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최근에 들어 이 날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는 듯 합니다. 콜럼버스 이전에 이미 바이킹들이 먼저 신대륙에 왔었다는 사실이 설득력있게 주장되고 있고 중국 명나라 때 정화의 원정대 중 일부가 미국 서해안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출토된 유물과 함께 주장하는 책도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땅이 신대륙인지도 몰랐고 또 카리브해의 섬에만 도착하였지 실제 아메리카 대륙에는 발을 디딘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이 날의 의미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퍼레이드는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콜럼버스가 태어난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제노아 사람들이 축제를 한다면 또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한 것은 스페인이었으니 스페인 사람들이 이 날을 축하한다고 해도 이탈리아인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든 노릇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날이 가장 크게 공격받고 있는 이유는 과연 이 날이 축하할 만한 날인가 하는 사실 때문입니다. 유럽인들의 관점에서는 신대륙의 발견이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입장에서 이 날은 바로 몰락의 서막이 열린 날입니다. 잉카와 마야에서 일어난 스페인 정복자들의 무자비한 학살과 착취, 그리고 마찬가지로 북미 인디언들에 대해 똑같은 만행을 자행한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과 미국 정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오늘 날 인디언들의 모습 등등, 과연 이 날을 콜럼버스의 날이라고 축하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실제 남미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이 날을 Día de la Raza ("day of the race") 라고 하여 유럽인들과 아메리카인들이 만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삼고 있고 최근 유엔에서 부시를 악마로 비유했던 챠베스의 나라 베네주엘라에서는 2002년 부터 이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Día de la Resistencia Indígena)로 정하고 유럽 정복자들에 대한 원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된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금요일 Democracy Now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American Indian Movement 의 일원인 글렌 모리스 콜로라도 대학 정치학과 교수가 한 인터뷰의 일부를 (의역해서) 옮깁니다. (링크를 따라가시면 인터뷰 원문과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콜럼버스의 날은 침략과 정복 그리고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축하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다.....
.. 1823년 대법원에 상고된 사건인 죤슨 대 맥킨토시 사건에서 당시 대법원장인 존 마샬은 '날조된 발견자 우선주의(Doctrine of Discovery)'를 원용하여 미국 인디언들의 영토에 대한 소유권이 축소되었음을 정당화하였다. ... 이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존 마샬은 서구 기독교 문명의 도착과 함께 기독교 문명의 축복을 받은 원주민 인디언들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약화되었다고 했고 이것이 오늘 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존 마샬이 이용한 Doctrine of Discovery에 따르면 기독교 국가가 진출함으써 인디언들은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로서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잃고 단지 점유권만을 지니며 결국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최종적인 지배하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고 힘없는 인디언들의 침묵 속에서 그것이 오늘 날까지 원칙으로 인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디언들에 대해 제가 어린 시절 가졌던 생각은 얼굴에 무서운 칠을 하고 사람들의 머릿가죽을 벗기는 야만인들이었습니다. 존 웨인의 영화에서 무수히 나타났다가 주인공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이 인디언들이었고 톰 소여의 모험에서 살인을 하고 동굴 속에서 톰소여와 베키를 위협하는 악당도 인디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참 백인화된(?) 어린시절을 보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제 생각을 바꾸어 놓은 것이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으로 나욌던 Little Big Man 이라는 영화와 피터 스트라우스 주연의 Soldier Blue 라는 영화였습니다.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은 한번 구해 보십시오.
글을 접으며 음악 한 곡 보내드립니다. Robert Mirabal 이라는 아메리카 인디언 가수인데요, 인디언들의 전통 음악과 백인들의 록 뮤직을 결합하여 아주 흥미로운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YouTube에서 발견한 Navajo Fires 란 곡의 동영상입니다.
*2006년 11월 5일 확인한 결과 Robert Mirabal의 비디오가 YouTube에서 삭제되었습니다. Robert Mirabal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http://www.mirabal.com/ 를 참고하십시오.
참고 자료
- Glenn Morris 교수의 인터뷰 --- http://www.democracynow.org/article.pl?sid=06/10/06/1350258
- Día de la Resistencia Indígena --- http://en.wikipedia.org/wiki/Día_de_la_Resistencia_Indígena
- Doctrine of Discovery--- http://ili.nativeweb.org/sdrm_art.html
- Why the American Indian Movement opposes columbus day/ by Glenn Morris and Russell Means--- http://www.dickshovel.com/colum.html
이미지 출처
콜럼버스 , 아메리칸 인디언 , columbus day , American Indian , American Indian Movement , Robert Mirabal




덧글
Charlie 2006/10/10 16:03 # 답글
안녕하세요. :) 밸리에서 보고 왔습니다.여전히 민감한 주제기도 하지만.. 사실 여기있는 사람들은 결국 '노는날인가 아닌가!'가 제일 중요해요..; 역시 사람사는곳은..;
참고로 제겐 노는날이 아니었습니다. 흑.
Clio 2006/10/10 23:48 # 답글
Charlie님 방문감사합니다.제게도 노는 날은 아니었답니다. 대신 나중에 하루 찾아서 쉴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출출할 때 Charlie 님 이글루에 놀러 가도 되죠?
Charlie 2006/10/11 12:54 # 답글
앗 이오공감 오르셨군요~ :) 언제든 놀러 오세요~ :)
로안 2006/10/11 13:27 # 답글
안녕하세요, 이오공감 타고 왔어요. 대학에선 콜롬버스데이에 쉬지 않아서 콜롬버스데이가 다 지나가서야알았답니다. ㅠㅠ 밑에 인디언 가수의 뮤직비디오 매우 흥미롭네요...저 전통복장의 행렬에서
위엄과 전율이 느껴져요. @_@!!
네모스카이시어 2006/10/11 13:47 # 답글
최근에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 부른다고 들었는데 아직 아메리카 인디언이란 표현을 많이들 쓰나보네요.그런데 참 웃기죠. '백인이 아닌 원주민들은 다 야만인이니, 거기 살던 부족들은 싸그리 무시하고 신대륙'이라는 그 논리. 솔직히 무엇을 왜 축하해야 한다는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백인들에게는 그래도 축하할 날일까요?
가빈 2006/10/11 14:39 # 답글
안녕하세요.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어린 시절 얼마나 편향된 정보를 주입받으며 자랐나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네요.
다만... 예전에 어느 글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인디언 이라는 말 자체가 이주민일뿐인 서양인의 오해와 편견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옳은 지칭이라 보기도 어렵고 당사자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호칭이니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 이라고 하는게 바람직하다 였습니다.
침략받고 모함받은 그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디언, 인디언 하니 좀 저항감이 느껴져서요.
marlowe 2006/10/11 16:36 # 답글
미국 원주민, 팔레스타인, 티벳, 쿠르드족, 줌마족, 타이완 원주민, 카슈미르, 그리고 아프리카...세상은 참 슬픈 곳입니다.
EST_ 2006/10/11 17:34 # 답글
안녕하세요,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솔저 블루>는 중학교 때였나, 주말의 명화를 통해 본 기억이 납니다.
호의와 믿음으로 다가갔지만 결국 도륙당하고 약탈당하는 미국 원주민들의 모습과,
주인공들도 무기력하게 잡혀서 끌려가던 마지막도 안타까운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Clio 2006/10/11 23:30 # 답글
EST_님 방문감사합니다.1970년 솔저 블루가 미국에 개봉될 때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삭제되었다고 하더군요. 과연 폭력이 원인이었는지 아니면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모습이 원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Clio 2006/10/11 23:48 # 답글
marlowe 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그렇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지요. Indigenous Peoples Literature (http://www.indigenouspeople.net/) 라는 웹싸이트를 보니 전세계적으로 4억 정도의 인구가 이러한 상황에 처해져 있답니다. 아메리카나 아프리아,아시아 대룩 뿐만 아니라 유럽에까지 이러한 원주민이 있다고 하더군요. UN 에서는 매년 8월 9일을 'International Day of the World’s Indigenous People' 로 정하고 있답니다.(http://www0.un.org/cyberschoolbus/indigenous/index.asp)
Clio 2006/10/11 23:57 # 답글
가빈 님 반갑습니다.그리고 날카로운 지적에 더욱더 감사드립니다. 올리신 글을 보고 뜨끔했습니다. American Indian Movement 라는 단체가 있어서 큰 생각없이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만 지적 해주신대로 Native American 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학자들이 사용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 사람들을 지칭하는 확정된 용어는 없더군요.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말이 오래 쓰이다 보니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좀 웃기는 이야기 입니다만 Native 란 단어 자체가 특정 지역에서 '태어난' 의 의미가 있으므로 이 의미에 따르면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 미국인들도 Native American 이 라고 할 수 있다는 말도 들은 것 같습니다. 어쨌던 날카로운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부터는 단어 사용에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Clio 2006/10/12 00:06 # 답글
네모스카이시어님 반갑습니다.그렇죠? 몇 백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원주민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이러한 생각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군들에게서 아직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백인 가운데에서도 이 날을 축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북유럽 출신의 백인들이 많이 사는 미네소타 주에서는 이 날이 공휴일이 아니랍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미국에 먼저 왔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네요.
Clio 2006/10/12 00:14 # 답글
로안 님 반갑습니다.http://www.youtube.com/ 에 가셔서 Robert Mirabal 을 검색해 보십시오. 제가 링크한 것이 외에도 공연 실황을 몇 개 더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인디언 북소리와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어울리면서 힘과 전율이 함께 느껴집니다.
Clio 2006/10/12 00:17 # 답글
Charlie 님Charlie 님 글을 보고 이오공감이 뭔지 찾아 봤습니다. 블로그를 만들고 두 번째 올린 글인데 누군가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영광입니다. 그 덕에 접속하시는 분들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 ㅎㅎ ...하나 하나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
chungsuk 2006/10/12 00:25 # 답글
전 그저 노는 날이라고 좋아했는데, 넌 RA니까 나와서 일하라고 하더군요 T.T
Clio 2006/10/12 06:05 # 답글
chungsuk 님 반갑습니다.RA만 그렇겠습니까? TA도 그럴거고, 교직원들도 마찬가지지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했기 때문에 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답니다.
stardan 2007/06/10 05:37 # 삭제 답글
지금 저는 남미 칠레에서 이 글을 보는데요..-_- 이 나라도.. 제가 다니는 학교도 쉬는데요..왜 노는지도 몰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르더라고요..저도 얼마전까지는 몰랐지만..-_- 이제는 놀면 안되겠군요...
Clio 2007/06/10 16:49 # 답글
stardan 님 / 멀리서 오셨군요.^^ 칠레에서도 휴일인지는 몰랐습니다. 이제 그 쪽은 늦가을이지요?
heewooya 2007/07/10 04:49 # 답글
밸리에서 영어관련 글 제목보고 왔는데 아주 인상적이네요. 정보도 많고 단순히 겉핧기식만은 아닌것 같고. 점심시간이라 길게는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괜히 제 일상의 기록으로만 채워진 이글루가 조금 반성되기도 하는.
Clio 2007/07/10 08:24 # 답글
heewooya 님 / 반갑습니다. 일상의 기록을 담았다고 말씀하시는 heewooya 님의 블로그도 참 재미있고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하게 해 주더군요.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ghistory 2008/12/23 13:31 # 답글
챠베스→차베스.제노아→제노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