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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오르기 드라고만-하얀 왕
십 여년 전 옛날 이야기입니다. 난생 처음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던 저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것 투성이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호기심이 많았고 아마 그랬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또 궁금한 것 투성이였지요.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예 중  한 가지가  바로 동유럽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루마니아와 헝가리 그리고 불가리아 등에서 서유럽으로 온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놀랍게도 저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이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불가리아에서 온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학창 시절 여러 국가 행사에 마스게임을 하기 위해 단체로 동원된 기억도 있었고 국가에 중요한 손님이 오면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나가서 국기를 흔들었던 기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할 때면 모든 학생들이 일어나서 구령에 맞추어 선생님께 인사하고 반장이 나서서 인원 보고를 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기억하는 저의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라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를지 몰라고 속을 들여다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어디나 큰 차이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나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기 마련이고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오늘 소개해드리고 싶은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생각했던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헝가리 인으로서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기오르기 드라고만(Gyorsy Dragoman,1973-)은 전세계의 20 여개국에서 번역된 소설 "하얀 왕(The White King; a novel)"을 통해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습니다. 이 소설은 1980년대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열 한 살 짜리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사회와 어른들의 모습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어린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국의 중, 장년 그리고 어쩌면 20대 청년들에게조차 너무나 자연스러럽고 익숙한 모습들입니다.

반정부적인 청원서에 서명을 한 이유로 주인공의 아버지는 강제노역장에 끌려갑니다. 그리고 나서 교사이던 어머니와 함께 남아 힘든 생활을 꾸려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18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진행되는데요, 이 책에서 작가는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또 때로는 슬픈 이야기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이 어린 아이의 눈에서 어떻게 비춰지는지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아이가 어떻게 성장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 있는 한 에피소드에서는 조국방위소년단의 일원이었던 주인공이 아버지 때문에 소년단에서 강제로 탈퇴해야 하는 일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매 년 열리는 소년단 경연 대회에서 사격을 아주 잘 했던 주인공이 필요하자 학교에서는 이미 소년단원이 아닌 주인공이 다른 학생의 이름으로 경연 대회에 참가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이것을 거절하자 '철권' 이라는 별명을 가진 담당 교사는 과거에 주인공이 일으킨 말썽을 무마해줄 수도 있다며 협박과 회유를 동원하지요. 그래서 마지못해 대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담당 교사가 요구하는 것은 사격을 하기는 하되 당간부의 자녀들이 다니는 이웃 학교 소년단이 일 등을 할 수 있도록 잘 조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는 점점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고 차차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안타깝게도 우리의 어린 시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조리하고 잘 못된 일을 무조건 강요하는 어른들이 있었던가 하면  그것이 현실이라는 변명을 섞어 아이들을 설득하려 하는 어른들도 있었지요. 어찌 보면 한 책 제목처럼 아이들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웠고 그 이 후는 서서히 그 배운 것들을 잊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잊어간다기보다는 어렸을 때 배운 도덕과 윤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간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자신이 어린 시절 배운 원칙과 윤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점점 더 얼굴이 두꺼워지고 부끄러움이 없어진 것을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00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 올 해 3월 이었습니다.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한 번 번역이 된다면 읽어 보십시오.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은 물론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 책 같았습니다. 아래에는 이 소설 중에서 재미있는 몇 페이지를 초벌 번역해서 올려봅니다. 아마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해 보았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수비"(친구의 이름)와 나는 분필을 먹으면 열이 난다는 것이 헛소리임을 금방 깨달았다. 왜냐하면 둘 다 분필을 한 개 반 씩이나 먹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색분필도 먹어보았다. 수비는 녹색 분필을 그리고 나는 붉은 분필을 먹고 학교로 가는 길에 있는 다리 밑에서 한 시간 반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라고는 그저 오줌 색깔이 달라진 것 뿐이었다. 나는 붉으죽죽한 오줌을 누었고 수비는 녹색이었다.

체온계를 이용한 수법도 이제는 물건너간 일이었다. 감히 시도해볼 수 조차 없는 일이었는데 체온계를 난방기 사이에 끼워두고 온도가 올라가기 기다리다가 현장에서 엄마한테 들킨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비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했는데, 이 주전 수학 시험이 있던 날 수비는 체온계를 불이 켜진 백열등 아래에 대놓고 온도를 올리다가 결국 온도가 너무 올라가 체온계 안에 있는 수은이 터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 수비는 버클이 달린 아버지 혁대로 엉덩이가 터지도록 맞았다. 결국 체온계를 이용한 방법은 이미 물건너간 일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떤 방법이던지 발견해야만 했다.

만일 내일까지 아플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지 못 하면  우리는 끝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수비와 나는 노동절 행사에 사용할 프랭카드와 깃발을 구입하기 위해 반 아이들로 부터 돈을 모았는데 그 돈을 우리가 슬롯 머신에 다 쓸어넣은 것을  학교의 다른 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우리 대가리를 깨부수려 할 것이었다. 물론 극장 건물 옆에 있는 작은 게임방에 있는 그 기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쏟아 부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페리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페리는 우리에게 그 게임방에 있는 전자동 기계에 돈을 거는 세 번째 사람은 언제나 이긴다고 말을 했었다. 그러면서 페리는 “바로 그러니까 ‘전자동’ 이라는 거야.”라고도 했다.

실제 처음 게임을 했을 때 우리는 10레이를 땄다. 그러나 그 이 후로 계속 잃기만 했고 결국 우리는 본전만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 번째로  100레이짜리 지폐를 걸었고 그것을 통해 본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실제 우리의 계획은 잘 들어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버튼을 누를 적당한 리듬을 잃어버렸고 마침내 우리가 버튼을 눌렀을 때 번쩍이는 불빛은 엑스트라 수퍼 보너스에서 꽝으로 넘어가 버렸다.

결국 우리는 가진 돈을 모두 잃어버렸는데  계산대에 가서 그 돈이 우리 돈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돌려달라고 사정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계산대에 있던 사람은 코웃음을 치면서 자꾸 우리가 헛소리를 지껄이면 우리 입을 막아 놓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우리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게임을 하지 못하니 계속 게임을 하지 않을거면 당장 꺼지라고 했다.

그 빌딩을 나와 혁명 열사들의 거리로 나섰을 때 수비와 나는 서로 마주보면서 우리 두 사람이 이제는 끝장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수비는 이 길로  역에 가서 가장 먼저 떠나는 화물 열차를 타고 광산촌으로 가서 광부가 되자고 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는 아이들도 일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수비가 듣기로는  광산에는 늘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곳에서 일을 하겠다고만 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가고 싶다면 너나 가라”고 하면서 나는 남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진폐증으로 죽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 대신에 우리 한 번 아파보면 어떨까?” 라고 내가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대로 아프게 되면  그 망할 놈의 노동절 행사에는 나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수비는 “그래 좋아, 분필을 먹어면 열이 난다더라”고 말했고 우리는 즉시 그 방법을 써보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붉으죽죽한 소변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피가 섞인 것 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냄새도 전혀 딴 냄새가 났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과연 수비와 주인공은 새로운 방법을 찾았을까요? 두 사람은 이 위기에서 벗어났을까요? 궁금하십니까? ^^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Amazon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이 책의 자세한 서지사항입니다.

  • György Dragomán, The White King: A Novel, 1st ed. (Houghton Mifflin, 2008). 


by Clio | 2008/11/20 12:20 | 책소개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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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euphemia at 2008/11/20 12:42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종류의 이야기네요. 어린이와 (어른들의) 세상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관심이 갑니다.
번역이 안 되더라도, 환율이 좀 안정되면(ㅜ.ㅠ) 꼭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1/22 11:42
실망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어른들에 의해서 서서히 바뀌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실거구요.
Commented by 새벽안개 at 2008/11/20 12:49
ㅎㅎㅎ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군요.
Commented by Clio at 2008/11/22 11:42
저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특히 꾀병 같은 것 말입니다.^^
Commented by 오스카 at 2008/11/20 13:13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릴때 배운 윤리와 도덕을 잊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자주 보여서 씁쓸합니다. 책이 재밌을거 같아요. ㅎ 얼른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습니다 :)
Commented by Clio at 2008/11/22 11:43
국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마 조만간 번역이 되겠지요.
Commented at 2008/11/20 13: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1/22 11:43
뭐라 감사드려야 할지요. 당장 고치겠습니다. 안경까지 끼고 살피는데도 이런 일이 생기네요. 부끄럽습니다.^^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11/20 13:22
그동네도 비슷한 꼴이었군요.
저걸 보니 고등학교때 짝이 생각나네요. 아픈척해서 조퇴하려고, 선생님께 가기 직전에 자기 목을 조르더군요. 얼굴이 시뻘게 질 때까지.
Commented by Clio at 2008/11/22 11:44
비슷한 경우군요. 제 친구 중에도 숨을 오랫 동안 참아서 얼굴이 벌겋게 만드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물론 선생님 앞에서 다 들통이 났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11/20 14:05
꼭 한번 보고싶은 책이네요. 독재와는 거리가 먼 사회에서 중고등학교를 지낸 저로서는 더더욱 궁금하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1/22 11:46
행복한 중고등학교를 보내셨군요. 그런데 웃기는 것은 막상 그 속에서 생활을 할 때에는 그것이 그렇게 문제인지 모르고 생활했다는 겁니다. 물론 어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이 나쁜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것을 강요하려 하는 어른들에게 있겠지요.
Commented at 2008/11/21 08: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11/22 11:46
감사합니다. 놀러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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