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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도서관 이용자와 더 "무서운" 사서
지난 번 글에서 친절한 사서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만 도서관의 모든 사서들이 그렇다고 말 할 수는 없겠지요. 어느 직업에나 마찬가지이지만 맡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혹시라도 도서관과 사서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신 분들께는 그 나쁜 기억이 도서관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고 진정으로 이용자를 위해서 노력하는 많은 사서들이 계신다는 것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사서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모든 이용자들을 만족시키기는 참 힘이 듭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지만 가끔 사서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심하다 싶은 것을 요구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러다 보면 사서와 이용자의 관계가 삐걱거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 중에는 사서들이 정말 대하기 힘든 이용자들도 계시고 그래서 사서들이 피하고 싶은 분들도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분이 계셨지요.
미국에 와서 처음 도서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학생 조교로서 상호 대차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지 않은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부서에서 이용자들의 상호 대차 신청을 받아 그것을 다른 도서관에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겁도 없이" 이용자들이 찾아와서 질문을 하는 서비스 창구에 자리 잡고 앉아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도 했습니다. 그 때 제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오시던 분들은 대부분 절실하게 자료가 필요한 분들이었고 특히 문제가 있어서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는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오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자신이 신청한 자료가 당장 필요한데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냐는 거지요. 그런데 저 역시 대학원생이었기에 연구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자료를 절실하게 기다리는 그 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이유 때문이었겠지만 대개의 경우 저는 그 분들이 아무리 화를 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이용자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는 화를 내며 고함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압력을 넣으려는 분들도 있었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 분에게 특혜를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상호 대차 업무의 특성 중 한 가지는 다른 도서관들과의 상호 협력이 매우 중요한 서비스라는 점입니다. 다른 도서관에 책을 빌려주는 것은 강제가 아닌 선의에 의한 것이고 빌려오는 측에서는 최대한 빌려주는 도서관의 정책에 협조를 해야한다는 것이 도서관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는 규칙입니다. 그렇다보니 저희로서는 특혜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또 저희가 하는 일과는 무관하게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지 않으면 저희로서는 강제로 빌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일이고 또 책이 배달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종종 일어나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런 점들을 설명하면 대부분의 경우 화난 이용자들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상태에서 보낼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저희들을 찾아와 강하게 불만을 이야기하던 분 중에서 특히 "유명한" 대학원생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50대 후반의 L 여사였는데 저희들에게 질문을 하고 또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이 분의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었고 적극적인 것을 넘어서 "공격적" 이었습니다. 마치 도서관 직원들은 자신과 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내뱉는 그 분의 말은 관계 없는 사람이 듣더라도 아주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지요. 그리고 일종의 "도서관 머피의 법칙"입니다만 꼭 그런 분에게 배달 사고를 비롯해서 문제가 더 많이 일어났고 그래서 그 분이 저희 사무실을 찾는 일이 더욱 잦아졌습니다.

처음 그 분을 대하고 나서 저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말투나 행동이 마치 하인을 부리는 귀족같았으니까요. 마치 그 앞에서는 "예, 마님" 이렇게 이야기해야할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일주일이면 두 세번은 사무실에 찾아오거나 전화로 이야기하는 불만을 듣다 보니 나중에는 그 분의 목소리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생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무서운 이용자였지요.

그런데 비록 L 여사가 그렇게 행동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할 수는 없지요. 다른 이용자들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그 분은 그대로 넘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문제가 일어난 것은 저희들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배달 사고와 같은 문제들이었지만 그 분에게는 우리가 유일하게 항의할 수 있는 곳이었지요. 하지만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참 바쁜 시간에 전화를 해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차를 타고 도서관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로 지나가겠다. 자기가 신청한 책을 그 쪽으로 들고 나와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모든 동료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면서 언제부터인가 은근히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아니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과연 저 사람은 어떻게 무엇을 하고 살아 왔길래 “저 따위" 행동을 하나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불만이 커지면 커질수록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이 생기더군요. 그래 두고 보자. 도대체 얼마나 오랫 동안 그렇게 심술궂은 얼굴로 우리 사무실을 찾을지 한 번 두고 보자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전 정신이 불끈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한 더 웃는 낯으로 대하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더 신경을 썼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L 여사에게 필요한 자료를 최대한 신속하게 제공해서 가능한한 빨리 학위를 마치고 우리 학교를 떠나게 하자는 계산도 있었습니다.(동료들에게 한 농담입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이 바로 그 분의 직업이었습니다. 변호사시더군요. 그리고 법률 회사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들은 변호사들의 업무 스타일이 그랬습니다. 아주 공격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차지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는 "아, 그래서 이렇구나." 싶었습니다.  종종 그 분이 필요한 자료를 찾으며 도서관 외부의 다른 사람들, 출판사나 학술지 편집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저에게도 참고하라고 보냈는데 그 이메일 속에서 보이는 모습 역시 도서관에서 행동하는 것과 한치도 틀림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지요. 어떤 학술지에 나온 논문을 저희들에게 신청했는데 찾아 보니 아직 정식으로 출판이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도 없었지요. 그 말은 상호대차를 통해서는 자료를 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빌려올 도서관이 없는데 어디서 빌려오겠습니까? 하지만 이 사실을 L 여사에게 이해시키는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이 논문이 꼭 필요하다는 그 분에게 그렇다면 저자나 학술지 편집자에게 직접 요청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지요.

저의 그런 말을 듣고 그 분은 당장 학술지 편집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더군요. 그 이메일을 보내면서 저에게도 참고하라고 복사본을 보냈는데 처음 보는 학술지 편집자에게 다짜고짜 다음 달에 출간 예정인 논문을 보내라고 요구하는 이메일을 읽으며 저는 그것을 받아 본 학술지 편집자의 얼굴이 떠올라 혼자 웃었습니다. "나는 이런 이런 사람인데 사정이 이러 저래해서 그 논문이 꼭 필요하다. 보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필요한 비용은 지불하겠다." 이런 말들이 이 경우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인데 L 여사는 자신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마치 빌려준 것을 돌려 받는 사람과 같은 태도로 논문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이메일을 썼더군요. 당연히 논문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그 학술지가 출간이 되고 난 이 후에야 논문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만 그 이메일을 보면서 저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우리 속담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다시 몇 달을 보내면서 매 주 한 두번씩 부대끼다보니 정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L 여사의 웬만한 불평이나 잔소리는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며칠 찾아 오지 않으면 궁금해지기도 하더군요. L 여사도 제가 신경을 더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였는지 적어도 저와 대화할 때는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지고 웃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가끔은 고맙다는 말도 하고 말입니다. 결국 제가 이겼지요. 대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다른 동료들과는 점점 더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심지어 다른 직원들이 한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재차 저에게 확인을 하고는 그제서야 말을 믿으니 저로서는 다른 동료들을 보기가 참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호 대차 담당 부서 뿐만 아니라 대출대나 참고 봉사대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켜 도서관 직원들의 회의에서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고 이니셜만 이야기해도 도서관 직원들이 "아, 그 사람" 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분과 친한(?) 제가 거의 전담 사서가 되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부터인가 L 여사의 모습을 도서관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졸업을 하셨나 싶었지요. 가끔 L 여사 이야기를 동료들과 하면 다들 시원해했지만 약간은 섭섭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분은 도서관 사서들의 일상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 넣어주시던 분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몇 달 후 우연히 올바니의 한 병원에서 그 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멀리서 저를 보고는 아주 반갑게 걸어와서 인사를 하시더군요. 저도 반가워서(정말입니다.^^) 요즘은 잘 지내시냐고 물었더니 이제 20대 초반인 아들이 백혈병으로 입원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잠시 공부를 접고 아들을 간호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도서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슬픈 표정을 보이시더군요. 그런데 그것도 잠시,  곧 이어서 의사들과 간호사들에 대한 불만을 저에게 늘어 놓는 겁니다. 역시 변하지 않으셨구나 싶어 반갑기도 하더군요.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제가 가서 '처리 방법'을 알려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을 다시 만난 것이 지난 해 말 도서관에서였습니다. 그 무렵 저는 상호 대차 부서에서는 이 전과 다른 업무를 맡아 직접 이용자들을 상대하고 있지는 않았지요. 그리고 역사 담당 주제 전문 사서로서 별개의 업무도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상호 대차와 연결이 되어 그 분을 직접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분의 전공 분야가 역사가 아니니 저로서는 접촉할 기회가 줄어있었지요. 몇 년만에 만난 그 분의 모습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며 사람을 깔보는 듯한 눈길 등등.. 아드님의 소식을 물었더니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리고 이제 막 학교로 다시 돌아와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상호대차 담당 직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며 지긋지긋해했습니다. 그 사이 새로 들어온 직원들에게 과거의 "유명했던 에피소드"들을 들려 주며 미리 경고를 하더군요. 그리고는 모든 것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규정대로만 하라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철저하게 사무적으로 대하라는 거지요. 잘 해주면 해줄 수록 요구 사항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더군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니 제 동료 직원들이 아주 불친절한 사람들 같습니다만 실제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러 번 감사 편지도 받고 연말이면 사무실에 카드와 초컬릿을 들고 감사 인사를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제 동료들은 아주 친절한 사람들입니다.다만 L 여사의 경우는 그 분이 워낙 거세게 항의하고 고압적으로 요구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변한 거지요.

저에게 하는 말이 "만일 P 교수님이 부탁을 한다면 비록 내가 해야 할 업무 영역를 넘어서는 일이지만 직접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료를 구해 오겠다. 하지만 L 여사는 아니다. 그렇게 하기 싫다. 내가 해야 할 일만 하겠다" 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더군요. 여기서 말하는 P 교수님은 아주 친절하고 매너가 좋은 멋진 교수님이십니다. 구하기 힘든 자료들을 늘 신청해서 동료들이 애를 먹지만 매 년 잊지 않고 카드와 초컬릿 상자를 보내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시는 분이지요. 상황이 그렇다보니 동료들을 뭐라 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좀 더 관심을 가져보면 어떻겠냐는 제 생각만 말해주고 또 필요하다면 저에게 SOS를 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그 이후 들려오는 소리는 썩 좋은 이야기들이 아니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L 여사는 변하지 않았고 이제는 동료들도 제법 소리를 높여 이야기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소리를 높여 말하니 L 여사가 말을 듣더라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감정이 격해지고 대하는 태도들이 사무적으로 변해가면 결국 모두에게 손해지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며칠 전 참고 봉사대에서 그 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찾고 있는 책이 있는데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고 해서 늘 그렇듯 제가 가서 찾아드리고는 논문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이런 저런 안부를 물었지요. 제가 상호 대차 사무실에 없어서 섭섭하다는 말을 하는데 제 기분이 좀 좋지 않더군요. 그래서 별 문제가 없냐고 물었더니 "뭐 그렇지요." 하는 알듯 말듯 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다른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호 대차와 관련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5시경에 제 사무실로 돌아가는데 그 분의 목소리가 상호 대차 사무실안에서 들려왔습니다. 그 곳에서 이용자들을 맞는 것은 4시 30분까지이고 그 이후에는 사무실의 문을 닫는데 아마 닫힌 문을 두드리고 안에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도 종종 그렇게 하셨지요. 당시 오전 9시부터 사무실 문을 열었는데 8시 반부터 와서 문을 두드리고 또 7시 30분에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왠 전화를 받지 않느냐며 메세지를 남기기도 한 적이 있는 분이라 역시나 하며 지나쳤습니다. 제 사무실에서 남은 일을 처리하다가 몇 가지 자료를 복사할 일이 있어 다시 상호대차 사무실을 지나치는데 아직까지 그 분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슬쩍 보니 최근에 들어온 신입 사서 S 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시간은 이미 5시 30분이 넘어 있었고 S 는 자신의 퇴근 시간을 넘겨가며 그 분과 상담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일단 복사를 마치고 상호대차 사무실에 다시 들렀습니다. 급한 제 일은 다 마쳤으니 만일 그 때까지 L 여사가 사무실에 있으면 일단 S 를 퇴근하게 하고 제가 대신 이야기하려 했었지요. 그런데 L 여사는 이미 가고 없었고 S 는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S 에게 물었으니 쑥스럽게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L 여사가 찾는 논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보기가 좀 안타깝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논문을 찾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몇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 L 여사가 신청한 자료의 서지 정보가 엉터리여서 논문을 구할 수가 없었지요. 본인은 맞다고 하고 담당 직원은 그런 논문은 없다고 하고 그래서 옥신각신 했었다고 합니다. 상대가 L 여사이다 보니 그녀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다른 직원들은 단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말씀하신 그런 논문은 출판된 적이 없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다시 알려 주세요." 보통 이런 경우 일반적인 이용자라면 저희들이 정확한 논문의 서지 정보를 찾거나 비슷한 서지 정보를 찾아 이게 맞느냐고 이용자께 확인을 부탁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L 여사였고 그래서 서비스는 그 시점에서 종료되었던 거지요.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 이 후 이어지는 S 의 말이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자기는 맞다고 생각하는 서지 정보를 들고 와서 보라고 내놓는데 좀 안타깝더라. 우리는 L 여사가 그런 사람이니 규정대로만 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답답했던 모양이더라. 그래서 같이 앉아서 데이터 베이스를 검색하고 결국 그 논문의 저자 그리고 그 논문을 인용한 사람의 인적 사항을 알아내서 직접 연락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좋아하면서 네 이야기를 하더라. 예전에 Clio 는 이랬는데 왜 요즘은 안 그러느냐고 또 불평을 하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나(S)를 찾아 오라고 그랬어"

사실 S 는 도서관학과 과정에 있을 때부터 저희들과 같이 일을 한 친구입니다. 아르바이트로 일을 할 때 제가 느낀 것은 일은 참 열심히 하는데 너무 신중해서 일 처리가 느리고 새로운 기술이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남들보다는 더디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빠릿빠릿"한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용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진중하면서도 친절한 것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 일단 임시직으로 몇 달간 고용을 한다고 했을 때 저도 찬성을 했었는데 역시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시직 고용 기간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잡아 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L 여사가 졸업할 때까지 그녀를 전담할 전속 사서가 생기는 거지요.

L 여사와 이야기했던 S 본인도 그 상황을 그리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저 보기가 안타까웠었다. 그리고 나중에 웃으며 나가는데 아주 흐뭇하더라" 고 얼버무리는 S 의 말과 표정에서 이 친구도 역시 저와 같은 종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남들을 도와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이상한 종류의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나서 퇴근하는 S 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무서운 놈, 한 수가 있었구만 ... 그런데 저 놈보다 더 '무서운' 사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플리커의 
changed screen name , aha42 , 그리고 Aaron Wenner 님 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by Clio | 2009/03/21 06:05 | 도서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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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ristine at 2009/03/21 06:12
예 마님에 폭소를 했스니다. 오랜만에 웃어봤어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3/21 06:24
"Yes, mam" 이라고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이 되더군요.^^
Commented by 현재진행형 at 2009/03/21 06:32
읽다보니 왠지 이솝우화였던가 북풍과 태양의 일화가 생각나네요. ^^
Commented by Clio at 2009/03/21 06:39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강하게 부딪치다 보면 둘 다 부러지는 경우도 있지요.
Commented by 팀리 at 2009/03/21 07:28
Clio님 이야기는 항상 맛깔나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31
맛이 있으셨다니 주방장이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hoo at 2009/03/21 07:35
아마 이 일을 겪어오신 분들께는 어떤 기억일지 모르지만, clio님의 입을 통해 듣는 저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갑자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도 떠오르고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31
그래서 저는 지금 그 '나는 놈' 위에 타고 갈 방법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9/03/21 12:36
진상고객은 답이 없죠. 자기가 인텔리라고 똑똑한척 하는 사람은 더 그렇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겠지만 저렇게만 살아오다 보니 천벌로 아드님을 먼저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듭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32
그렇기까지야 하겠습니까... 아들 이야기를 하는데 부모 마음은 어디나 다 비슷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Commented by 은현 at 2009/03/21 12:45
하하하;; 저렇게 무서운 이용자들도 있군요 역시 사서는 아무나 하나;;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34
저런 이용자들이 계셔서 언제나 사서들이 긴장하게 만들어 주시지요. 저 분 외에도 두 세명이 더 있답니다. 그 분들이 졸업을 하고 나면 또 다른 분들이 나타나지요. 종신 임기 받은 교수님 중에서 저런 분이 나타나는 경우는 정말 아찔합니다.
Commented by 갈기머리 at 2009/03/21 13:19
무서운 클리오님 흐흐 ^^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35
무서운 것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요.^^
Commented by 안재형 at 2009/03/21 14:45
재미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읽다가 보니 무서운 이야기군요. 정말 무서운 Clio 님... 덜덜덜...

저는 이야기들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려고 하는데요. (ㅜ.ㅜ) <-- 까닭을 알 수 없는 눈물이...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36
사실 어느 직업에나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런 분들 덕분에 저는 늘 재미있습니다. 그 덕에 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할 거리도 생기고 말입니다.
Commented by sal9000 at 2009/03/21 15:06
제가 자주 가는 프로그래밍 관련 사이트의 경우 간단히 구글 검색만 해도 답을 얻을 수 있음에도 질문을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서관 사서가 하는 업무가 뭔가요?"라는 질문이 올라오면 "도서관" "사서"로 먼저 인터넷 검색해 보세요.라는 댓글이 있는 경우가 많죠.
이런 일이 인터넷 상에 많다 보니 누군가 대신 구글링 해주는 사이트를 만들었더군요.

내가 널 위해 구글해주마 사이트 http://lmgtfy.com/

해당 사이트에서 "도서관", "사서"로 자동 구글링해주도록 만든 링크
http://lmgtfy.com/?q=%EB%8F%84%EC%84%9C%EA%B4%80+%EC%82%AC%EC%84%9C

해당 사이트는 성의없는 질문을 떠나 적절한 검색어를 찾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좋아보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38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재미있고 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서비스 같습니다. 과연 검색 관련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군요.
Commented by ALICE at 2009/03/21 15:22
어휴..역시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참 힘든 것 같아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39
세상에서 제일 알기 힘든 것이 사람 속이더군요. ... 그래도 힘든 만큼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Commented at 2009/03/21 15: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43
참 반갑습니다. 더구나 문헌정보학과에서 공부를 하신다니 더욱더 그러합니다. 올려주신 말씀에 제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또 어깨도 무거워지는군요. '강의'라는 표현을 하셨지만 편안하게 생각하십시오. 가끔씩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같이 나누었으면 합니다. ,,,, 알파벳으로 이름을 표시하는 방법이 재미있군요. 한참 연구했답니다.^^
Commented by sooyoun at 2009/03/21 15:47
클리오님의 글은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게 술술 읽힘니다.ㅎㅎ
L여사 같은 타입의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가 그렇게 "피곤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걸
정작 자신은 모른다는 거죠...^^: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44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과정일 뿐이지요. 그래도 종종 그런 분들 가운데 본인 스스로도 자기 성격이 싫다고 말하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또 문제이지요. ;)
Commented by EXmio at 2009/03/21 17:59
아..너무 재밌게 읽다갑니다. 사람이 만나는 일 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지..

저도 개인적으로 사서선생님들을 참 좋아합니다. 서비스업 도 아닌 전문가도 아닌 (물론 사실 이 두개를 다 아우르지만,) 그 편안함과 식견이 오히려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3/23 09:47
사서들을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가끔 도서관 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좋아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고 합니다. 사실은 그 사실 때문에 저는 도서관을 더욱 좋아합니다. 단지 도서관을 찾아 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돕는 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을 또 다른 사람들과 연결시키기도 하는 것이 사서의 일이지요. 책이라는 모습으로 도서관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말입니다.
Commented by Signifie at 2009/03/24 10:41
오랜만에 와서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그런데 마냥 재미있을 수만은 없네요. L여사 같은 사용자를 만나 S나 클리오님처럼 무서운 사람은 못 될 것 같아서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3/25 03:33
글쎄요. 저는 Signifie 님 께서도 충분히 "무서운"사서가 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jjsmom at 2009/03/26 02:39
세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사람이 살지요?
오랫만에 재미있는 이야기 듣고 갑니다.
이러다 클리오님 성불하시는 건 아니가요..? ^^
Commented by Clio at 2009/03/26 10:40
정말입니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게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게 세상인 것 같구요. ... 뭐 '성불'까지야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그래도 가끔은 세상일에 달관한 듯 그렇게 보아넘겨야 할 때도 많이 있더군요. ^^
Commented by sunup at 2009/03/26 14:21
저도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외국인 교수님이 상호대차한 도서를 분실해서 한참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3/27 12:00
분실 뿐만 아니라 종종 책이 손상되는 경우도 있지요. 저희 도서관에서는 한 이용자께서 개가 물어 뜯은 책을 가져오셔서 어떻게 해야하나 물어 오신 적이 있지요. 난처했었습니다.^^
Commented by Boyoon at 2009/03/26 22:37
요즘 상호대차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낑낑거리고 있는 상황에 이 글을 읽으니 참 잼있네요. 또한 많이 배웁니다.
"도전 정신이 불끈" 솟아나는 Clio님도 L여사도 P교수도 S의 모습도 말입니다. Clio님의 글을 통해 하나 둘씩 간접경험하며 맘속에 담아 두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사서가 된다면... 왠만해서는 실전에서는 맘같이 안될꺼 같은데요. 사서도 천성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직업? ㅋㅋ
헌데 마지막에 S에 대한 글을 보고 있자니 저도 이래저래 S같은 성격인데... 걱정과 함께 많은 생각이 스칩니다 ㅠ..ㅠ
암튼...
Clio님 재미난 이야기 또 기대할께요~
Commented by Clio at 2009/03/27 12:04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현장에서 실전 상황을 맞이하면 잘 처리해내시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이야 힘들겠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은 없지요.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고 그러한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즐기십시오.
Commented at 2009/03/27 10: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3/27 12:10
사서 컴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통해 성함은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진작에 한 번 인사를 드렸어야 되는데 늦었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필요하시다면 마음대로 이용하십시오. 보잘것 없는 글들이 그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있다면 오히려 제가 감사드릴 일이지요. 그냥 인사치례로 드리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필요하신대로 이용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꼭 학교의 허락을 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물론 웹페이지도 유용한 도구이지만 블로그는 훨씬 더 여러 용도로 이용할 수 있고 또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블로그를 통하면 이용자들에게도 좀더 손쉽게 다가갈 수 있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눈 높이 맞추기라고나 할까요.. 나중에 개설되면 알려주시겠지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3/29 00:15
한국어의 외국어표기법 관련 추천하는 인터넷 블로그입니다:

http://iceager.egloos.com
Commented by Clio at 2009/03/30 11:35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살펴보겠습니다.
Commented by lacidk at 2009/03/30 02:11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ALA와 미국도서관의 사서에 대해 검색하다가 들르게 되었는데, 이렇게 실무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보게 되니 감개무량하네요 하하.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3/30 11:35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오셔서 좋은 말씀 남겨 주십시오.
Commented by 노경국 at 2009/03/30 09:46
감사합니다.
다음주정도에 결정은 날 것 같구요. 최종확정되면 말씀드릴께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복받을겨~ㅋ
Commented by Clio at 2009/03/30 11:36
계획하시는 대로 잘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인사드리러 갈테니 꼭 알려주십시오.^^
Commented at 2009/03/31 15: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9/04/02 06:41
예. 곧 찾아 뵙지요.
Commented by 허대수 at 2009/04/02 14:59
도서관 사서,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저에게는 왠지 로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직업입니다.
추천이 있다면 추천을 누르고 싶었는데, 그런 게 없어서 댓글로나마 좋은 이야기를 읽은 데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댓글 남깁니다.
간만에 꼼꼼이 읽은 블로그 포스트였습니다. ^^
Commented by Clio at 2009/04/03 01:56
찾아주시고 또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제가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보니 주로 도서관 이야기를 합니다만 어느 직업에나 그 직업만의 '로망'이 있겠지요. 그것을 찾아 낸다면 아마 훨씬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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