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8시 30분에 시작하는 회의가 있어서 일찍 학교에 갔지요. 이 곳 사람들이 말하는 'Morning Person' 은 못 되는지라 일찍 시작한 회의 도중 토론하는 내용의 맥락을 잡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급하게 오느라 챙기지 못한 커피가 간절하더군요. 그렇게 이어진 두 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제 사무실 근처가 어수선했습니다. 구석진 곳이고 관장실이 가까운 곳이라 보통은 조용한데 제 사무실 앞에도 그렇고 사무실 옆에 있는 창문 밖에도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간간이 터져나오는 감탄 소리를 들어 보면 나쁜 일은 아닌 듯 싶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아무말 없이 창밖에 있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가리키더군요.
그곳에는 눈처럼 하얀 올빼미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Snowy Owl 이라고 부르는 하얀 올빼미 한 마리가 제 사무실 바로 앞 나뭇가지에 무심하게 앉아 있더군요. 주위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아는 둥 모르는 둥 그저 나뭇 가지에 앉아 간간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난리가 난 것은 학교에 있는 까마귀떼와 주위의 구경꾼들이었습니다. 올빼미를 의식해서인지 주위를 날아다니며 울어대는 까마귀떼가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지요. 그리고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올빼미의 사진을 찍어댔고 저 역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실은 제가 일하고 있는 올바니 대학의 상징물이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 입니다. 학교 로고에도 미네르바의 얼굴이 들어가고 도서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목록 시스템의 이름도 미네르바입니다. 그런 곳에 올빼미가 날아들었으니 이건 경사라고 해야 하나요? 주위에서 제대로 집을 찾아 왔다고 농담삼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재빠르게 올빼미의 사진을 찍었고 생물학과의 홈페이지에는 금새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아울러 지난 1999년부터 학교에서 목격된 각 종 새들의 리스트도 공개했습니다.
뉴욕 주의 주도이기는 하지만 올바니는 한적한 시골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자연을 접할 기회가 많이 있지요. 인근 공원에서 놀던 청둥오리떼들이 학교의 중심에 있는 분수대에 가족을 데리고 놀러오는 경우도 있고 멋진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아다니는 솔개를 볼 때도 있습니다. 겨울이면 몰려든 까마귀떼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오싹할 때도 자주 있습니다. 그리고 다람쥐와 토끼야 늘상 보는 동물들이지요. 제 사무실이 바로 정원을 접하고 있어서 창문으로 이런 광경을 자주 봅니다. 종종 다람쥐가 창틀에까지 기어 올라 한번씩 사람을 놀라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까마귀와 다람쥐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투를 본 일도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더군요.
올빼미가 와 있다는 소식이 학교에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더군요. 졸지에 제사무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중에서 안면이 있는 동료들이 저에게 인사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늘 일하는 사무실에 편안하게 앉아서 올빼미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잡은 저는 아주 우쭐해졌습니다. "이 정도면 겨울에 좀 추운들 뭐 대수랴"하고 혼자생각했지요.
아직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하염없이 올빼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고 올빼미는 어둑어둑해진 지금까지도나뭇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올빼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순수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의 창조물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이가 되는 걸까요?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 세상에 살아도 이와 같은 "자연"에 끌리는 인간의 관심은 본능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습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되어야 날개를 편다고 하던가요? 이제 곧 어두워질텐데 이 하얀 올빼미는 어떻게 할런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아래에는 올빼미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나뭇가지 중간에 앉은 하얀 올빼미가 보일 겁니다.

* 11월 26일에 추가합니다.
생물학과의 홈페이지에 더 많은 사진이 올라왔군요. 이 올빼미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덧붙여 놓았습니다. 털의 상태로 보아 아직 완전하게 성숙하지 않은 올빼미라고 합니다. 성숙한 올빼미일수록 깃털의 색깔이 더 하얗다고 합니다. 그리고 캠퍼스 원주민인 까마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적어놓았군요.
참고 :http://www.albany.edu/biology/announcements/snowyow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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