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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필사본-사비하 알 케미르
중동(Middle East)라고 흔히 불려지는 아시아 대륙 서부의 이슬람 지역은 70년대와 80년대에 많은 한국 건설 업체들이 진출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의 화약고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름과 함께 전쟁, 납치, 자살 테러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의 모습은 대부분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일뿐 실제 이 지역의 역사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전통에 대해서는 그저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최근의 국제 정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이 지역을 소개하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고 또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권위있는 책들도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리고 싶은 책은 소설이지만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또 그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슬람 세계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해 봅니다.

이 소설의 저자인 사비하 알 케미르(Sabiha Al Khemir)는 튀니지에서 태어나 런던 대학(University of London)에서이슬람 예술사와 고고학으로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은 이슬람 예술사가입니다. 대영박물관에서 이슬람 예술을 강의하기도 했으며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등에서 이슬람 예술과 관련한 컨설턴트로서도 활약했습니다. 여러 편의 이슬람 예술사 관련 저작을  발표한 역사가로서  카타르의 도하에 있는 이슬람 예술 박물관을 건립하고 초대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 말에 발표한 그녀의 소설 푸른 필사본(The Blue Manuscript, Verso, 2008) 중세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를 지배했던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의 와디 하순 지역에 건축한 녹색 파빌리온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녹색 파빌리온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와 미술사가 그리고 통역 및 이들의 발굴을 지원하는 이집트 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데 특히 이들이  발굴을 통해 찾으려 하는 것은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코란의 필사본이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던 칼리프, 알 무이즈의 어머니가 궁중 서예가에게 명령하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필사본은 푸른색의 양피지에 황금으로 글씨가 씌여진 중세 이슬람 필사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발굴 현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과 푸른 필사본이 만들어진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벌어진 일들이 번갈아 가며 진행이 됩니다. 소설 자체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제가 더욱 흥미있게 본 것은 소설 속에서 소개되는 여러 편의 이슬람 설화와 전설, 속담,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이슬람 세계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님 이야기꾼 암 가베르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소개되는 많은 이야기들처럼 흥미롭고 또 교훈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 이야기들 때문에 소설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곧 번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여유가 있으시면 영문으로라도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이야기들이 그 안에 가득 들어 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소개된 한 편의 이야기를 이곳에 옮겨 봅니다.
<'칸 마 칸,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었지요'. 우리 아버지는 남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늘 이렇게 시작을 했었다네.> 암 가베르가 입을 열었다.  <옛날 옛적 바그다드의 오래된 저택에 살던 한 남자가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었지. 한 때는 화려했던 그 저택은 이제 쇠락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황폐해진 정원 한 가운데 있는 무화과 나무 뿐이었다네. 그 남자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후회와 탄식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일 밤 그 남자는 똑같은 꿈을 꾸었고 그 꿈 속에서는 똑같은 목소리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네.

"부귀를 찾으러 길을 떠나거라. 너의 보물은 카이로에 있다. 그 도시의 가장 오래된 구역의 뒷 골목, 폐허 속에 너의 보물이 있다.  오래된 집의 마당을 찾아서 땅을 파보아라. 너의 보물은 그 곳에 잠들어 있다." 

그 남자는 매일 꾸는 이  꿈에 지쳐갔지만 결국 이 꿈은 그 남자가 카이로로 떠나게 만들었다네.  믿기지 않는 말이라도 계속해서 듣다 보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지. 어느 날 그 남자는 바그다드를 떠나 세상의 어머니의 수도인 카이로로 가는 긴 여행에 올랐다네.

마침내 그가 카이로에 도착했을때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네. 그 도시는 거대했고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들로 가득차 있었지. 과연 이 곳에서 어떻게 오랜된 집의 정원을 찾을 수 있을까? 몇 달 동안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장소를 찾아 헤맸지만 어림 없는 일이었지. 그 동안 그 남자는 가지고 왔던 여비를 모두 써버렸고 빈털털이가 되어 잠자리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지. 매일 밤 거리를 헤메며 노숙을 해야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한 야경꾼을 만나게 되었다네.

밤은 도둑들이 더러운 일을 벌이는 시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상한 외국인 복장을 하고 남루한 행색의 한 사내가 길을 걸어가자 야경꾼은 자연히 의심을 가지게 되었지. 야경꾼이 달려가서 그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 채자 그 남자는 놓아달라고 빌었다네. 그러면서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저는 바그다드에서 왔습니다. 꿈을 꾸었는데요..." 그리고는 야경꾼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네.

그 남자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야경꾼은 박장대소를 했다네. 그런데 그 박장대소는 안타까워하는 탄식으로 천천히 이어졌다네. "나는 당신 이야기를 믿을 수 밖에 없구료." 야경꾼이 입을 열었지. " 하지만 이 어리석은 사람아, 나도 그런 꿈을 꾸었어. 꿈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바그다드에 있는 너의 보물을 찾아 떠나거라.
바그다드의 오래된 구역에 있는 "강의 거리"로 가거라. 그 곳에 무화과 나무가 정원에 심어져 있는 한 저택이 있는데 그 저택의 정원에 너의 보물이 묻혀있다.'

라고 말하더군. 그 목소리를 아마 수 천번 들었을게야.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따르지 않았어. 웬지 아나?  그건 꿈일 뿐이야. 지금 자네 꼬락서니를 보게. 거지 몰골을 하고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헤메고 있지 않은가."

그 남자는 야경꾼의 이 말을 듣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네. 그리고는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지. 물론 미친 건 아니었지. 야경꾼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살던 거리와 집, 그리고 할아버지가 정원에 심었던 무화과 나무를 떠올렸던게야. 기쁨에 찬 숨을 내쉬며 그는 깨달았지. 바그다드에서 카이로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한 것은 결국 자신이 이미 집에 가지고 있던 것을 발견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말일세.>
* 이 글에서 쓰인 이미지는  Amazon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by Clio | 2009/02/12 12:08 | 책소개 | 트랙백 | 덧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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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구버달 at 2009/02/12 13:00
소개해주신 이야기는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하고 거의 같은데요? 인물과 장소등이 다르지만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흠, 코엘료가 표절한 것인지 원래 전래되어 오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12 13:13
그렇군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아마 코엘료가 그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Commented by 빨간반지 at 2009/02/12 17:19
모범소설집에도 등장하는 이야기지요. 전 코엘료가 그 이야기를 따다가 초심자의 행운과 연금술과 사막의 여인을 버무려서(...) 연금술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13 10:44
옛날 이야기이니 따로 저작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었겠지요.^^
Commented by 갈기머리 at 2009/02/12 13:54
재미있어요. 아라비안 나이트도 참 좋아하는데.. 잘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Clio at 2009/02/13 10:45
재미있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진 아라비안나이트도 그렇지만 어른들을 위한 것 역시 재미있기는 마찬가지이지요.
Commented by 某人 at 2009/02/12 17:22
안녕하세요? 저는 페이퍼하우스 출판사 편집장 정성원입니다. 페이퍼하우스에선 판타스틱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단행본은 자매회사 북스피어에서 내고 있습니다. 페이퍼하우스에선 올해부터 판타스틱을 임프린트로 해서 단행본을 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에 선생님 블로그를 링크해서 재밌게 잘 읽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읽다보니 선생님께서 도서관과 사서에 관한 책을 쓰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조만간 다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소개하신 책은 저희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혹시 리뷰를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리뷰 내용으로는 줄거리, 장점, 단점 등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사실 저희쪽에서 책을 해당 출판사에 책을 요청하거나 또는 구입해서 꼼꼼하게 리뷰해야 하는 게 맞지만, 요즘 한국 출판계는 괜찮은 책이다 싶으면 (가끔가다간 책 내용이나 알고서 계약을 하나 싶을 정도로 재빨리) 덜컥 계약부터 해놓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권위자의 리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선생님께서 리뷰를 해주시면 저희로선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리뷰를 해주시면 소정의 고료를 지급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저희가 출판을 하기로 결정하고 저작권 계약을 마치면 선생님께 우선적으로 번역 의사를 여쭤봅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sw@fantastique.co.kr입니다. 벌써부터 연락주시기 고대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13 10:45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따로 메일드리겠습니다.
Commented at 2009/02/12 17: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2/12 19: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13 10:48
이곳도 최근 며칠 동안 좀 따뜻해졌습니다만 아직 봄이 오기에는 몇 달 더 남았습니다. 2월달 중에 아마 한 번더 큰 눈이 오고 3월 달에도 또 눈이 오겠지요. 그러다가 봄 학기가 끝이나는 5월이 되면 아마 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간혹 5월달에도 눈이 오기도 합니다만. 방문하셨던 그 곳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말씀만 들어도 궁금해지는군요. 건강하십시오.^^
Commented by 비트손 at 2009/02/12 19:48
안녕하세요. 올블로그입니다. 2008 올블로그 어워드 후보에 최종 선정되셨다는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댓글 남깁니다. 어떤 부문에 후보로 오르셨는지는 16일 오후 쯤에 어워드 페이지에(http://award.allblog.net)에서 공개예정이구요.

각 부문별 투표를 진행하는 별도의 페이지 이외에 투표 위젯을 배포할 예정입니다. 투표는 16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됩니다. 기타 궁금하신 사항은 올블로그 운영팀메일(ace@blogcocktail.com)이나 운영팀블로그로(http://mindlog.kr/ace)로 문의해 주시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2008 올블로그 어워드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_ _)
Commented by Clio at 2009/02/13 10:48
기대하지 않던 기쁜 소식이로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太虛 at 2009/02/13 00:18
윗 댓글이 뭔가 올블로그 어워드에 북스피어;;과연 Clio님!
파란 양피지에 황금색 글씨...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멋집니다. 영문판으로라도 이 책은 사서 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13 10:50
감사합니다.^^ 한 번 꼭 읽어 보십시오. 저는 이 책을 읽고 아랍어, 특히 아랍어 글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번 기회가 된다면 꼭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kristine at 2009/02/13 11:19
클리오님> 저의 삼대로망중에 하나가

라틴어
아랍어
고대그리스어 랍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13 12:40
kristine 님 / Ditto. ^^
Commented at 2009/02/13 11: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13 12:43
점점 관심의 폭이 넓어져 가는군요. ^^ 여유가 생기면 연구서와 함께 그 책들에 인용하고 있는 원사료들을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과연 저자는 왜, 어떤 근거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논리적인지 아니면 그 주장에 헛점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구요. ... 나중에 많이 하시게 될 일입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6 22:25
중동(Middle East)라고 흔히 불려지는 아시아 대륙 서부의 이슬람 지역: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바뀌어 정착하였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2/17 07:22
그렇군요. 자세한 정보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6 22:25
예술과 예술사→미술과 미술사?
Commented by Clio at 2009/02/17 07:28
분명 이 책의 저자는 지적하신 것처럼 미술사와 관련된 저작을 주로 남겼는데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예술사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Art 가 미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6 22:26
메트로 폴리탄미술관→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ommented by Clio at 2009/02/17 07:29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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