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있었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사라 페일린 덕분에 다시 한 번 우리에게도 주목을 받은 알라스카는 미국 본토와는 캐나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있습니다. 이 알라스카주의 주도는 주노(Juneau)라는 곳인데 알라스카에서는 남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요. 그런데 주노에서 북쪽으로 100 여 킬로미터를 올라가면 인구 26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하인즈 버러(Haines Borough)가 나옵니다. 오늘은 이 마을에 있는 작은 도서관(Small Library)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아래 지도에 붉은 색으로 A가 표시된 곳이 하인즈 버러가 있는 지역입니다.
이 도서관에 대해 제가 알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이었습니다. 오랜 역사를가지고 있는 도서관 관련 잡지인 Library Journal 과 빌과 멜린다 게이츠 재단(The Bill & MelindaGates Foundation)이 공동으로 지원한 '올 해의 작은 도서관상(Best Small Library inAmerica)' 이 그 해에 처음으로 시작되었지요. 그리고 이 상을 처음 수상한 도서관이 바로 하인즈버러 공공 도서관(HainesBorough Public Library)이었습니다. 과연 얼마나 잘 운영이 되는 도서관이었길래 상까지 받았을까요?
아래의 위성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은 매우 접근이 힘든 곳입니다. 남쪽에 있는 주노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은 비행기를 이용하던지 아니면 배를 타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도로는 북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주민의 20% 정도는 토착 인디언 부족으로 구성된 이 작은 항구 마을은 여름이 되면 일 주일에 서너번씩 대형 크루즈 유람선이 도착하는 관광지로 변합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겨울이 되면 정말 조용한 곳으로 변한다고 하는군요. 더구나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오후 일찍부터 어두워져서 길에는 인적을 찾아 보기힘들 정도로 조용해진다고 합니다. 물론 춥기도 하겠지만요.
그런데 이 마을 주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바로 마을의 도서관이고 또 그 도서관을 운영하기 위해 주민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주민의 총 수가 3000명이 채 되지 못 하는 이 마을이지만 지난 2005년 통계에 따르면 112,520 건의 대출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주민 한 사람이 한 해에 40권 이상의 도서관 자료를 빌려갔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수치는 2000년 이 후 크게 늘어난 수치라고 하는군요. 아울러 도서관에서는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각 종 소프트웨어 사용법 강좌도 실시하고있는데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한 숫자가 연인원 28,000명에 달합니다. 주민 일 인당 놓고 보면 최소한 10회 이상 이런 서비스를 이용한 셈이지요.
이 도서관을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1년에 293,000 달러 정도입니다.(2005년 기준) 환율을 1400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돈으로는 4억이 조금 넘는 돈이지요. 전체 도서관 예산 중 11%를 자료 구입에 사용한다고 하는데 4억 예산의 대부분은 주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서관의 주 수입원인 세금은 주민들의 부동산을 기준으로 부과하는데 2005년의 경우 주민 1인 당 113 달러를 납부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인구 2600명이 사는 마을에서 4억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이 마을의 주민들이 납부하는 것은 세금 뿐만이 아닙니다. 이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력까지도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지원을 하는데 약 75명의 자원봉사자가 도서관의 각 종 업무를 돕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파트 파임 직원까지 합펴서 총 8명의 월급을 받는 정식 직원이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은 지난 2003년에 새로운 도서관 건물을 지었을 때도 잘 드러났습니다. 도서관 건립을위해 마을의 지방 자치 단체에서 채권을 발행하려 했을 때 과반수의 주민이 그것에 찬성했고 40만 달러의 그 채권을 시작으로 주정부 기관와 여러 단체의 도움을 받아 250만 달러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민들 중에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이용해서 도서관 건립을 도운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마을에서 목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일주일동안 도서관에 와서 도서관에서 사용할 책장을 비롯한 가구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주민들이 도서관을 아끼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도서관이 그 마을 주민들의 교육 및 문화 생활의 중심지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책과 기타 자료들을 비치해 두고 사람들이 와서 빌려가는 자료 저장소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이 도서관을 매개로 어린이들은 물론 청소년과 성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2005년 한 해만 하더라도 45건의 각 종 문화 강좌가 열렸고 8번의 음악 공연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마을의 큰 행사나 크리스마스 파티 그리고 결혼식 같은 것도 도서관에서 치르면서 이 도서관은 명실상부한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 도서관에서는 지역의 인디언 단체와 협력하여 한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컴퓨터에 밝은 청소년들이 강사로 나서서 마을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또 문제도 해결해 주는Dragonfly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세대 간 이해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지역 공동체 속에서 도서관의 역할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 보였다고합니다.
그러한 활동의 결과로 이 도서관은 2005년 미국 최고의 작은 도서관으로 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한국에서 번지고 있는 '작은 도서관' 운동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알라스카의 하인즈버러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과 같은 작은 도서관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요?
그런데 이 질문에 앞서 한 가지 제 머리속을 지나가는 것은 과연 알라스카의 하인즈 버러 공공 도서관이 한국에서 말하는 '작은 도서관'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인구가 비록 여름에는 관광객들 때문에 늘어나기는 하지만 3000명이 채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작은 도서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서관의 예산과 직원 수 그리고 그곳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결코 작은 도서관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기준에서는 작은 도서관이겠지만 우리의 기준에서는 그렇지 못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도서관협회에서 펴낸 2007년 한국도서관연감을 보면 알라스카의 이 작은 도서관보다 더 적은 예산과 인원으로 운영되는 공공 도서관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서관들을 '작은 도서관'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하인즈 버러 공공 도서관의 입구입니다. Flickr의 Soul of Beer 님의 사진 중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분명 주민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도서관의 필요성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만들어진 작은 도서관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방 자치 단체나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원에는 책을 구입하기 위한 예산 뿐만 아니라 그 책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이용자들을 위해 '작은 도서관'이도서관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그저 책장에 책만 채워 넣는다고 도서관이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대로 운영되는 도서관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난색을 표하며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에서 자주 드는 이유는 바로 예산 문제입니다. 시급한 현안이 많기 때문에 도서관에까지 지출할 예산이 없다는 말이지요. 물론 시급한 현안이 많다는 말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용되고 있는 예산이 과연 적절하게 필요한 곳에 사용되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볼 일입니다. 연말이면 예산 소모를 위해 서둘러 진행하는 각 종 공사나 지방자치 단체장의 지지도를 높이려는 목적에서 시행되는 선심성 축제 행사, 해외 시찰을 빙자하여 이루어지는 예산 소모성 집단해외연수 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런 곳에 낭비되는 예산만이라도 도서관을 위해 사용할 수는 없을까요?
저는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엄청난 경쟁을 뚫고 공무원이 되신 분들이 결코 어리석은 분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분들께서 경험하신 도서관이 도서관이 아니라 독서실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민들이 얼마나 제대로 된 도서관을 필요로 하는가는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들이 합리적으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이성도 갖춘 분들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 분들의 의지겠지요. 그리고 주민들을 위해 일하려는 그 분들의 의지를 격려하고 지원하셔야 할 지방 자치 단체의 의원님들과 자치 단체장의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굳이 돈봉투를 돌리고 갈비짝을 돌리지 않아도 이런 일만이라도 잘 하시면 다음 선거는 문제 없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런 노력도 못 알아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까 말입니다.
주민들과 지방 자치 단체의 지원 속에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알라스카의 '작지만 큰 도서관'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비록 아주 깊숙한 오지에 숨은 마을이지만 아름다운 풍광과 깨끗한 자연이 있고 또 도서관과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넓은 세계로 항상 열려있는 그런 곳이라면 그리 답답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래의 사진은 Flickr의 kristie and gary 님의 사진 중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아래에는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들과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지난 2005년 이 후 매 년 뽑힌 올 해의 작은 도서관 수상 도서관들에 대해서는 아래에 있는 기사들을 참고해 보십시오.
- Google Map
- Haines Borough Public Library
- John N. Berry III, “Best Small Library in America 2005: Haines Borough Public Library, AK—The Library Haines Built " Library Journal, 2005,2,1.
- _______________, “Best Small Library in America 2006: Milanof-Schock Library, Mount Joy, PA—Everyone's Hitching Post " Library Journal, 2006.2.1 .
- _______________,“Best Small Library in America 2007: Grand County Public Library, UT—Moab's Living Room " Library Journal, 2007.2.1
- _______________,“Best Small Library in America 2008: Chelsea District Library—A Michigan Model " Library Journal, 2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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