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경제 위기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이 경제 위기가 시작된 곳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지요. 문을 닫는 은행이 있는가 하면 어제까지만 해도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잘 나가던 직장인이 하루 사이에 직장을 잃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도서관의 천국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미국이지만 이런 경제 위기에는 도서관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각 지방 정부의 예산 삭감에 따라 문을 닫는 도서관이 생기기도 하고 도서 구입비를 줄이거나 도서관의 개방 시간을 줄이는 곳도 있지요. 그런데 도서관이 경제 위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경제 위기가 도서관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역설적인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즈와 보스턴 글로브는 물론 미국 전역의 크고 작은 신문에서는 경제 위기로 인해 도서관에 더 많은 사람이 찾고 있어 도서관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는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이 문화 활동에 소비되는 돈을 줄이는 대신 도서관을 더많이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책을 사고 극장에 가는 대신 도서관에 와서 빌려 읽고 빌려 보는 사람이 점점 더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면 몇 십 달러에 달하는 인터넷 가입비를 절약하기 위해 도서관에 와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지만 많은 공공 도서관에서는 무료로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고 있으니 노트북 컴퓨터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를 들고 도서관에 와서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도서관이 문을 닫은 시간에도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도서관 근처에 길거리에서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한다는군요.
캘리포니아의 한 공공 도서관에서 22년째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 분의 말을 빌리면 지난 한 해 도서관에서 대출된 자료의 건수가 19%나 늘어났다고 합니다. 지난 22년 동안 아주 성적이 좋은 해라야 겨우 1-2% 늘어나는 것이 고작이었다는군요. 보스턴 공공 도서관에서도 도서관 방문자는 물론 자료의 대출 건수, 도서관 회원 카드를 발급받는 사람들의 수 그리고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 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 등이 예년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율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새로운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최근 뉴욕 공공 도서관의 블로그에 소개된 글에 따르면 지난 20세기 초반 대공황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1929년에서 1939년 사이 뉴욕 공공 도서관의 연례 보고서를 보면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들을 위해 일 년 중 하루도 쉬지 않고 매 주 82시간동안 개방했었다고 합니다. 뉴욕 공공 도서관 앞을 지키고 있는 두 마리 사자 상에 "인내와불굴(Patience and Fortitude)"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시민들에게 대공황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주려는 뜻이 있었다고 하니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서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 부터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것같습니다.
당장 문화 활동에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실직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현실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취업 정보를 검색하고 실업 수당 신청을 비롯한 각 종 원조 프로그램을 신청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여러 가지 컴퓨터 강의와 경제 전문가 초빙 강좌에 참여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얻기도 하지요. 실직한 사람은 재취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어떻게해야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 필요한 정보를 얻는 곳이 도서관입니다.

이와 같은 이용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도서관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경제 위기와 관련된 정보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 도서관 협회에서는 경제 위기와 관련해서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주는 웹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서관 웹페이지를 통해 관련 정보를 모아서 제공하는 공공 도서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서들 역시 관련 정보로 무장하고 도서관을 찾아 질문하는 이용자들에게 대답을 하고 있지요. 질문을 하는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기관을 연결해주는 일도 하지만 때로는사회 복지사와 취업 상담사의 역할까지도 한다고 합니다.
비록 예산 문제로 문을 닫는 도서관들도 생기고 있지만 미국의 도서관 종사자들은 지금이야말로 도서관의 역할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바탕에는 도서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기대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도서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주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예산 문제로 문을 닫고 있는 공공 도서관들에 대한 걱정을 피력하기도 했고 최근 서명한 경제 회복 계획에서도 도서관과 교육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내년 예산에서 교육과 도서관 관련 사업에 배정된 예산이 작년에 비해 더 늘어났고 미국 도서관계에서는 이것을 통해 그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교도서관을 다시 부흥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더구나 지난 2월에 있었던 의회 합동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남부 시골의 한 여학생이 그 지역의 "공공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편지를 써서 자신에게 보낸 일화를 언급한 적이 있지요. 그 여학생이 의사당에 초대되어 영부인의 옆에 앉아 있기도 했는데요. 미국 도서관 협회에서는 이처럼 대통령의 연설에서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을 이야기하며 적어도 이 번 행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서관의 역할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도서관" 이라는 단어가 백악관에서 제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며 희망적인 메세지를 내놓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 도서관은 정신적인 휴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좋은 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잊고 정신적인 여유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힘든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요. 그리고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각 종 실질적인 정보를 이용해서 현실의 생활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도서관들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멀리서나마 희망해 봅니다.
* 아래에는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들과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그리고 최근 NBC의 Nightly News 에서 도서관과 관련해서 보도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 Ann Thornton's blog from the New York Public Library
- Hilary Davis, "A Look at Recessions and their Impact on Librarianship" from In the Library with the Lead Pipe.
- Utilize Your Library in Tough Economic Times from Chaftfield Public Library
- Derrick Z. Jackson, "The library - a recession sanctuary" from The Boston Globe, 2009. 1.3.
- Jim Carlton, "Folks Are Flocking to the Library, a Cozy Place to Look for a Job Books, Computers and Wi-Fi Are Free, But Staffs Are Stressed by Crowds, Cutbacks" from The Wall Street Journal, 2009, 1. 15.
- The Public Library Renaissance from Freakonomics Blog, NYTimes.com
- Slow economy fuels surge in library visits from the American Library Association
- 플리커의 RayBanBro66님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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