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  도서관  *  책소개  *  인터넷  *  역사  *  세상  *  음악  *  기타

책벌레들을 위한 뉴욕 관광(2)-모건 도서관
"모건 씨의 위대한 도서관, 애서가의 천국(Paradise of the  Bookman)",  이 말들은 1908년 12월 4일자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의 제목 중 일부입니다. 이 날 뉴욕 타임즈에서는 영국의 런던 타임즈에 그 다음 날 실릴 예정인 한 기사의 전문을 미리 실었습니다. 런던 타임즈의 뉴욕 특파원이 쓴 이 기사는 '모건(Morgan)'이라는 사람의 도서관에 대해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최초로 작성한 기사라고 하면서 뉴욕 시티에 있는 모건 씨의 도서관에 대해 자세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애서가들의 천국'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는 이 도서관과 도서관의 소장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런던 타임즈에서는 "고금을 통틀어 가장 탁월한 수집가가 모은 가장 훌륭한 훌륭한 소장품들" 이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문화와 예술에 관해서는 미국인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는 저급한 것으로 치부하던 유럽의 입장에서 볼 때는 대단한 칭찬이지요. 그리고 기자는 이러한 소장품들을 모은 모건 씨를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예술과 학문을 후원했던 로렌조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에 필적할 만한 사람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서두에서 기자는 "역사상 어떤 시기에도 이렇게 작은 공간에 이처럼 아름다고 희귀한 책과 예술품들이 모인 적은 없었다"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자신이 과장한다고 느껴지면 기사를 계속 읽고 나서 판단하라고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고 싶은 모건 도서관이 바로 이 1908년 뉴욕 타임즈의 기사에서 언급된 그 도서관입니다.  지난 번에 소개해 드린 42번가의 뉴욕 공공 도서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36번가와 매디슨 에비뉴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모건 도서관의 정식 명칭은 모건 도서관과 박물관(The Morgan Library & Museum)입니다. 도서관의 이름에서 짐작을 하셨겠지만 이 도서관을 처음 만든 사람은 뉴욕에서 유명한 은행가인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 이었습니다. J. P. 모건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사람이지요.

그는 젊은 시절부터 고서들을 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뉴욕 부자들이 일반적으로 취미삼아 하는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1890년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가 경영하던 은행까지 물려받아 현재까지 내려오는 JPMorgan 사의 재력을 확보한 이 후부터는 본격적인 희귀서 및 예술품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유럽을 돌며 중요한 작가들의 서명이 들어 있는 필사본을 구입하거나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스케치 들을 모았고 심지어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유물까지 사들였습니다.

한 두 점 씩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서재나 갤러리를 통째로 구입하는 모습을 보여 당시에 많은 화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1890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13년까지 책과 미술품을 구입하기 위해 사용한 금액이 6천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9억 달러) 정도였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지요. 그 과정에서 그는 "의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확실하게 진품 임이 알려진 물건이라면 아무리 높은 가격이라도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하니 책과 미술품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은 어떤 특정한 화가나 작가의 작품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서양 문명의 고대에서부터 당시까지 모든 시기를 아우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모건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455년 판 구텐베르크의 성경입니다.)
도서관과 관련해서 소장품들을 살펴보면 중세의 채색 필사본들은 물론이고 인쇄술이 등장했던 초기에 인쇄된 희귀본들, 그리고 찰스 디킨스나 마크 트웨인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일기나 편지 그리고 그들의 서명이 들어있는 초고, 모짜르트와 베토벤 같은 유명 작곡가들의 악보 등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책과 문서들이 모건 씨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종이와 양피지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출토된 원통형 도장(Cylindrical Seal)과 바빌로니아의 설형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까지도 수집을 했다고 합니다. (아주 어수선 해 보이는 아래의 악보는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악보라고 합니다.)
당시 그는 뉴욕 시티와 런던 그리고 영국의 시골 별장 등 여러 곳에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해외에서 구입한 예술 작품에 대해 20%의 관세를 물리던 미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많은 작품들은 런던에 있는 집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가능한한 최대한 많은 작품을 미국에 들여오고 싶어했었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많은 작품들이 런던에 남아 있었지만 뉴욕 시티에 있던 그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작품들의 양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을 제대로 보관하기 위해 별개의 건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건씨는 1902년 당시 최고의 건축 회사 중 한 곳인 McKim, Mead & White 사에 자신이 살고 있던 집 옆에 자신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별도의 건물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모건 씨는 단지 소장품들을 보관하는 건물이 아니라 소장품들의 중요성과 그것들이 의미하는 화려한 서구 문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줄 수 있는 건물,웅장하면서도 친밀한 그런 건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McKim, Mead & White사의 창업자 중 한 사람으로서  뉴욕 시티의 펜스테이트 역을 비롯해서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과 보스턴 공공 도서관 등을 설계하여 American Renaissance 스타일의 주도자였던 맥킴은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궁전을 닮은 현재의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맥킴의 최후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맥킴은 유럽의 여러 건축물들, 특히 르네상스 시기에 만들어진 이탈리아의 건물들을 참고했다고 전해지는데요. 테네시 주의 분홍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고전적이면서도 단순하게 보이는 건물의 전면은 고대 그리이스 건축물에서 보이는 웅장한 기둥과 부조가 조각되어 있고 피렌체의 세례당에 있는 '천국의 문'이 연상되는 문을 열고 들어선 도서관의 각 방은 그 방에 있는 책들과 미술품들과 어울리는 구조와 실내 장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건물을 장식하는 조작들과 벽화들을 제작하는 일에는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이 참가했지요. 재미있는 일 중의 한 가지는 이 도서관의 입구 역시 두 마리의 사자가 지키고 있는데 그 사자를 조각한 사람은 몇 년 후 뉴욕공공 도서관의 '인내'와 '불굴'이라는 두 마리의 사자를 조각하게 되는 에드워드 클락 포터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해서 4년만인 1906년에 완성된 도서관은 당시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었고 그 안에 있는 소장품들은 더욱더그러했지요. 하지만 이 건물은 모건씨의 개인 도서관으로서 아무에게나 개방되는 그런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1908년의 기사는 자랑스럽게 "최초"로 모건씨의 허락을 받고 공개하는 도서관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난 후 1913년에 모건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나며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일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인들이 항구적으로 자신의 소장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지요. 자신은 그 작품들을 수집하는데 바빠 그러한 자신의 원래 목표를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아들 잭에게 그 일을 넘깁니다.

그래서 1924년에 모건 쥬니어는 이 도서관을 일반에게 개방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공공도서관처럼 누구에게나 개방한 것은 아니었고 학생들과 연구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도서관을 개방했습니다. 소장품들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하여 그저 호기심으로 찾는 사람들부터 책들을 보호하려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전시를 위해 소장품들을 대여하거나 일반인들을 위한 강연회등을 도서관에서 개최함으로써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서관의 소장품들을 공개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정적인 지원을 계속하여 더 많은 책과 예술 작품들을 모을 수 있게 했지요. (1905년 모건씨는 프린스턴 대학을 갓 졸업한 벨 다 코스타 그린(Belle da Costa Greene) 이라는 여성을 사서로 고용했습니다. 그녀는 유럽을 돌며 책을 구입하는데 많은 일을 했고 모건 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도서관의 관장으로서 평생을 일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도서관에 있는 방 중 "사서의 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곳입니다.)
모건 도서관은 1906년에 지어진 건물 이 외에도 몇 차례의 증축과 개축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에는 최초의 건물이 있는 36번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매디슨 애비뉴에 이어서 지어진 건물을 통해 입장을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긴 하지만 모건 씨가 수집한 수많은 미술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는 곳이 이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뉴욕 공공 도서관과는 달리 입장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물론 책을 대출할 수도 없구요. 하지만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많은 것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술작품과 귀한 책들은 물론 모건씨의 서재를 포함해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백만장자들이 살았던 모습을 엿볼 수도 있지요. (아래의 사진은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 곳은 사진 촬영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편입니다. 그 대신 주요 소장품들을 인터넷을 통해 고화질의 이미지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리 온라인으로 살펴보시고 직접 가서 보시면 더 흥미로우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반대로 직접 보신 후 온라인으로 더욱 상세하게 살펴보실 수도 있겠지요.

19세기말 미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부자 은행가로서 그의 생애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만 예술품과 서적의 수집가로서 그리고 그것들을 대중을 위해 공개한 사람으로서 행한 그의 역할은 분명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죽기 전 그가 바랐던 것처럼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감상하고 있고 또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이 그 곳의 자료를 이용하여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1881년 경의 모건 씨입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Clio | 2009/01/10 12:09 | 도서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5)
트랙백 주소 : http://cliomedia.egloos.com/tb/219873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astraea at 2009/01/10 13:23
저도 저런 도서관을 남길 수 있음 좋겠지만............먼산........orz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1:55
몇 십년 후에는 그렇게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Commented by seawolf at 2009/01/10 13:36
저도 저런 가족 도서관 만드는게 목표죠... 단지 공개는 연구자에 한해서...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1:56
연구자들에게라도 좋은 자료를 공개해 주신다면 정말 복 받으실 일이지요. :)
Commented by kristine at 2009/01/10 13:46
흐미 밑에서 세번째 사진 완전 제 드림룸이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1:57
추운 겨울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서 책을 읽으시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Commented at 2009/01/10 13: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2:01
시간의 무게가 책에 쌓이기 때문에 그런 책들이 더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몰론 같은 내용이지만 오래전에 나온 책의 경우는 그 책들이 현재까지 내려오면서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를 흡수해서 책 안에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 책을 읽는 나와 어떤 교감을 이루는 것은 아닌지.. 몰론 과학적인 증명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헌 책방을 기웃거립니다.^^
Commented by 꿀토끼 at 2009/01/10 14:19
저기, 궁금합니다! (손 번쩍!)
가끔 이런 저런 사진을 검색하다보면요, 자그마한 규모로 도심지나 마을에, 무심하면 지나칠 수도 있는, 마치 가정집의 서재 같은 도서관이 있던데요.
영화 <where the heart is>를 보면 남주인공의 직업도 그런 도서관의 사서던데요.
미국엔 그런 도서관들이 많이 산재해 있나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2:05
미국의 시골로 들어가면 그런 도서관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도 한 시간 이내에 그런 도서관들이 제법 있습니다. 숫자 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그런 도서관들의 숫자가 큰 도서관보다 더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크기만 작다는 것일 뿐 전문 사서가 근무를 하고 있고 지역 중심지에 있는 큰 도서관과의 연계를 통해 이용자들이 필요한 책은 차질 없이 제공하고있지요. 그것이 진정한 '작은 도서관'의 힘이지요.
Commented by baadaa at 2009/01/10 15:36
"모건"씨라고 쓰시다가 중간에 한번 "모르간"씨라고 쓰신 걸 보고 빙긋 웃었습니다. 전에 몇 번 언급하신 이탈리아어 습관의 흔적일까요. 재미있었어요. (^^)

모건 라이브러리는 도무지 개인이 수집해서 소장한 콜렉션이라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해서 처음엔 경악했더랍니다. 말씀하셨듯이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희귀 판본까지,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라 무더기로, 쌓여있다고 하니까요. 작년에 중세말 양피지 필사본 특별전이 있어서 한번 방문했다가, 수백년 묵은 양피지 기록물의 아름다움에 놀라기도 했지만 도서관 그 엄청난 소장량과 완벽한 보존상태에 더욱 놀랐답니다.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콜렉션들이 많다는 걸 생각한다면 도대체 이 사람은 뭘 얼마나 모아둔 건지 어지러울 지경이더라구요.

같은 무렵에 르네상스 시기의 소묘 스케치를 집중적으로 전시하기도 했는데, 물론 르네상스 황금기의 작품들이야 유럽 본토에 압도적으로 많이 보존되어 있겠습니다만, 작가의 손길과 숨결이 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소묘 중심 전시는 그리 자주 접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소묘 중심으로 작품 수집을 하는 갤러리도 전반적으로 많은 편은 아닌 것 같구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모건"이라면 투자와 수익의 상징인 것만 같은 이름인데 서적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상상 이상인 사람이었다니 놀랍죠. H그룹의 고 정회장이나 S그룹의 고 이회장, D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 같은 사람들과 평면적인 비교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부를 개인적으로 축재하는 것 이상의 가치로 생각하는 인품이 부럽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2:12
몇 번 확인을 하면서 그 부분을 고쳤는데 또 남아 있었군요. 이래서 여러 사람의 눈이 필요한가 봅니다. 덕분에 고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뉴욕 시티에 사시는 분들이 참 부러울 때가 간혹 있는데 바로 말씀하신 그런 부분들때문입니다. 저런 문화 시설을 가까이에 두고 언제나 마음먹으면 쉽게 가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미국 기준에서 보았을 때 올바니에서 뉴욕까지 두시간 반 정도의 거리는 먼 거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뉴욕에 한 번 가기가 쉽지 않아서 말입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비교하기는 힘들겠지요. 그 사람의 교육 환경이나 사회 환경 등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 덕분에 저런 귀한 소장품들을 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 부럽지요.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01/10 16:42
대단하군요. 나중에 미국에 갈 일이 있을 때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2:13
한 번 가 보십시오.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9/01/10 16:44
J.P 모건이 죽은 뒤에 남긴 재산이 약 7천만 달러습니다. (아마 그의 컬렉션은 제외하고) 그래서 록펠러가 모건 사후에 "사실 그는 진짜 부자도 아니었어"라고 했다지요. ^^ 물론 모건이 금융계를 움직여 "동원"할 수 있던 자본은 훨씬 더 많았지만요.

치부와 예술과 사회공헌의 비율을 나름대로 적당히 맞춘 괜찮은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2:15
실제 재산 보다는 컬렉션의 가치가 더 컸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물론 그 사람의 속까지야 알 수 없지만 지금 21세기를 사는 사람들까지 그 사람이 한 일의 덕을 보고 있으니 괜찮은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사은 at 2009/01/10 19:56
글을 읽다가 문득 책벌레를 위한 아파트 단지 같은 것이 도서관들 주변에 생겨나서 아파트와 도서관을 잇는 통로와 열람실이 있다던가 하면 얼마나 살고 싶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서관에서는 살 수가 없으니 대신 이렇게라도 누군가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웃음)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2:17
그렇게 된다면 멋지겠군요. ... 최근에는 어느 정도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에는 의무적으로 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이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현실적으로 얼마나 제대로 지켜지는가는 다른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namja at 2009/01/11 07:41
언젠가 뉴욕에 가게 된다면 꼭 들러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한국에도 좋은 도서관이 많이 생기길 바래봅니다. ^^
Commented by Clio at 2009/01/12 02:19
예 저 역시 그렇게 희망합니다. 뉴욕에 있는 도서관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한국에도 정말 좋은 도서관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나마 최근 정부에서느 도서관 발전 계획을 세우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던데 부디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at 2009/01/12 15: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14 08:56
저 역시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은 모으고 쌓는 기간이지만 말입니다.^^ ... 우리 나라에도 저런 도서관이 하나쯤 있어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많으면 더 좋지만요. ...
Commented at 2009/01/12 16: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eawolf at 2009/01/12 18:03
대학원에 있으면서 울나라 교수들에 특징? 나쁜쪽입니다. 자료를 쥐고 않줘요. 뭐 보물인듯한... 너의 꿈을 대한민국에 가두지 말라는 책을 쓰신 듀퐁에 아시아, 태평양 회장인 김동수 씨가 울나라 대기업에서 느낀바랑 같습니다. 정보는 항상 공유되어야 되고 그런 정보는 공유가 않되면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우물안에 개구리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개인은 그걸 행하는 순간부터 외톨이가 되는거죠.. 뭐 논문쓰면서 진짜로 많이 느꼇죠... 교수들 스스로 새장에 같혀 있다라는것을... 그나마 학회회장하신분은 조금 덜하시던데... 시간되시면 그책 읽어보세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1/14 08:58
감사합니다. 꼭 구해서 읽어 보겠습니다. 정말 그 말씀이 맞습니다. 정보는 공유할 수록 그 힘이 더 커집니다. 바로 이렇게 알고 계시는 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도 어느 면에서는 정보 공유의 역할을 하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12 18:57
메디치→데 메디치?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12 18:58
J. P 모건사→JPMorgan(띄어쓰기 안함).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12 18:59
싸인→서명?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12 18:59
구텐베르그→구텐베르크.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12 19:02
벨레 다 코스타 그린→벨 다 코스타 그린?
Commented by Clio at 2009/01/14 09:01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글을 올리면서 고민을 하다가 "ghistory 님께서 오셔서 봐주실거야." 염치없게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띄어쓰기는 늘 문제더군요. 저는 다른 에디터에서 글을 써서 옮기는데 그 때마다 띄어쓰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늘 몇 번 이고 읽어서 바로 잡지만 종종 이글루스 에디터에서 서로 다른 줄에 나오는 경우는 확인하기가 힘들더군요. 오늘도 또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12 19:02
그래서현재에는→그래서 현재에는(띄어쓰기).
Commented by kristine at 2009/01/20 21:37
^&^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22 01:53
?
Commented at 2009/01/13 14: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14 09:02
알려주시면 감사하지요. 논문 발표 잘 하시길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14 18:29
어떤 편집기(에디터)를 사용하시는지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1/15 09:22
저는 google docs를 이용해서 글을 작성합니다. 그곳에서 작성한 글을 이글루스에 붙여넣기하는데 그 과정에서 원래의 띄어쓰기가 달라지더군요. 늘 바로잡으려 하지만 실수가 생깁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15 09:20
愚公 님 / 개인적인 정보가 공개된 덧글로 올라있는 듯 하여 내용을 따로 옮기고 글을 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idele at 2009/01/16 09:15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가 봐야겠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1/16 11:18
후회하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
Commented at 2009/01/16 10: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16 11:19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금방 답장드렸습니다.
Commented at 2009/01/20 21: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1/21 06:48
비밀님 같은 분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도서관의 사정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주 멋 진 컬렉션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비밀님의 이름을 딴 컬렉션으로 따로 구분한다면 더욱 좋겠군요. ^^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