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 왔습니다. 제 몸은 일요일 저녁에 도착했는데 가방은 화요일 아침 오늘에서야 도착을 했습니다. 시카고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방이 며칠 시카고에 묵고 싶어 했었다고 하는군요. 집으로 배달하겠다는 것을 오전에 사무실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사무실에 가져와야 할 물건이 가방안에 잔뜩 들어 있었던지라 이렇게라도 덕을 좀 보자 싶었지요. 가방이 돌아오고 나서야 마침내 여행기를 올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덴버 시 중심에 있는 16번가 모습입니다.)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열렸던 ARL(Association of Research Libraries)에서 주최하는 한 가지 워크숍에 참가하는 길에 역시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미국 도서관 협회의 겨울 컨퍼런스에도 겸사겸사해서 들렀습니다. 미국에 온 이래 가장 서쪽까지 가 보았던 것 같습니다. 덴버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잘 어울린 참 아름다운 도시더군요. 해발 1600 미터 정도의 고지대에 있는 곳이라서인지 쿨짹님 말씀처럼 공기가 참 건조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도착하던 지난 주 목요일 기온이 화씨 75도로 아주 따뜻했습니다. 영하의 기온에서 떨던 저로서는 마치 봄을 맞은 것 같더군요. 점점 기온이 떨어져서 떠나던 일요일 아침에는 눈이 내렸습니다만 그래도 올바니에 비해서는 따뜻한 곳이었지요.
미국도서관 협회의 겨울 컨퍼런스가 열리던 콜로라도 컨벤션 센터는 아주 재미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 처럼 유리로 된 건물의 한 쪽에 푸른 색의 곰이 한 마리 서서 컨벤션 센터를 들여다 보고 있더군요. 그 냥 밋밋한 건물보다는 훨씬 보기에 재미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더군요. 물론 매일 보는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멀리서 온 사람들에게는 분명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일도 물론 보람있고 유익한 일이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토요일 오후에 잠시 방문했던 덴버 미술관(Denver Art Museum)과 덴버 공공 도서관(Denver Public Library)이었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있었던 회의를 비롯한 다른 일정 때문이기는 했었지만 그 날 오후 늦게 미술관에 간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특아하게 생긴 미술관의 신관 건물(Hamilton Building)도 흥미로웠지만 아침부터 올 걸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미술관에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고 미술관 옆에 있는 도서관도 훌륭했습니다.
특히 유럽의 회화를 전시하고 있던 곳에서 언젠가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해 드렸던 아르침볼도(Archimboldo)의 그림을 한 점 보았습니다. 늘 CD로 음악을 듣다가 직접 연주하는 음악을 공연장에서 들을 때의 느낌과 비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그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크지 않은 소품이었지만 그 앞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그림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걸려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환상적인 그림 앞에서는 그림이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너무 가까이 다가갔나 봅니다. 안내하시는 분들이 와서 주의를 주시더군요. 그저 건성으로 알았다고 하고는 다시 그림에 눈을 박았습니다.
그렇게 유럽 회화들이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정작 덴버 미술관의 자랑인 서부의 풍경과 사람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보는 시간이 줄어 들었지만 그래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아래 사진에 있는 분들처럼 그림 앞에 느긋하게 앉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고 있었을 겁니다.
덴버 미술관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도 그렇지만 방문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곳이었는데요. 예를 들면 미국 서부의 웅장한 자연을 담은 풍경화들이 있는 전시실에서는 편안한 소파와 그 앞에 아이포드(ipod)를 준비해 두었더군요. 그리고 아이포드(ipod)안에는 보고 잇는 그림들과 어울릴만한 음악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즐기라는 의미겠지요.
그리고 전시실 마다 한 구석에 따로 공간을 마련하여 그 전시실에 전시된 작품들과 관련된 책을 비치해 두었더군요. 그래서 관람객들은 관람하고 있는 그림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울러 직접 그림을 그려보거나 손으로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시설을 전시 공간 근처에 마련하여 예술 작품과 관람객들을 한층 더 가깝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인디언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곳에서는 인디안들의 전통 방식으로 천을 짜 볼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해 두었고 안내하시는 분들이 아이들과 함께 직접 베틀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덴버 미술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엇보다도 미국 서부의 광활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았던 인디언들, 그리고 카우보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일 것입니다. 마침 제가 방문했던 그 날도 어네스트 블루멘샤인(Ernest L. Blumenschein, 1874-1960)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블루멘샤인은 뉴멕시코주의 타오스(Taos)에서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로서 미국의 서부에서 보이는 풍경과 사람들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인데요, 그 사람의 풍경화에서 보이는 바위산과 초원 그리고 그 속에서 표현되는 햇빛과 그림자의 대비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붓 끝에서 표현되는 인디언들과 카우보이 등 미국의 서부에 살던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한 번 여유가 된다면 이 사람의 작품만을 모아서 따로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저는 그 날 전시된 여러 그림 중에서 "미신(Superstition)"이라는 제목이 붙은 아래의 그림 앞에서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서서 주인공의 눈을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림의 크기가 저를 앞도했다는 점도 있지만 그림 속 인물의 눈은 그림 앞에 서 있는 저를 안절부절 못하게 할 만큼 힘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오른쪽에 있는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4시 30분이 넘어 가고 있었습니다.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도서관도 5시에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부랴부랴 미술관 옆에 있는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현대적인 건물로 최근에 새로 지어진 덴버 공공 도서관은 밖에서 보기에는 참 재미있는 곳 이었습니다. 마치 그 안에 들어가면 뭔가 신기한 일이 벌어질 것같은 그런 생각이 드는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도서관 안에 들어가면 참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뉴욕 공공 도서관이나 보스턴 공공 도서관이 주는 웅장하고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밝고 따뜻하게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색깔의 가구들과 도서관의 벽들 그리고 부드러운 디자인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참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제법 많은 한국책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아주 오래된 책들도 보였지만 이 정도라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아마 덴버에 사시는 교민들의 숫자가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서관 안에도 또 다른 전시시설이 있었지만 채 보기도 전에 5시가 되어 눈물을 머금고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에 있는 행사를 위해 호텔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지요.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갈 기회가 생긴다면 미술관과 도서관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덴버 시 중심가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16번 가는 각 종 레스토랑과 까페 등이 몰려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순회 버스가 거의 1-2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느긋하게 길을 걸을 수도 있겠고 또 버스를 타고 거리 구경을 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버스의 한 쪽 종점이 Civic Center Park 이고 그곳에 미술관과 도서관 그리고 콜로라도 주 청사 건물 등 볼거리가 있습니다.
올바니로 돌아오는 일요일 아침은 눈이 오고 날씨가 추워졌었지요. 공항에서 짐을 맡기면서 보니 스키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는 여행객들이 많았습니다. 붐비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웬지 이 번에는 내 가방에 혹시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그래서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주소 태그까지 가방에 달고 중요한 것들은 다시 기내에 들고 들어가는 가방으로 옮겼습니다.
시카고를 거쳐 저녁 7시 경에 올바니에 도착했고 짐을 찾으려고 서 있는데 제 이름을 방송으로 부르더군요. 중간 기착지인 시카고에서 가방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마침내 가방을 손에 넣은 것이 화요일 오전입니다.
오늘 오전에서야 사람과 짐이 완전히 올바니로 돌아왔습니다. 내일부터는 3일간 계속해서 도서관 관련 강의를 해야 하고 그 이 후에는 이번에 다녀온 워크숍에 대한 보고서 작성,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앞으로의 진행해야 할 일들에 대한 회의 등등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덴버 미술관에서 보고 온 그림들 때문에 마음은 참 편안하고 또 한 학기를 살아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열심히 블로깅도 해야지요.^^ (아래의 사진은 콜로라도 주 정부 청사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 이 글에 쓰인 사진들은 제가 찍은 것입니다만 블루먼샤인의 그림은 http://www.gilcrease.org/FineArt_Sample.aspx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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