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부터 미국에서 출판되었던 "라이프(LIFE)"라는 잡지는 가벼운 흥미 거리의 연예 기사에서부터 당시의 사회의 중요한 사건이나 정세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 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사를 소개했었습니다. 특히 1936년대에 타임(TIME) 사의 창업주인 헨리 루스(Henry Luce)가 이 잡지를 인수한 후 본격적인 주간지로 발간되었는데 이 잡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잡지에 실린 다양한 사진들 이었습니다. 알프레드 아이젠스테트(Alfred Eisenstaedt) 와 같은 당대 최고의 사진 작가들이 찍은 그 사진들은 몇 페이지에 걸친 기사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 잡지는 포토저널리즘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지요.(옆에 있는 사진은 1936년에 타임사가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발간한 라이프지 첫 호의 표지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시대에 이 잡지가 가진 힘은 대단했습니다. 이 잡지에서는 매우 짧은 설명과 함께 풍부한 사진을 소개했는데 그러한 방식은 다른 어떤 잡지 보다도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독자들의 눈을 사로 잡았습니다.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통해 독자들은 미국은 물론, 먼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생생하게 그리고 매우 효과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 결과 이 잡지는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하게 되었지요. 이 잡지의 보수적이고 친정부적인 성향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잡지에 실린 사진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습니다. 그러다가 70년대에 접어들면서 텔레비전을 비롯한 기타 여러 매체들과 경쟁하면서 이 잡지는 서서히 그 명성을 잃어가다가 결국 2000년에 주간지로서는 발간을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나서도 여전히 특집호 형식으로 다른 신문의 부록으로 간간히 발간되다가 결국 지난 2007년에 완전히 종간하였지요.
그런데 인터넷과 정보 통신 기술의 힘은 다시 한 번 라이프지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에 라이프지는 구글과 협약을 맺고 자신들의 아카이브에서 소장하고 있는 천 만장이 넘는 사진을 디지털화 해서 구글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소개될 사진들 중에서 잡지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사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하니 과연 어떤 사진들이 그 안에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아래의 사진은 1939년 베를린에서 있었던 히틀러의 50회 생일 기념 퍼레이드 사진입니다. 붉은 색 바탕에 그려진 검은 색의 스와스티카가 섬찟하게 다가오는군요.)
앞으로 몇 달에 걸쳐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 하는데 그 천 만장의 사진 중 20% 정도는 이미 구글을 통해 검색을 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의 에칭에서부터 최근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의 사진이 앞으로 추가될 텐데요, 현재 인터넷에 올라있는 사진만으로도 너무나 흥미로운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가로 1280 픽셀 정도의 큰 사진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 용도에서 사용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이것을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제약이 따르겠지만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적어도 교육용으로 사용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저는 이런 컬렉션을 보면 한국에 관한 것부터 먼저 검색을 해 봅니다. 그리고 구글 이미지를 통해 검색할 수 있는 라이프지 사진 컬렉션에서 한국 사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이곳에서 검색되는 한국 관련 사진들은 대부분 한국 전쟁과 관련된 사진들입니다. 우리 현대사의 아픈 모습들을 보여주는 여순 반란 사건, 한국 전쟁, 그리고 4.19등의 모습을 그 속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구글의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를 이용해서 검색할 수 있는데 사진들에 대한 목록 작업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검색 결과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작업이 이루어진 목록에서는 사진의 제목과 사진을 찍은 사람, 장소, 시간, 사진의 픽셀 크기 등의 정보가 있고 "Labels" 라는 형식으로 사진에서 담고 있는 인물이나 주제를 몇 개의 키워드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일부 사진들에는 사진을 찍은 정황과 사진의 내용을 알려주는 짧은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용자는 이 모든 정보들을 풀텍스트 검색 방식으로 검색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Korea 1950" 같은 방식으로 검색을 하면 1950년에 찍은 한국의 사진 더 정확히는 1950과 Korea 라는 단어가 목록에 들어 있는 모든 사진들이 검색됩니다. 하지만 아직 사진들에 대한 목록 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레이블이 제대로 붙어 있지 않는 사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Korean, Koreans 등으로 검색해야만 하는 사진들도 있고 Taegu, Pusan 등의 지명으로 검색해야만 볼 수 있는 사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사진은 1950년 부산의 모습인데 목록에는 오직 Pusan 이라는 단어 외에는 한국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없습니다. 또한 사진에 대한 설명이나 제목 등에 오류가 있는 경우도 있고 한국어 지명이나 인명의 경우 영어 스펠링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진을 찍은 사람을 중심으로 검색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을 검색해 보실 분은 링크(http://images.google.com/hosted/life) 를 따라가시거나 구글 이미지 검색 에서 source:life 라는 옵션을 추가하십시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 korea source:life> 물론 한국 사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진들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20세기의 역사에서 알려진 많은 유명인들과 또 우연히 카메라에 잡힌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보실 수 있을 것이고 또 슬프게도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많은 사건들을 생생한 사진으로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이 블로그를 통해 자주 기록과 기록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글과 라이프지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이유 역시 바로 그와 같은 기록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단지 보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을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반인들에게 제공한다는 것 그것은 더욱 더 큰 의미가 있는 일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도 분명 위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자료들이 있고 또 그것들을 가공하여 일반들에게 제공할 만한 기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학계 및 사회의 관련 인사들이 역사책과 역사의 해석에 관한 논쟁에 쏟아 붓는 정열의 10% 만이라도 이런 작업에 기울여 주실 수는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사진이나 기타 과거로부터의 기록이 100% 객관적이거나 진실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머리를 거쳐 나온 역사책과 함께 당시의 모습과 기록을 통해서도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국민들에게 주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래에는 구글-라이프 컬렉션에서 발견한 한국 관련 사진 중 흥미로운 것을 몇 장을 올려 봅니다. 현재 작업 중인 컬렉션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검색 결과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 검색할 때 없던 사진들과 정보들이 오늘은 보이는군요. 이 외에도 더많은 사진들이 있으니 가셔서 구경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유가 있으시다면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보시면서 우리의 현대사를 이야기 해주셔도 좋겠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충격적인 사진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 이런 부분을 피하고 싶으신 분들은 Advanced Image Search 로 가셔서 "Safe Search" 옵션을 "" 으로 바꾸어 주십시오. 물론 아직까지 사진에 대한 목록 작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효과가 없습니다만 나중에는 유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1947년 9월에 찍은 서울의 모습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로터리 부분은 서울 시청 인근이 아닐까 싶은데 서울 사시는 분들께서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역시 알프레드 아이젠스테트의 카메라에 잡힌 38선의 모습입니다. 멀리 38이라는 숫자와 그곳을 막고 있는 미군들 그리고 지게를 진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래에도 아이젠스테트의 사진에 잡힌 '콘티넨탈 그릴'의 벽보입니다.미군들을 상대한 업소였겠지요. " You can eat Food, You can drink Beer" 아주 간단하지만 확실한 정보를 알려주는 벽보입니다.
1947년에 찍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이 5월이었고 두 달 후인 7월에 암살당하셨지요. 이 사진을 보면 "호방담대하면서도 관용적이고 인자하였다는 평을 받았다"는 한국학 사전의 말이 정말 실감이 납니다.
1950년 12월에 찍은 함경남도 흥남 항구의 모습입니다. 남으로 떠나려는 피난민들이 배에 타고 있는 모습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52년 11월 전라북도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은 이 사진에는 도경찰국장(Provincial chief of National Police) 한경록(? Han Kyon Lok) 이라는 레이블과 함께 아래와 같은 설명이 달려있습니다.
Han Kyon Lok, Provincial chief of National Police, singing popular Japanese song over table load w(ith). food, as he celebrates w(ith). his men & "Kisaeng girls" (Korean geishas) their victory over Communist guerrilla advisary Kang.
무렵 전라북도 경찰국장은 다른 사람이었던 것으로 들었는데 확인을 다시 해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과 같은 시기에 찍은 아래의 사진 속에는 인민군 모자를 쓴 세 사람이 보입니다. 사진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빨치산이었다가 경찰에 투항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경찰에서는 이들을 복장 그대로 다시 산에 투입하여 다른 빨치산들을 검거하도록 했다고 하는군요.
1960년 4월 서울에서 찍은 아래의 사진에서는 3.15 라고 한자로 쓰인 플랭카드와 교복을 입고 스크럼을 짠 고등학생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라이프 지의 기자에게 보인 한국의 모습이 이처럼 우리에게는 슬픈 기억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와 같은 흥미로운 사진도 볼 수 있는데요. 1947년 6월 서울 시내에서 교통 정리를 하고 계시는 이 교통 경찰의 현란한 움직임은 라이프지 기자의 렌즈를 잡아놓기에 충분히 흥미로웠던 모양입니다. 이 분의 사진은 이 외에도 여러 장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과 관련된 사진을 찾으며 제일 저에게 감동을 주었던 사진입니다. 전쟁의 와중인 1951년 9월에 찍은 이 사진 속의 소녀가 웃는 모습을 보며 애잔한 마음이 들더군요. 전쟁을 겪고 와중에서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저렇게 맑게 웃고 있는 소녀는 무엇을 보았길래 저렇게 웃고 있을까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전쟁의 참화를 딛고 오늘 날 우리를 만들어 낸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저런 미소의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사진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번 가 보십시오.
인상적인 사진들 잘 보고 갑니다. 흥미진진한 뉴스도 감사드리구요. 라이프 사진 아카이브의 공개 소식은 처음 들었는데, 정말 굉장한 소식이네요. 사진 영상의 태동기부터 미국 이주민 1세대들에게 세상의 창문이 되어주었다던, 말 그대로 역사의 생생한 순간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담고 있어 유명한 잡지잖아요.
선리플 후감상 (응?) 제가 댓글 먼저 다는 이유가.. 어제 서양여성사 수업에 LIFE지가 나왔거든요 ㅇㅂㅇ
미국 신여성을 지칭하는 '깁슨걸'이라는 용어가 나왔는데, 그게 나온 이유가 LIFE에 깁슨이라는 사람이 그린 여성 그림이 유행이 되어서라고 하더라고요 'ㅁ' 그래서 생각나서 냉큼 댓글 /ㅅ//
Charles Dana Gibson 으로 검색해 보시면 아마 그림이 좀 나올겁니다. ... 그나저나 참 흥미로운 수업을 들으시는군요. 코넬 대학에서 지원하고 있는 Home Economists in early 20th century America 웹싸이트에 가보시면 여성사와 관련해서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여성사와 관련해서 아주 흥미로운 사료들이 있답니다. 한 번 둘러보세요.(이제는 직업병이 시도때도 없이 도지는군요.) http://hearth.library.cornell.edu/
항상 클로님의 블로깅을 보며 유용한 정보를 얻고있습니다.
라이프지의 사진은 항상 뭉클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얼마전 매그넘의 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우리네의 과거 사진과 비교해보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압축해서 지내왔는지 느껴 집니다.
또한 그 빠르게 지내온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것을 잃어버렸는지...
어쩌면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년 사이에는 그 이전 시기 몇 백년 보다 더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좋게 변한 것들도 많이 있지만 중요한 것들을 많이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좋은 미덕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는 건물들이 일부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제가 살다온 대구의 사진을 찾아 보았는데 정말 어디가 어딘지 알아 보기 힘들더군요,
Commented by st. gallen at 2009/03/04 23:06
맞게 보셨습니다. 조선은행(현 한국은행)본점 건물 비스듬히 오른쪽 건너편 건물이 지금도 신세계 백화점 본관으로 남아있는 미츠코시 백화점이고, 그 옆이 구 제일은행 본점 건물이고, 광장의 다른 한편의 건물은 중앙우체국 건물이지요. 중앙우체국 건물 말고는 나머지 거명된 건물들은 현재에도 온존합니다.
Commented by st. gallen at 2009/03/05 22:48
제 글을 올리고 나서 보니 밑에 키르난 님께서 벌써 대충 같은 내용의 확인을 해 주셨었더군요. 좀 겸연쩍은 김에 사진 링크를 하나 찾아 올립니다.
1930 년대 초 바로 그 광장의 모습입니다. 1930년에 완공되는 미츠코시(삼월)백화점은 들어섰으나, 1935년에 그 옆에 들어서는 제일은행 본점 건물은 아직 기공되지 않은 것에서 찍힌 연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분수대도 아직들어서지 않았고, 차 한대 없이 자전거 몇대가 교통량의 전부인 너른 공간을 태평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수 있는 광장, 이딸리아의 piazza 를 닮은 그런 광장은 한국에는 아직까지는 아마도 거의 없는 게 아닌가 합니다.
혼마치의 입구인 이 광장이 일제치하의 조선사회에 갖는 의미가 특별한 이유를 잘 밝힌 글도 하나 찾아 냈습니다.
위 의 글에 안 나오는 제 독서 체험도 하나 첨가하자면,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가 요리집이 늘어선 "A정"의 오뎅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아, 1935년쯤에 택시가 그래도 있었군요.) 를 "삼월백화점"앞에서 잡는 모습이 인상깊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김강사가 혼자 조선인 상권인 종로통을 지나면서 "본정통의 번잡한 데 비해 이곳은 몹시 잠잠했다. 일류미네이션만 헛되이 빛나고 세모 대매출의 붉은 깃발이 쓸쓸한 섣달 대목거리의 먼지에 퍼덕이고 있었다." 고 한 대목도 함께요.
'그래도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는 건물들이 일부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라 그러셨는데, 참 동감입니다만, 하나 사족을 달자면, 현재의 한국에선 굉장히 사치스런 생각일 수 밖에 없다는 느낌이 같이 듭니다... 그리고, clio님, 이 사진을 구글-라이프에 들어가 큰 크기로 다시 들여다 보았는데, 45년이 아니고, 47년 9월호에 실린 것이더군요.
st. gallen 님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링크해 주신 글들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지적해 주신 내용을 확인하니 47년에 찍힌 사진이 맞군요. 아마 제가 1945년에 찍힌 사진을 다운로드하면서 헷갈렸나 봅니다. 고치겠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이프...라 하면 저는 잡지보다 타임라이프 시리즈가 먼저 떠오릅니다. 독특한 전집을 많이 냈다고 기억하거든요. 몇 년 사이에도 타임라이프의 시리즈들이 들어왔는데 가람기획에서 나온 <타임라이프 세계사>와 분홍개구리에서 나온 세계 신화 시리즈-<요정>, <용>, <거인>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타임라이프 세계사의 일본편을 보고는 헛웃음을 지은 부분도 몇 있지만 말입니다.. 서양에서 본 일본의 모습이라 표현이 이상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 사진은 파리13구님이 지적하신대로 한국은행-신세계-우정국(이 맞나 모르지만 지금 중앙우체국 자리;)인듯 합니다. 우체국 뒤쪽에 보이는 것은 화교학교의 운동장 같네요.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쳤습니다. ... 사실은 올려주신 글을 읽고 혼자서 한참 웃었습니다. 어쩔수가 없구만 하면서 말입니다. 루스와 관련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몇 번이나 지적을 받은 일이 바로 루체라고 제가 발음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종종 제가 알고 있는 다른 언어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동일한 철자의 영어 단어가 나오면 어김없이 그 언어로 발음을 합니다. Luce 는 이탈리아어에서 빛(light)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루체'라고 발음하지요. 그러다 보니 헨리 루스의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부터 루체라고 발음을 하고 그것때문에 여러 차례 친구들이 놀린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똑같은 실수를 글로 쓰면서 여기서 또 하는군요. 아마 이제부터는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저 경찰의 모습은 그 사진 외에도 몇 장이 더 있는데 말입니다. 썩 기분 좋은 사진들은 아니더군요.
어떤 의미에서 저에게는 이탈리아어가 제 2 외국어 입니다. 비록 영어를 먼저 배우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익히고 일상 생활에서 쓴 것은 이탈리아어가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금 다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영어를 일상에서 쓰고 있지만 여전히 이탈리아어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처음 보는 영어 단어를 발음할 때 그러하고 그 단어에 강세를 줄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좀 덜 합니다만 몇 년전까지도 친구들이 농담삼아 이탈리아 억양으로 영어를 하는 한국 사람 아니 아시아 사람은 처음 봤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종종 이탈리아 지명까지도 미국 식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로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만 그래도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습관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타납니다.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이 이래 저래 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태리어 처음 배울때 그랬어요. 한동안 미국와서 고치느라 애먹었어요.. 근데 그말씀하시니까 생각나네요... 제가 어린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국적은 영국인데아버지가 벨기에에서 사업을 하시나봐요... 그래서 억양은 프랑스 인토네이션.... 그래서 미국에 오는 영국국적자가 프랑스 인토네이션이라면서 웃었다고 하더라고요.
kristine 님 / 그것도 어떻게 보면 언어를 공부하는 재미라고 할 수 있지요.^^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적에 음성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탈리아어의 각 지방별 방언은 물론 외국인들이 이탈리아어를 말할 때 나타나는 억양을 국가별로 정확하게 흉내내시는 분이셨지요. 억양 이야기를 하면 늘 그 분이 생각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였습니다.^^ 이거 정말 부끄럽습니다. 지적해 주신 덕분에 고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비록 사진 속이지만 그 분들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고 또 눈빛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해공 선생의 굳게 다문 입과 강한 눈빛은 대단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습니다.
지금의 조선호텔이 감싸고 있는 원구단 앞에서 암살 직전의 여운형선생의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장소도 인물도 인상적입니다. 저때의 원구단도 13년 일제가 무슨 호텔을 지었다니 저 팔각당은 그 호텔의 정원조경건물쯤이었겠어요. 그 호텔에서 뭔가를 하고서 찍은 사진이겠죠. 아마도 근로인민당을 건설할 때가 5월이니까 그 전후의 모습이겠어요. 괜히 5월의 여운형 표정이 슬퍼보입니다. 여운형 암살로 좌우합작은 물건너가니... 그나저나 클리오님은 서울에 사신 적이 없으시답니까, 놀랍습니다.
미국에 와서 역사를 공부를 하며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하면 전문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는지, 학자들과 대중들의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다보니 올려주신 사려 깊은 덧글 덕분에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왜 설득력이 없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이 떠오르다가도 또 다른 생각이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것이... 참 답답했습니다. 과연 내가 공부를 왜 하는지, 그리고 내가 하는 공부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좋은 말씀 올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