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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지오(Adagio)
1945년 2월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럽 대륙에서는 몇 년째 이어지고 있던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러 독일의 패배가 눈에 보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여력을 쏟아 연합군에 대항하고있던 독일군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미국와 영국의 공군은 독일의 군수 시설이 있고 또 교통의 요지라고 판단한 드레스덴(Dresden)이라는 도시를 폭격하기로 결정합니다. 2월 13일에서 15일까지 이어진 이 폭격에서 연합군은 1,300여대의 폭격기를동원해서 약 4,000톤의 폭탄과 화재를 일으키는 소이탄을 투하했습니다. 그 결과 약 34 평방 킬로미터의 도시 중심부 전체가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폭격은 원래의 계획과는 달리 독일의 교통 시설이나 군수 공장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 했다고 합니다. 대신 도시의 중심지에 폭탄이 투하되면서 엄청난 민간이 사상자가 생겼고 이 도시의 오래된 문화 유산들이 파괴되는 참상을 나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정확한 사망자의 숫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24,000 에서 40,000명 사이의 사망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물론 십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처럼 사망자의 숫자조차도 정확하게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가 심했던 거지요. 그리고 이처럼 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입은 피해 때문에 이 폭격은 그 후 두고 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폭격을 통해 피해를 입은 것은 사람들의 생명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작센주의 수도로서 '엘베강의 피렌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이 도시와 함께 해왔던 수많은 건물과 여러 문화 유적도 같이 파괴가 되었지요. 그렇게 파괴된 것들 중에는 1556년에 세워져서 예술과 인문학 등에 걸쳐 귀중한 책과 문서들을 소장하고 있던 작센 주립도서관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안에 있던  수 많은 책과 귀중한 문서들도 전쟁의 참화를 비켜가지 못 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2차 대전이 끝난 드레스덴에서 시작됩니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이 나고 폐허로 변한 드레스덴에 한 사람의 이탈리아인이 찾아 옵니다. 레모 지아조토(RemoGiazzotto, 1920-1998) 라는 이 사람은 밀라노 출신의 음악학자로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반에 활약한 베네치아 출신의 음악가인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1750)의 전기를 집필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아조토는 알비노니의 전기와 함께 알비노니가 남긴 작품들의 목록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었는데 알비노니가 남긴 작품은 물론이고 그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드레스덴에 있는 작센 주립 도서관에 오랫 동안 보관되어 있었지요. 바로 그 이유때문에 지아조토는 전쟁이 끝나자 마자 드레스덴에 왔던겁니다. 그런데 그의 눈 앞에 남은 것은 폐허로 변한 도서관 건물과 다타고 재만 남은 책들이었습니다.

비록 작센 주립 도서관에서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중요한 책과 문서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지만 지아조토가 찾던 알비노니의 작품들과 그의 행적을 알려주는 많은 문서들은 1945년 2월까지 여전히 도서관에 남아 있었고 폭격을 피해가지 못 했다고 합니다. 혹시 미처 타지 않고 남아 있는 문서들이 없을까 생각하고 도서관의 잔해를 뒤지던 지아조토는 타다 남은 악보를 한 장 발견합니다. 그나마 그 한 장의 악보도 대부분은 타 버리고 베이스 라인의 음표 몇 개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아조토는 이것이 알비노니가 남긴 삼중주 소나타의 일부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타다 남은 그 악보를 바탕으로 한 편의 느린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1950년대 말에 발표된 이 음악은 비록 지아조토가 작곡한 곡이었지만 알비노니의 음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지아조토 역시 알비노니에게 바치는 음악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름을 구태여 내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폐허로 변한 드레스덴과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알비노니의 작품을 비롯해서 파괴된 수 많은 귀중한 문화 유산들에게 바치는 조곡처럼 이 음악은 애절하고 또 장엄했습니다. 파괴된 드레스덴을 보면서 지아조토가 느꼈을 슬픔과 애통함이 음악 속에 여실히 묻어납니다.

과연 이 작품의 진정한 작곡가가 누구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기도 했고 불타다 남은 알비노니의 악보와 관련된 이야기에대해 진위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그 선율의 아름다움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알비노니의 "현과 오르간을 위한 G 단조 아다지오"로 알려진 이 음악은 요즘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음악이지요. 클래식 연주자들 뿐만 아니라 잉위 맘스틴 이나 라라 파비안, 그리고 사라 브라이트만 같은 대중 음악 연주자들도 연주하였고 또 가사를 붙여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클래식 연주곡을 연결해 봅니다.

이처럼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그 후 또 다른 전쟁의 와중에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으로 사용됩니다. 이제는 1992년의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던 사라예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언젠가 소개해드렸던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에서와 같이 당시 사라예보는 몇 달째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의  위협 아래에 있었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언덕에 자리를 잡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사살하던 세르비아계 저격수들 때문에 사라예보 시민들은 언덕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 지대만을 찾아서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식량과 물을 구하기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1992년 5월 27일 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총을 피해 건물 사이로 움직이며 하루하루를 이어갈 빵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한 빵가게에서 빵을 만들어 판다는 소식이 들렸고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그 가게 앞에서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민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 왔습니다.

빵을 사서 그 동안 굶주리고 있던 가족들과 나눌 생각을 하며 줄을 서 있던 사람들에게 날아온 포탄은 그 자리에서 22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또 100여명의 부상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멀리 언덕 위에서 날아온 이 포탄은 총을 든 군인들과 그저 하루 하루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빵을 생각하며 또 하루를 넘길 희망에 부푼 사람들이 서있던 거리는 순식간에 끊어진 팔 다리와 흘러내린 피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가득찬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러한 참상이 사라예보의 시민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죽고 다치는 사람들의 숫자에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는 일이었지요. 천만 다행으로 오늘은 그 와중에서 살아 남아 집으로 돌아가지만 내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내일은 다른 거리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 이번에는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있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5월 27일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완전히 부서진 그 거리에 그 다음날 한 사람의 첼리스트가 찾아 왔습니다. 비록 남루했지만 무대에 선 사람처럼 검은 연주복을 입고 큰 첼로 케이스와 연주용 의자를 들고 그 자리에 나타난 이 사람은 의자를 내려 놓고 첼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듯 느리고 장엄한 그러면서도 애절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비노니의 G 단조 아다지오였지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lovic)라는 이 첼리스트는 전쟁 전까지 사라예보 필하모닉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쟁과 함께 음악 활동을  못하게 된 스마일로비치는 사라예보의 다른 시민들처럼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2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빵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목숨을 잃은 그 사건은 그에게 전쟁의 비극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생각하게 했고 그런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생각한 것은 22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을 기억하며 22일 동안 첼로를 연주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언제 포탄이 또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표적을 찾아 헤메는 저격수들의 총구 앞에서 그는 매일 같이 22일 동안 그 자리에 나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했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것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저격수들과 포탄의 위협 때문에 열린 거리에 나오지 못 하고 근처의 건물 아래에 몸을 숨긴 채 첼로로 연주되는 아다지오를 들으며 슬픔을 달래고 또 평화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스마일로비치 1993년 사라예보를 떠나 북아일랜드로 옮겨갈 때까지 사라예보의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첼로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또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전을 반대한 가수로서 유명한 존 바에즈는
스마일로비치의 행동에 용기를 얻어 1993년 사라예보를 방문하고 시민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스마일로비치를 만나기도 했지요. 그녀 뿐만 아니라 영국의 작곡가인 데이비드 와일드(David Wilde)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Cellist of Sarajevo)' 라는 무반주 첼로곡을 작곡해서 전쟁과 파괴 그리고 죽음의 비극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습니다. 물론 스마일로비치의 용감한 행동에 대한 찬사도 들어있었겠지요. 그리고 1994년 맨체스트에서 열린 국제 첼로 페스티발에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첼리스트라 할 수 있는 요요마가 그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당시 연주 현장에 있었던 폴 설리반이라는 피아니스트는 아래와 같이 전합니다.(링크를 따라가시면 요요마가 연주하는 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링크된 음악은 미국에서만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링크를 찾아보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조용히, 그리고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음악은 시작되었고 그 음악은 웅성거리던 연주장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음악은 죽음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길한 메아리로 가득찬 어둡고 텅빈 우주를 만들어냈다.  음악은 서서히, 그러나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함치며 격렬한 열정으로 우리 모두는 사로잡아 갔고 마침내 죽음 직전의 공허한 마지막 한숨으로 변해갔다. 그리고는 다시 시작했던 그 순간처럼 고요함으로 돌아갔다.

연주를 끝내고도 요요마는 여전히 첼로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고 활을 든 그의 손도 여전히 첼로에 놓여있었다. 연주장에 있던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오랫 동안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소름끼치는 학살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그렇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는 연주장에서 요요마가 마침내 의자에서 일어나 관객석을 바라보면서 손을 뻗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 요요마의 손길을 따라 모든 눈이 모아졌고 그 손길이 부르는 사람이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바로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청중들은 표현할 길 없는 충격을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마일로비치는 요요마가 있던 무대 쪽으로 걸어갔고 무대에서 내려온 요요마는 통로로 내려가 활짝 열린 팔로 스마일로비치를 껴안았다.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모두 일어났고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치며 귀가 먹먹할 정도로 환호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러한 감동의 가운데에는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부드럽고 세련된 클래식 음악의 왕자로서 한 점의 빈틈없는 연주와 외모를 보여주었던 요요마가 있었고 그의 앞에는 사라예보에서 금방 빠져나와 여전히 얼룩투성이의 낡고 주름이 잡힌 가죽 점퍼를 입은
스마일로비치가 있었다. 그토록 많은 눈물에 젖고 고통과 상처에 지쳐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빗지 않은 긴 머리와 수염에 덮혀 있었다."

1993년에 사라예보를 떠난 
스마일로비치 자신에게 쏟아지는 국제적인 관심은 뒤로 한 채 북 아일랜드의 조용한 시골에 묻혀 음악을 작곡하고 첼로를 연주하는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그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일이 최근에 있었는데요. 캐나다 출신의 한 젊은 작가가 스마일로비치의 이야기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한 편의 소설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갈로웨이(Steven Galloway)가 쓴 "사라예보의 첼리스트(The Cellist of Sarajevo)"는 비극의 현장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한 첼리스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러나 매우 감동적으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는 가족들이 마실 물과 음식을 구하기 위해 저격수들의 총알이 날아드는 도시의 거리를 가로질러야 하는 사람들과 첼로를 연주하고 있는 첼리스트를 보호하기 위해 혹시 있을지 모를 적군의 저격수를 노리는 또 다른 저격수의 이야기 등, 전쟁의 참화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을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또 감동을 받은 소설입니다만 최근 전해지는 씁쓸한 이야기도 있더군요. 소설의 작가는 분명
스마일로비치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고 누구나 스마일로비치를 연상할 수 있는 등장 인물을 삽입하지만 실제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출판한 이후에도 스마일로비치와는 아무런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에 등장한 것을 알게 된 스마일로비치 매우 화가 난 상태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씁슬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참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한국에도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원문을 읽어 보시고 싶은 분들은 링크를 따라가십시오. 소설의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에는 1993년 존바에즈가 사라예보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그녀의 음악
"Stones in the Road" 를 소개합니다. 이 음악의 중간 부분에 첼로를 연주하는 스마일로비치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직업적인 고민입니다만 이 포스팅은 어디에 분류를 해야 할까요? 드레스덴의 폭격과 알비노니와 지아조토의 이야기, 그리고 사라예보의 전쟁 이야기가 있으니 '역사 이야기' 로 분류해야할까요? 아니면 음악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음악이야기'가 맞을까요? 그도 아니면 최근 신간을 소개했으니 '책 소개"에 들어가야 할까요? 이거 고민입니다.^^

** 이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와 참고한 자료들입니다.
by Clio | 2008/07/15 06:46 | 세상이야기 | 트랙백(1) | 덧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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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envy 하다님의 이글루 at 2008/07/27 18:36

제목 : 아다지오(Adagio)
아다지오(Adagio)베드란 스마일로치의 첼로연주와 존 바에즈의 노래와 영상을 볼 수 있네요.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오는..(트랙백 거는 방법 어찌어찌 알아 내어.. 흑.. 힘들다) ...more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07/15 07:44
이런사람이 있군요... 음악도 좋습니다. 아침부터 좋은 이야기 덕분에 잘 읽고 가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8/07/15 08:37
아침부터 듣기에 너무 슬픈 음악은 아니었지요?^^
Commented by 풀잎열매 at 2008/07/15 07:45
잘 보고, 잘 듣고 갑니다...눈시울이 좀 붉어졌...
Commented by Clio at 2008/07/15 08:37
감사합니다. 음악이 좀 그렇지요...
Commented by 카구츠치 at 2008/07/15 08:16
스마일로비치의 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얼마나 큰 위안을 얻었을까요.. 감동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7/15 08:38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요. 덧글을 보고 놀라서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스마일로치"라는 발음이 정확한 발음이더군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stonevirus at 2008/07/15 09:08
드레스덴과 사라예보는 제 5 도살장과 즐라타의 일기를 생각나게하는군요.
말이 안나올정도로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들임에도 불구하고, 절망과 슬픔이 깊을 수록 그 안에서 피어나오는 예술적 성취는 더더욱 높다는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7/15 09:42
그렇지요. ...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러한 예술 때문에 힘든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할 힘을 얻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nippang at 2008/07/15 09:33
음악과 함께 읽어내려가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카잘스의 '새의 노래'도 떠오르고. 마음을 울리는 좋은 글 감사히 읽고갑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7/15 09:44
좋게 읽어주시니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 카잘스의 '새의 노래'를 말씀하시니 잊고 있던 포스팅 거리가 또 떠올랐습니다.^^
Commented at 2008/07/15 09: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7/15 10:06
그렇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죄송해서 어쩌지요. 안내문을 걸어놓고 한 번 다시 찾아 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강설 at 2008/07/15 10:54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국내에도 책이 번역되서 들어오면 좋겠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8/07/16 09:12
어디에선가 번역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Timothy Wonil Lee at 2008/07/15 12:34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다시 들어보고 싶어졌네요.
그리고... 역시 어렵지만... 음악을 통해서 전하는 *역사이야기* 인듯 한데요. :-)
Commented by Clio at 2008/07/16 09:13
여러 사람이 다른 악기로 연주하지만 그 멜로디의 애절함을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음악역사이야기" 코너를 따로 만들어야 할까요?^^
Commented at 2008/07/15 12:4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7/16 09:16
'자극'이 되었다는 말씀이 참 듣기 좋습니다. 그런 식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은 싶은 것이 바로 제가 이 블로그를 만든 목적입니다. ...물론 10여년 전의 영상이지만 존바에즈(할머니)는 여전하시더군요. 최근에는 존바에즈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타리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polarnara at 2008/07/15 12:59
이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역사/음악/책 이야기 한꺼번에 잘 담아듣고 갑니다 :)
Commented by Clio at 2008/07/16 09:16
이야기 종합 선물 세트였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daybreaker at 2008/07/15 16:42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서관이라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과연 거기엔 어떤 책들이 있었을까 가끔씩 궁금해집니다.

음악도 단지 기교적으로 훌륭하다고 해서 감동을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 음악에 서려있는 감정과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는 거겠지요.
Commented by Clio at 2008/07/16 09:17
예 저도 궁금합니다. 과연 그 때의 사람들은 어떤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합니다. ... 동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음악을 만든 사람과 연주하는 사람, 그리고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감정과 생각의 교류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교는 나중의 일이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07/15 19:14
저는 슬프다기보다는 뭔가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껴서 그냥 좋다고 했는데, 슬픈느낌 받으신 분들이 많네요 'ㅅ'

언제 알바니 놀러가면 뵙고싶군요 'ㅅ'
Commented by Clio at 2008/07/16 09:19
슬프면서도 단순한 슬픔만이 아닌 더욱 큰 감정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 예,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한 번 꼭 놀러오십시오.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대도시와 비교해 보잘 것 없지만 나름대로의 멋이 있지요.
Commented at 2008/07/17 08: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7/17 14:01
그런 일도 종종있지요.^^ 올리실 글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Commented by kristine at 2008/07/18 09:21
좀 화가 나는 것 있지요... 어떻게 참고문헌도 없을까라는.... 마치 김밥에 단무지 빠진 것 처럼요....물론 책은 리턴 안합니다. 책 리턴 한두번 해봤죠. 주로 선물로 들어오는 책들... 리턴보다는 교환이구나...
Commented by Clio at 2008/07/18 10:47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교수님 한 분이 최근에 출판한 책을 한 권 주시면서 읽어보고 코멘트를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분이 보는 앞에서 책을 펴고는 뒤에 있는 참고문헌부터 읽었습니다. 전형적인 연구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이라고 웃으면서 놀리시더군요. 이것도 일종의 병이지요. 저도 참고문헌이 없는 책을 볼 때면 '픽션'인가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 그리고 도서관에 구입할 책을 선택할 때 특히 그 부분을 주목해서 보지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8/12/25 01:29
도이체 벨레(DW) 영어판 인터넷 웹사이트하고 슈피겔 영어판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올해 10월에 보도한 사망자 재추정치는 약 20000명 수준이더군요. 100000명 사망설은 근거가 더 희박해졌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2/25 07:09
그렇군요. 제대로 된 진실을 안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8/12/25 01:30
스마일로치/스마일로빅→스마일로비치!
Commented by Clio at 2008/12/25 07:08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주의입니다. 같은 이름을 한 글에서 두 가지로 표현을 하다니.. 도대체 뭐가 눈에 씌였던지..
Commented by 한상혁 at 2009/04/21 12:29
벅찬감동 형언할수없어 더욱 심금을 울리는군요 감사합니다 ...늘 알비노니 아다지오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그속에 아픈 역사를 않고 탄생했으니 이정도 마음을 울리지 않았을가 생각이 드내요 ...
Commented by Clio at 2009/04/22 02:45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지는 걸작은 없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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