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의 도서관은 조용합니다. 학기를 마치고 학생들이 캠퍼스를 떠난 탓도 있지만 올 겨울은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12월 셋 째 주부터 제가 일하고 있는 도서관을 제외한 캠퍼스 전체의 건물을 2주 동안 닫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가를 내고 긴 연휴에 들어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도서관으로 걸어들어오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캠퍼스가 올 해는 웬지 당혹스럽더군요. 하지만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그 당혹감은 이내 편안함과 따스함으로 바뀌었습니다.
학생들과 학생들이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로 시끄럽던 도서관 로비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고 그 순간 저는 이게 바로 '도서관의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서관에서 뭐하냐며 놀리는 동료 사서에게 도서관의 소리를 즐기고 있다고 웃으며 답을 해주고 제 사무실에 앉아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온 폭설 때문에 월요일과 화요일에 출근을 하지 못 한 동료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다른 때 같으면 조용했어야 할 시기에 저는 빠진 사람들의 공백을 메우느라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오늘에서야 여유가 조금 생겼습니다.
조용한 도서관의 한 구석에 있는 역시 조용한 제 사무실에서 눈에 덮인 정원을 바라보며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컴퓨터를 켜고 오늘 하루 들을 음악을 선곡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스운 일이지만 조용한 도서관이 그렇게 좋다고 한 이유는 바로 그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요란한 락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잔잔한 클래식 정도는 큰 문제가 없겠지요.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하의 피아노 곡들을 틀어 놓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위가 시끄러울 때는 들리지 않던 굴드의 허밍까지 들리더군요. 그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년에 있을 예산 삭감에 대비해 구독 취소할 저널의 목록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음악이 있으니 위안은 되더군요. 더구나 바다 건너 하와이에서 날아온 코나(Kona) 커피의 향을 맡고 있으니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더군요.
4시가 넘은 지금 벌써 바깥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도서관도 5시면 문을 닫으니 오늘은 일찍 퇴근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도서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도서관의 서가에서 숨죽이고 꽂혀 있던 책들이 하나 둘씩 서가에서 내려와 파티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3층 구석의 철학 구역에 있는 플라톤이 일 층으로 내려와 책들을 모아 놓고 <향연>을 벌이고 이층 문학 코너에 있던 에이허브 선장이 절뚝걸리며 지하로 내려가서 어린이용 도서 속에 있는 자신의 분신과 만나지는 않을지요. 작가 인명 사전 속에 있던 작가들이 모두 뛰어나와 자신의 책이 꽂힌 도서관의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자신들의 책을 흩어버린 도서관 사서들에 대해 험담을 늘어 놓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1층의 훼손 도서 서가에 있는 부상자들은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자신들을 다치게 만든 이용자들을 욕하고 있을겁니다. 몰론 크리스마스 이브에 문을 닫은 도서관에 남아 있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실제 있었는 지는 의문입니다.^^
지난 한 해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즐겁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찾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십시오.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http://cyberlibrarynews.wordpress.com 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오늘자 뉴욕 타임즈 웹페이지에 소개된 책으로 만든 도시에 관한 스톱 애니메이션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제목 : Cliomedia - Clio님 도서관, 책, 사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Cliomedia 블로그 입니다.외국 도서관의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져있어서 가끔은 이질감이 느껴질때도 있지만...도서관 사서에 대한 로망은 많이들 갖고 있지 않나요?충분한 대리만족이 되는 것 같아서 참 좋은 것 같아요 ^^;...more
제가 이 말을 옮겼을 때에는 개인의 서가보다는 한 지역의 도서관에 대해 더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Holbrook Jackson 씨가 이 말을 했을 때는 한 개인의 서재를 의미했을 수도 있겠지요. 이 말이 나온 배경에 대해 정보가 없어서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결국 한 개인의 서재와 한 지역 공동체의 도서관, 두 경우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정보를 찾아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