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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들고 읽는 책
1905년 2월16일에 발행된 뉴욕 타임즈 북리뷰에는 J.A. Judson 이라는 사람이 쓴 불만에 가득찬 글이 실려있습니다.  J.A. Judson 씨의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제본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누구라도 좋으니 왜 제대로 끝을 가다듬지도 않은 종이나 심지어 채 자르지도 않은 페이지를 그대로 둔 책을 만들어내는지 그 이유를 이성적이고 사리에 맞는 설명을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나는 바다 건너에서 넘어온 이런 속물적인 유행 때문에 종종 불쾌감을 느낍니다. 도대체 왜 이 따위 불편하고 쓸모없고 겉치레에 불과한 유행을 수입해 와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Judson 씨가 말하는 "끝을 가다듬지도 않은 종이나 심지어 채 자르지도 않은 페이지를 그대로 둔 책"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러합니다. "deckel edges and uncut leaves",  도대체 이것들이 무엇이길래 Judson 씨를 화나게 만들었을까요? 혹시 주위에 책이 있거든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한 번 들고 살펴보십시오.
수 백장의 종이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제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책에서 그렇게 제본한 부분을 우리는 '책 등'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책에서 책등을 제외한 책 배를 비롯한 나머지 세부분은 열려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책을 펼쳐서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페이지들을 하나 하나 넘겨 가면서 읽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책을 제본한 후에 최종적으로 절단기를 이용해서 나머지 세 면을 매끈하게 잘라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하는 인쇄와 달리 전문적인 인쇄소에서 책을 인쇄할 때에는 큰 종이에 여러 페이지를 한 꺼번에 인쇄합니다. 그리고나서 책을 제본하기 전에 그 큰 종이를 여러 차례 접습니다. 물론 이렇게 접었을 때 페이지가 제대로 위치를 찾아가게 하기 위해서 미리 계산을 한 후에 인쇄를 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종이를 접어서 인쇄를 하게 되면 종이를 접은 면이 책등의 반대편 즉, 책 배나 책의 윗 부분에 나타나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본을 마친 후에는 책의 모서리를 절단기로 잘라서 이렇게 접힌 부분을 없애 줍니다. 그렇게 하면 페이지 하나 하나가 때로 떨어지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지요.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절단할 때에는 직각으로 하지만 때로는 둥근 곡면으로 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일반적인 책의 모서리 절단면입니다.
그런데 19세기 유럽에서 출판된 책들 가운데에는 이렇게 열려 있어야 할 부분이 닫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닫혀 있지는 않더라도 책의 모서리가 매끈하게 잘려나가지 않고 원래 종이의 너덜너덜한 끝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를  Uncut page(leaves) edge 라고 하고 후자를 deckel edges 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책을 Uncut Book 이라고도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요? 아래의 사진을 보시면 더 정확하게 제가 말하는 의미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정확한 번역을 찾지 못해 그냥 영어를 썼습니다만 혹시 한국 출판계에서는 이 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해서 사용하는지 알려주신다면 고치겠습니다.)
그러데 왜 이렇게 접은 면을자르지 않은 책을 만들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근거가 있는 기원을 찾지 못 했습니다만 1905년 런던에서 발행된 Book Monthly 에 실린 짧은 기사에 따르면 이런 방식의 책은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서점 주인들의 요구 때문이었고 하는데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에도 서점에 선 채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판매에 지장이 생기자 아예 책을 자르지 않고는 읽을 수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서점 주인들이 제본사들에게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그럴듯 하게 들립니다만 이 기사에서도 그 이야기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시듯 종이 끝을 가다듬지 않은 경우는 좀 보기가 싫어서 그렇지 읽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접은 면을 아예 제대로 자르지 않은 Uncut Book 은 당장 읽기가 힘이 듭니다. 사진에는 두 페이지의 윗 쪽이 붙은 것처럼 보입니다만 한 페이지로 보이는 부분도 실제로는 책 배 부분이 붙은 두 페이지입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윗 부분을 자르고 난 후 책 배 부분을 다시 잘라야 합니다. 결국 이런 책을 읽을 때에는 종이를 자르는 칼을 들고 페이지를 잘라 가면서 읽어야 하는거지요. 바로 이 점이 Judson 씨를 화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Judson 씨의 글은 계속 이어집니다.
"도대체 왜, 제대로 제본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하고 구입한 책을 읽다가 네번째 페이지에서 온 집안을 헤매 종이칼을 찾아 와야 하고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마치 주부가 감자를 깍듯이 페이지 사이를 칼로 찌르고 잘라야합니까? 영국에 있는 우리 착한 사촌들은 이런 불필요한 기계적인 활동에 낭비할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다 건너 이 쪽에 사는 우리는 너무 바쁘고 그렇게 참을성이 없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잘라지지 않은 책에 대한 불만을 한 참 늘어놓은 Judson 씨는 제발 "제본을 완전하게 마친 후에 서점에 책을 내놓으라"고 기사에서 강하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Judson 씨의 글을 보면 이런 잘라지지 않은 책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미국 보다는 유럽에서 더 성행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지금도 헌책방이나 큰 도서관에서 발견되는 이런 책들 중에는 유럽에서 출판된 것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19세기 뿐만 아니라 20세기 중반까지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 등지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옆의 사진에서 보시는 책은 1940년대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책입니다. 그리고 제가 본 책 중에서 가장 최근에 출판된 것은 1989년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중세 철학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이런 방식의 책을 좋아 했던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일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찰스 다윈과 같은 사람은 "미국에서 하고 있는 그와 같은 모서리를 자르는 출판 방식을 영국에서도 도입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페이지를 빨리 넘길 수 있게 잘라진 책들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Judson 씨의 기사가 나온 것보다 20년전 쯤인 1883년에 역시 미국에서 출판된, Appleton's Literary Bulletin 에서는 이러한 자르지 않은 책들에 대해 Judson 씨와는 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모서리가 모두 잘라진 책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잘라지지 않은 책 보다 읽기가 훨씬 더 편하다. ... 이런 책들은 훨씬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고 또, 평이하고 실용적인 상식(common sense)의 결과물이다. 그 점은 분명 인정한다. 그리고  평이하고 실용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논쟁에서 자기 의견을 매우 성공적으로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여기까지는 Judson 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넘어 가면서 이 글의 저자는 잘라지지 않은 책이 가진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잘라지지 않은 책은 단지, 그리고 아마도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것을 더 좋아하는가에 대해서는  취향만으로는 설명하기 불가능하다. 책을 읽는 독자가 이와 같은 잘라지지 않은 책의 아름다움을 느끼지(Feel) 못 했다면 그 사람에게 그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색깔에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색깔을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저히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 만일 진정으로 예술적인 것에 대해 타고난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 종류의 책을 아주 사려깊게 살펴봄으로써 잘라지지 않은 책들이 가진 월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리라."
이 글에서는 잘라지지 않은 책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해 마치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미지의 장소에 도착한 최초의 탐험가가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잘라지지 않은 책을 보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매력과 신선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매력은 매끈하게 모서리를 자른 책들에서는 도처히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접혀진 종이를 제본한 후 절단기로 모서리를 자르는 제본가들의 작업은 책이 가진 태초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행위라고도 하고 있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말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글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실용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비웃곤 한다. 하지만 이른바 실용적인 상식을 시시한 속물근성으로 보는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런 (문화의) 취향 가진 사람들은 속물들의 비웃음이 '부족한 지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이 글의 저자는 실용성을 추구하여 매끈하게 잘라진 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책이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 하는 속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렇게 페이지가 잘라지지 않은 책을 읽는 것은 페이지가 이미 잘라진 책을 읽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요?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종종 저는 이런 잘라지지 않은 책들을 접합니다. 그 중에는 정말 제가 읽고 싶은 책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 해 전에 기념품으로 받은 종이칼을 책상 곁에 늘 두고 이런 책이 있으면 페이지를 잘라가며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페이지를 잘라가며 책을 읽을 때면 훨씬 더 책에 집중하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한 페이지를 읽고 종이 칼로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자르는 몇 초 동안 그 페이지에서 읽은 내용을 생각하고 또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지 혼자 상상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만들어진 이래 아무도 이 페이지를 읽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의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이 책이 한 부만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이미 같은 내용을 읽었을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 손에 놓인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저를 흥분시킵니다.

비록 제가 책을 "읽고" 있지만 페이지를 자르는 그 순간 저는 마치 제가 그 책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페이지가 잘라지지 않은 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책이고 비로소 내가 페이지를 자르고 읽음으로서 하나의 책이 탄생한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 19세기의 사람들이 느꼈을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바로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런 책이 아주 드물게 만들어지다 보니 제가 읽는 잘라지지 않은 책은 최소한 몇 십년 혹은 백 년 이상 이상 묵은 책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저는 19세기의 사람들이 느꼈던 것 이상의 흥분과 매력을 느낍니다. 마치 땅 속에 숨겨진 보물 지도를 발견하고 한 겹, 한 겹 벗겨나가는 심정이랄까요.

물론 이렇게 종이칼로 자른 책들이나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종이 끝을 정리하지 않은 책들이 가지는 단점도 있습니다. 먼지가 앉기 쉽고 또 페이지 사이에 생기는 공간에 때로는 여러 가지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방문을 하는 경우가 있지요. 손님이 떠난 뒷자리에 거미줄이나 갉아 먹어 구멍이 난 페이지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손가락을 사용해서 자르다 보면 아래와 같은 아름답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페이지를 잘라가면서 읽은 책들은 다 읽은 후에도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종이 칼이 아무리 예리하다고 해도 절단기에 비교할 수는 없지요.그래서 종이의 잘라진 단면이 거칠게 그대로 보입니다. 읽는 사람마다 사용하는 종이 칼이 다르고 또 종이를 자르는 힘의 세기가 다르므로 잘라진 면도 다 제각각입니다. 이 말은 같은 책이라고 하더라도 읽은 사람에 따라 나중에 잘라진 면이 달라지게 되고 그래서 책의 모습도 때로는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 역시 흥미로운 일이지요. 독자인 제가 최종적으로 책을 완성하는데 참여하는 셈이 됩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잘라지지 않은 책은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겉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동료 사서중에는 이런 경험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연히 19세기 말 강의에서 사용되었던 강의 계획서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수업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들이 나열되어 있고 도서관에 그 책이 있다는 사실과 청구 기호까지도 강의 계획서에 자세하게 나와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서가에서 그 책을 찾아보았더니 처음 10여 페이지만 페이지가 잘려져 있고 책의 나머지는 아직 그대로 페이지들이 붙어 있더라고 하더군요.

물론 책을 사서 읽은 학생들도 있겠지만 얼마나 학생들이 교수님의 말을 잘 들었는지 알 수 있는 예였다고 우스개 삼아 이야기 하더군요.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19세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페이지를 하나하나 잘라가며 이런 책들을 읽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자르지 않은 책을 사와서 먼저 하인에게 주고는 페이지를 자르게 한 귀족도 있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페이지를 자르게 만든 어른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이 책은 약 4분의 1정도만 잘라져 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사람들이 책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두고 토론을 하던 것을 보면서 저는 최근에 이야기 되고 있는 전자책과 종이책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을 생각했습니다. 물론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여러 면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각자의 주장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이 책이 가진 물리적인 아름다움과 우리가 느끼는 향수, 그리고 사람의 눈에 더 편하다는 것을 들어 종이책을 선호하는사람들과 전자책은 많은 정보를 작은 공간에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고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빠른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검색하여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논쟁은 어찌보면 잘라진 책과 잘라지지 않은 책에 대해 설전을 벌이던 100여년전 사람들의 논쟁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책과 종이책이 서로 경쟁하는 시대에 페이지가 잘라지지 않은 불편하기 그지없는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제가 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일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회가 된다면 한 손에 칼을 들고 페이지를 하나하나 잘라가며 천천히 책을 읽어 보십시오. 과연 빠르고 실용적이며 또 효율적인 것만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시게 될 겁니다.

* 이 글을 올리게 된 계기는 블로그 이웃 한 분이 최근에 구입한 책에 대해 올리신 글을 보고 나서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포스팅 계획서"^^에 포함되어 있는 주제였는데 이리저리 미루다가 마침 그 분의 글을 보고 늦기 전에 올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럽에서 출판된 고서를 구입하시는 분들은 이런 경우를 종종 보실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안내를 드리자면요, 이런 책의 페이지를 자를 때는 가능하다면 종이칼(Paper Knife, Letter Knife, Letter Opener) 을 이용하십시오. 면도칼처럼 너무 날카로운 칼은 손을 다치실 수도 있지만 또 페이지를 자를 때 접은 면이 아니라 종이의 다른 면을 자르게 될 확률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면이 너무 두꺼운 도구를 사용하면 페이지가 제대로 잘라지지 않지요. 종이칼이나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진 인덱스카드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리고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책을 바닥에 눕혀 놓고 자르시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게 자르실 수 있습니다. 손가락이나  손 날을 집어 넣어 자르지는 마시구요.^^ (아래에는 제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종이칼입니다. 몇 년 사용하다 보니 칼의 표면도 벗겨지고 많이 낡았습니다.)
종이칼은 요즘도 시판되고 있지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간단한 모델에서부터  아름다운 장식이 된 쓰기 아까운 모델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여유가 있으시다면 멋진 종이칼 하나 정도 장만 하셔서 책상 위에 두셔도 좋겠지요. 물론 그 칼을 이용할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 그래도 21세기에 이런 낭만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어 줄 출판사는 없을까요? 아래에는 20세기 초반에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클립입니다. 지금과 같은 전자 출판이 나오기 이전 방식이지만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들과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 R. Murdoch-Lawrance, "Origin of Uncut Books", Aberdeen Journal, Notes and Queries, 1908, p.49.
  • Charles Darwin., "Cut of Uncut", Athenaeum. Journal of Literature, Science and the Fine Arts, No. 2045, 1867, pp.18-19.
  • "Uncut Books", The Bookmart, September 1886, pp. 138-139.
  • Pasko, W W., "Uncut", American Dictionary of Printing and Bookmaking, 1894. p.567
  • "Cut and Uncut Books," Appletons' Literary Bulletin, April 1883, reproduced in Publisher's Weekly, April, 1883, p.451
  • J.A. Judson,  "Deckel Edges and Uncut Leaves", New York Times, 1905.2.18.
  • R.R. Bowker, "Great American Industries, VII. A Printed Book", Harper's New Monthly Magazine, v.75, n.446, July, 1887, pp.165-188.
by Clio | 2008/10/18 12:01 | 도서관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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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925). 73쪽. 원서와 세트로 반 값에 싸게 판다길래 질러서 보고 있습니다. 위 대목을 읽으면서 문득 전에 보았던 Book knife에 관한 포스트(링크)가 떠오르더군요. 저 글을 안 봤더라면 전 아마 페이지를 칼로 자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스토더드 강연집은 대체 어떤 책 ... more

Commented by 현재진행형 at 2008/10/18 12:22
저는 오히려 저렇게 우툴두툴 투박한 면이 있는 책들이 더 좋던데요. 확실히 취향따라 가나봐요. ^^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0:46
훨씬 자연스럽다고나 할까요? 마치 누가 손으로 직접 쓴 글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더군요.
Commented by pythagoras at 2008/10/18 12:31
그런게 있었군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0:46
재미있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10/18 12:39
저 사람들의 결론은 취존중인듯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0:47
예 맞습니다. 개인의 취향이라 할 수 있겠지요.
Commented by 썬데이뉴욕 at 2008/10/18 13:22
ㅇㅎㅎ 저도 북나이프로 갈라가면서 읽는 거 좋아해요.
한국책에 길들여져 있어서 처음 미국왔을 땐 종이질이 왜 이렇게 나쁜지 또 옆면은 왜 이렇게 거칠거칠하고 엉망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책 찢어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무엇보다도 그런 책들에는 손이 베이지 않아서 좋더라구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0:49
"찢어가며(?)" 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듭니다.^^ 정말 손으로 찢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종이칼로 '찢어진' 책들은 참 정겹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도서관에도 종이칼을 비치해 두었다고 하더군요. 도서관에 따라서는 책을 구입하면 직원들이 미리 "찢어놓는"일도 있었다고 하구요.
Commented by 我的雲 at 2008/10/18 13:22
그 옛날에도 교과서는 처음 10 페이지 정도만 열심히 봤던 건가요. 시대가 달라져도 참..^^;
deckel edge라면 약간 옛책 같은 고풍스러운 멋이 있어 보이지만 uncut edge는 극도로 싫어합니다. 옛날에 그런 파본의 끝을, 급한 마음에 손으로 슬슬 찢다가 글씨 있는 부분까지 찢어버린 아픈 경험이 있거든요. 파본으로 바꿀 수는 있었지만, 글씨를 읽을 수 있다고 해도 페이지 손상은 정말..싫습니다..-_ㅜ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0:51
시대가 달라져도 학생들은 늘 학생들인가 봅니다.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혹시 교수님이 그 책을 도서관에서 볼까봐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페이지를 잘라달라고 부탁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 손으로 자르는 일은 가능하면 피해야지요. 아무리 예리한 손이라고 해도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Commented by kristine at 2008/10/18 13:27
클리오님 저 책 자르느라 애를 썼다는 것 아닙니까?? 정말 혹시나 이쁘게 잘 알려질까바 무슨 도자기 대하든 조심조심... 그런데 처음에는 잘 못해서 찢어지기도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그런데 확실히 그렇게 자르면서 책에 써진거 슬쩍슬쩍 보면서 책부분을 보는 것도 많고 슬쩍보면서 찾아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른 뒤에 한페이지 쓱 내려보기도 하고... 그리고 또 정이 더 가는 느낌도 들고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0:52
제대로 자려르면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지요. 아마 내 손길이 닿아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는 그런 책이라 더 정이 갈 수도 있을겁니다.
Commented by 토우 at 2008/10/18 14:04
가끔 종이가 붙어있는 책을 사곤 하는데, 종이칼 탐나네요~~.(사실 사진의 종이칼이 너무 예뻐서... >///<)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0:57
예전에 만들어진 종이칼 들 중에는 상아로 만들어진 것, 각 종 보석으로 장식된 것 등 정말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사진에 있는 것은 기념품으로 받은 그저그런 종이칼이구요. 구글 이미지를 한 번 검색해보십시오. 정말 멋진 종이칼들이 많이 있답니다.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08/10/18 14:40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안잘린 책을 많이 봤던 거 같은데 요즘엔 없군요. 그 때는 그냥 인쇄소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정도 있던 거군요. O.O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0:59
종종 인쇄 실수도 있었지요. 물론 일부러 그렇게 든 책도 있었지만요. 제가 기억하는 것은 페이지의 왼쪽 아래나 오른 쪽 윗 부분에 있는 모서리 부분에만 페이지가 붙어 있는 그런 책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책받침으로 자르기도 했지요.
Commented by polarnara at 2008/10/18 14:57
우와 이건 또 재미난 이야기네요. 그냥 제본 과정에서 생기는 불량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기원이 있을줄은.. ^^;
잘라가며 이야기를 들춰가는 것도 분명 매력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책이 종이 자르는 수고를 잊을 정도로 재미있다면 말이죠 :p (달리 생각하면 재미없는 책은 빨리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00
자르기도 성가신 일인데 책에 재미까지 못 느낀다면 독자로서는 힘든 일이겠지요. ... 아마 그래서 많은 책들이 아직 잘려지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Commented by lukesky at 2008/10/18 14:58
저 같은 경우에는 중간중간 제본 잘못으로 간혹 잘리지 않은 페이지가 나오는 건 싫어하지만 책 전체가 잘리지 않은 건 좋아합니다. 그게 정말로 잘라보는 맛[?]이 있더라고요.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05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읽고 계신다니 감사드립니다.^^ 잘라보는 맛, 혹은 위에서 썬데이뉴욕님이 말씀하신 "찢어가며 보는 맛'은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어도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해줍니다. 빠르고 편리한 것도 좋지만 때로는 천천히 가는 것, 느림것의 아름다움이랄까요, 그런 것도 느껴가며 살아간다면 세상이 훨씬 더 살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Commented by Gullveig at 2008/10/18 16:56
일부러 잘라지지 않은 책을 보는군요! 전 어쩌다 한번씩 파본으로 한두 페이지 씩 덜 잘린 책을 발견하고 짜증을 낸 적은 있는데, 책 전체가 잘려지지 않은 채로 나온 책도 한번 보고 싶어요. 전체가 그렇다면 색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요. 한페이지씩 잘라가며 읽고 나면 정말 '내' 책이라는 느낌도 날 것 같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06
그렇게 내 손으로 잘라가면 읽은 책은 내가 완성시킨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가끔씩은 이런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종 작업을 한 단계 거치지 않으니 제작비도 싸지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8/10/18 18:23
몇 년 전에, 김점선씨의 책 한 권이 저런 식으로 나왔습니다. 2-3년쯤 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책을 자르지 않고 접힌 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로 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는 나무로 만든 검은 종이칼이 딸려 있었고요.^^ 마케팅의 일환이었다고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08
그랬었군요. 어떤 책인지 한 번 찾아 보아야 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나무로 만든 검은 종이칼이라.. 이거 정말 궁금해지는 군요. 책 애호가들에게는 분명히 어필할 수 있는 마케팅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파랑♥ at 2008/10/18 21:00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08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kristine at 2008/10/18 21:50
종이칼을 저 용도로 쓰는군요. 오래전에 letter opener를 산적이 있어요. 무슨 오래된 영화를 봤는데 그게 꽤 멋스러웠거든요,,, 그러다가 중요편지를 넣어놓는 통에 넣어 놓았는데.... 클리오님 글을 보고 아 이용도를 쓰면 되는구나 하나 아직도 두권이나 그렇게 잘라야 되서 한번 해봤는데 확실히 면도칼보다는 뭐랄까 편하게 잘 잘라지더라고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10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요. 최근에 나온 전동 모터가 달린 letter Opener 들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 나온 칼 형식의 오프너라면 종이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요. 크리스틴님의 방에서 만들어지는 사각사각 종이자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Commented by JinAqua at 2008/10/19 09:34
우왓 드디어 찾았다!; 오랜만입니다- (기억하시려나 ㅇ<-<)
링크가 다 날아가버렸는데 이 홈페이지 주소가 기억나지 않아서 ㅠㅠ
뇌이버같은데서 검색했는데.. 와서 보니까 스펠링이 틀렸군요 털썩

지칼을 판매하는걸 종종 봤는데, 이런 용도로군요.
아무래도 요즘엔 이런 책이 주변에 별로 없으니 편지를 뜯는 데에 주로 이용하는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13
오랫 만에 오셨습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 제가 다른 곳에서 쓰는 아이디가 Aqua 인지라. ... 이제 다시 링크 하셨지요? ^^....'지칼' 이라는 말도 들은 것 같습니다. 올리신 글을 보고서야 "그래 그런 말도 있었지"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책은 물론이고 편지를 뜯는 일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이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kristine at 2008/10/19 14:15
레터 오프너 관련 트랙백 했어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15
트랙백 해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가진 종이칼과 색깔이 같군요.^^ 그나저나 어쩌지요? 스팸으로 달린 트랙백을 지우다가 크리스틴님의 트랙백까지 같이 지워버렸습니다. 혹시 다시 달아두실 수 있을 런지요.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간고등어 at 2008/10/19 15:34
처음이라는 것과 그것에 대한 예찬을 보니 처녀성이란 단어가 떠오르는군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21
최근 얼음집에서 화제가 되었던 글들을 읽은 뒤라 답글 달기가 조심스러워지는군요.^^ 잘라지지 않은 책에 대한 애호가들의 사랑은 일단 그 책이 여러부 인쇄되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하는 말일겁니다. 대신 나의 책을 내가 만들어 나간다는 느낌, 그리고 다른 사람도 분명 읽었을 내용이지만 내 책에서는 그것이 잘려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때문에 마치 세상에서 내가 처음 그 내용을 읽는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 이런 책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 같구요. 물론 여전히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말입니다. :)
Commented by 불멸의 사학도 at 2008/10/19 18:43
우리나라에서 저런 경우가 있다면, 마지막에 커팅작업이 제대로 안 된 파본으로 교환해야 하는 경우 뿐인데요...
음... 국내에서도 역발상 마케팅으로 책에 멋들어진 종이칼을 넣어준다면 괜찮을 것 같네요...

그건 그렇고, 음... 뜯겨지지 않은 부분은 아직 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라고 할까, 그런 것도 무시 못하겠네요...
특히 학습용 서적같은 경우에는 학업 성취도의 척도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수학의 정석에 저 방식을 적용한다면 좋을 것 같네요...(아마 내용을 볼 생각보다는 하루 밤새면서 커팅을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25
제대로 읽을 부분만 솔직하게 자른다면 학업 진도를 알아 볼 수도 있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몇 시간 동안 자르기만 하는 일이 생기지도 않을까 싶군요. 그러고 보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고등학교를 다닐때 영어 선생님께서 흔히 말하는 "빡빡이 숙제"를 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연습장 5장에 영어 단어를 빡빡하게 적어 가며 외운 흔적을 제출하는 숙제였는데 볼펜 두 자루를 쥐고 한 꺼번에 두 줄씩 적어 나가던 친구가 있더군요. ... 갑자기 이야기가 딴데로 흘렀습니다.^^
Commented by Timothy at 2008/10/19 20:05
오오.. 작년에 구입한 헌책들 중에 한 권이 이런식으로 잘려져 있지 않길래, 저는 잘못 된 책인 줄로만 알았지요. 이런 역사, 문화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 책을 칼로 자르다가 미처 읽기 시작도 못하고 다른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조만간 다시 칼을 들고 읽고 싶어지내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0 01:29
종종 잘못 만들어진 경우도 있지만 만일 몇 십년 전에 출판된 책이라면 아마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 조만간 한 손에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그 책을 열심히 읽고 계실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
Commented by marlowe at 2008/10/20 09:46
CD보다 LP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저런 게 아닐까 싶군요.
저는 책을 넘기다 종이에 있는 불순물이 보이면, 칼이나 바늘로 뜯어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글자 일부가 떨어져나가도 억제할 수가 없더군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0/22 00:07
처음 CD가 나왔을 때 잡음하나 없이 맑은 소리가 웬지 자연스럽지가 않더군요. 이제는 처음만큼 그렇게 낯설지는 않지만 여전히 LP 에서 들리던 잡음이 훨씬 따뜻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 종이에 관한한은 아주 완벽주의자이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ignifie at 2008/10/21 11:45
몇 년 전에 온라인으로 뭣도 모르고 싼맛에 영어 원서를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받아보고선 깜짝 놀랐었지요.
미끈매끈하고 정이 안가는 책보다는 투박해도 자꾸 손이 가는 이 책을 이곳 미국에도 데리고 왔답니다.
최근에는 저놈을 데려온 사실도 잊고 있었는데 Clio님 덕분에 생각이 나서 한번 펼쳐 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0/22 00:09
잘 지내시지요? 정신 없이 바쁘신 중에도 이곳에 들러주셨네요. ^^ 아마 앞으로 그런 책을 도서관에서 많이 보시게 될 겁니다. 종이칼도 하나 장만하셔야 되지 않으실런지... :)
Commented by 루크 at 2008/10/29 19:06
가끔 제대로 안 짤린 책을 만나곤 하면 짜증내면서 잘라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역사(?)가 참 길군요;;
저런 책을 사용하기 위한 종이칼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죠.
Commented by Clio at 2008/10/30 00:41
종종 인쇄상의 실수가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처럼 책 전체가 잘라지지 않은 것은 아예 그렇게 출판이 된거라고 보아야겠지요. 칼 들고 책 읽는 재미도 솔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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