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새학기가 시작이 되자마자 역사학과에서 개설한 몇 몇 수업에 들어가서 도서관 이용법과 학술 정보 검색법을 강의했었는데 그 강의를 들었던 학생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제가 도서관 이용법과 관련된 수업을 할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서관에 오면 '사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하던 '살아있는 검색 엔진' 들입니다. 리포트를 쓰다가 혹은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도서관에 와서 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보십시오. 언제나 정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알려줄 겁니다."
저는 이 말을 반드시 하고 나서 수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업을 끝내면서 이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실제 한 시간 반의 수업 시간 동안 저는 학생들이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전해줍니다. 그것들을 학생들이 그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늘 수업이 끝날 때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내가 한 이야기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 하는 이것 한 가지는 꼭 기억하세요. 도서관에는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단단히 벼르고 있는' 사서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이용하세요. 그것이 여러분이 학교에 납부하는 비싼 학비의 본전을 뽑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만이라도 기억한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바보같은 대답은 있어도 어리석은 질문은 없습니다. 사서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요즘 같이 직장이 불안한 시기에 여러분들이 도서관을 찾아와 질문을 해주시면 그만큼 사서들의 일자리가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Please help us to help YOU."
제게 이메일을 보냈던 그 학생은 다른 것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제가 했던 마지막 말을 기억했던 거지요. 그리고는 "기말 리포트를 쓰기 위한 자료를 찾는데 의의로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이메일에서 이야기하더군요. 이런 일은 사서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지요. 더구나 학기가 시작된지 아직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벌써 기말 리포트 준비를 하는 학생의 성의에 감동을 했습니다. 당장 답장을 해서 오늘 오후에 그 친구와 제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이 학생이 듣고 있는 수업은 미국 대중 문화의 역사를 다루는 수업이었고 기말 리포트로 모든 학생들이 대중 문화의 여러 면 중에서 하나를 골라 일차 사료와 이차 사료를 검토하여 15페이지 가량의 페이퍼를 제출해야 하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말 리포트의 주제로 이 학생은 '포커(Poker)'를 선택했더군요. 특히 지난 2003년 이 후 미국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포커 게임에 대해 주목을 하면서 그 이전 시기의 포커 게임과 그것에 대한 사회의 인식 등을 비교하여 최근 포커가 인기를 얻은 이유를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학과의 연구 주제로서 2003년은 너무 이른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렇다고 못 할 이유도 없지요.
수줍게 웃으면서 자신 역시 포커 게임을 즐긴다고 하면서 그래서 이 주제로 페이퍼를 써보고 싶다는 학생과 함께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며 필요한 자료들을 찾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자료를 찾는 방법을 보여주고 또 그 학생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과목이 역사라는 사실이 이럴 때 큰 도움이 되지요. 비록 그 주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연구를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야 할지, 역사가들은 사료를 어떻게 찾는지 그리고 그 사료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등등 여러 가지 내용을 이런 과정을 통해 상세하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 그 학생은 혼자서도 연구를 진행해 나갈 수 있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이 학생이 그러더군요. "이건 마치 19세기의 골드 러쉬(Gold Rush)에도 비교할 만한 일입니다." 그 말은 들은 제가 웃으면서 그랬습니다. " 자, 페이퍼 제목은 나왔네요. <21세기의 골드 러쉬, 포커>." 한 시간 이상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학생은 필기까지 해가며 자료를 찾는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린 학부 학생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유치하다거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그들이 하는 생각을 볼 수 있고 또 제가 알지 못 했던 새로운 지식을 얻습니다. 대학교에서 젊은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지요. 호기심이 많은 저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사서의 기쁨이고 즐거움이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 학생이 떠난 후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자주 제 사무실에 들러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가던 대학원생 E 양이 찾아 왔습니다. 미리 약속을 하고 왔어야 하는데 미안하다면서 혹시 시간을 내 줄 수 있냐더군요. 물론 다른 할 일이 쌓여 있었지만 당장 참석해야 할 회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이렇게 직접 사무실을 찾아 온 사람을 돌려보내는 것은 제 스타일도 아니라서^^ 괜찮다고 하고는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E 양은 지난 한 두 학기 동안 박사 학위 논문 주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추리 소설에 관심이 많은 E 양은 19세기 말 미국 사회에서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에 대한 사회의 대응과 그것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또 그것이 당시 나타난 추리 소설에 대한 인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저지른 범죄와 남성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인 시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 주제를 가지고 관련 자료들, 특히 당시의 일차 사료들을 찾고 있었는데 저와는 여러 차례 같이 앉아 연구의 진행 방법이나 이용 가능한 사료 등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자료를 찾고 같이 토론을 했었지요.
그런데 오늘 찾아온 E 양은 그 주제를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료가 너무 광범위하고 그것들을 입수하기가 매우 힘이 든다면서 지도 교수님과 상의하여 논문의 주제를 바꾸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 주 북부 지역에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잠시 동안 운영되었던 전쟁 난민 수용소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대한 논문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설명해 주는 주제가 저에게는 상당히 흥미롭게 들렸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기도 하지만 그 수용소를 설치하고 운영한 미국 정부의 정책을 살피는 과정에서 최근 문제가 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특히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서 탄생하던 1940년대 말 미국이 가진 유대인들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도 있을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 E 양은 이 수용소와 관련된 일 차 사료들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 질문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질문이지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도 잊고 열심히 그녀와 함께 자료를 찾았습니다.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와 대통령 자료관 그리고 관련 학술 데이터 베이스들을 찾고 또 인터넷으로 찾을 수 없는 자료들은 어디에 연락을 해보면 되는지, 구술사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은 없는지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두 사람 모두 흥분했었습니다. 다행스럽게 국립 문서 보관소에는 E 양에게 꼭 필요한 사료들이 완전히 정리가 된 상태로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지난 번 주제를 가지고 고민하던 E 양을 보아왔던터라 이용 가능한 자료들이 나오자 흥분을 감추지 못 하는 그녀의 얼굴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같아 기쁘더군요. 그러다가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사료들이 이렇게 잘 정리되어 있는데 혹시 관련 논문을 이미 쓴 사람이 없을까? 비록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누군가가 이 주제와 관련하여 논문을 이미 썼다면 자칫 헛수고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주제와 관련된 학위 논문이 있는지 찾아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찾았을 때는 없더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관련 키워드들을 뽑아서 몇 가지 검색을 해보니 안타깝게도 1980년대 초반에 이미 이 수용소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녀의 얼굴에 나타나는 울 것 같은 실망의 표정은 차마 마주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많은 박사 학위 논문이 그렇듯 이 논문은 다시 책으로 만들어져서 출판이 되었고 우리 도서관에서도 소장하고 있더군요. 책의 제목이 그녀가 생각하는 키워드로는 검색할 수 없는 것이었고 80년대 초반에 나온 책이었다 보니 도서관 카탈로그의 기록도 아주 간략했기 때문에 그녀가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도서관 사서로서 키워드를 다루고 목록을 검색하는 일은 저의 직업이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반 이용자들이 하지 않는 전문적인 검색 방식을 이용하는 것 역시 일상으로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 저의 일이 대부분의 경우 저를 찾아온 이용자들을 기쁘게 만들지만 오늘 오후 저는 이용자를 실망시켰습니다. 하지만 실망하고 있는 E 양에게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사서로서 또 다른 조언을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찾은 논문이 1980년대 초반에 나온 논문이므로 지난 20여년 사이 더 많은 자료들이 공개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이 책을 찬찬히 살펴보고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 가운데 틀린 것은 없는지 그리고 미진한 것은 없는지 찾아봐라. 만일 그런 것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논문을 쓸 수 있지 않느냐. 예를 들어 미국의 남북 전쟁에 대해서는 수 백편의 박사 학위 논문이 있고 역시 수 백편의 책이 나와 있지만 여전히 연구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책이 계속해서 출판된다. 그러니 학위 논문 한 편이 이미 나왔다고 실망하지 말고 먼저 그 글을 찾아서 읽어봐라. 그리고 나서 실망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제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수업 때문에 가야한다는 그녀를 보내고 나니 6시가 다 되어가더군요. 만일 내가 그 학위 논문을 찾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E 양은 새 논문 주제와 그것에 관련된 사료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쓸 논문을 생각하며 한 동안 행복할 수 있었겠지요. 실망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차라리 그 학위 논문을 찾지 말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결국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학위 논문으로 인해 E 양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는 일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저 스스로 위안을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는 이용자들을 도우면서 늘 그 분들에게 기쁨을 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오히려 그 분들이 만족하지 못 하는 경우가 더 많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용자들께서 사서들의 도움으로 인해 필요한 정보를 찾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사서들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굳이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 분들의 얼굴에 떠오른 만족한 미소를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서들은 기쁩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기 위해 사서들은 이용자께서 귀찮아 할 정도로 도와주기 위해 애를 쓰지요.
혹시 궁금한 정보가 있다면 도서관을 찾아 보십시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정보도 많이 있습니다만 정말 자신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보들이라면 인터넷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서 선생님들에게도 한 번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믿을 수 있는 권위있는 정보들을 소개해 주실 겁니다.
특히 3월이 되어 개강을 하고 리포트와 수업을 위해 자료를 찾는 대학생들께서는 꼭 학교 도서관에 들러 보십시오. 도서관에는 아침 일찍가서 자리를 맡아야 하는 열람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서관에는 책과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한 각 종 학술 정보 데이터 베이스와 같은 믿을 만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 자료들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 사서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을 이용하십시오. 그 분들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훔쳐가서 여러분의 리포트와 논문에 이용하십시오. 그렇게 해 주신다면 그 분들은 정말 기뻐하실 겁니다. 그게 바로 사서들의 즐거움이고 기쁨입니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UBC Library 의 Flickr 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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