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ricia mi ensueño el suave murmullo de tu suspirar.
Como rie la vida si tus ojos negros me quieren mirar.
Y si es mio el amparo de tu risa leve
que es como un cantar, ella aquieta mi herida, todo todo se olvida.
당신이 숨결을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속삭임이 내 꿈을 쓰다듬는군요.
만일 당신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면 인생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노래하는 듯 가벼운 당신의 웃음이 내 피난처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상처를 달래고 모든 것들을 잊게 만들겠지요.
El día que me quieras la rosa que engalana,
se vestirá de fiesta con su mejor color.
Y al viento las campanas dirán que ya eres mía,
y locas las fontanas se contaran su amor.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 장미들은 마치 축제에 가는 것처럼
가장 아름다운 색깔의 옷을 입고 치장할 것입니다
교회의 종들은 지나가는 바람에게 당신이 이미 내 것이라고 말하겠지요.
그리고 세차게 뿜어나오는 분수들은 당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겠지요.
La noche que me quieras desde el azul del cielo,
las estrellas celosas nos mirarán pasar.
Y un rayo misterioso hara nido en tu pelo,
luciernaga curiosa que veras que eres mi consuelo.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밤, 하늘의 푸르른 곳에서
질투에 쌓인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 보겠지요.
그리고 한 줄기 신비로운 빛이 당신의 머리에 둥지를 틀고
호기심 많은 반디불이는 당신이 내 위안이라는 것을 알게되겠지요.
1897년 프랑스의 툴루즈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까를로스 가르델은 아주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리고 혼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가르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습니다. 가르델이 주로 활동했던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그리고 가르델이 가진 여권에 출생지로 기록된 우루과이, 이 세 나라가 모두 가르델이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만큼 가르델의 인기가 대단했고 그의 존재는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보셔도 됩니다. "탱고를 노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그러하고 우리 아버지에게는 더욱더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지요. "탱고를 노래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까를로스 가르델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일찌감치 딴 일을 하는게 좋아." 그리고 그것 외에도 탱고를 제대로 노래하기 위해서는 추위와 굶주림이 뭔지 알아야 하고 또 자신이 태어난 땅과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어린 시절 저는 다른 모든 것을 다 해보았지만 탱고를 노래 할 수는 없었습니다.어쩌면 탱고는 바로 그런 사랑과 슬픔 그리고 고통이 한데 어울린 음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바로 그런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체리베르티의 목소리로 부르는 El Dia Que Me Quieras 입니다.
그러다가 열 여덟살에 저는 파리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저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꼈지요. 고향과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나의 색깔과 나의 냄새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엄청난 향수를 느꼈고 탱고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탱고를 노래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아버지의 허락을 얻지 못했지요. 그래서 큰 용기를 내서 비록 조잡한 수준이었지만 카세트에 제가 부르는 탱고를 녹음하고 아버지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그 노래를 듣고 어떻게 생각하실런지 기다리고있었어요. 사실 저의 아버지는 그 때까지도 매일 가르델의 노래를 듣는 분이셨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미 가르델이 죽은지 65년이 지났지만 아버지는 "가르델은 매일 매일 노래를 더 잘 부르는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보낸 카세트를 듣자 마자 전화를 하셨지요. " 얘야. 가르델은 정말 노래를 잘 한단다. 하지만 너는 더 잘 하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