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찾아주실래요?" -- 도서관의 참고 봉사대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간단한 질문 같지만 사실 이런 질문을 하시는 이용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요. 예를 들면 자신이 찾고 있는 주제는 알고 있는데 그 주제와 관련해서 어떤 책이 도서관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고 책의 제목이나 저자를 알고 있지만 도서관 검색 시스템의 사용이 서툰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지만 지금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에 빈자리가 없어서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또 단지 목록을 검색하기 귀찮아서 사서들에게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사서들은 이용자들의 사정에 관계없이 최대한 도와드리려하지요. 필요한 주제가 무엇인지 묻고 그것과 관련된 책을 찾아드리는 것은 물론, 제목이나 저자를 알고 있는 경우에도 이용자께서 찾으시는 자료와 관계된 다른 자료들도 소개해드립니다. 그리고 단지 귀찮아서 사서에게 묻는 경우도 똑같은 미소로 이용자를 대합니다. 특히 이용자께서 도서관 목록 검색 시스템 이용에 서툰 경우는 더욱 신경을 쓰지요. 이 순간이 이용자께 도서관 검색 시스템의 이용법을 알려드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 모르는 것을 힘들여 질문을 하는 이용자께서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씁니다.
사실은 질문을 한다는 그 자체가 상당히 부담이 되는 이용자들도 계십니다. 너무 쉬운 것을 물어보는게 아닐까? 그래서 참고 봉사대에 앉아있는 사서들이 비웃지는 않을까? 등등, 질문을 받는 사서의 입장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고민과 망설임이 이용자들의 머리 속을 지나갑니다. 그래서 참고 봉사대에서 대답을 하는 사서들은 그러한 이용자들의 마음까지도 미리 짐작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사서가 별 뜻 없이 하는 말과 행동이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최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배려해야 하지요. 이용자의 눈 높이에서 서서 이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은 이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서 고민입니다.
대답을 하고 도움을 주려는 사서의 위치와 질문을 하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이용자의 위치는 이미 심리적인 면에서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두 사람의 물리적인 위치에서까지 차이가 생긴다면 질문을 하는 이용자에게 더 큰 부담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일하고 있는 도서관의 참고 봉사대는 바와 같은 긴 테이블이 있고 사서들은 바에서 사용하는 높은 의자에 앉아서 이용자들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이용자들께서는 참고 봉사대에 다가와 선 채로 질문을 하지요.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참고봉사대에 근무하는 두 시간 동안은 선 채로 근무를 하려 합니다.
의자에 앉아 이용자들을 대하는 것이 자칫 거만하게 보일까 걱정이 되는 탓도 있지만 최대한 이용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그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저희 도서관 참고봉사대의 의자는 높은 의자이기 때문에 이용자들과 어느 정도 눈 높이가 맞아 집니다만 다른 곳에는 높이가 낮은 책상과 일반 사무용 의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요. 다행히 이용자들을 위한 의자가 준비된 경우라면 낫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의자에 앉은 사서가 서 있는 이용자들을 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마치 결제를 받으러 간 상사의 책상 앞에 조아리고 선 부하 직원의 모습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요.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참고 봉사대에서 이용자들 대할 때에는 이처럼 동등한 관계에서 질문을 하고 또 대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서들이 이용자를 대하는 말투나 사용하는 용어 역시 중요한 고려 사항입니다, 도서관 사서의 입장에서는 매일같이 사용하는 도서관의 전문 용어들이 생활 용어나 마차가지입니다. 제목, 부제, 저자, 편집자, 색인, 목차 혹은 서가, 청구 기호, ISBN 같은 단어들은 사서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말들이지만 이용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설마 그런 말의 의미도 모를까?" 라고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실제 그런 말의 의미를 모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설사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의 의미를 사서들과는 다르게 이해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에 대답하는 사서는 이용자들과 대화하며 그 이용자가 가진 도서관 관련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설명을 해야하는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너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용자를 위한답시고 너무 쉬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자칫 이용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지요.
저 스스로 "미세 조정" 이라고 부릅니다만 어쨌든 이 과정을 통해 가장 이용자들의 눈과 수준에 맞는 참고 봉사 서비스를 할 수가 있지요.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가장 적당한 수준의 참고 봉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그것을 통해 이용자는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참고 봉사 서비스입니다. 물론 아직 제가 그 수준에 이르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그래서 참고 봉사대에서 근무하는 날이면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용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한 이 후에도 혹시 더 쉬운 방법으로 답을 줄 수는 없었는지 그리고 더 나은 정보는 없는지 혼자서 다시 찾아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책을 찾아 달라는 이용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찾고 있는 책을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책이 도서관의 어디에 있는지 설명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아울러 그 설명과 함께 만일 서가에서 책을 찾을 수 없거든 다시 참고 봉사대에 오라고 이야기하고 그 경우 제가 서가에 가서 찾아 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실제로도 종종 이렇게 다시 참고 봉사대로 돌아오시는 이용자들이 계십니다. 서가에 가서 찾았는데 책이 없더라는 거지요. 그 경우 제가 직접 서가에 올라가서 찾아드립니다.
종종 청구 기호를 따라가며 서가를 뒤지는 일이 일반 이용자들에게는 힘든 경우가 있고 실제로 그 책이 제 자리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찾는 책이 제 자리에 없을 때는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상호대차나 기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하고 이용자께서 필요한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서비스를 합니다. 이용자께서 귀찮아 포기하는 경우는 있어도 도서관의 사서들이 먼저 포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친절한 사서의 자세는 어디에서 올까요?
물론 도서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상대로 서비스하는 다른 업종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진심으로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에 대해 그것이 스스로를 다른 이들 앞에서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보는 주위의 또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하고 또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비굴하다면서 자존심을 내세우지요. 그래서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대하고 상대가 먼저 굽히고 들어와야만 자신이 인정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만족하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그 행동으로 인해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당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위의 누가 뭐라고 한들 전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또 그 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데 무엇이 비굴하고 또 무엇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겠습니까? 오히려 가슴 뿌듯한 자부심이 생기는 일이지요. 아울러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만큼 남들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야만 동등한 입장에서 전문적인 직업인으로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지요. 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은 적절한 자세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주는 사람도 기쁘고 받는 사람도 기쁠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그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도서관 이용자들을 위한 진심 어린 서비스도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와 같은 자부심은 자신이 처한 현실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만족이 있어야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나라에서 도서관 정책을 추진하시는 정부의 당국자들이 이 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근 도서관 발전 계획을 세우고 더 많은 도서관을 건설한다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실제 그 도서관을 운영하고 그 속에서 이용자들과 부대끼며 일해나갈 사서들에 대한 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스럽습니다. 학교 도서관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전국적인 도서관 건설 계획만 세울 뿐 그 도서관에서 일할 사서들을 뽑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건설될 도서관들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나갈 수 있는 도서관 전문가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들없이 운영되는 도서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서실화 될 것이고 애써 돈을 들여 만든 건물이 제대로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금전적인 보상을 넉넉하게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요. 그런데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하고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과연 전국의 도서관 중에서 사서 출신이 관장을 맡은 곳이 얼마나 있던가요? 그리고 각 급 학교 도서관에서는 도서관을 관리하고 있는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사서 교사들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을 주고 있습니까? 4년 동안 대학에서 그들이 배운 것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제대로 일할 환경만 주어진다면 정말 멋진 도서관을 만들어 낼 아이디어와 재능이 있는 수 많은 사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잘 채용하지도 않을 뿐더러 채용하고도 그들을 도서관의 고유한 업무가 아닌 다른 일에 투입하는 인력 낭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사서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오랫 동안 그러한 자부심을 가지며 그들이 일할 수 있을까요? 출근할 맛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그들의 월급 봉투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과연 현직에 있는 사서들 중에서 도서관 전문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서가 얼마나 될까요? 결국 이러한 모든 상황은 불친절한 도서관 서비스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도서관 건물을 짓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도서관은 건물만 있다고 도서관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용자들이 편안하게 이용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사서와 같은 도서관 전문가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그들의 능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도서관 정책을 담당하고 계시는 분들은 이 점을 꼭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도서관의 동료들이나 저보다 늦게 들어온 직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서들을 귀찮게 만드는 이용자들이 가장 고마운 이용자라는 것이지요. 그 분들 덕분에 사서들의 일자리가 굳어지니 귀찮게 하면 할 수록 미소를 짓고 대해야 한다고 하면 다들 웃습니다. 물론 그 농담 속에 있는 사서의 자세에 대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하지만 그래도 정말 상대하기 힘든, 그래서 상대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이용자도 있습니다. 다음은 그 이야기를 해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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