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 오늘은 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 올바니 대학의 특수 자료실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희 학교의 특수 자료실은 오랫 동안 학교에 재직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신 교수님 한 분의 이름을 따서 M.E. Grenander Department of Special Collections and Archives. 라는 공식 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에서 보실 수 있듯이 올바니 대학교의 공식 아카이브를 겸하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서에는 부서 전체를 관리하는 Special Collection Librarian 아래에 대학 아키비스트와 다섯 명의 사서 그리고 한 명의 일반 직원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상당수의 도서관 학과의 대학원생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 부서에서 맡은 주요 업무 중에는 먼저 대학의 아카이브로서 대학의 각 부서에서 생산하는 문서들을 정리하고 보관하는 일이 있습니다. 대학 아키비스트인 W 씨는 60대의 지긋한 신사로서 우리 학교의 역사에 관해서는 최고 전문가입니다. 종종 외부 행사에 나가서 학교의 역사를 소개하는 일을 하기도 하는데 평상시에도 학교의 각 부서로부터 자주 문의를 받습니다.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록을 참조할 필요가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규정이 만들어졌는지 궁금할 때 등등 각 부서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W 씨에 도움을 청하고 W씨는 보존하고 있는 기록 중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 제공하지요. 아카이브가 존재하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까.
아울러 이 분은 종종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자료들을 웹페이지나 기타 전시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소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19세기 말 한 학생의 메모를 소개하면서 공부 때문에 골치 아파한 것은 지금의 학생들과 그 때의 학생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 하기도 했지요. (참고: Stress of academic work nothing new – selections from the University Archives)
하지만 그것은 이 부서에서 맡은 일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 외에도 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책이나 기타 자료들 중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것들을 따로 보관하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업무는 부서의 이름이 말하고 있는 것 처럼 "특별한 자료"들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그 중에는 우리 도서관만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테마의 컬렉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서에서는 이런 테마별 컬렉션을 보존하는 것 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모아 컬렉션의 가치를 올립니다. 이런 면에서는 도서 수집가(Book Collectors)들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컬렉션이 Miriam Snow Mathes Historical Children's Literature Collection 인데요 이 컬렉션은 19세기 말에서부터 1960년대 사이에 출판된 어린이용 책들을 모은 컬렉션입니다. 이 컬렉션의 책들은 1920년대에 올바니 대학의 전신인 뉴욕 주립 컬리지의 도서관 학과에서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천천히 책을 모아오다가 미리암 스노우 매스 여사의 기부금과 다른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데요, 이제는 그러한 기부금을 이용해 주기적으로 책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12,000 여권의 책이 수집되었는데 한국에도 잘 알려진 로라 잉글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 시리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컬렉션을 맡고 있는 M 씨는 은퇴한 사서로서 자원 봉사를 하고 계시는 분인데 아동 도서에 관해서는 도서관학과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을만큼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70대에 가까운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정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도서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하고 여전히 강연을 다니시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제가 감탄한 것은 그 분의 따뜻한 목소리였는데요. 언제가 아이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시는데 그 분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풍부한 감정 표현 등 정말 한마디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동 도서 컬렉션 외에도 German and Jewish Intellectual Émigré Collection 역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나찌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많은 독일인, 그리고 독일계 유태인 학자들이 남긴 필사본들 비롯한 여러 자료들을 모은 이 컬렉션을 이용하기 위해 유럽에서도 학자들이 찾아 옵니다. 특히 현대 미국의 대학 학문을 형성하는데 이들 독일계 학자들이 미친 영향이 컸던 만큼 이 사람들이 남긴 일기나 메모 그리고 각 종 연구 노트 등은 그 학자 개인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미국 학문의 역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지요. 저희 도서관의 특수 자료실에서 가장 자랑하는 컬렉션이 바로 이것이고 특수 자료실의 입구에서는 컬렉션 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저희 도서관의 특수 자료실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은 하버드나 예일 같은 다른 대형 연구 중심 대학의 도서관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수준입니다. 당장 큰 대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귀한 컬렉션들을 유치할 만큼 대학의 명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자료들을 구입이라도 해서 컬렉션을 만들만큼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런 상황 때문에, 그와 같은 중요한 연구 자료들을 도서관에 기증을 받기 위해 담당자가 기울이는 노력도 대단합니다. 이렇게 노력해서 자료들을 모으려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통해 정보의 수호자로서 도서관의 위치를 높이려는 것입니다. 즉, 연구 중심 도서관으로서 연구를 위해 중요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만큼 도서관의 가치를 올리는 일이 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처럼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 때문에 저희 도서관에서는 다른 도서관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료들에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지역의 개인들과 민간 단체들에서 생산한 자료들을 기꺼이 맡아서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18세기 올바니에서 영업을 했던 한 잡화상의 장부에서부터 뉴욕 주립 대학 시스템에 속한 전체 교직원들이 가입되어 있는 교직원 노동 조합의 기록도 있고 뉴욕 주 공무원노동 조합의 기록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올바니와 관련된 정치인들이나 기업인, 작가 등 많은 일반인들이 기증한 자료들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입수한 자료 중에는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몇 십년간 모은 녹음 테이프도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이 모으고 있는 자료는 상대적으로 젊은 자료들이고 또 다양한 종류의 자료들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훗 날 반드시 중요하게 쓰일 자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가 윌리엄 케네디(William Kennedy)씨의 기록이 그러한데요. 이 분의 작품 중 1983년에 발표한 Ironweed 는 지난 해 한국에서 서강대에 계시는 장영희 교수님에 의해서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더군요. 혹시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작품은 1987년에 잭니콜슨과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알려졌었지요.
월리엄 케네디 씨는 올바니에 살고 계시고 또 올바니를 무대로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물론 아직 생존해 계시고 여전히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그 분이 저작 활동을 하며 남긴 많은 기록들이 이미 저희들의 특수 자료실에 기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훗날 이 분의 작품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될 영문학자들에게 저희 대학 도서관은 반드시 거쳐가야 할 중요한 도서관이 되겠지요. 사실 특수 자료실 바로 곁에 New York State Writers Institute 라는 기관이 있고 케네디씨는 현재 그 기관의 장입니다. 케네디 씨는 지금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계시고 그 작업을 돕는 개인 사서와 함께 저희 상호 대차 부서에서 자료 입수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서들 역시 맡은 업무가 다양한데요. 그 중 몇 사람은 역사학 석사 학위와 도서관학 석사 학위를 같이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도서관 학과에서 공부를 할 때도 아카이브와 관련된 과정을 중심으로 수업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저와는 사학과에서 같이 공부하기도 했던 W 군은 디지털 자료 보존에 관한 전문가입니다. 도서관 학과를 졸업하고 몇 년간 디지털 자료 보존과 관련된 연구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일을 하다가 도서관으로 돌아온 친구인데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바로 디지털 자료의 보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업무입니다. 당장 도서관과 대학에서 생산되는 디지털 자료들(예를 들면 대학의 공식 사진은 벌써 몇 년째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있지요.)을 보존하고 또 그것을 이용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W 군 외에도 다른 사서들과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도서관 학과 대학원생들은 이렇게 입수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많은 정성을 기울여 Fining Aids(자료 안내서)를 만들고 그것을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지고 있는 자료들에 대해 알림으로써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기타의 경로로 우리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발견한 연구자들이 찾아 와서 이용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이곳이 일반 도서관을 이용하듯 그렇게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자료들의 특성상 특수 자료실에 딸린 열람실에는 가방을 들고 들어갈 수 없고 모든 자료는 근무 중인 사서에게 신청을 하면 사서가 검토한 후 수장고에서 꺼내 줍니다. 그리고 열람실에서는 원칙적으로 연필을 제외한 필기 도구는 사용이 금지 되어 있습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요. 연필이라면 다시 지울 수 있지만 볼펜이나 다른 종류의 펜은 지우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음료수는 절대 반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러한 자료들을 그저 모아 놓고 정리하는 것만이 업무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도서관에서는 소장하고 있는 자료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서 이용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서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과 교수님들에게 우리 특수 자료실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특히 역사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저는 더 열심히 홍보를 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사학과 학생들 중에는 특수 자료실에서 소장하고 있는 원사료들을 이용해서 기말 리포트를 작성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아울러 사학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구술사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구술사 녹음 자료들은 다시 도서관의특수 자료실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올바니 대학에서 6.70년대 일어났던 반전 운동에 대해 리포트를 준비하는 학생은 특수 자료실에 소장된 당시 올바니 대학 신문과 학생회의 회의록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학생들의 기록, 그리고 당시 교수회의 기록이나 기타 학교에 재직하고 계셨던 교직원들의 개인 기록 등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려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작업을 통해 혹시 학생이 졸업생들을 만나 구술사 인터뷰를 할 경우 그 자료는 다시 도서관의 특수 자료실에 보관이 됩니다.
미국 도서관의 이야기를 하면서 늘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미국에서 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꼭 그대로 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처한 현실이 다른만큼 각 자 상황에 맞게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가지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서는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록을 제대로 보존하고 후대를 위해 남겨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특수 자료실의 수장고 모습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상자들은 아카이브용 Acid Free 상자로서 그 안에는 각 종 문서들이 들어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우리 나라의 행정을 맡은 정부에서조차 기록보존법을 만들고 기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후반이니 질문하기가 좀 우습습니다만, 한 대학이 개교했을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일들을 전해주는 기록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대학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요? 물론 전쟁으로 인해많은 자료가 없어졌겠지만 전쟁 이 후부터라도 아니, 우리가 살만해진 80년대 이 후부터라도 학교의 기록들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는 대학이 얼마나 있을까요? 학교 당국이 그럴진대, 학교에 소속된 여러 학생 단체나 역사가 오래된 동아리들의 기록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리고 역사가 몇 십년이나 된 학교들의 경우 그 학교에서 가르치고 정년을 마친 교수님들의 기록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그 중에는 학계에서 이름을 떨친 학자들도 많으실텐데 그 분들은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으셨을까요? 학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단을 주름잡았던 작가나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은 어떨까요?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런 분들의 기록이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은 차지하고라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여러 민간 단체들은 자신들의 기록을 얼마나 보존하고 있을까요?
이런 기록들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보존하지 않으면 우리의 20세기는 후세들에게 제대로 전해질 수 없습니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쁘다고 뒤로 젖혀두기에는 지금 사라지고 있는 자료들과 기억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역사 보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당장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몇 십년 간 전국의 각 도시에서 이루어진 가스관 및 전기, 전화선 그리고 상,하수도관의 매설 공사 이 후 어디에 무엇이 어떤 식으로 묻혀있는지 제대로 된 완전한 기록이 남아 있을까요? 만일 이런 기록들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설사 당장 모든 것을 보존하지는 못 한다고 하더라도 우선 기록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만이라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개개인부터라도 자신의 기록들을 찬찬히 모으고 정리한 습관을 들여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렇게 보존된 기록들을 이 시리즈의 글을 처음 시작했을 때 소개했던 쿠퍼 할머니처럼 훗날 한국의 도서관이나 아카이브에서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기증해 주신다면 여러분은 우리의 역사를 후대에게 물려주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시는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 블로그에 올리시는 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로 저장해 두십시오. 여러분의 중요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가 지금 여러분의 나이가 되거든 블로그에 여러분들이 올리신 글을 한 번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엄마/아빠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었단다." 하고 이야기 해 주십시오. 가슴 떨리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면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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