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이글루스에서 보내 준 머그를 받고 나서 캠퍼스를 돌며 찍은 사진 중에는 제 책상 위에 있던 연필 꽂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신 이웃 중의 한 분께서 사진에 덧글을 달아주셨지요. 오늘 그 글에 답을 하다가 저의 연필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비록 컴퓨터를 이용해서 모든 작업을 하지만 여전히 저는 연필을 참 좋아합니다. 종이 위에 무엇인가 쓸 일이 있을 때는 대부분의 경우 연필을 사용합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세어 보니 40 자루 정도의 연필이 연필 꽂이로 사용하는 머그 안에 있더군요. 보통은 전기로 움직이는 연필깎이를 이용해서 한꺼번에 깎아 두고 한 두달을 씁니다.
다들 마찬가지이겠지만 제가 연필을 처음 잡아 본 것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였으니 연필을 사용한지도 꽤 오래 되었군요.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검은 색깔의 접고 펴는 연필깎이 칼을 이용했었지요. 직접 연필을 깎지 못 해 어른들이 대신해서 깎아 주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사용하기에 위험하기도 했겠지요. 그리고는 서서히 연필 깎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그 때는 그게 참 중요한 일이었나 봅니다. 어떻게 깎은 것이 제대로 깎은 연필인지 그림을 보고 고르는 시험 문제도 있었습니다. 물론 적당한 길이로 손에 잡기 좋을 만큼 여유를 두고 깎는 것이 제대로 깎는 것이라고 배웠지요. 그리고 연필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시험 문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종이와 연필이 이루는 각도가 그림으로 나오고 그 중 가장 올바른 것을 고르라는 그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손잡이를 돌려서 연필을 깎는 연필깎이가 처음 제가 살던 고향에 알려진 것이 초등학교 2-3학년 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동네에서는 처음 그 물건을 가진 아이들 중 하나였지요. (^^) 그러다보니 그 기계를 사용하려고 학교를 마치고 나서 저희 집에 찾아 오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처럼 한꺼번에 여러 자루를 가져와서 깎아 가곤 했지요. 그 옆에서 저는 한껏 뽐을 내며 그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종종 친구들은 기계에 손을 대지 못 하게 하고 제가 깎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때 학교에서는 물자 절약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예의 하나가 바로 몽당 연필이었습니다. 너무 짧아져서 사용하기 힘들어진 몽당연필을 다 쓴 볼펜의 자루에 끼워서 끝까지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는 모든 학생이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종종 필통 검사를 해서 그와 같은 몽당 연필을 가지고 다니는지 점검하기도 하셨는데 그것 때문에 멀쩡한 연필을 몽당 연필로 만들고 또 잘 사용하고 있는 볼펜의 심을 버리고 일부러 거기에 연필을 끼워서 가지고 다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샤프' 라고 불리는 기계식 연필이 등장했지요. 조금만 쓰다보면 끝이 뭉툭해져서 다시 깎아야하는 연필에 비해 샤프는 언제나 가느다란 심이 유지되어 깎을 필요가 없었지요. 그리고 연필로 쓴 굵은 글씨와 '샤프'로 쓴 가늘고 샤프한 글씨를 보면 후자가 훨씬 더 좋아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는 볼펜을 많이 쓰게 되어 자연스럽게 연필과는 멀어지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다시 연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30대가 넘어서입니다. 나무가 주는 따뜻함과 연필심이 종이 위를 지나갈때 나는 소리가 좋더군요. 그리고 연필을 금방 깎았을 때 나는 나무 냄새도 정겨웠습니다. 그 때 이 후로는 연필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오면서도 가져온 몇 자루의 한국 연필이 아직도 연필 꽂이에 들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연필은 저에게 필수품입니다. 간혹 펜을 사용하다 보면 책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겨 버리는 실수를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연필은 지울 수 있으니 참 좋지요. 그리고 아카이브나 도서관의 고서 열람실처럼 귀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에서는 아예 필기 도구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귀중한 자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길 위험을 줄이려는 목적인데 이럴 때도 유일하게 허용되는 것은 연필입니다.
좋은 목수는 연장 타령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연필로 한자 한자 적어가는 글과 컴퓨터 키보드를 이용해서 입력한 글이 과연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물론 동일한 내용을 적는 경우라면 차이가 없겠지만 한 가지 주제를 주고 그것에 대해 글을 적을 때 연필을 사용하는 경우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 같은 사람이 쓰더라도 다른 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아직 아날로그의 세계에 한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 나와 있더라도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종이의 느낌과 책에서 풍겨나오는 잉크의 냄새 그리고 페이지가 넘어갈 때 들리는 소리 때문에 여전히 책을 찾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연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물론 연필을 전혀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연필을 사용하며 글 쓰기를 익힌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좋은 필기 도구가 나왔더라도 여전히 연필에 대해 느끼는 아련한 추억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연필은 단순한 필기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종종 다른 필기 도구에 비해 연필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만년필이나 다른 종류의 펜처럼 호주머니에 꽂을 수 있는 다리가 달린 것도 아니다 보니 긴 연필을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고 처치 곤란일 때가 있지요. 그럴 때면 저는 연필을 귀 뒤에 꽂고 다닙니다. 그러다 필요하면 쓱....
주변에 연필이 있으면 한 번 손에 잡아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 메세지나 이메일이 아니라 연필로 편지를 한 번 써 보십시오. 아마 문자 메세지와는 다른 느낌이 드실 겁니다. 그리고 글을 한자 한자 쓰는 동안 내 글을 받을 사람과 글을 보내는 나 자신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래에는 제 책상 위에 있는 연필 친구들과 그 이웃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긴급용으로 사용하는 연필깎이들입니다. 둘 중 작은 놈은 한국에서 가져온 겁니다. 뒤집어 보면 "ㄷㄱ 문구센터"라는 스티커가 아직 붙어 있습니다.
잘 깎여져 있는 연필을 보면 뭔가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 책상 위에 있는 40 명의 친구들입니다. 이 중에서 지우개 없이 검은 꼬리를 가지고 있는 두 명은 한국에서부터 따라온 친구들입니다. 이제는 아까워서 쓰지 못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연필 중 상당수는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연필들입니다. 가져올 생각은 없었는데 나중에 사무실에 돌아와보면 연필이 제 주머니에 들어 있더군요. 가운데 있는 진한 파란 색깔의 연필은 워싱턴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이용자들에게 제공한 연필입니다. 한 번씩 갔다올 때 마다 제 주머니에 서 너자루씩 들어있더군요. 아마 연필들도 제가 자기들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나 봅니다.
도서관의 참고 봉사대에서도 연필과 메모지를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몽당연필들이지요. 골프연필이라고도 하는데 골프 치시는 분들이 게임을 하면서 점수를 기록하기 위해 주머니에 작은 연필과 메모지를 넣고 다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목록을 검색을 하고 간단하게 청구 기호 같은 것들을 메모하려는 이용자들을 위해 아래와 같은 몽당연필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무료지요.^^
* 7월 26일에 추가합니다.
1. 극악 님께서 올려주신 덧글에 너무 좋은 내용이 있어 본문에 옯깁니다.
" 이 글을 보니까 예전에 한 블로그에서 본 미국의 연필수집가 사이트가 생각나네요...
http://www.brandnamepencils.com/ 전 세계의 연필을 수집하더군요^^;"
한 번 가 보십시오. 전세계의 연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록 수는 적지만 우리 나라의 연필도 있더군요.
2. 방문하신 분들 중 한 분이 비밀 덧글로 질문을 한 가지 해주셨는데 이제 보니 지워지고 없군요. 하지만 질문은 기억하고 있어서 답을 드립니다.
가장 위의 사진에서 제 모니터에 나와 있는 그림은 화면보호기로 사용하고 있는 그림 중의 하나입니다. 네털란드의 화가인 피터 브뤼겔이 그린 "아이들의 놀이(Children's Game)"" 중의 한 부분입니다. 오랫 전에 포스팅 하려고 그림을 스캐닝 해 둔 후 아직까지 차일피일 시간만 미루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기회에 빨리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혹시 원본 그림이 궁금하시면 링크를 따라가서 큰 그림을 한 번 보십시오. 그리고 그 중에서 제 모니터에 나온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한 번 퍼즐 찾기 놀이를 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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