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말 도서관에서 도서관 이야기

지난 몇 주간 여러 가지 일거리가 많았습니다. 이제 겨우 한숨을 돌리는 군요. 제가 맡은 업무가 크게 두 가지인데 그 두 곳에서 모두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었었지요. 상호대차 부서에서는 새로운 컨소시엄에 가입하고 그 곳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 테스트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때맞추어 저희들의 시스템을 담당하고 동료 직원이 장기간 휴가를 가는 통에 제가 졸지에 시스템 담당이 되어 소프트웨어 설치와 문제 해결 작업까지 맡았습니다. 다행히 시스템이 큰 말썽을 부리지 않아서 순조롭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RapidILL 이라는 이 서비스는 학술지 논문 만을 제공하는 서비스로서 콜로라도주립대학이 추축이 되어 몇 년전부터 만들어진 일종의 컨소시엄인데 미국 내의 큰 연구 도서관들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가입된 도서관들은 자신들이 가진 저널의 소장 정보를 제공하여 RapidILL 서버에 저장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ISSN 이나 OCLC 번호를 기준으로하여 거의 자동으로 상호대차 신청이 이루어지고 인터넷을 통해 24-36 시간 이내에 자료를 받아 볼 수 있지요. 테스트 기간을 통해 살펴보니 거의 24시간 이내에 논문이 도착하는 것 같습니다. 빠른 경우는 2시간 만에 자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서비스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연간 가입비가 필요한데 예산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무리를 하여 가입을 한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예산을 절약해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현재 저희들이 사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상호대차 루트(OCLC)를 통해 RapidILL 에 속한 큰 연구 도서관들로부터 자료를 제공 받을 경우 한 건당 수수료로 지불하는 돈이 상당합니다. 적게는 10달러에서 많게는 30 달러에 이르는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지요. 하지만 RapidILL 에 속한 도서관들끼리는 무료로 자료를 제공합니다. 결국 한 해 그 도서관들에 지불하는 수수료와 RapidILL 의 일 년 가입비를 따져보니 가입하는 쪽이 훨씬 더 경제적이었습니다. 더구나 예산이 계속 삭감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여러 학술지들의 구독을 중단해야 하는데 이 경우 상호대차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컴소시움에 가입하는 것이 이용자 서비스의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요.

그런데 이 일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도서관 예산 절감 계획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2.5% 에서 10 % 사이에서 예산이 깎이는 것을 전제로 하고 4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각각의 시나리오에 맞게 예산 삭감 계획을 세워야 했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동료 사서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방법을 택했지요. 학술지 중 이용도가 낮거나 당장 큰 필요가 없는 것들을 골라내서 구독을 취소하거나 책 구입 예산이나 데이터 베이스 구입 예산을 줄이는 등 각 과목에 맞는 방법으로 저마다 아이디어를 짜냈습니다.

저 역시 역사 과목에 배정된 예산을 두고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줄일지 머리가 빠지도록 고민을 했지요. 일단 역사라는 학문이 학술지 보다는 단행본에 더 의존을 하는 학문이라 가능한한 단행본 구입 예산에는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일 년에 7만 5천 달러 정도 되는 역사학 관련 자료 예산에서 절반 정도가 단행본을 구입하기 위한 예산으로 사용이 되는데 그것에 손을 대지 않으려니 결국 저널과 기타 정기 간행물 구입에 들어가야 할 돈을 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몇 개 되지 않는 데이터 베이스는 손을 댈래야 댈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나마 각 과목별 예산이 아닌 도서관 전체 예산에서 구입한 몇 몇 원문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논문을 제공해 주는 저널들이 있어서 그 저널들을 가장 먼저 잘랐지요. 그리고 나서 각 지역 역사 학회에서 발간하는 지역사 관련 저널들을 잘랐습니다.

이 쪽 저 쪽에서 조금씩 잘라낸 저널의 리스트와 예산 삭감 계획안을 역사학과의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에게 보낸 것이 지난 주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의 시간을 두고 의견을 알려달라고 했지요. 몇 몇 저널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획에 찬성을 했고 오늘 오후에 최종적으로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계획안의 서두에 "역사 연구와 수업을 위해서는 저널보다 단행본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단행본 구입 예산은 손을 대지 않겠다."고 했던 말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의견에 동의를 하더군요.

대신 지방 역사 학회에서 발행하는 저널들에 대해서는 걱정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저널들이 없으면 지장을 받는다는 식의 걱정이 아니라 그 지방 역사 학회들도 운영 예산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렇게 구독을 취소하면 그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걱정입니다만 당장 "내 코가 석자"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를 구했지요. 반면 그 저널들을 끊겠다고 하자 쌍수를 들고 환영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물론 그 저널들이 필요가 없는 분야를 공부하시는 분들이기는 합니다만 그 분들 중 한 분의 말씀은 "늘 그 저널들을 도서관에서 볼 때 마다 배가 아프더라. 도대체 왜 그런 작은 저널을 구입하는데 돈을 쓰고 있는지. 정말 잘 잘랐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방 역사학회들을 걱정하신 분과 쌍수를 들고 환영하신 두 분의 연구실은 서로 붙어 있고 자주 같이 어울리시는 분들이지요. 서로 그 이야기를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제가 싸움을 붙일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어느 새 한 학기가 다 가버렸습니다. 다음 주가 학기의 마지막 주이고 기말 고사 기간을 맞아 지금 도서관은 24시간 개방 모드로 운영 중입니다. 시험 공부에 지친 학생들을 위해 오늘 아침에는 도서관에서 무료 커피를 제공했었지요. 그룹 과제를 해결하느라 책상과 의자를 도서관의 이곳 저곳으로 옮기고 둘러 앉아 열심히 토론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카페트가 깔린 도서관 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 도서관의 분위기가 아주 어수선 합니다. 도서관의 구석진 곳에 있는 제 사무실 밖에도 지금 두 명의 여학생들이 책상을 옮겨와서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포드를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메신저를 컴퓨터의 한 쪽에 띄워놓고 친구들과 간간히 채팅을 하면서 동시에 온라인으로 논문을 읽으며 리포트를 쓰고 있는 이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멀티 태스킹은 컴퓨터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주만 지나면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도 사라지고 침묵의 소리가 고요하게 들리는 도서관이 되겠지요. 그 때가 되면 사서들도 한 숨을 돌리겠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입니다. 새 학기 준비 때문에 또 바빠질 것이고 방학 중에 있는 각 종 컨퍼런스와 워크숍에 참석하느라 한 여름 더위도 못 느낄 겁니다. 당장 저만 하더라도 이번 여름에는 두 군데 컨퍼런스에 가서 조테로(Zotero)와 관련한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실시하는 여름 강좌에서도 강의를 해야하고 아직 확실해진 것은 아닙니다만 미국도서관협회의 연례 대회에도 참석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바쁜 것이 좋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생각할 거리를 얻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요. 나이가 들어가도 줄어들지 않는 호기심 때문에 고민이 저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다만 블로그에 글을 올릴 시간 여유가 줄어드니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제는 좀 더 자주 글을 올릴 시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구글의 라이프지 사진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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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eawolf 2009/05/08 18:44 # 답글

    더욱더 경기가 나빠질거란게 안습이죠.. 도서관이 예산절감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를 하는 모습에 다행입니다.
  • Clio 2009/05/09 01:43 #

    참 걱정입니다.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도서관 예산을 통해서 보면 앞으로도 한 동안 힘든 시간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요.
  • 너구리 2009/05/08 18:51 # 답글

    상호대차에도 돈이 들어가는군요.... 저는 연구분야의 특성상 물리학 저널을 자주 봐야 하거든요. 저희 학교에는 물리학과가 없고, 당연히 도서관에서 물리학 저널도 구입 안하지요. 도서관에다 몇 가지 자주 보는 물리학 저널 정기구독을 신청했드랬는데, 거절당했어요. 수요가 없고 (저 한 사람만 보자고 비싼 저널을 정기구독할 수는 없다네요.) 박사과정 학생 한 명에게 돌아가는 도서구입 예산의 범위를 넘어간다구요.. 대신 상호대차를 이용하라고 하길래 상호대차는 공짜인줄 알았어요.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상호대차로 5~6편의 논문을 신청하는데, 매번 신청서 써야하고 지도교수 사인 받아야 하고.. 프로세스가 좀 귀찮다 했더니만.. 돈 내는 거였군요..
  • Clio 2009/05/09 01:48 #

    저널이라고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구독을 할 때에는 일반 독자에 비해 최소한 서너배의 비싼 구독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리학 관련 저널이라면 아마 대형 출판사들을 통해 출판되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 경우 정기 구독료는 상상이상이지요. 더구나 물리학과가 없는 곳이라면 차라리 상호 대차를 통해 필요한 논문을 복사해 오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일 겁니다. 물론 상호대차 역시 도서관끼리 주고 받는 수수료에 저작권료 그리고 우편 비용 등을 생각하면 그리 싼 서비스는 아니지요. ... 너구리님이 계신 곳에서는 지도 교수의 사인까지 받아야 하는군요.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워 보입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학생과 교직원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아무런 제한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요. 물론 아주 심한 경우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한 꺼번에 200 편 이상의 박사 학위 논문을 신청하는 그런 경우지요. :)
  • 2009/05/09 19:3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Clio 2009/05/10 15:19 #

    축하 또 축하 드립니다. 평생의 대업을 이루셨군요.^^ 그 일을 마치고 나면 "앞으로 뭐해야 하나"하는 고민이 생길 정도라고 하던데 과연 그러신가 모르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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