든 것이 이 짧은 장면에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영화, 그리고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며 그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영화의 모습이 그대로 이 장면에서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냐며 궁금해 하는 토토에게 "네 귀는 내 말을 못 믿지만 네 눈은 믿게 될 거라" 며 알프레도는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주문을 웅얼거립니다. 그리고 알프레도의 주문과 함께 벽을 타고 화면이 흘러 광장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정말 마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광장으로 흘러갔던 그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그렇게 사람들이 보고 싶어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영화 속에서 광장으로 흘러가던 또 다른 영화, 그리고 그 영화의 주인공이던 또 다른 토토(Toto')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 장면에서 광장으로 흘러가던 영화는 1949년에 만들어진 "비주의 소방관(I pompieri di Viggiu, '비주'는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이름입니다.)" 이라는 영화입니다. 아래의 링크를 따라가시면 시네마 천국에서 잠깐 나왔던 그 장면의 클립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장면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출연한 연극의 한 장면인데 질투심 많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아내를 따라다니다가 결국 아내의 옷 가게에 발이 묶여 남편 앞에서 마네킹 행세를 해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장면 링크)
이 영화의 주인공은 "토토(Toto')"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배우이자 작곡가 그리고 시인이기도 한 안토니오 데 쿠르티스(Antonio De Curtis, 1898-1967)입니다. 영화 시네마천국에 나온 주인공 살바토레의 극 중 예명이 이름도 토토였지요.
1898년에 태어나 1967년에 세상을 떠난 토토는 자신이 배우이기도 했지만 실제 삶 자체도 극적이었고 언제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몰고 다녔습니다.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나폴리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주세뻬 데 쿠르티스 후작(Marquis Giuseppe de Curtis) 이었고 어머니는 안나 클레멘테라는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귀족이던 주세뻬 데 쿠르티스 후작의 아버지는 아들이 평민과 결혼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세뻬 데 쿠르티스는 그런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토는 어머니의 성인 클레멘테로 출생 신고를 해야했고 후작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클레멘테라는 성을 가지고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28년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그를 법적인 아들로 인정할 수 있었고 아버지인 주세뻬 데 쿠르티스 후작이 세상을 떠나면서 토토는 아버지의 모든 작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작위를 포함한 그의 공식적인 이름은 " Antonio Focas Flavio Angelo Ducas Comneno De Curtis DiBisanzio Gagliardi, Imperial Highness, Palatine Count, Knight of the Holy Roman Empire, Exarch of Ravenna, Duke Macedonia and Illyria, Prince of Costantinople, Cilicia, Thessaly, Pontus, Moldavia, Dardania,Peloponnesus, Count of Cyprus and Epirus, Count and Duke of Drivasto and Durrës " 입니다.(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로 번역한 것을 올립니다.) 이 정도 되면 본인도 외우기 힘든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비하면 배우로서 그의 예명인 토토(Toto', 시네마 천국에서처럼 두번째 '토'에 강세가 붙습니다. 한 번 발음해 보십시오.재미있습니다.)는 정말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은 동네 극장에서 공연하던 연극에 관심이 있었고 15살 때 벌써 지역에서 활동하던 작은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못 마땅해하던 어머니와의 충돌을 피해 16살이 되던 해에 군대에 갔다고 합니다. 1차 대전이 종전되고 나폴리로 돌아온 그는 극장 무대를 통해 연극과 코미디를 선보이며 서서히 이름을 얻어 갔습니다. 특히 미리 준비된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하던 코미디 쇼에 능했다고 하는데 1930년대에 이르면 자신의 극단을 이끌고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배우로서 명성을 얻어가던 토토는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들과 관련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고 하는군요. 여성들은 유머가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것이 이유인지는 몰라도 토토는 늘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본인 역시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 했다고 하는군요. 그러한 그의 사랑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최초의 사건이 1920년대 말에 일어났습니다.
1928년 경에 토토는 짧지만 정말 정열적인 사랑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 해에 토토는 배우이자 카바레의 가수로서 활동하던 릴리아나 카스타뇰라(Liliana Castagnola)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녀는 결코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온 팜므 파탈(femme fatale *적절한 한국어 표현을 찾다 보니 "그 여자는 살이 세다" 라는 표현이 있더군요.^^)이었습니다.
전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인기 배우로서 언제나 그녀 곁에는 부유한 귀족이나 정치인들이 떠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서는 그녀 때문에 남자들 사이에서 결투가 벌어져 한 사람이 죽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그녀는 프랑스에서 추방되기도 했고 또 그녀의 사랑을 호소하던 열렬한 추종자가 그녀에게 총을 쏘고 자신은 자살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녀가 나폴리의 한 극장에 토토가 출연한 공연을 보러 왔습니다. 그녀가 젊고 열정적인 배우, 토토의 연기에 몰입하고 있을 무렵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던 토토는 객석에 있던 아름다운 그녀를 의식하게 되었고 보는 즉시 사랑에 빠집니다.
그 다음 날 아침 그녀가 묵던 호텔에 토토가 보낸 장미 꽃다발이 도착했습니다. 그 꽃다발에는 "이 장미의 향기와 함께 당신에 대한 나의 모든 찬미를 보냅니다."라는 카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후 사흘이 멀다하고 꽃다발과 카드 그리고 전화 통화가 이어졌고 결국 두 사람의 연인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대를 벗어난 사석에서 토토는 언제나 말끔한 최고급의 정장을 즐겨 입었고 당당하면서고 유머러스한 매너를 가진 신사였다고 합니다. 귀족 가문의 후예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지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무도 없는 극장에 그녀만 객석에 앉혀놓고 토토가 무대에 올라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독백을 했다고도 하더군요. 그 정도면 사랑이 불타오를 조건은 충분히 갖춰진 셈이겠지요. 전유럽에서 권세있고 재력있는 귀족이나 정치인들만 상대하던 그녀였지만 토토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을 바라 보는 주위의 눈은 그리 곱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화려한 남성 편력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그녀와 토토가 사귄다는 소문이 나자마다 토토에게는 한 장의 편지가 날아왔다고 합니다.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 편지에서는 토토에게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하라고 하면서 그녀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여인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귀는 동안에도 두 사람 모두에게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어느 날 밤 토토와 헤어진 릴리아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금방 당신 집을 나간 토토가 자기 집으로 간 걸로 믿으시오? 착각하지 마시오." 이 전화 내용은 그 날 밤 내내 그녀의 귓가에 남아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그녀의 사랑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주위의 방해꾼들때문이었을까요? 토토와 함께 지내기 위해 자신의 공연 활동까지 포기했던 그녀는 점점 더 토토에게 집착하게 되었고 토토에게 접근하는 다른 모든 여자들을 질투하게 되었습니다. 배우라는 직업 때문인지는 몰라도 토토 주위에는 언제나 여인들이 있었고 릴리아나는 그것을 두고 보기가 힘들었지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토토는 그녀에게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토토는 그들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에 있는 극장과 장기 공연 계약을 맺으면서 그녀의 곁을 떠납니다.
이 뜨거웠던 사랑은 결국 릴리아나가 자살을 하면서 끝이 나는데 토토에게 보내는 유서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축복받지 못 한 인생에 당신이 보내준 미소가 고마워요. 다시는 다른 남자들을 바라보지 않을거예요. 당신에게 그것을 약속했었고 지금도 그것을 지킵니다."
이 사건은 당시로는 엄청난 스캔들이었다고 합니다. 전 이탈리아의 신문에 보도가 되었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토토의 유명세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일에 충격을 받은 토토는 한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슬품에 잠겨 있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그녀의 시신을 나폴리에 있는 데쿠르디스 가문의 예배당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로부터 몇 년 후 토토는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의 이름을 릴리아나라고 지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과거의 연인을 기억하려는 의미였을까요? 그렇다면 그의 아내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 다음 글에서 토토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래의 사진은 1950년 경에 찍은 토토와 그의 딸 릴리아나 입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한 번은 보셨을 고전 영화 중의 하나가 주세뻬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감독의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일 것입니다. 엔니로 모리코네의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영화에 대한 꿈을 가진 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지지요.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 중에는 영화를 너무 열심히 보아서 그 속에 나오는 대사와 자막까지 다 외우는 한 중년의 아저씨가 있습니다. 콧수염이 다 젖도록 눈물을 흘리며 영화 속의 대사를 따라 하면서 영화를 보던데요. 제가 대사를 외울 정도로 열심히 본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지금도 이 영화의 주제 음악을 들으면 왜 그리 슬픈지요. 그리고 그럴 때면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마음 속에 차곡 차곡 쌓이는 느낌이 듭니다.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여러 장면들을 기억하실텐데요.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죽은 알프레도가 이제 중년이 된 토토에게 준 선물을 기억하실 겁니다. 마을 신부님의 '검열'에 의해 삭제된 키스 장면만을 모아서 편집한 짧은 그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 화면을 보고 있는 주인공 토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수많은 잘려나간 키스 장면들 속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잊혀진 사랑이 하나 하나 지나갔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한 번 아래의 클립을 보십시오.
영화를 보고 싶지만 이미 만원이 되어 버린 극장에 들어갈 수 없어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을 위해 알프레도는 광장의 벽에 화면을 비춰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영화'라는 매체의 모든 것이 이 짧은 장면에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영화, 그리고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며 그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영화의 모습이 그대로 이 장면에서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냐며 궁금해 하는 토토에게 "네 귀는 내 말을 못 믿지만 네 눈은 믿게 될 거라" 며 알프레도는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주문을 웅얼거립니다. 그리고 알프레도의 주문과 함께 벽을 타고 화면이 흘러 광장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정말 마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광장으로 흘러갔던 그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그렇게 사람들이 보고 싶어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영화 속에서 광장으로 흘러가던 또 다른 영화, 그리고 그 영화의 주인공이던 또 다른 토토(Toto')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그 장면에서 광장으로 흘러가던 영화는 1949년에 만들어진 "비주의 소방관(I pompieri di Viggiu, '비주'는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이름입니다.)" 이라는 영화입니다. 아래의 링크를 따라가시면 시네마 천국에서 잠깐 나왔던 그 장면의 클립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장면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출연한 연극의 한 장면인데 질투심 많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아내를 따라다니다가 결국 아내의 옷 가게에 발이 묶여 남편 앞에서 마네킹 행세를 해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장면 링크)
이 영화의 주인공은 "토토(Toto')"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배우이자 작곡가 그리고 시인이기도 한 안토니오 데 쿠르티스(Antonio De Curtis, 1898-1967)입니다. 영화 시네마천국에 나온 주인공 살바토레의 극 중 예명이 이름도 토토였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1928년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그를 법적인 아들로 인정할 수 있었고 아버지인 주세뻬 데 쿠르티스 후작이 세상을 떠나면서 토토는 아버지의 모든 작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작위를 포함한 그의 공식적인 이름은 " Antonio Focas Flavio Angelo Ducas Comneno De Curtis DiBisanzio Gagliardi, Imperial Highness, Palatine Count, Knight of the Holy Roman Empire, Exarch of Ravenna, Duke Macedonia and Illyria, Prince of Costantinople, Cilicia, Thessaly, Pontus, Moldavia, Dardania,Peloponnesus, Count of Cyprus and Epirus, Count and Duke of Drivasto and Durrës " 입니다.(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로 번역한 것을 올립니다.) 이 정도 되면 본인도 외우기 힘든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비하면 배우로서 그의 예명인 토토(Toto', 시네마 천국에서처럼 두번째 '토'에 강세가 붙습니다. 한 번 발음해 보십시오.재미있습니다.)는 정말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은 동네 극장에서 공연하던 연극에 관심이 있었고 15살 때 벌써 지역에서 활동하던 작은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못 마땅해하던 어머니와의 충돌을 피해 16살이 되던 해에 군대에 갔다고 합니다. 1차 대전이 종전되고 나폴리로 돌아온 그는 극장 무대를 통해 연극과 코미디를 선보이며 서서히 이름을 얻어 갔습니다. 특히 미리 준비된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하던 코미디 쇼에 능했다고 하는데 1930년대에 이르면 자신의 극단을 이끌고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배우로서 명성을 얻어가던 토토는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들과 관련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고 하는군요. 여성들은 유머가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것이 이유인지는 몰라도 토토는 늘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본인 역시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 했다고 하는군요. 그러한 그의 사랑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최초의 사건이 1920년대 말에 일어났습니다.
1928년 경에 토토는 짧지만 정말 정열적인 사랑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 해에 토토는 배우이자 카바레의 가수로서 활동하던 릴리아나 카스타뇰라(Liliana Castagnola)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녀는 결코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온 팜므 파탈(femme fatale *적절한 한국어 표현을 찾다 보니 "그 여자는 살이 세다" 라는 표현이 있더군요.^^)이었습니다.
전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인기 배우로서 언제나 그녀 곁에는 부유한 귀족이나 정치인들이 떠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서는 그녀 때문에 남자들 사이에서 결투가 벌어져 한 사람이 죽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그녀는 프랑스에서 추방되기도 했고 또 그녀의 사랑을 호소하던 열렬한 추종자가 그녀에게 총을 쏘고 자신은 자살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녀가 나폴리의 한 극장에 토토가 출연한 공연을 보러 왔습니다. 그녀가 젊고 열정적인 배우, 토토의 연기에 몰입하고 있을 무렵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던 토토는 객석에 있던 아름다운 그녀를 의식하게 되었고 보는 즉시 사랑에 빠집니다.

무대를 벗어난 사석에서 토토는 언제나 말끔한 최고급의 정장을 즐겨 입었고 당당하면서고 유머러스한 매너를 가진 신사였다고 합니다. 귀족 가문의 후예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지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무도 없는 극장에 그녀만 객석에 앉혀놓고 토토가 무대에 올라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독백을 했다고도 하더군요. 그 정도면 사랑이 불타오를 조건은 충분히 갖춰진 셈이겠지요. 전유럽에서 권세있고 재력있는 귀족이나 정치인들만 상대하던 그녀였지만 토토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을 바라 보는 주위의 눈은 그리 곱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화려한 남성 편력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그녀와 토토가 사귄다는 소문이 나자마다 토토에게는 한 장의 편지가 날아왔다고 합니다.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 편지에서는 토토에게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하라고 하면서 그녀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여인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귀는 동안에도 두 사람 모두에게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어느 날 밤 토토와 헤어진 릴리아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금방 당신 집을 나간 토토가 자기 집으로 간 걸로 믿으시오? 착각하지 마시오." 이 전화 내용은 그 날 밤 내내 그녀의 귓가에 남아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그녀의 사랑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주위의 방해꾼들때문이었을까요? 토토와 함께 지내기 위해 자신의 공연 활동까지 포기했던 그녀는 점점 더 토토에게 집착하게 되었고 토토에게 접근하는 다른 모든 여자들을 질투하게 되었습니다. 배우라는 직업 때문인지는 몰라도 토토 주위에는 언제나 여인들이 있었고 릴리아나는 그것을 두고 보기가 힘들었지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토토는 그녀에게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토토는 그들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에 있는 극장과 장기 공연 계약을 맺으면서 그녀의 곁을 떠납니다.

이 사건은 당시로는 엄청난 스캔들이었다고 합니다. 전 이탈리아의 신문에 보도가 되었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토토의 유명세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일에 충격을 받은 토토는 한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슬품에 잠겨 있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그녀의 시신을 나폴리에 있는 데쿠르디스 가문의 예배당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로부터 몇 년 후 토토는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의 이름을 릴리아나라고 지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과거의 연인을 기억하려는 의미였을까요? 그렇다면 그의 아내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 다음 글에서 토토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래의 사진은 1950년 경에 찍은 토토와 그의 딸 릴리아나 입니다.





덧글
케야르캐쳐 2008/06/04 12:04 # 답글
우와.. 정말 소설을 읽는 듯 하네요.. 다음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 릴리아나의 유서가 참 가슴아프군요.
Clio 2008/06/04 12:15 #
2편도 마저 올렸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시길...^^
behappy 2008/06/04 12:52 # 답글
" 아주 옛날에 국왕이 연회를 열었는데국내의 미인들은 모두 초대를 받았지.
그런데 국왕의 호위병사가 공주가 지나가는 걸 보았어.
미인 중 공주가 제일 예뻤고 병사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지.
하지만 공주와 일개 병사의 신분 차이는 엄청났지.
어느날 드디어 병사는 공주에게 말을 걸었어.
공주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이야.
공주는 병사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
공주는 병사에게 말했지.
그대가 100일 밤낮을 내 발코니 밑에서 기다린다면 기꺼이 그대에게 시집을 가겠어요.
병사는 쏜살같이 공주의 발코니 밑으로 달려갔어.
하루, 이틀, 10일 20일이 지났어.
공주는 창문으로 줄곧 봤는데
병사는 꼼짝도 안 했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었지.
새가 똥을 싸도 벌한테 쏘여도 움직이지 않았어.
그리고…
90일이 지나자 병사는 전신이 마비되고 탈진 상태에 이르렀어.눈물만 흘릴 뿐이었지.
눈물을 억제할 힘도, 잠을 잘 힘도 없었던거야.공주는 줄곧 지켜 보았어.
드디어 99일째 밤.병사는 일어서서 의자를 들고 가버렸어 "
" ?!… 마지막 밤에요 ? "
" 그래. 마지막 밤에! 이유는 나도 모르니 묻지 말아. "
" 병사와 공주 얘기 하신 것 기억 나죠?
… 왜 병사가 마지막 날 밤에 떠난지 알 것 같아요.
하룻밤만 참았으면 공주와 결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일 공주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었겠죠.그는 아마 죽었을 겁니다.
그래서 99일째 밤에
공주가 자신을 기다렸다는 환상을 품고 떠난 겁니다. "
" 너도 그 병사처럼 떠나렴. 이곳은 몹쓸 곳이야…
여기에 사는 동안은 여기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지.변하는건 아무 것도 없어.
그러나 2년 정도 떠나있으면.변한 것을 느끼게 되고,
그다지 보고 싶은 사람도 없어지게 되지.
한 번 이곳을 뜨면 아주 오래 있다 와야 해.
그러다 귀향을 하면 친구들과 정든 땅을 느낄 수 있어.
지금의 넌 무리야 넌 나보다도 앞을 못 봐 "
" 누구의 대사죠? 게리 쿠퍼? 헨리 폰다? "
" 아니… 누구의 대사도 아냐… 내 대사야.
인생은 네가 본 영화하곤 틀려.인생이 훨씬 힘들지.
로마로 떠나! 넌 아직 젊고 앞날이 창창해!
난 늙었어. 너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아.
네 소문을 듣고 싶어…
Clio 2008/06/04 22:36 #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였지요. 올려 주신 글을 읽으면서 토토와 알프레도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사은 2008/06/04 18:41 # 답글
Clio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영화와 현실이 합쳐지고 엮이는 그 곳은 어쩌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의 삶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헐리우드의 배우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지만, 토토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영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던 배우들의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잘 읽었습니다. :)
Clio 2008/06/04 22:43 #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그 줄거리와 배우들에게 영향을 받지만 실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배우 자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음악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알려지는 외국의 영화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어서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정말 훌륭한 영화들과 배우들은 미처 소개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구요. 블로그가 그런 작품들을 소개하는 통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은님께서도 종종 블로그에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 해 주시지요. 그 흉내를 한 번 내 봤습니다.^^
Signifie 2008/06/04 20:41 # 삭제 답글
릴리아나에게는 토토가 오히려 옴므 파탈 (homme fatal)이었네요. 극적인 사랑에 매력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 결말이 너무 파괴적인 것 같아요. 꼭 자동차 사고처럼 절대로 예측할 수 없고 큰 대가를 치뤄야 하고... 그래서 꿈만 꾸지요. 꿈꾸는 일에는 값을 치루지 않아도 되니까요.
Clio 2008/06/05 00:10 #
릴리아나의 입장에서는 "옴므 파탈 "이라는 말도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릴리아나는 자신에게도 위험한 진정한 팜므 파탈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 하지만 꿈만 꾸기에는 너무 인생이 짧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만일 그런 사랑이 다가 온다면 한번 부딪쳐 보는 것도 어떨지... 몰론 치뤄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만... 언젠가 제가 말했듯 저는 구제 불능의 낭만주의자라서요.. ^^
kristine 2008/06/05 18:29 # 답글
이 영화 아직도 생각할때마다 저를 눈물하게 합니다.토토가 집에 와서 누군가가 죽었다고 옆에 있는 사람이 이야기 하자.... 그를 떠올리는 장면,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 그리고 어린시절의 사랑 그리고 알프레도가 눈을 잃는 장면 그리고 로마로 떠나서 고향으로 오는 장면 모두.... 여전히 저를 눈물나게 합니다. 그 음악도 참 좋아했는데.... 지금 제 씨디사이에는 없네요. 아주아주 오랫동안 좋아하던 영화 그러나 잠시 잊었던 영화입니다. cinema paradiso....
Clio 2008/06/06 06:06 #
이 영화를 볼 때 마다 저는 늘 어린 시절 제 고향에 있던 극장을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비슷한 모습들이 벌어지곤 했지요. ... 첼리스트 요요마가 이 영화의 주제 음악을 연주한 것이 있는데요. 들을만 합니다. 물론 음악은 여전히 슬픕니다.
2008/06/06 07:5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Clio 2008/06/07 07:46 #
몇 년 전 출판되었던 April Blood 표지의 그림 보다는 훨씬 잘 생긴것 같더군요. 물론 그림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는 전자가 훨씬 더 강합니다만.. ^^
julia 2008/06/07 11:00 # 답글
이 글을 읽으니 엔리오 모리꼬네 음악이 생각나네요. 시험 끝나면 다시 한 번 봐야겠습니다. 서울에선 '미션'이 단관극장 2군데에서 재개봉한다는 소식이 있네요^^ 아직 못 본터라 어찌나 반갑던지..엇그제 DDC 시험공부하다가 멜빈 듀이가 clio님 계시는 Albany에 있는 뉴욕주립도서관 관장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연인가요?ㅎㅎ 그거 보고 clio님 생각나서 한번 들렸습니다~ 그나저나 뉴욕 주립도서관 한 번 가보고 싶네요-_ㅠ
Clio 2008/06/08 02:13 #
미션도 좋지요. 역시 엔리오 모리코네의 오보에 음악이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 뉴욕주립도서관의 직원 구역에는 듀이의 큰 초상화가 걸린 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0층이 넘는 큰 건물안에 뉴욕 주 아카이브와 박물관이 같이 들어서있지요. 언제 한 번 포스팅을 해야겠군요. 시험 잘 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