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글로브지에 따르면 보스턴 인근의 한 고등학교에서 도서관에 있는 종이 책을 모두 치우고 전자책 리더와 대형 모니터를 완비한 디지털 도서관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50만 달러를 들여 새로 꾸미는 이 공간에는 2만 여권이 되는 학교 도서관의 장서를 모두 치우고 책 대신에 아마존 킨들과 소니 전자책 리더를 구입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형 모니터를 설치하여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바로 입수할 수 있게 하고 참고 봉사대가 있던 자리에는 만 이천 달러짜리 카푸치노 기계를 갖춘 커피숍을 만들겠다고 하는군요. 이 기사가 보도된 보스턴 글로브의 웹페이지에는 200 여개의 독자 의견이 달렸는데 이 학교의 결정을 지지하는 의견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었고 대부분은 학교의 결정에 반대하고 (종이)책이 없는 도서관은 상상할 수 없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의견 중에는 이렇게 바뀐 공간의 이름은 "도서관(Library) 이 아니라 학습센터(Learning Center)라고 불린다"는 기사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그 학교에는 도서관이 없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 학교 교장 선생님은 "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을 보고 있는것 같다"면서 자신들의 결정은 학생들이 책읽기와 멀어지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동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최대한 활용하려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2 만권의 책이 있는 도서관 대신에 가상의 도서관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수 백만권의 책을 접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을 했는데요. 그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의견이 달랐는데요. 누가 찬성을 하고 누가 반대를 하는지는 아마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도서관에 전자책 리더와 대형 스크린을 구비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현재 많은 도서관에서 하고 있는 일이지요. 전자책은 물론이고 MP3 플레이어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 북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도서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이책을 치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문제라고 하는데 기사에 실린 사진에 보이는 공간이 도서관이라면 2만권의 책이 문제가 될 만큼 좁은 공간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고등학교 도서관으로서는 아주 넓은 도서관이라고 하더군요. 설사 공간이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밀집 서고라는 장치를 이용할 수도 있고 의지만 있다면 다른 해결책도 있습니다.
문제는 책에 대한 학교 당국의 인식이겠지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학교에서는 종이책을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공간 문제와 함께 학생들이 도서관의 책을 많이 대출하지 않더라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도서관의 책을 없애도 좋을 이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다른 기관도 아닌 교육 기관이라면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을 경우 책을 읽게 만들어야 하지, 학생들이 찾지 않는다고 해서 책을 없애는 일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책이 없는 도서관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많은 분들은 책이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인 친밀감을 이야기하십니다. 종이의 질감과 소리 그리고 책의 냄새에 이르기까지 아날로그 매체인 종이책이 전자책에 비해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서적인 면을 제외하고라도 종이책을 없애고 전자책만 제공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가지 문제는 전자책이라는 매체의 미래가 아직 불확실하다는 사실이고 또 다른 문제는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사고 작용의 문제입니다.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전자책은 분명 종이 책이 주지 못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에 더 많은 내용을 저장할 수도 있고 풀텍스트 검색 기능을 이용하면 페이지를 앞 뒤로 뒤적이지 않고도 책의 내용을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텍스트나 그림을 보여주는 기존의 책과 달리 여러 가지 멀티 미디어를 동시에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단점과 불확실한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학교에서 비싸게 구입한 아마존 킨들과 소니의 전자책 리더가 10년 후, 혹은 100 년 후에도 여전히 사용될까요? 그러기를 바랍니다만 누구도 그 대답을 알 수 없습니다. 새로운 또 다른 기술이 나오면서 그런 장치들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있고 그 기계 안에 있는 전자책 데이터 파일 역시 새로운 포맷으로 바꾸어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종이책과 비교할 때 전자책은 여전히 기술과 매체에 심하게 종속되어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종이 책은 몇 백년전에 만들어진 것을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나 스크린 그리고 소프트웨어가 없이도 사람의 눈으로 책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페이지 한 장이 찢어진 책은 여전히 다른 페이지들을 읽을 수 있지만 파일의 일부가 손상된 전자책은 책 전체를 읽을 수 없지요.
이러한 문제점과 함께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이 전자책 속에 있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방식이 종이책과는 다르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자책을 읽을 때와 종이책을 읽을 때 읽는 사람들이 두 가지의 매체에 대해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습니다. 즉, 전자책을 읽으면서 이루어지는 사고 작용이 종이 책을 읽을 때에 비해 매우 단편적이고 또 표면적이라는 점을 읽는 사람 스스로 느끼고 있다는 말입니다. 종이책이던 전자책이던 그것들을 읽으며 일차적으로 눈을 통해 머리에 전달되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 일 뿐이고 그 데이터가 우리 두뇌에서 처리되어 하나의 정보가 되고 또 그것이 모여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두뇌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한데 전자책을 읽는 동안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그러한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인터넷을 통해 찾은 기사나 글 중에서 생각해 가며 읽을 필요가 있는 내용은 종이에 인쇄해서 읽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종이 책으로 읽을 때 훨씬 더 머리에 잘 들어오고 내용이 더 명확하게 파악되더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 경우처럼 우리의 두뇌는 아직 종이에 인쇄된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전자책만을 제공할 경우 이런 문제점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자책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전자책은 전자책으로서 장점을 가지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어 사전이나 백과 사전, 그리고 각 종 통계 자료 등 즉각적인 정보가 필요한 참고 서적의 경우 전자책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하며 읽어야 할 종류의 책들을 두고 본다면 전자책이 종이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효과적입니다. 종이책을 오래 보아도 눈이 아프고 또 목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전자책의 경우 이러한 피로가 한결 더 빨리 찾아온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전자책이 가지는 단점들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종이책을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된다는 분들의 말씀은 그 분들의 책읽기가 종이책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은 만일 태어나면서부터 스크린을 통해 책을 접한 사람들이 있다면 종이책보다 스크린에 더 정서적인 친밀감을 느낄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 스크린을 통해서 읽는 것이 더 잘 이해가 될 수도 있겠지요. 과연 그런 날이 올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종이책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선호하는 매체입니다. 전자책도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전자책에 유리한 장르가 있고 종이책이 유리한 장르가 있습니다. 두 가지 매체가 가진 각 각의 장점을 생각하지 않고 한 쪽에만 치중하는 그 학교의 결정이 아쉬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한 가지 질문이 생기더군요. 과연 그 학교에서 없앤 2만권의 책을 모두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그 책들을 없애자는 결정을 한 학교 당국은 그것들이 인터넷에 전자책의 형태로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겠지요. 그런데 인터넷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사실 중 한 가지는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다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구글과 몇 몇 회사에서 대대적인 스캐닝 작업을 벌여서 엄청난 양의 종이 책이 전자책의 형태로 인터넷에 올라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낸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적어도, 아직은 환상입니다. 여전히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는 정보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어느 동네에 가면 어떤 식당이 맛있다는 종류의 정보가 아니라 정책을 결정하고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고급의 정보들은 무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을 합니다만 그 '한국의 인터넷' 안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과연 기업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정부에서 중요한 정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고급의 정보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런 정보들을 만들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한 번 알아보시지요. 과연 언론에서 말하는 인터넷 강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시게 될 겁니다.
혹시 미국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한국에서 따라하려는 교장 선생님들이나 교육감님들이 계시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당장 우리 학교에는 더 많은 종이 책이 필요하고 전문 교육을 받은 사서교사가 제대로 운영하는 도서관이 필요합니다.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플리커의 jblyberg 님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글에서 인용한 기사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책의 미래와 관련해서 이 전에 올린 글을 링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