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양지: 미국의 꿈과 비극

"젊은이의 양지"라는 제목을 들으시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이종원과 하희라가 출연했던 한 방송국의 연속극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있을것이고 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주연 했던 예전의 흑백 영화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51년 작 영화를 먼저 떠올립니다. 기껏 초등학생이 부와 명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사랑에 대해 알았겠습니까만 70년대 말 KBS 명화 극장에서 보았던 흑백 영화의 강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1951년에 만들어진 영화  "A Place in the Sun "(한국에서는 젊은이의 양지로 소개됨)은 원래 시어도어 드라이서(Theodore Dreiser)가 1925년에 발표한 소설 "미국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을 영화한 것으로서 이 소설은 1931년에 이미 한 번 영화화 되었던 적도 있었을 만큼 유명한 작품입니다. 가난한 젊은이가 부유한 여성을 만나면서 부와 신분 상승을 위해 가난한 시절 사랑하던 여자를 버리려다 결국 그 여자를 살해하고 이것으로 인해 사형을 선고 받는 어찌보면 이제는 통속적인 이야기가 줄거리인데 원작의 작가는 이것을 통해 물질적인 부와 명예 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꿈(American Dream)으로 상징되는 이러한 물질적인 부의 추구는 결국 미국의 비극(American Tragedy)으로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드라이서의 이 소설은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1906년 뉴욕주 허커머( Herkimer) 군의 빅 무스(Big Moose) 호수에서 한 남자가 임신한 애인을 살해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이 살인 사건은 당시 미국 전 언론의 주목을 받았었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배경으로 소설, 영화, 다큐먼타리 등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사건이 일어난 곳을 방문하기 위해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지난 2005년에는 오페라로 만들어져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되었다고 하는군요. 올 해가 사건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보니 허커머 군에서는 많은 행사가 지난 7월에 있었습니다. (사건이 1906년 7월 11일에 있었거든요.) 그럼 도대체 왜 이 사건이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을까요? 사건이 일어난 10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사건의 두 주역인 체스트 질렛(Chester Gillette)과 그레이스 브라운(Grace Brown) 은 1905년 뉴욕 주 코틀랜드(Cortland)에 있는 한 의류 공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체스트 질렛은 서부의 몬타나주 출신으로 구세군에서 일하던 부모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교육을 걱정한 부유한 친척에 의해서 오하이오주의 오벌린 칼리지 예비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하지만 학교 생활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2년후 시카고로 옮겨가서 여러 직업을 거칩니다. 그러다가 시카고를 방문했던 친척을 따라 코들랜드로 와서 친척이 경영하던 의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체스트와 달리 그레이스 브라운은 뉴욕 주 북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19세기 말 뉴욕 주 북부의 시골은 젊은 그레이스에게 아마 매우 따분하고 지루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조카를 돌보는 조건으로 결혼한 언니의 집이 있는 코틀랜드로 오게 된 것은 어찌보면 그녀에게는 지루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자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약의 계기가 되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코틀랜드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았고 결국 체스트의 친척이 경영하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일을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인 1905년 여름의 일이었는데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레이스가 떨어뜨린 반지가 굴러가서 체스트의 구두에 부딪쳤고 그것을 계기로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이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던 직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었고 그레이스의 언니도 체스트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일하고 있는 공장 사장의 조카라는 체스트의 신분과 그 신분 때문에 코틀랜드의 상류층에 속해 있던 체스트와 시골에서 도시로 처음 와서 자신의 삶을 아래에서부터 만들어 나가던 그레이스, 이 두 사람은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어쩌면 체스트의 그러한 신분이 그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는지도 모르지요.

그 해 가을 잠시 고향에 다니러간 그레이스에게 보낸 체스트의 편지에서는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그의 진심이었다기 보다는 그레이스를 유혹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작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 편지에서 체스트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당신은 모를거야.. 일요일은 가장 지루한 날이었어... 그날 나는 9시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특히 당신을 생각하며 두 시간동안이나 깨어있었어... 빨리 돌아와 내가 여기서 얼마나 외로운지 당신은 몰라..." 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는 절실한 외로움을 이야기 하지만 이 시기에 체스트가 만나던 여자는 그레이스 하나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공장의 또 다른 여직원과 인근 대학교의 여학생 등 체스트는 여러 명의 여자를 동시에 만났습니다. 이에 반해 그레이스에게는 오직 체스트만이 유일한 교제 상대였지요. 그러다가 그레이스의 언니가 코틀랜드를 떠나야 하는 일이 생겼고 그레이스는 인근의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체스트는 이 하숙집에도 일주일에 한 두번은  찾아와 응접실에서 같이 저녁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가곤 했답니다. 하숙집 주인이 물론 있었지만 저녁이 늦어지면 주인은  침실로 들어가고 두 연인만 남아 늦게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뉴욕 북부의 겨울 밤은 길고 아마 이 와중에 두 사람은 (당시로는)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었었나 봅니다.

이듬 해 (1906)년 봄 그레이스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즈음 두 사람이 높은 소리로 다투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목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체스트는 그레이스에게 고향에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설득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그녀와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리라는 암시도 줍니다. 결국 그레이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임신 사실은 숨긴 채 부모와 지내며 체스트가 정식으로 청혼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기다립니다.

지금도 그리 환영받는 일은 아니지만 20세기 초반 미국의 시골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임신하는 것은 큰 사건이었고 이로 인해 그녀는 사회에서 매장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고향에서 초조하게 체스트의 연락을 기다리던 그레이스는 몇 차례 체스트에게 편지를 보내 결심을 종용합니다. 나중에 재판에서 증거물로 제시되었던 이 편지들 속에서 그레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 내가 죽을 수 만 있다면... 내가 죽으면 당신이 행복해 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죽고 싶어요.... 빨리 와서 나를 데려가 줘요. " "토요일이 오기전에 오겠다고 답장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코틀랜드로 갈 거예요."  이 편지들에 대한 체스트의 답장은 이전에 열렬한 사랑을 표현할 때 와는 많이 달라져있었죠. 그리고 그레이스가 떠난 코틀랜드에 홀로 남은 체스트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아주 자유로운 생활을 즐깁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코틀랜드로 돌아오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그레이스의 편지를 받은 체스트는 그녀에게 뉴욕 북부의 아디론댁(Adirondack) 산맥으로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합니다. 아디론댁 산맥은 뉴욕 주 북부에 있는 산악지역으로 미국에서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이기도 합니다. 산과 호수가 어울려진 아름다운 지역으로 요즘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호수와 어울어진 단풍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레이크 플레시드(Lake Placid)도 이 아디론댁 산맥에 있는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체스트의 이러한 제안에 그레이스는 들뜨게 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아디론댁에서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하며 체스트와 만나기로 한 도시로 떠납니다. 떠나는 길에 그레이스는 부모님들에게 코틀랜드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을 하고 자신의 모든 짐을 넣은 큰 트렁크를 들고 집을 나섭니다. 아마 체스트와 결혼식을 올린 후 다른 곳으로 가서 정착할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여행의 시작부터 체스트는 몇 가지 미심쩍은 행동을 합니다. 7월 9일 아디론댁 산맥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유티카(Utica)에 도착한 두 사람은 호텔에 묵게 되는데 체스트는 본명 대신 뉴욕시에서 온 챨스 고든과 아내(Charles Gordon and Wife of New York City) 라고 숙박계에 적습니다. 나중에 재판정에서 이 일에 대해 체스트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그레이스의 명예를 지켜주려 가명을 적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다음날 체스트는 입던 와이셔츠를 몇 벌 세탁소에 맡기며 나중에 올드 포지(Old Forge)라는 도시에 있는 호텔로 보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 때에는 자신의 본명을 적어 줍니다. 이 날 부터 운명의 날인 11일까지 두사람은 이 일대를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것 같습니다. 하지만 11일 아침 호텔에서 두 사람이 아침식사를 하면서 그레이스가 격렬하게 울고 있는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목격되기도 합니다. 어쨌던 11일 두 사람은 올드 포지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도중에 있던 빅 무스 호수에 잠시 내려 호수를 구경하려 합니다. 당시에도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였고 여름 휴가가 시작되며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는 군요.

*2006년 가을의 Big Moose Lake입니다.

그 날 저녁에 올드 포지에 도착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미 그레이스는 자신의 짐을 기차로 보내버린 후였습니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체스트는 다시 호텔 방을 빌립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올바니에서 온 칼 그램(Carl Grahm of Albany)이라고 하고 그레이스에 대해서는 정확한 본명과 그녀의 고향을 숙박계에 적어 줍니다. 더 이상 그녀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죽은 후 시신이나마 고향을 찾아 가기 바랬을까요? 일단 호텔에 방을 잡은 두 사람은 보트를 타러 가기로 하고 호텔에서 나와 호숫가에서 보트를 빌립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보트를 빌린 후 체스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짐을 보트에 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보트 대여점의 주인이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여행 가방을 들고 보트를 빌리러 오는 사람은 처음이었고 그 가방에는 테니스 라켓까지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보트를 빌린 두사람은 하루 종일 호수 위에서 보트 놀이를 하며 호수의 한 기슭에 내려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보트는 돌아 오지 않았고 이어서 시작된 수색에서 뒤집어진 보트와 그레이스의 익사체가 발견됩니다. 체스트의 모습은 찾아 볼 수 가 없었지요. 나중에 재판을 할 때 증언된 내용에 따르면 이 즈음에 체스트는 호수 기슭의 다른 도시인 인렛(Inlet)의 한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나던 날 저녁 호수 근처에서 축축한 옷을 입은채 가방을 들고 걸어 가고 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는데 가방에서는 테니스라켓이 사라지고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렛의 호텔에서 체스트는 전혀 이상한 기색 없이 다른 정상적인 관광객처럼 행동했다고 합니다.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스트는 체포됩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증언을 하기도 했지만 여행 도중에 그가 남긴 행적은 쉽게 추적이 가능한 것이었고 그 때까지도 체스트는 호수 기슭의 다른 도시 인렛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이미 올드 포지로 보냈던 그레이스의 짐 속에서 두 사람이 교환한 편지들이 나왔고 이것을 증거로 심문하자 체스트는 자신과 그레이스가 같이 보트 놀이를 했다는 것을 시인했습니다. 자신이 두 사람의 관계와 임신한 사실을 그레이스의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말을 하자 절망한 그레이스가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것이 체스트가 말한 사건의 전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그가 그레이스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결국 그 해 11월에 시작된 재판에서 검찰측은 체스트가 여행 도중 가명을 사용했으며 체포 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태연하게 행동한 점 그리고 그의 가방에서 테니스 라켓이 사라진 점 등에 주목하여 체스트가 그레이스를 의도적으로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울러 검시관의 검시결과는 머리와 안면에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없어진 테니스 라켓에 맞은 것이라는 주장도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증거가 정황 증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 살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검찰에서 주장하는 모든 증거는 심증이었을 뿐 단 하나의 물증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 재판은 전국의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요. 임신한 애인을 살해한 비정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당시에 얼마나 선정적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종류의 사건은 요즘도 심심찮게 일어나 매스컴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실제 1-2 년 전에도 임신한 아내를 살해한 남편, 그리고 그 남편이 몰래 만나던 애인의 이야기가 한 동안 미국의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도 100년전의 사건처럼 뚜렷한 물증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쨌던 체스트와 그레이스의 사건은 매스컴의 관심을 끌었고 그 와중에 온각 종류의 소문이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코틀랜드의 상류층 출신인 해리엣 베네딕트(Harriet Benedict)라는 여성이 체스트와 만나고 있었고 이 여성 때문에 체스트가 그레이스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이 여성은 공식적으로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해리엣과 관련된 이 이야기는 나중에 드라이서가 "미국의 비극"을 쓸 때 주인공들의 삼각 관계를 이야기 속에 포함시키는 모티브가 되기도 합니다. 비록 정황 증거 뿐이었지만 배심원들은 유죄를 선고하였고 체스트는 사형을 언도 받습니다. 항소를 통해 체스트 측에서는 그레이스가 간질을 앓고 있었고 호수 위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원심이 인정되어 1908년 3월에 체스트는 뉴욕 주 오번 교도소에서 사형당합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이 사건은 1925년 시어도어 드라이서에 의해 "미국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소설 속에서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인기 있던 이 소설은 1931년에 영화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후 그레이스의 유족들과 소설의 원작자 드라이서는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영화 제작자를 고소합니다. 그레이스의 유족들은 이 영화가 그레이스를 잘 못 표현함으로써 고인과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하였고 원작자 드라이서는 자신의 작품이 영화 속에서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다면서 상영금지 신청을 했습니다.  드라이서는 고소를 곧 취하를 했다고 전해지고 유족들은 영화사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액수의 위로금을 받고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1951년 "A Place in the Sun"라는 영화가 다시 만들어지는데 비평가들과 관객의 반응이 모두 좋았고 6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지난 7월에 허커머 군에서 열렸던 학회에서 이 재판과 관련하여 발표한 한 법률가의 의견을 빌자면 당시의 수사와 재판은 현재의 기준에서는 무리한 점이 많았다고 합니다. 증거의 수집 방법이나 심문의 절차에 문제가 있었고 만일 지금 이런 사건이 있다면 재판까지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재판 전에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피고가  합의하여 유죄를 인정하고 낮은 형량을 받는 플리 바긴(Plea Bargain)으로 사건이 종결될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만들어 졌던 한 노래에서처럼 '하느님과 체스트 만이 알고 있는" 이 사건의 진실을 누구도 밝힐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 추구와 이것이 불러온 비극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한 교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래에는 YouTube 에서 발견한 영화 A Place In the Sun 의 한 장면입니다. 부잣집 딸 안젤라(Angela Vickers)와 가난한 조지(George Eastman)가 춤을 추며 나누는 대사들인데요. 사랑에 빠진 순진한 부잣집 딸 안젤라와 이미 다른 여자가 있으면서도 부유한 안젤라를 가까이 하고 또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조지가 나옵니다. 영화 속에서 조지가 감추었다고 말한 것은 정말 사랑한다는 말이었을까요? 그의 표정에서 보이는 것은 감추어진 죄의식인가요 아니면 비극적인 종말을 예고하는 이유 모를 슬픔인가요?  그나 저나 50여년 전 젊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영화 속의 역할도 그러한 아름다움을 더 해주는 군요. 화면 아래에는 장면 속의 대사입니다.

안젤라: Aren't you happy with me?
조지: Happy? The trouble is I'm too happy tonight.
안젤라:You seem so strange--so deep and far away--As though you were holding something back.
조지: I am.
안젤라:Don't.
조지:(I'd better.) -- This is nice. I don't want to spoil it.
안젤라:You'd better tell me.
조지:I love you. I've loved you since the first moment I saw you. I guess maybe I even loved you before I saw you.
안젤라:And you're the fellow that wondered why I invited you here tonight. I tell you why. I love... Are they watching us? I love you, too! It scares me.  But it is a wonderful feeling.
조지:It's wonderful when you're here. I can hold you, I can see you.I can hold you next to me. But what's it going to be like next week? I'll still be as much in love with you. You'll be gone!
안젤라: But I'll be at the lake! You'll come and see me.It's so beautiful. You must come. I know my parents will be a problem. But you can come the weekends when the kids are there. You don't have to work weekends. That's the best time. If you don't come, I'll drive down here to see you. I'll pick you up outside the factory. You'll be my pick-up! We'll arrange it somehow, whatever way we can. We'll have such wonderful times together, just the two of us.
조지: I'd be the happiest person alive.
안젤라:The second happiest.
조지: Angela, if I could only tell you how much I love you. If I could only tell you all.
안젤라: Tell Mama. Tell Mama all.

* 이글을 위해 참고한 책과 웹싸이트들 그리고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 Brandon, Craig. Murder in the  Adirondacks: An American Tragedy Revisited(North Country Books, 1986)와 동명의 웹싸이트
  • Brownell, Joseph W., and Patricia W. Enos. Adirondack Tragedy: The Gillette Murder Case of 1906. Nicholas K. Burns Publishing, 2003.
  • North County Public Radio, An Adirondack Murder-- 이 곳에서는 사건과 관련된 라디오 다큐멘터리와 그레이스의 편지를 성우가 낭독한 것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 Big Moose Lake 의 가을 풍경은 Ms. Lida Rose의 Flicker 싸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by Clio | 2006/11/06 10:49 | 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cliomedia.egloos.com/tb/52169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6/11/09 16: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6/11/09 16:38
얼음칼 님/ 윽....날카로운 얼음칼에 찔렸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화끈화끈 거리는지요. 얼마나 많은 분들이 보고 비웃었을지... 사전을 찾기 보다는 구글을 이용하는 나쁜 습관과 이탈리아어가 제2 외국어인 탓에 일어난 사고입니다.flea market 도 있으니 bargain 과 아무 생각 없이 연결 시켰나 봅니다.. 변명이 구구하네요..
구글을 검색하니 "Flea Bargain" 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검색되길래 그냥 썼답니다. 그리고 이제 제 블로그의 글도 당당히 2번째 페이지에 올라가 있더군요. 전세계적으로 창피하게 되었습니다. 친절하신 지적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