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에서 르네상스 시기는 전문적인 역사학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에 등장하여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수많은 예술 작품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대가들의 예술 작품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해 준 부유한 상인이나 정치가, 군인, 종교인등이 있었지요. 그러한 사람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수많은 르네상스의 예술 작품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의 유력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이었던가요? 시오노 나나미가 쓴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지아에 대한 책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르네상스 시기의 여러 유력한 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오노 나나미가 소개한 이들 외에도 르네상스 시기의 위대한 예술가들이나 피렌체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Lorenzo Medici)와 그의 가문에 대한 많은 책들도 출판되었습니다.
특히 로렌조 메디치와 그의 가문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요. 그의 일생을 다루는 여러 책에서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사건이 하나 있지요. 젊은 로렌조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를 암살하려 시도한 파찌 가문의 암살 사건은 이미 여러 책에서 다루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사건을 계기로 로렌조 메디치가 권력을 잡아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라우로 마르티네즈 교수의 April Blood 가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 이라는 한 편의 추리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번역이 되기도 했지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본 책이 한 권 출판되었길래 소개 드리려 합니다. 로마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에서 르네상스 시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마르첼로 시모네따(Marcello Simonetta)라는 학자가 쓴 Montefeltro Conspiracy 라는 책인데요. 역사책이기는 하지만 전문적인 학술서적처럼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이 아니라 추리 소설을 읽듯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시모네따는 당시에 나온 각 종 기록들을 통해 파찌 가문의 암살 기도 사건과 관련된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정치 세력들의 이해 관계를 아주 흥미롭게 추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 세력 가운데에서도 특히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인 우르비노의 공작이었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의 역할에 주목합니다.
이 책은 1476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밀라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밀라노를 지배하고 있던 스포르짜 가문의 갈레아쪼 마리아 스포르짜(Galeazzo Maria Sforza)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 미사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교회에서 암살을 당합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큰 축의 하나가 사라진 것이지요. 이 사건으로 인해 정치적인 위기가 고조되었고 교황청, 나폴리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 우르비노 공작,그리고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등 이탈리아 반도의 정치 세력들은 자신의 입지를 넗히고 상대방을 제어하기 위해 그리고 또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게 됩니다. 파찌 가문의 암살 기도 사건 배후에는 이러한 당시의 정치 상황이 연결되어 있지요. 손가락이 근질근질^^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내용을 다 이야기하면 나중에 책을 읽으실 분들이 재미없으니 이 책에서 특이한 점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이 책의 저자인 마르첼로 시모네티는 예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지도 교수로부터 스포르짜 가문이 다스리던 밀라노에서 총리으로서 수 십 년간 행정을 맡아온 치꼬 시모네따(Cicco Simoneta) 에 대한 연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실제 치꼬 시모네따는 마르첼로 시모네따의 선조였다고 하는군요. 다행히 예일 대학 도서관에는 마르첼로의 지도교수가 유럽에서 구해온 수 천장의 르네상스 시기 필사본들이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행정 문서와 편지,계약서 등 치꼬 시모네따가 남긴 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그 기록들을 보며 연구를 하던 마르첼로는1476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갈레아쪼 마리아 스포르짜가 암살된 후 사실상 밀라노 통치의 전권을 맡게된 치꼬 시모네따에게 우르비노의 공작인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가 보낸 여러 장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1478년 경에 보낸 한 통의 편지 속에서 그 해 4월에 피렌체에서 있었던 파찌 가문의 암살 기도 사건에 대한 공작의 배후 개입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을 발견합니다. 물론 우르비노 공작이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오랫 동안 역사가들에게 알려져 왔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습니다.
어쨌든 공작이 이 사건에 관여한 것같은 의심을 주는 이 편지에 관심을 가진 마르첼로는 이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수 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우르비노에있는 한 아카이브에서 우르비노 공작이 1478년 2월, 그러니까 파찌 가문의 암살 기도 사건이 있기 2 개월 전에 로마에 있는 자신의 대사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는 당시의 많은 외교 문서들이 그랬던 것처럼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암호로 씌여 있었지요. 하지만 마르첼로의 선조인 치꼬 시모네따가 남긴 일기 중에 이러한 암호 편지를 해독하는 방법에 관한 짧은 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르첼로는 그 글을 바탕으로 우르비노 공작의 암호 편지를 해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에 대해 편지의 원본을 보여주면서 아주 흥미롭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과연 마르첼로는 이 편지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책을 읽어 보시면 그가 발견한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있습니다.^^
역사는 이래서 재미있습니다. 새로운 자료가나타나면서 언제나 새로 쓰일 수 있는 것이 역사이지요. 때로는 그것이 과거에 알고 있던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는 자료일일 수도 있고그것을 더욱 보충해 주는 자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들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또다른 시각에서 과거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마르첼로 시모네따의 이 책은 막연히 의심해 오던 것을 확실하게증명해 준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한국에 번역이 되어도 많은 독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르네상스 시기의 유명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가 1472년에 그린 우르비노의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그의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짜(Battista Sforza)의 초상화입니다. 우르비노 공작은 젊은 시절 사고로 오른 쪽 눈을 잃고 심한 흉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초상화는 얼굴의 왼 쪽에서 보고 그린 프로파일 형태의 초상화들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이 책의 표지에서 사용된 그림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그림을 반으로 갈라 귀와 뒤통수가 있는 부분이 앞 표지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절반이 뒷 표지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덧글
에바 2008/07/08 10:59 # 답글
와아, 재미있어 보여요! 제가 좀 서양 중세 덕후(..)인지라;ㅅ;어느 한 시절에 횡행했던 음모가 아주 먼 후대에 입증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나봐요.
Clio 2008/07/09 11:06 #
종종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기록들이나 증언이 후대에 알려지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물론 기록이 어떤 방법으로든 보존이 되었다는 전제하에서 그렇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이런 기록들을 없앤다면 문제는 달라지지요. 하지만 완전히 기록을 지운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함부르거 2008/07/08 13:38 # 답글
우피치 미술관에서 위 초상화 원본을 봤었는데 흉터가 없었어도 미남으로 불릴 일은 없는 사람이었죠. 로렌초 디 메디치와 마찬가지로. ^^;;;
Clio 2008/07/09 11:07 #
그렇지요.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준 화가가 그린 것이 저 정도이면 실제 얼굴은 어떨지 참... 궁금합니다.^^
kristine 2008/07/10 11:13 #
로렌조가 어때서...
토로씨 2008/07/08 15:41 # 삭제 답글
귀와 목덜미만 보이는 레이아웃이 훨씬 신비스롭고 매력적으로 보입니다.번역본을 기다릴렵니다. (후아. 영어공부를 하는 게 더 빠를려나)
BoHemiAN 2008/07/09 10:39 #
번역책에 대한 신뢰와 전체적인 번역률이 낮은 한국에서... 역시 무리일것같습니다 ㅎㅎ 얼른 공부를 하심이..
Clio 2008/07/09 11:09 #
한 번 영어 원본을 읽어 보십시오. 책이 딱딱하거나 어렵게 쓰인 것도 아니지만 관심이 있는 주제라면 영어라도 다른 책 보다 훨씬 쉽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Clio 2008/07/09 11:11 #
BoHemiAN 님 / 문장 자체는 그리 어려운 문장이 아니지만 당시 역사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번역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영어로 번역이 된 사료들도 가능하다면 이탈리아어 혹은 라틴어 원문과 대조하면서 번역을 해야 제대로 의미를 살린 번역을 할 수 있을것 같더군요. ... 이래저래 번역은 참 어렵습니다.
현재진행형 2008/07/08 22:00 # 답글
역시, 역사란 흥미진진합니다. ^^
Clio 2008/07/09 11:11 #
흥미진진한 가운데 또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주지요.
kristine 2008/07/09 08:31 # 답글
오늘 borders갑니다.
Clio 2008/07/09 11:12 #
그 짧은 한 마디에 참 많은 의미가 담긴 것 같습니다. ^^
BoHemiAN 2008/07/09 10:36 # 답글
한국 도서관에서 읽으려면.. ㅠㅜ 역시.. 사야하나..(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근데 왠지 어휘가 딸려서 읽기 힘들수도 있겠습니다.)
Clio 2008/07/09 11:23 #
저자가 이탈리아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일반 대중들을 생각하고 쓴 책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휘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더군요. 종종 원사료를 영어로 번역해 놓은 부분에서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만 당시 역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 아래의 링크에 가시면 본문 중 일부를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http://www.randomhouse.com/catalog/display.pperl?isbn=9780385524681&view=excerpt
kristine 2008/07/10 12:34 # 답글
클리오님... 서점에 갔는데 책이 좀 비싸고 (30불미만이지만) 책이 얇더군요. 고민중이에요. 내일 borders에서 오는 쿠폰 기다려볼까 생각중이기도 하고....그러고 있어요. 로렌조 멋진데 다들 넘해요
Clio 2008/07/11 07:09 #
그렇죠? 책이 상당히 얇습니다. 그리고 각 주를 단 방식도 특이하게 본문에는 전혀 각 주 번호를 달지 않고 책 끝에 본문의 해당 문장과 각 주 내용을 실어 놓았더군요. 일반 독자들을 위한 배려이겠지만 좀 불만이었습니다. ... 시각의 차이겠지요. 저도 크리스틴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멋지죠. ^^
kristine 2008/07/10 12:40 # 답글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얇은 역사책은 좀 뭔가 좀 다른 느낌이 들어요. 마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씨디가 기본이 2개인데 갑자기 한개짜리 전곡씨디가 눈에 보였을때 드는 느낌처럼요...
Clio 2008/07/11 07:06 #
상당히 고전적인 역사책들을 많이 보신 것 같습니다.^^ 기번 경의 '로마 제국 흥망사' 같은 책들이 대표적인' 두꺼운 역사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은 300 페이지 미만의 짧은 책들도 많이 나오지요. .... 그나저나 300페이지 미만이 짧다고 해도 되나요?^^
Eiren 2008/07/20 05:53 # 답글
Clio님의 추천 덕분에 interlibrary loan을 통해 빌려서 어젯밤에 다 읽었습니다. 자료를 많이 활용했다고 꼭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닌데, 이 책은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짜임새있게 책을 잘 구성했더군요. 중간중간 나오는 화보들이 컬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요^^;; 모쪼록 재밌는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전에 벨린다 스탈링의 도라 데미지의 일기 소개해주신 것도 잘 읽었답니다-.
Clio 2008/07/21 10:44 #
감사합니다.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하고 계시는군요.^^ ... 이 책은 일반적인 학술서적돠는 다른 방식으로 자료를 소개하고 있지요. 각 주를 그런 식으로 다는것이 요즘 유행인지는 몰라도 다른 책에서도 그런 방식의 주석이 보이더군요.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또 다른 책들을 찾아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